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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좋은 편을 택하여 빼앗지 못하게 하라 - 마르다와 마리아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 이 한 가지 좋은 편을 택하여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오리니"
ㄹ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 만이라도 족하느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10:41~42)"
예수께서 베다니 마을에 들어가시니
마르다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바빴습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주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의 발 앞에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보자 예수께 일렀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누가복음10:40)"
예수께서 들으시고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나
몇 가지만 하던지 혹은 한 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누가복음11:41~42)"
1.마르다의 많은 일
1>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눅10:40)"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바빴습니다.
마르다는 많은 일을 하지만 한 가지만이라도
족할 수 있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때 그리스도인은 일이 많아서 마음이 분주합니다.
주의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정적으로 말씀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말씀없는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조급합니다.
여러가지 많은 일로 봉사도 하고 섬기는 여러가지 일을 하는데
결정적으로 말씀이 없어 결국은 불평과 불만을 가집니다.
말씀 없는 그리스도인의 봉사와 섬김과 구제는 예수님의 생명있는 말씀이
없어 인본주의로 변질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가장 먼저 택할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없는 봉사와 섬김은 말씀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불평합니다.
사회적인 봉사와 섬김과 구제보다 앞서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마르다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한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근심하나(눅10:41)"
많은 일을 한다고 예수님게 칭찬받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일이 오히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 왔다고 자랑하는 자들은 실상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여도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아 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회사일만 하는 일벌레가 되어 가정의 행복을 잃을 수 있습니다.
분별력 없는 많은 성경공부가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수많은 프로그램과 행사하는 일들 때문에
영혼의 양식을 먹을 시간이 없어 결국은 불평과 불만만 가득한
부정적인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마음에 평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일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예수님을 겉으로만 영접하고 열심을 내는 자는 영혼의 염려와
몸의 피곤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겉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마음에 있어야 마음이 평안하고 근심과 염려가 없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복음14:1)"
마음에 무엇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안됩니다.
마음에 있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음에 근심이 없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성령께서 우리 성령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시어 평안을 있게 하십니다.
2.마리아가 좋은 편을 선택하여 빼앗기지 아니한다.
1>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말씀을 들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앞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들으니(눅10:39)"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있어
예수님의 발 앞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믿음이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없는 열심은 말씀 있는 자를 향하여
불만을 품습니다.
마르다는 말씀없는 열심입니다.
마리아의 우선적인 선택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장 우선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있는 말씀입니다.
예수 없는 열심으로 많은 일을 하는 것은 마음도 염려되고
몸도 피곤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없는 여러가지 학문을 많이 공부하는 것이 피곤하게 합니다.
성경없는 여러가지 책을 공부하는 것은 염려하게 하고 근심하게
합니다.
수많은 종교의 우상 신들을 숭배하고 여러가지 종교의 가르침을 받아도
오직 예수 없는 가르침은 마음을 염려하게만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여러 우상신들을 믿는 것은 영혼과 몸을 피곤하게 합니다.
불신자의 임종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립니다.
세계적인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는 50년 안에 기독교를 파괴하고
100년 안에 성경이 다 없어지고 만다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직전에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소리질렀습니다.
"나는 멸망으로 들어간다
나는 지옥에 간다"
볼테르가 죽은지 20년 만에 볼테르의 집은 성서공회 출판사가 되었습니다.
볼테르의 집은 창고까지 성경책으로 가득찬 집이 되었습니다.
예수 없는 여러가지 수양이나 도를 닦고 오래 동안 많은 절제하는 시간을
가져도 결국은 평안이 없는 죽음의 공포와 함께 허무함을
말합니다.
유명한 성철스님은 8년간 드러눕지 않았습니다.
5개 국어를 하고 뛰어난 학문을 겸비한 스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종직전 그는 소리질렀습니다.
"한평생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
나는 지옥간다.
사탄이여 오시옵소서"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말씀이 있어야 진리가 있고
죽음 직전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2>마리아가 예수님께 순전한 향유를 붓다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가장 좋은 것을 택하여
행할 줄 압니다.
마리아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마리아가 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내었습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입니다.
이 향유를 삼백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마리아를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리는 것을 보시고
오히려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14:6)"
여러사람들이 보는 눈과 예수님이 보시는 눈은
다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닌 예수께서 보는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올바른 판단과 분별력과 바르게 좋은 편을 택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우선해야 할 줄 믿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오직 한 가지 일로 말씀을 들으니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선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도 아낌없이 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마리아의 행하는 것이 옳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믿음은 사람에게
좋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좋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옳은 것임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한 가지입니다.
여러가지 다양성이 아닙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인 가치의 한 가지를 무너뜨립니다.
여러가지가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성의 주장이 결국은 절대적인 유일하신
하나님을 부정하게 합니다.
오직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다양성의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주의 날이 가까이 오고 7년 환난이 임박할 때는 한 가지의 성경권위를
부정하고 여러가지 많은 다양성을 가지게 합니다.
오직 진리이신 예수님을 부정하게 합니다.
성경을 부정하여 다양성이 진리되게 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간의 이성이 맞는데 동성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남자와 남자간의 사랑도 맞고 여자와 여자간의 사랑이 맞다고
다양성을 인정해달라고 난리입니다.
절대적인 신은 없고 여러가지 신들이 있어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이라고 하면 독선적이라고 기독교를 공격하는 세대입니다.
남자는 남자의 옷을 입고 여자는 여자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
남자가 여자 옷을 입어도 되고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어야
옳다고 주장하는 세대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믿는 자는 기독교의 불리한 공격을
받아도 믿음을 지킬 때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교회의 비리, 목회자의 도덕성입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진리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구조적 비리나 목회자의 도덕성 때문에 교회를
등지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어떤 비리나 비도덕적인 것만 보고 정작 중요한 성경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비리나 비도덕성을 들을 것이 아니라
복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 천년왕국을 두고 엄히 명하는 것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좋은 편을 선택하여 빼앗기지 마라
여러가지 학설에 치우치지 말고 한 가지 좋은편을 택할 것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속히 오시리라는 예수님의 한 가지 말씀이 중요합니다.
더디 오리라는 여러가지 학설이나 논증에 두지 말기를 바랍니다.
휴거설의 여러가지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초대교회부터
전통적인 성경을 기초하여 가르치는 7년 환난 전에 휴거된다는
이 한 가지로 마음에 되새기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속히 오실 때 올라가야지 여러가지 학설에 치우쳐
남아서 휴거될 자격을 빼앗기는 어리석은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유명한 복음주의자가 꿈을 꾸어 예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복음주의자가 예수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천국에는 어느 교단이 많이 들어오나 궁금해서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예수님 천국에는 장로교, 감리회, 루터교, 승공회,
성결교, 순복음, 침례회, 동방정교, 구세군 중
어느 교단이 많이 들어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어느교단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주의자가 그럼 누가 천국에 들어옵니까?
하니 예수님의 대답은 "나를 믿는 자가 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여러가지 학설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신학도 아닙니다.
여러가지 많은 교단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요한계시록3:11)"
예수께서 속히 오실 것을 믿는 자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학설에 치우쳐 많은 지식을 얻고자 하는 자는
도적같이 임하여 신부의 옷과 면류관을 도둑맞아 빼앗기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르다 처럼 많은 일을 하고도 염려하여 근심이 되지 말고
마리아 처럼 범사에 헤아려 한 가지 좋은 일을 택하여 빼앗기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글쓴이: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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