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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 넓은 베르사이유 궁전을 바람에 스치듯 건성건성 보고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자세하게 보기에는 워낙 넓어서......
사실 베르사이유 궁전에 관한한은 그리 많은 공부를 하지 않고 가도 된다.
파리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지원이 되는 장소이고
한국어 지도까지 비치되어 있으니 바빠서,,,또는 워낙 여러지역을 여행하다보니 다른지역도
준비해 가야하고 그러다보면 파리 그것도 파리중 한 지역에 해당하는 베르사이유 궁전만 공부해 갈수도 없고
그럴땐 5유로를 내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게 되면 한국인 성우가 자세하게 궁전 설명을 해주어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2시30분 경 베르사이유 궁전의 구경을 마치고 파리 시내로 이동을 한다.
베르사이유 궁전 정문을 나와 조금 걸으면 바로 171번 버스 종점이 있는데 내렸던 반대쪽에서 타고 매트로 9호선 종점까지
가서 9호선을 타고 파리시내 원하는 곳으로 이동을 하면 된다.
로뎅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생각하는 사람' 이 중학교 미술책에 등장한 이후 로뎅은 너무도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로뎅의 그외 작품을 볼수 있는 곳이라니 흥미가 갔다.
앵발리드 역에서 내리면 찾기가 어렵지 않다.
내려서 파리 시민인듯한 사람에게 로뎅 박물관을 물으면 그분이 영어를 못하더라도 알아듣고
열심히 설명해 주려 하거나 가는 길이니 안내해 주겠다고 ...물론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파리 시민들 영어 잘하는 사람 무척 많다.
길을 물었을 때 반 이상은 영어로 대답을 해줬던 것 같다.
로뎅 박물관
근대에 들어서 로뎅만큼 우리들에게 알려진 조각가는 드물것이다.
하지만 그의 유명세에 비해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13세에 미술학교에 들어가 도로잉과 모형제작을 배워다.
17세 이후에 에콜 데 보자르(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중 하나) 입학시험에 3차례나 떨어져 석조 장식일에 종사하였는데 장식일만 쫓겨 독자적인 표현양식을 개발해 내지 못하다가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비범한 재능을 발휘 거의 40세가 되어서야
조각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조각가이다. --의지의 조각가 되시겠다--
그러면서도 프랑스 학술원과 일반 대중, 심지어는 국회와도 자주 충돌을 했던...
작품을 만들때마다 비평가들의 심한 공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훌륭하고 유명인으로 남은 사람들도 성공 과정에서는 많은 가시밭길을 걸은 후 성공의 반열에 올라선 것 같은데
로뎅도 그런 조각가 중 한사람인 것 같다.
당시 로뎅은 커다란 정원에 둘러싸인 18세기 파리풍의 아름다운 비롱 저택의 한층을 빌려쓰고 있었는데
프랑스 정부는, 이 저택을 로뎅 박물관으로 만드는 조건으로 로텡의 전 작품을 기증할 것을 제의 했고
로뎅이 동의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쉽게 이루어진건 아니고 그의 유산을 노리는 여자들도 있었고 하여 협상이
위기에 빠진적도 있고,,)
결국 협상이 성사되어 1916년 저택을 양도받고 작품을 기증하여 로뎅 박물관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데
건물 옆 정원도 있고 다른 여타 박물관과는 이런 이유로 분위기가 다른 건물이 로뎅 박물관 되시겠다.
현재의 로뎅 미술관 정원에 전시되어 이는 조각들,,
로뎅의 대표작중 하나인 ' 지옥의 문' 이 작품안에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로뎅 박물관 정원도 볼만하다 하여 피곤하지만 정원을 한바퀴 돌고 있는데 오른쪽에 눈에 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퐁피두센터와 개선문 전망대에 올라 갔을때 파리 시내에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 건물이었던 것이다.
저 건물이 무엇인고 궁금은 했지만 옆 사람에게 물어 본다 한들 무슨 건물이라고 건물이름을 알아도 뭣에 쓰는 건물인지도
모를 일이고 하여 눈도장만 찍고 내려 왔었었는데 그 건물이 바로 옆에 있는거다.
정원에서 음료수를 파는 점원들에게 저 건물이 무슨 건물이냐니까 모른단다 둘다 모른단다.
먹고 사는게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현지인이면서 바로 옆에서 음료수를 팔고 있으면서 그렇게 큰 건물이 뭔지를 모른다니......
