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누나는 21살에 농약을 먹고 죽었다. 복자 누나가 내 친누이는 아니고 어릴 때 한동네에 살았다. 복자 누나가 죽은 건 내가 열 살 무렵인가? 어쩌면 열한 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소 나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아주 친절했던 누나였기에 그의 죽음은 슬프면서도 너무나 강렬했던 기억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일요일인 어제 지인 경조사가 있었던 인천에 갔다가 누이집까지 들렀다.
우리집이 남자가 단명하는 집안이라 셋이던 남자 형제라곤 이제 나 하나 남았기에 누이는 갈 때마다 나를 앉혀 놓고 가능한 오래 함께 있고 싶어한다.
대화 중에 누이가 복자 누나 이야기를 했는데 복자 누나의 엄마가 얼마전에 돌아가셨단다. 내가 백 살쯤 되지 않았을까? 했더니 향년 94살이라고 했다.
그동안 스물한 살에 죽은 딸을 가슴에 묻고 지금까지 살아 왔으니 어쩌면 그분은 일찍 떠난 딸의 몫까지 살고 갔는지도 모른다.
울 엄니와 같은 동네에서 시집을 왔기에 나는 복자 엄마를 이모라고 불렀다. 엄니와 친정이 같았던 복자 엄마는 내 어머니를 친언니처럼 대했다.
그녀의 딸인 복자 누나는 얼굴도 예쁘고 엄청 상냥했다.
이웃집은 아니었지만 동네 우물가에서 채소 같은 것을 씻다가도 나를 보면 반갑게 부르곤 했다.
언젠가는 가지를 씻다가 절반을 뚝 잘라 먹으라고 주기도 했고 쌀을 씻을 때 내가 지나가면 씻던 쌀을 한 줌 내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어떻게 생쌀을 먹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늘 배가 고팠던 나한테는 생쌀도 없어서 못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생쌀을 오래 씹다 보면 나중 달착지근한 맛이 우러 나왔다.
복자 누나가 사랑을 했었나 보다. 옆 마을 총각과 사랑에 빠졌는데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동성동본 혼인금지가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당시는 엄연히 존재하던 사회 풍속이었다.
그럼에도 복자 누나 입장에서는 친척도 아닌데 단지 동성동본이란 이유로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정작 더 큰 이유는 두 집안의 남편끼리 사이가 틀어져서 서로 원수 보듯 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복자 아부지가 유독 이 결혼을 반대하며 나섰다고 한다.
그러다 동네가 발칵 뒤집히는 일이 생긴다.
마을 빈집에서 두 사람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농약을 마신 탓에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벽지에는 두 사람이 긁은 손톱 자국이 선명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온 동네가 뒤숭숭한 분위기에 한동안 숨을 죽이며 살았다. 각자 부모들이 시신을 수습해서 장례 없이 묻었다고 했다.
나도 무서운 생각이 들어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복자 누나가 죽었다는 그 빈집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빙 돌아서 다녔다.
비오는 날이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도깨비가 나온다는 둥, 이튿날 그집 마당에 피묻은 빗자루가 있었다는 둥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돌아 더욱 무서웠다.
몇 달 후였던가? 영혼 결혼식이 열렸다. 당시 동네에 이따금 굿이 벌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구경을 갔다. 그래서 속담에도 무슨 굿 구경 났느냐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하긴 그때는 전통 결혼식 함 파는 것도 구경거리였고, 초상집에 상여가 나갈 때도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구경을 했다. 볼거리 없던 시절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어른들 사이로 구경을 했던 영혼 결혼식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짚으로 만든 남녀 인형이 고운 한복을 입고 실제 혼례식을 하듯 맞절을 한 후 돗자리에 누웠고 무당은 연신 징소리에 맞춰 소리를 했다.
무당의 입을 빌려 복자 누나가 엄마한테 말을 건넸다.
엄니 이제라도 소원 풀었으니 나는 편안하게 떠나겠다는 말에 복자 엄마는 통곡을 하며 실신 지경까지 가기도 했다.
복자 엄마는 복자 누나 인형을 안고 서럽게 울었다.
무당 입에서 복자 누나는 엄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복자 엄마 또한 원통한 내 새끼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냐며 통곡을 했다.
이 장면을 보며 나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대했던 복자 누나는 이렇게 멀리 떠났다.
복자 누나는 죽기 얼마전에 길에서 만난 내 엄니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모, 나 그냥 콱 죽어 버릴거유, 그러면 울 엄니두 내가 얼매나 힘들었는 줄 알거 아녀유."
엄니는 정색을 하며 그러면 못쓴다고 타일렀다고 했다. 유난히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복자 누나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죽어서야 사랑을 완성했던 두 사람의 아픔을 나는 커서야 알았다. 결혼을 반대했던 두 집안은 결국 영혼 결혼식으로 사돈관계가 되었는데 화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후 옆 면소재지로 이사를 간 복자네는 오일장에서 내 엄니를 만나면 오랫동안 대화를 하다 갔다.
지금 살아 있다면 한창 좋을 나이인 70대로 인생 후반전을 보내고 있을 복자 누나다.
나중 들은 얘기지만 밤마다 복자 아버지 꿈에 나타나 울고 가던 복자 누나가 영혼 결혼식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사랑도 인생도 운명을 믿는 사람이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꼭 만나고, 헤어질 사람이면 어떡하든 이별한다는 믿음,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도 헤어진 사람도 다 그렇게 살도록 정해진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내 친구 중에 남편과 사는 동안 항상 이혼을 꿈꿨던 여사친이 있다.
자식들 결혼만 시키고 나면 미련없이 이혼하리라 다짐했는데 막상 70을 바라보는 남편을 보니 이제 측은한 생각이 들어 차마 결행을 못 하겠다고 한다.
양쪽 다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느쪽 편도 들을 수 없지만 친구가 이혼을 입에 올릴 때마다 양희은의 노래를 말해 주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가사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이토록 쓸쓸한 것인가.
어제 떠올린 복자 누나 때문인지 기온은 차갑지만 눈이 시리도록 파란 겨울 하늘을 보니 더욱 쓸쓸해지는 오늘이다.
이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슬픈 러브스토리가 예전에는 더러 있었군요.
다행이 요즘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앗! 오랜만에 보는 리진님이시네요.
그러고 보니 복자 누나 사랑 이야기가 로미오와 줄리엣 러브스토리를 떠올리게는 합니다.
지금이야 사랑에 대한 제약이 관습으로든 법적으로든 거의 없기에 사랑에 목숨 거는 사람이 없나 봅니다.
그럼에도 인류가 멸종을 하지 않은 이상 사랑은 계속 되겠지요. 항상 좋은 날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