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건 무슨 음식인고?" (전편의 마지막 부분)
동방삭은 여태껏 본적이 없는 요상한 음식 앞에 정신이 퍼득 들어 물었다.
"예, 이것은 선유도원에 있는 '천도복숭아'이옵니다. 신선들의 주식이지요."
그녀가 내민 천도복숭아는 그 모양새가 어린 아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기묘한 형상이라 먹기가 께름칙하였다.
"서방님 드리려고 여기 오는 길에 얻어왔답니다."
동방삭은 배도 출출하여 복숭아를 하나들고 눈을 감고는 한 입 베어 물었다. 천도복숭아는 깨무는 느낌은 있었으나 이내 입 안에서 사라지고 향기가 입 안을 가득채웠다.
한 개를 다 먹고나자 느낌은 없었으나 시장기가 사라졌다.
주모는 호리병 속에 든 술도 권하였다.
"이 술은 '운향주'라는 술이 온데 천도복숭아를 구름 속에 천일간 재워 발효시키고 통 안에 이슬이 스며들게 하여 만든 신선들의 음료지요."
하며 주모는 병을 들어 보였다. 운향주는 붉은색이 감도는 무형의 액체였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담겨 있는 액체로써 동방삭은 이상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운향주는 '운도주'라고 불리기도 하고 '도향주'라고 하기도 한답니다."
주모의 말에 동방삭은 눈을 껌뻑거리며 빨리 받아먹고 싶은 맘 뿐이었다.
호리병 속에 붉으레한 빛이 가득 들어 있었으나 술은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가벼웠고 잔에 따르는 소리로써 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방삭은 술을 보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술잔을 살폈으나 술을 형체가 없고 무게도 없고 흘들릴 때마다 찰랑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동방삭은 눈을 감고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향긋한 향이 술잔을 벗어나 방 안에 감돌았다.
향기가 입안에 들어가는 느낌!?
한 모금 목을 넘기자 부드러운 여인의 포근한 품에 기댄 느낌이 전해졌다. 아스라한 향기가 온 몸을 감싸고 어머니의 따스한 품 안에 들어와 편안한 잠 속에 들어온 착각을 빠졌다. 잠시 그는 혼미한 정신이 되었다.
한 모금 더 마시자 운향주의 또다른 느낌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목을 타고 흐르는 느낌은 액체 입자가 구르다 터지는 느낌처럼 '톡톡' 목안을 맛사지 하는 느낌도 전해왔다. 동방삭이 그것을 먹고 마시자 곧 포만감이 몸을 채워 돌고 감미로운 보랏빛 안개가 그를 어우렀다.
마취에 빠져들어 가는 것을 느끼며 그의 몸은 땅에 있으나 마음은 허공에 붕 떠올라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주모가 빙긋이 웃으며 동방삭을 바라보았다.
"신선들이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이 천도 복숭아와 운향주를 취하기 때문이랍니다."
"허어! 운향주와 어여쁜 여인이라....!!"
그는 몽롱한 기운에 빠졌다.
"서방님이 지금 혼미한 기분에 젖어드는 것은 신선이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자 동방삭은 기분이 좋아 연신 흥얼거렸다. 선인이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더 젊어진 기분이었다.
얼마 후 동방삭은 정신을 가다듬고 아까 전에 한 말에 대한 대답이 듣고 싶어 다시 물었다.
"내가 꿈을 꾼게요?"
동방삭이는 홍수를 겪고나서 깊이 잠에 빠져들었던 것을 생각하며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하여 물었다.
"서방님은 홍수를 겪고나서 잠이 드셨지요. 얼마나 곤하게 주무시던지 한 달을 꼬박 잠에 취해 계셨습니다. 지금 서방님을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고 꿈 속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정 의심이 간다면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시지요."
그 말에 동방삭이 궁금하던 차에 주모의 말이 끝나자 바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뒷곁 얕은 봉우리로 올라갔다.
둔덕에서 동네를 대충 둘러본 동방삭의 눈에 비쳐 들어온 마을 전경은 이곳에 처음 당도 하였을 당시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기억이 조금 희미해 보일 뿐 이었지만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처럼 온전하게 보였다. 그는 의심이 나서 주모에게 물었다.
"아니? 그러면 내가 만난 홍수는 무슨 변고 였던고?"
동방삭의 말에 주모는 반문하였다.
"마을을 잘 둘러 보셨는지요?"
"글쎄, 언덕에서 보긴 했다만 모든 것이 제대로 있구려!"
동방삭이 뒷산에서 본것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 말을 들은 주모는
"서방님 다시 한번 더 살펴보고 오시지요."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주모의 말에 동방삭은 마을 안길로 들어가 다시 둘러 보았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세심하게 살펴 보았다.
"아니......?!"
그는 크게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였으나 안에는 세간이 어지럽혀져 있고 물이 쓸고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을을 전부 둘러 보았으나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변고가 있나?"