정말 이거 너무한거 아닌가?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들의 삶이 안타깝다고나 할까........
먹고만 살면 무슨 재민겨..............................................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로뎅 박물관에서 일을 하면서 생각좀 하구 살지 않고......
박물관 정원에도 이렇게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로뎅 미술관을 돌다보니 한국어를 쓰는 관광객들이 있었는데 그중 젊은 처자 두명이 있길래 혹시 저 옆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
아냐고 물으니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일거 같다고....
관광객인거 같은데 공부를 많이 해온 모양이다.
아래 사진속 황금색 지붕이 전망대에서 어찌나 선명하게 눈에 띄는지,,,,,,
로뎅 박물관에서 이렇게 보이는 거였다.
건물 중앙의 돔이 황금색으로 아주 커서 전망대에 올라가면 아주 번쩍거리면서 눈에 확 띄는 건물이라 저 건물이 무슨 건물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던 차였는데 로뎅 박물관에서 보니 바로 코앞에 있는 느낌이라 가보기로 했다.
군사 박물관이라 무기들 전시 해 놓은
그리고 나폴레옹이 묻혀 있는 곳이었다.
휘이 둘러 보고는...
시대별로 군인들의 군복을 인형으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놓았다.
물론 칼도 총도 대포도 전시되어 있는데 관광과 전쟁...이런거 어울리지 않는 주제라 대~~~~에~~~충 훑어 보았다.
이제 야간 개장을 하는 루브르 박물관이다.
요즘은 박물관에서 조각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인지 이런 모습즐을 관광객들사이에서 종종 볼수 있는데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찍히는 사람이나 둘다에게 아주 유쾌한 기분을 주는 행동인거 같아 볼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아저씨 배꼽 다 보여유.......
루브르 박물관은 38만점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전세계 부동의 1위인 박물관이다
2010년 기준 한해 관람객 850만명이 방문을 한 박물관이니까 말이다.
참고로...박물관 순위는 이러니 근처 도시에 갈 일이 있으면 기억해 뒀다가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이런 곳은
한번쯤 들러봐야 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많이 가는데는 이유가 있으려니 하면서 말이다.
2위가 대영 박물관으로 관람객수가 584만명이니 1위와 차이가 나도 한참 난다 게다가 대영 박물관은 무료임에도,,,
3위가 바티칸 박물관 (로마 바티칸 시국)
4위가 뉴욕에 있는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Metropolitan Museum of Art)
5위가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피렌체)
6위가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 of Chicago 시카고)
7위가 스미소니언 박물관 (Smithonian Museums 워싱턴DC)
8위가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마드리드)
9위가 에르미타슈 미술관 (Gosudarstvenny Ermitazh, 상트페테르부르그)
10위가 암스텔담 국립 박물관(RIJKSMEUM 암스텔담)
루브르에서는 '모나리자' 가 가장 위대하다.
파리에서는 에펠탑 만큼이나 '모나리자'가 유명하다.
10년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갔을때의 기억중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모나리자'였다.
그림을 잘 알고 그 그림에 심취해서 기억에 남았다기 보다는 그 넓은 루브르 박물관 관람시
가이드 까지 있었으니 주요 작품들에 대한 설명도 잘 곁들여 졌을텐데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다만 모나리자 그림 앞에 사람이 빼곡이 서 있어서 도저히 모나리자 그림 앞으로 진입할수 없었던 그 광경만이
기억에 남아 있고 루브르 박물관 하면 오로지 그 장면만 사진처럼 머리속에 기억되어 있었다.
그렇다.
남대문과 남산타워가 서울을 상징하는 기표라면 ' 모나리자'와 에펠탑은 파리의 기표인 셈이다.
예술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그림은 '모나리자'라고 생각해 버린다.
따라서 루브르를 간 이상 아무리 지루하고 다리가 아파도 그 작품은 마치 높은 산의 정상처럼 거의
맹목적으로 이르러야할 목표로 취급받는다.
파리에 간 이상 루브르에 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어째든 루브르까지 간 사람치고
'모나리자'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야간 개장인날 가서 그런지 확실히 낮보다는 관람객이 적어서 그림 앞까지 가서 이렇게 사진을 찍을수 있었다.
야간 개장이라고는 해도 모나리자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모나리자는 도체체 왜 그렇게 유명한 그림인 걸까..
