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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1:47
독일 통일 전 동독 정보국이 유독 민감하게 사찰한 인물이 시인 '라이너 쿤째'였습니다. 왜 정치범도, 선동가도 아닌 시인인가. "그들이 두려워 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수 있는 글과 말을 가졌다는 것" 예수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두려움도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서정시마저 불온하게 여겨 한 생애를 포박했던 정보국처럼 공의회도 나사로를 살린 예수를 요주의 인물로 규정해 제거하려 합니다.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건 신앙심이 아니라 시기심입니다.
Before the reunification of Germany, the East German intelligence agency was particularly sensitive about the poet, "Liner Kunze." Why is he a poet, not a political prisoner or an instigator? "What they feared was that he had words and writings that opened people's hearts." Religious leaders' fear of Jesus seems to be no different. Just like the intelligence agency that imprisoned even lyric poetry for a lifetime, the council tries to eliminate Jesus by defining him as a person who saved NASA. What captivates them is envy, not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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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들 안에 어떤 진동과 전복, 변화와 전복, 변화와 갱신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공주야! 대제사장은 예수를 희생양 삼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예수가 대속의 제물로 드려지게 하신다. 나사로 소생 표적의 목적도 죽은 한 사람'을 살리는 데 있지 않고 온 백성을 위한 한 사람(예수)의 죽음을 예고하는 데 있었다.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을 포함하여 예수가 행한 많은 표적 앞에서 종교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해득실만을 따진다.
They did not allow any vibration and subversion, change and subversion, change and renewal to take place in them. Princess! The high priest tried to make Jesus a scapegoat, but God made him give as a sacrifice to the masses. The purpose of the resuscitation target with the screw was not to save the one who died, but to predict the death of one person (Jesus) for the whole people. In the face of many targets Jesus has done, including the case of saving the screw, religious powers only weigh their interests.-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보다 이 사건이 로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우리 땅과 민족의 운명이 하나님께 달린 것이 아니라 로마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왜 로마의 압제 아래 살게 되었는지를 잊은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모르고 있다. 그러고도 종교지도자 행세를 한다. 우리 시대에 메시아가 오신다면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정치 권력자들을 대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태도는 과연 예수님도 인정하실 만한가?
Rather than where God's will is, I am concerned that this event will make Rome uncomfortable. I think the fate of our land and our people is not up to God, but up to Rome. They have forgotten why they came to live under Roman oppression. They do not know the way to achieve true freedom and liberation. Even then, they pretend to be religious leaders. How will religious leaders react if the Messiah comes to our time? Is Jesus' attitude toward political powers accep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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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와 관련한 논의를 한 가지 제안으로 정리한다. 한 사람 예수를 죽여서 자기 민족 전체가 안전해질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그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과 관련 있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이나 자신들의 나라의 이익과 관련 있다. 권력을 유지 할 수 있고 나라가 안전할 수 있다면 골칫거리 한 사람의 목숨 정도는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저 사람이 대제사장이다.
The high priest, Gayaba, summarizes the discussion about Jesus with one suggestion. It is said that if one person can kill Jesus so that the whole nation can be safe, it is right to take that path. The reason why he should die is not related to God, but to their own interests or to their country's interests. He is the high priest who thinks that if he can maintain power and the country can be safe, he can remove the life of a troubled person as much as he w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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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야바는 자신의 제안이 정말 한 사람 예수의 죽음으로 당신이 자녀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예수는 자신을 죽이려는 모의가 예루살렘에서 활발하게 있는 것을 아시고 당장은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신다. 아직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다. 유월절 무렵에 예수의 출현을 예상한 유대인들이 그를 잡기 위해 예수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예수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열정을 보라.
However, Gayaba would never have imagined that his proposal would be God's way to save your children by the death of Jesus, a man. Jesus knows that there is an active plot to kill him in Jerusalem, and he does not go around among the Jews right now. It is not God's time yet. Jews, who anticipated the appearance of Jesus around Passover, wait for him to appear to catch him. Look at their false passion for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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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향한 나의 열정이 도리어 예수를 배반하는 일이 되거나 예수를 죽이는 일이 되지 않도록 내 욕심을 잘 묵상하자. 가야바의 의견의 의미가 무엇인가? 지금은 드러낼 때 인가 피할 때 인가? 나사로를 살린 것을 보고도 대제사장이 로마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배후의 섭리를 믿는가, 배후의 사랑을 믿는가?
