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길 수밖에 없었는지.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신다면 여러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그 밤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되실 겁니다. 준비되셨습니까?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잠깐만요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저 권력 다툼이었다고. 차가운 정치적 계산이었다고 혹은 실패한 쿠데타의 시작이었다고 말이죠. 교과서에서 읽었던 그 모든 설명을 잠시 잊어 주십시오. 왜냐하면 군사 재판의 조서 김재규에 대한 신문 속기록 그리고 당시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이 본국에 보냈던 극비 전문들 일부만 공개되었고 지금도 상당 부분이 기밀로 남아 있는 그 문서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재규는 그날 저녁 대통령을 죽일 계획이 없습니다. 권총은 가지고 갔습니다. 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살인 도구가 아니라 최후의 보험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마음을 바꾸기를 박정희가 그 명령을 내리지 않기를
부산과 마산의 거리를 피바다로 만들 그 명령을 김재규 자신을 자기 민족의 학살자로 만들 그 명령을 말입니다.
그날 저녁 궁정동 안가의 상위에서 한 번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1분 30초 남짓 박정희는 세 문장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장이 끝나는 순간
김재규는 깨달았습니다. 둘 중 하나 내가 죽느냐? 아니면 수십만의 동포가 죽느냐?
군사법정에서 재판관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하필 그 순간이었습니까? 김재규는 대답했습니다. 그가 그 말을 내뱉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재판관은 그 말을 한 글자도 빼놓지 말고 그대로 다시 말해보라고 요구했습니다. 김재규는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그 문장을 다시 말했습니다. 법정 전체가 얼어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속기록은 즉시 기밀 처리되었습니다.
여섯 달 뒤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는 교수대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그 말에 진짜 무게를 무덤까지 가지고 갔습니다. 거의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밤 그 방 안에 있었던 7명 중 단 한 사람이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6년이 흐른 뒤 그는 죽기 직전 한 기자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았습니다.
박정희가 마지막으로 한 말 그 정확한 문장을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이 영상의 마지막 장에서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먼저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된 처음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18년 전 한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탱크를 세웠던 그 새벽으로 1979년 10월 그 총알이 박정희를 따라잡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1961년 5월로 돌아가야 합니다. 18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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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침은 차지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총구는 그 다음 순간 박정희를 향했습니다. 첫 번째 총성 탕 차지철을 오른쪽 손목을 관통했습니다. 두 번째 총성 탕 박정희의 가슴에 맞았습니다. 대통령은 의자에서 천천히 기울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마지막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김계원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는 쓰러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난 괜찮다. 세 글자.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김재규의 권충이 이때 고장 났습니다. 방아쇠가 걸렸습니다. 그는 방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부하 박선호에게서 다른 권총을 받아들고 다시 방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차지철은 화장실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그의 등을 쏘았습니다. 차지철은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다가갔습니다. 대통령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권총을 대통령의 머리앞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마지막 총성 탕
저녁 7시 50분 박정희 대통령은 국군 서울 지구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인은 두부 총상 그의 나이 62살 그가 권력을 잡은 지 정확히 18년 5개월 열흘만이었습니다. 그날 밤 자정 김재규는 육군본부로 갔습니다. 그는 혁명을 완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동지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보안 사령관 전두환이 보낸 수사관들이었습니다.
새벽 4시 김재균은 체포되었습니다.
1980년 5월 24일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주장소를 정해 두었는가? 이곳은 계획된 내란이다. 그러나 김재규 본인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도망치려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혁명을 완수하려 한 것입니다. 각하를 제거한 후 즉시 계엄령을 해제하고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세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육군본부로 간 것입니다. 육군참모총장과 협의하기 위해서
오후 5시 50분 김재규는 검정색 세단에 올라탔습니다. 그의 부하 박선호가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차는 남산을 떠나 궁정동으로 향했습니다. 거리는 가을 저녁에 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차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양복 주머니 속에 있는 권총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그는 성호를 그었습니다. 오른손으로 조용히 그리고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의 이 손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만약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저에게 보여 주소서.