그림의 크기도 그리 크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게 아니라 다른 대작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그림에 해당한다.
물론 그린 사람이야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와 더불어 르네상스 미술의 절정기에 가장 유명했던 예술가,,,,
예술가중에서 이들은 거의 <성인>의 반열에 올라져 있는 예술가라 해도 손색이 없는 천재 예술가들이다.
화가라는 직업이 가난한 직업이고 생전보다 사후에 이름을 날리게 되는 경우도 다반사인 것에 비해 이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명망있는 화가로 이름나 있던 예술가 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년 4월 15일~ 1519년 5월 29일)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 였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신은 왜 이리 많은 재능을 이 한 사람에게 몰아 준걸까..........
이탈리아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은 어떤 연유로 다른 나라인 프랑스 파리라는 도시의 박물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게 된 걸까. 이 그림이 그토록 잘 그려져서 인걸까?
과연 이 작품이 가장 위대한 작품인걸까?
물론 그 작품은 위대하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시대 가장 예쁜 여배우를 그것도 한사람만 뽑는 일이 어디 쉬운일인가
그래서 '가장 위대하다' 는 표현을 함부로 붙일수는 없는것 같다.
설령 그런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한다.
다 떠나서 이 '모나리자'로 인한 최대의 수혜자는 루브르다.
또한 파리 시민들은 루브르로 인해 정신적 금전적 수혜를 알게 모르게 고스란히 입고 산다.
'모나리자' 라는 그림이 미술사적 의의가 대단하다라고 하더라도(당시 르네상스의 초상화가 대부분 측면을 묘사한데 반해
'모나리자'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4분의3 포즈로 그려졌기에 정면 초상화의 효시? ..
르네상스 시대에는 성서에 나오는 사람들만 초상화가 있던 시절인데 일반인이 초상화 모델로 등장한 첫그림이라서?
최초로 원근법을 사용한 그림이라서?
그때까지는 미소없는 즉 감정이 없는 초상화만 그리던 시대였는데 모나리자는 얼굴에 생명력있는 미소를 집어넣었다는 이유로?,)
그렇다치더라도 '모나리자' 가 다른 모든 작품을 제치고 영광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예술작품 뒤에는 자본주의적 속성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다.
작품의 가치가 높을수록 분명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며, 바로 그 이익을 고수하려는 집단의지가 강할수록
과장된 신화 창조가 가능한게 사실인건데..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임에도 프랑스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이탈리아 문화에 심각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는 당시 밀라노와 피렌체 등지에서 활동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궁정으로 불러들었다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살아생전 완성작이 20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가 너무 천재였기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천재를 궁정으로 불러들인 프랑수아1세도 그에게 자신의 초상화나
그리고 있으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이 의욕을 가지고 하는 일들을 말없이 지원하고 배려한 결과로
얻은 것이 바로 이 '모나리자'라는 작품이다.
1504년에 그려졌다 하니 500년전 그림인 거다.
프랑스 왕의 관대함이 '모나리자'를 프랑스의 상징적인 미술품중 하나로 존재토록 한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모나리자'가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20세기초 한 이탈리아인이 "우리의 보물을 왜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느냐"고 격분해서 루브르에 있던 이 작품을 훔쳤는데
박물관장이 어느날 '모나리자'는 어디있어? 라고 묻는 바람에 도난 사실이 알려졌고 다시 찾는 과정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후 일약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을 넘어 가장 위대한 ,,,, 그림이..............
되버린게 아닐까 하고 해석한다면 지난친 해석일까?
없어진걸 모르고 지냈을 정도면 그전에는 아마도 지금처럼 이렇게 유명세를 떨치던 그림은 분명 아니었다는 걸텐데 말이다.
어차피 이시대 최고 예쁜 여배우 는 누구일까 한명만 고를수 없듯이 다들 천재적 재능과 열정으로 그려낸 최고 화가들의
작품중 이 그림 앞에만 유독 사람이 몰려 있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찾다 보니 결국 이렇게 귀결이 되고 만다.
결국..
세계의 미술사중 르네상스 시기 까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로 정점에 있었던 이탈리아가..
그에 비해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유학생을 보내고 배워오게 하고 유명화가를 초대해 불러 들이던 시절까지는
이탈리아의 독주였고..