Let's meditate on my greed so that my passion for Jesus does not become a betrayal of Jesus or a killing of Jesus. What is the meaning of Gayaba's opinion? Is this the time to reveal or avoid? Why did the high priest choose Rome even after seeing that Nasarro was saved? Do you believe in the providence behind it or the love behin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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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원들의 반응(47-48)
a.공회를 모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47a
b.예수님의 표적을 걱정하는 종교지도자들:47b-48
대제사장 가야바의 반응(49-53)
a.가야바의 예수님의 죽음 예언:49-50
b.가야바의 예언에 대한 설명:51-53
유월절 순례자들의 반응들(54-57)
a.예수님의 물러섬:54
b.예수님에 모인 유대인들의 반응: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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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제사장들과 (47a)
바리새인들이(47b)
공회를 모으고(47c)
가로되 이 사람이(47d)
많은 표적을 행하니(47e)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4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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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저를(48a)
이대로 두면(48b)
모든 사람이(48c)
저를 믿을 것이요(48d)
그리고(48e)
로마인들이 와서(48f)
우리 땅과 민족을(48g)
빼앗아 가리라 하니(4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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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한 사람(49a)
그 해 대제사장인(49b)
가야바가(49c)
저희에게 말하되(49d)
너희가 아무 것도(49e)
알지 못하는 도다(4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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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50a)
백성을 위하여(50b)
죽어서(50c)
온 민족이(50d)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50e)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50f)
생각지 아니하는 도다(50g)
하였으니(5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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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951a)
스스로 함이 아니요(51b)
그 해에(51c)
대제사장이므로(51d)
예수께서 (51e)
그 민족을 위하시고(5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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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민족만(52a)
위할 뿐 아니라(52b)
흩어진(52c)
하나님의 자녀를(52d)
모아(52e)
하나가 되게(52f)
하기 위하여(52g)
죽으실 것을(52h)
미리 말 함이라(5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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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부터는(53a)
저희가(53b)
예수를 죽이려고(53c)
모의 하니라(5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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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예수께서(54a)
다시 유대인 가운데(54b)
드러나게 다니지(54c)
아니하시고(54d)
여기를 떠나(54e)
빈 들 가까운 곳인(54f)
에브라임이라는(54g)
동네에 가서(54h)
제자들과 함께 (54i)
거기 유하시니라(5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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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유월절이(55a)
가까우매(55b)
많은 사람이(55c)
자기를 성결케(55d)
하기 위하여(55e)
유월절 전에(55f)
시골서 예루살렘으로(55g)
올라갔더니(5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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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예수를 찾으며(56a)
성전에 서서(56b)
서로 말하되(56c)
너희 생각에는(56d)
어떠하뇨?(56e)
저가 명절에(56f)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5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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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57a)
대제사장들과(57b)
바리새인들이(57c)
누구든지(57d)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57e)
고하여 잡게 하라(57f)
명령하였음 이러라(5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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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권력자들의 반응_
Reactions from religious powers.
가야바의 제안_
Gayaba's suggestion.
살기 가득한 기다림_
Waiting full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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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히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실뿐 아니라 흩어진 자기백성들을 구원해 가시는 주님께서 나사로의 사건을 듣고 역반응을 일으키는 가야바 무리들의 음모를 부수고 작정하신 구속사역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도 예수보다 로마황제를 선택하는 것을
보며 다시 사는 것의 의미보다 부활이 뜻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깨달게 하소서.
I believe that the Lord, who not only expands your country but also saves the scattered people, will break down the conspiracy of the Gayabam groups to counteract Nasaro's incident and form a determined restraining mission. Let us realize the the theological message of resurrection rather than the meaning of living again by seeing the dead survive and choosing the Roman emperor over Jesus.