오후 6시 5분 차는 궁정동 안가의 철문 앞에 멈춰섰습니다. 철문이 열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태운 차는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차지철의 경호 차량도 저녁 식사를 준비한 여성 두 명도 이미 안쪽 방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차에서 내렸습니다. 가을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흔들었습니다. 그는 한 번 숨을 깊이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안가의 현관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 방으로 오후 6시 10분 궁정동 안가 본관 나동 건물 다담이 6장 크기의 작은 방 낮은 상에는 구운 갈비 신선한 전복 제철 송이버섯 그리고 시바쓰리갈 12년 산 한 병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던 위스키 상한쪽에는 박정희 그의 오른쪽에는 경호실장 차지철 왼쪽에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그리고 대통령 바로 옆에는 비서실장 김계원 상 건너편에는 그날 초대받은 두 명의 젊은 여성 한 명은 22살의 가수 또 한 명은 20살의 모델 그녀들은 자신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력 있는 내 남자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잔이 돌았습니다. 박정희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가수에게 노래를 청했습니다. 그녀는 그때 그 사람을 불렀습니다. 심수봉이 노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방안을 채웠습니다. 박정희는 눈을 감고 들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평화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방에 앉아 있는 일곱 사람 중 두 사람이 40분 후에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그런 평화로운 순간이었습니다.
6시 40분 대화가 부산 마산 사태로 넘어갔습니다. 차지철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부장님 부산 상황을 너무 과장하시는 것 아닙니까? 공수 부대의 한개 여단이면 충분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부장님의 중앙정보부가 제대로 일을 못해서 이 지경이 된 겁니다.
김재규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김계원 비서실장이 26년 후 기자에게 털어놓은 그 증언이 시작됩니다. 박정희는 김재규를 향해
첫 번째 문장을 던졌습니다.
재규야. 너는 요즘 왜 이렇게 물러졌냐? 옛날에 김재규가 아니다.
김재규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박정희는 두 번째 문장을 이어갔습니다.
중앙정보부장이 이 모양으로 일을 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앉힐 수밖에 없다. 네 자리는 언제든지 비울 수 있다.
이것은 해임 통보였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그 직후에 남산 지하실로 끌려간다는 뜻이었습니다. 박정희 시대의 해임된 정부부장의 운명이 어떠했는지 김재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전임자 김형욱은 그 무렵 파리에서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프랑스 경찰은 아직도 그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침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그때 박정희가
세 번째 문장을 그 마지막 문장을 내뱉었습니다. 김계원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는 위스키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산이고 마산이고 데모하는 놈들 3만 명쯤 밟아죽이면 조용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200만 명도 죽였는데. 우리가 3 만 명 못 하겠나? 내일 아침에 내가 직접 서명하겠다. 탱크를 내려보내라.
방 안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가수는 노래를 멈췄습니다. 모델은 얼어붙었습니다. 김계원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차지철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역시 각하이십니다.
그러나 김재규는 김재규는 그 순간 30년 전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 시절의 박정희를 떠올렸습니다. 함께 행군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조국의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 청년 박정희 그 박정희는 이제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자기 국민 3만 명을 죽이겠다고 태연이 말하는 어떤 늙은 폭군이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김재규의 오른손이 천천히 양복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손가락에 발터 PPK의 손잡이에 닿았습니다. 차가웠습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을 외쳤습니다.
각하 이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이 외침은 차지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총구는 그 다음 순간 박정희를 향했습니다.
첫 번째 총성 팡 차지철의 오른쪽 손목을 관통했습니다.
두 번째 충성 탕 박정희의 가슴에 맞았습니다.
대통령은 의자에서 천천히 기울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마지막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김계원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는 쓰러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난 괜찮다.
세 글자.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김재규의 권충이 이때 고장 났습니다. 방아쇠가 걸렸습니다. 그는 방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부하 박선호에게서 다른 권총을 받아들고 다시 방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차지철은 화장실 쪽으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그의 등을 쏘았습니다. 차지철은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다가갔습니다. 대통령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김재규는 권총을 대통령의 머리앞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