사실 프랑스의 왕 프랑수와 1세 마저도 이탈리아 회화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이탈리아가 문화부분에서 독보적인 지위에 있었다고 할수 있다.
그뒤 프랑스는 루이 14세 시절 재상으로 있던 장 바티스트 콜베르 덕분에 유럽 미술사의 주도권을 거머쥘 기틀을 마련했는데
이탈리아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한 '왕립회화' 와 '조각 아카데미'에 엄청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로마에 분원처럼 아카데미 드 프랑스를 세워 자국의 인재들이 당시로서는 앞선 이탈리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 올수
있도록 했다.
또한 루이 14세도 당시 유명한 프랑스 화가인 니콜라 푸생이나 클로드 로랭 의 작품을 엄청나게 사들였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루이 14세 양식이라는 시기를 지나 바로크 로코코 시대를 넘어서면서 부터는 프랑스가 문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결국 루브르에는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 작품중 반정도를 차지할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막강한 전시를 하고
있고 나머지 반이 다른 나라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박물관 되시겠다.
결국 르네상스 시대까지는 이탈리아가 그 시기 이후는 프랑스가 그리고 현대 미술로 넘어오면서 부터는 즉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부터는 미국으로 문화의 헤게모니가 넘어와 있는 중이다.
결국 세계적인 명품들이 이런 색감에 대한 재능이 기본적으로 있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수 밖에 없었을텐데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패션과 가방 구두 분야의 명품 브랜드를 탄생 시킬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는 여기에서 찾는다.
그들 조상들이 남겨놓은 세계적인 명화들을 늘 가까이 에서 접하며 어릴적부터 자라온 아이들...
로마처럼 멀리 나가지 않아도 길거리 곳곳에 잔재해 있는 예술적인 건축물들을 나면서 자라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눈으로 보고 디자인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멋진 건축물이 어떤 건지 보면서 자란 국민들이니
명품이 이런 국민들 손에서 탄생된 것은 너무 자연스런 일이고 세계적인 명품 브렌드를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현재 양분하고
있는 계기가 된것으로 보인다.
이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의 헤게모니가 미국으로 (미국의 뉴욕이라 해야 정확하겠지만,,,)넘어가고 있으니
머지않아 미국도 무시 못하는 명품 브랜드 탄생을 알리지 않을까,,,,,,탄생되지 않으면 돈주고 매수하면 될거고,,,ㅎㅎㅎ
이미 샤넬은 프랑스 브랜드로 탄생 되었으나 미국 회사가 매수하여 샤넬의 본사는 미국 뉴욕으로 바뀐지 오래니까 말이다.
하여간 루브르는 그림이 너무 많아 자세하게 다 보는 것도 질릴 일이고
루브르에 들어서면서 목표는 모나리자,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 이 세개만 보면 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이들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덤(?)으로 관람한다는 생각으로 돌아본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에서 프랑스 라는 나라의 자국어 사랑을 극명하게 엿불수 있는 계기가 된다.
루브르 박물관은 한해 850만명이라는 관람객이 찾을만큼 많은 이들이 찾고 있고 전세계 관광객이 다 몰리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설명에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고 영어로의 설명이 없다.
루브르 박물관은 고대 4천~5천년경의 유물부터 부터 19세기 초까지의 회화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사실 100년 전 그림부터는 그냥 보고 아 좋다,,하면서 감상하면 되는 그저 보이는대로 감상하면 되는 것이지만
그 이전의 그림은 "읽는 그림 감상"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저 가서 본다고 이해되는 그림이 아니라 작가가 무슨 생각이나 의도로 그렸는지를 읽고 가서 봐야 이해된다는 이야기다.
르네상스 전 중세의 그림들이 전부 성서에 기반을 둔 그림이기에 상징하는 것들이 다 있고 화가들 사이에서의 약속이
있었기에 사람 얼굴은 달라도 상징물로 표현하고자 한게 무엇인지를 서로 약속하고 그렸고 그걸 알고 그림을 봐야 이해되는,,,
그러니까 읽고 봐야만 이해될수 있는 그림인건데
바로 아래 아르침볼도 가 그린 이 그림은 드농관 8실 에 전시되어 있는데 듯도 보도 못한 프랑스어로 제목이 적혀있어서 글을 읽어봐도 제목조차 모르겠는데 그림만을 보고 이 제목을 알아맞춰 보라고 하면.....전문가 아니고는 머리 쥐난다.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했던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제작한 그림으로 제목은 봄,여름,가을,겨울이고 그림을 주문한
왕의 초상화 란다.