그의 한숨 소리를 듣고 있던 주모가 참견하였다.
'인간의 과욕으로 인하여 조물주께서 내리신 벌입니다. 인간의 사악한 욕심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자 하늘이 노하신 거예요. 그중에는 무고한 이들도 많이 있지만 그들은 따로 거두실 거예요."
'그럼 자네와 나는 어떻게 목숨을 부지 했는고?"
"지난 번 말씀드렸다시피 서방님과 소첩은 천명을 넘어 신선의 경지에 이르러 이렇게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고 그 도를 지나쳐 오늘 이 불행을 겪은 것입니다."
이어 그녀는 뒷산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제 조물주께서 그런 변고를 없애시려고 뒷산에 있는 삼년고개를 허물어 뜨리셨습니다."
그녀의 말에 동방삭은 그녀가 지칭하는 쪽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처음 이곳에 당도할 때 넘어졌던 삼년고개가 반쯤 허물어져 속이 허옇게 들여다보이는 낭떠러지 절벽으로 변해 있었다. 산이 허물어져 버린 것 외에는 모든 것이 이전 그대로처럼 보였다. 나무들도 어느새 푸른 잎을 달고 있었다. 홍수가 지나간 뒤 물이 빠져나가자 나무들은 곧바로 생기를 얻어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이제는 동방삭이 굴렀던 삼년고개는 한번 굴러 삼년을 살더라도 몸이 고장난 채로 살거나 아니면 삼 일도 못가서 죽울 정도로 낭떠러지가 심하였다.
동방삭이는 숙연해져 말을 잃었다.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있었고 단지 '하늘의 뜻'이라는 주모의 말만이 그를 위로하였다.
또다시 하늘이 노랗게 변하였다. 동방삭의 정신이 혼미해져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대지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고 마주 보이는 산에는 나무들이 새로 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온 천지에 생기가 넘쳐 흘렀다.
무지개가 나무에 걸쳐 있고 가무를 즐기는 선녀들의 무리가 보였다. 동방삭은 다시금 환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뭇잎에 걸터앉아 요술피리를 부는 작은 요정들의 피리에서 오색 창연한 향기가 가락에 맞추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놀란 나뭇잎들도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향기가 날아가 앉은 땅에서는 노란 새싹이 올라오며 이내 머리에 향미로운 꽃을 피워 달았다. 나무잎사귀에 걸터앉아 잠에 빠진 요정의 모습도 보였다. 동방삭은 새로운 세상이 태어나는 신비로운 천지를 보고있었다.
꿈을 꾸는 것처럼 그 주위에 색감이 넘치는 안개가 금새 모여와 살아있는 물질처럼 서로 어울렸다. 연기마술을 보는 듯 뭉치고 여울져 여러 형체를 만들며 하늘 높이 올라가자 흰구름이 되어 먼 하늘로 흘러갔다.
동방삭은 그런 모습을 보며 요지화영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손을 내밀어 요정하나를 붙잡았다.
"요거 아주 귀엽네!"
그러나 손에 잡혀 올라온 요정은 '톡'하는 소리와 함께 금새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눈앞에 있던 모든 환상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동방삭의 마음도 허탈해졌다. 이어 그의 눈앞에 보이는 주변은 폭우에 흩어진 어수선한 모습들뿐이었다.
동방삭은 눈을 감았다. 모든 환영이 어디까지 자신을 괴롭힐지 두려웠다. 그는 앞으로 닥쳐올 운명에 향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주모를 마주하고 무슨 말인가 하고픈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동방삭은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그녀에게 마음으로 부터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동방삭은 차분한 어조로 침묵을 깨웠다.
"참, 자네를 누구라고 부르지? 이제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알아도 될 터인데."
그의 말에 주모는 머뭇하지 않고 대답하였다.
"소저의 이름은 '우란수향'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말을 듣자 동방삭은 환한 얼굴로 말하였다.
"이름에서 당신 자신이 우러 나오는 것 같구료!"
"실은 저의 이름은 '무량수현'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지요."
그 말을 하고는 그녀는 잠시 눈을 감더니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소저가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지요. 아버지께서는 낚시를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몽유도원'으로 가서 자주 낚시를 하곤 하셨는데 그곳의 풍광에 매료되셔서 낚시도 즐기고 풍류도 즐기러 자주 가셨대요."
그녀는 말을 꺼내자 동방삭이가 물어와 주기를 기다린 것처럼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늘 낚시 삼매경에 빠져 지내시던 아버자는 그날도 몽유도원으로 호수 낚시를 가셨답니다. 그곳은 호수라해도 크기가 어지간해서 바다만한 크기라 끝을 보이지 않는 너른 호수지요. 너무 넓어서 어떤 고기가 살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곳이랍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 감사합니다.
-하늘 바보-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