2026.3.10.tue. Clay
신학 비평//
1)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의 정체
요 11:47은 신앙고백이 아니라 위기관리 회의록처럼 시작합니다. “표적이 거짓인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게 하나님인가?”를 묻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를 묻습니다. 즉, 문제의 중심이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권력/지위/안전)으로 옮겨갑니다. 여기서 종교는 더 이상 예배가 아니라 정치적 기관이 됩니다. 당신이 든 동독 정보국의 비유처럼, 공의회가 두려워하는 건 “범죄”가 아니라 마음을 열어버리는 말입니다. 표적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마음이 열리면 체제는 흔들립니다.
2) 두려움의 문장: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48절은 공의회의 신학이 폭로되는 구절입니다. 그들은 말로는 “민족”을 말하지만, 문장 속 핵심은 사실상 우리(기득권)의 자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역사의 주권자”로 보지 않습니다. 로마를 “최종 원인”으로 봅니다. 그래서 결론은 “믿음”이 아니라 “관리”입니다. 이건 단지 비겁함이 아니라 우상숭배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제국의 기분”이 역사를 결정한다고 믿는 것—그것이 그들의 신학입니다.
3) 가야바의 제안: “한 사람이 죽어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희생양 논리입니다. “골칫거리 한 사람만 제거하면 전체가 산다.” 이 논리는 언제나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이 논리가 성립하는 순간, 죄는 체제가 아니라 개인에게 전가되고, 폭력은 “필요한 수술”로 합리화되며, 살인은 “공익”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신학적으로 이 지점이 소름 끼치는 이유는, 가야바가 말한 “한 사람의 죽음”이 정치적 계산으로는 살인인데, 하나님 편에서는 구속의 문장으로 뒤집혀 버리기 때문입니다(51-52절의 ‘예언’).
여기서 요한복음은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계산까지도 재료로 삼아 더 큰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악도 괜찮다”가 아니라, 악의 책임은 악인에게 그대로 남은 채, 하나님이 그 위에서 구원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4) “그 해 대제사장” — 직함이 영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51절이 날카로운 이유는 이것입니다. 가야바는 대제사장이지만, 그의 동력은 신앙심이 아니라 시기심/공포/이해득실입니다. 직함은 거룩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같은 질문이 살아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말하면서 사실은 내 체면을 지키는가? 나는 공동체를 걱정한다면서 사실은 내 자리(권력)를 걱정하는가? 나는 “질서”를 말하면서 사실은 복음의 전복을 두려워하는가?
5) 예수의 물러섬: 지금은 “드러낼 때”가 아니라 “피할 때”
54절은 예수의 용기가 줄어든 게 아니라, 시간(때, kairos)의 신학입니다. 예수는 항상 공개적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드러남과 숨음 모두를 아버지의 때에 맞춥니다. 신학적으로 중요한 교훈은 "믿음은 무모함이 아니라 분별이다" "어떤 싸움은 “지금”이 아니면 복음이 아니라 자만이 된다." “지금은 드러낼 때인가 피할 때인가”—는 매우 적절합니다.
6) “살기 가득한 기다림” — 종교적 열정이 배신이 되는 순간
55-57절의 유월절 분위기는 아이러니합니다. 사람들은 성결케 하려고 올라오고, 명절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 있는 곳 알면 고하라”는 체포 명령이 돌아다닙니다. 가장 종교적인 시즌에, 가장 반(反)복음적인 열기가 끓습니다. 이게 본문이 던지는 무서운 질문입니다. “예수를 찾는 열정”이 “예수를 죽이는 열정”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의 기도문이 정확히 기도입니다. “예수를 향한 나의 열정이 도리어 예수를 배반하지 않게…”
7) 결론: 나사로의 소생이 던진 더 큰 메시지
나사로 사건은 “죽은 자 한 명을 살린 기적”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온 백성의 구원을 향한 문을 여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의회는 표적을 보고도 부활의 의미 대신 체제의 유지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요 11:47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배후 섭리”를 믿는가, 아니면 “로마의 배후 권력”을 믿는가? 나는 “부활의 신학”으로 살고 있는가, “불안 관리”로 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