이럴 정도이니 그림일랑 너무 이해하려 하다보면 박물관이 재미없어지니 게다가 양은 또 얼마나 많던가..
미술에 대한 책 두서너권은 읽고 가서 보면 좋으리라.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야 얼마나 되겠나.
읽어보고 박물관에가서 읽은 것을 바탕으로 자꾸 보고 그러다보면 보이는게 더 있는거겠지..
돌아보면서 제일 부러운건
파리 시민,,,,,,
모나리자를 가장 위대한 그림으로 만들어 최대의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그런 부러움이 아니고
이런 세계적인 명화들 앞에서 언제든지 시간나면 찾아가 모사할 기회를 가질수 있음이 부럽다.
그림 그리기에 취미가 있는 파리 시민은 복도 많지....
이렇게 이동식 의자에 앉아 나이 지긋해서도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지 열심히들 강사의 지도 아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에 있는거 되시겠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있는 것과 뭐가 다른고?
하고 알아보니 다비드가 똑같은걸 두개 그렸단다.
그림의 왼쪽 두번째 여자 옷을 특별히 튀게 분홍색으로 그렸다가 나폴레옹에게 걸려서 화가가 감히 감히 황제의 딸을 사랑한다고? 라며 노여워 하면서색깔을 바꾸라,,,해서 다시 바꾸어 그렸다는 그림이 베르사이유 궁전에 있는 거란다.
하여간 바쁜 일정이다. 감상하기 보다는 그저 돌아보는 정도 인것 같다.
루부르 박물관을 오기 전에는 팡테옹을 들렀었는데 문을 닫기 45분 전까지만 입장을 시킨다면서
입장 시간이 지났단다.
할수없이 내일을 기약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로 근처에 이런 오래된 교회가 있다.
교회앞 대리석에 이런게 붙어 있는걸 보니 루이 13세와 관련이 있는 교회인가보다.
교회 안을 보니 관광 안내서를 펴든 관광객들도 있고 예사로운 교회가 아닌갑니다. 분위기도 웅장하니,,,,,
아쉬운 마음에 팡테옹은 외부 사진만 찍고 바로 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동을 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보고는 그래도 해가 아직 남아 있었으니 노틀담 대성당으로 이동을 해본다.
노틀담 대성당 앞에는 포앵제로 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파리의 한 중심 그러니까 파리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파리로 부터 니스가 몇킬로미터 떨어져 있나를 잴때 기준이 되는 곳 되겠다.
이 곳은 또 아주 재미 있는 '전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곳에 발을 대고 한바퀴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단다.
사람들이 뒷굼치를 대고 하도 돌아서 그런지 가운데 부분이 닳아서 맨들맨들 하다.
나 이런거 엄청 좋아한다.
주변에 관광객이 많아 멋적어도 난 이런거 기어코 하고만다.
소원.,.....꿈 .....이런건 언제나 빌고 또 빌어야지 이런건 멋적을 일이 아니라 빌어야 할 꿈이나 소원이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 앞에 멋적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 하면서 말이다.
내일은 오늘 못간 팡테옹부터 들러야겠다.
첫댓글 비전님의 말씀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 ^^
모나리자... 물론 훌륭한 작품이긴 하지만, '가장 위대한'이라기 보단 '가장 유명한'이란 수식어가 더 맞다고 생각해요. ^^
쌩 떼띠엔 뒤 몽 교회는 프랑수와 1세때 지어지기 시작해서 루이 13세때 완성됐다고 써있네요. ^^
저는 로뎅박물관 정원을 좋아하는데, 정원 안보고 그냥 오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더군요... ^^;;
뽀앙 제로 돌면서 어떤 소원을 비셨는지...ㅎㅎ.. ^^ 트레비분수도 그렇고, 뽀앙 제로도 그렇고,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특별한 곳에서 무언가를 희망하고 기대하는 건 늘 설레죠? ^^
프랑수아 1세때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거라면 1500년...이 교회가 500년 된 교회로군요. 교회옆에 학교가 있길래 이 교회에 대해 물어보니 학생들왈,,아주 유명한 교회라고 하더군요. 근데 사전 정보가 없어서 한국에 돌아오면 꼭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파리 전망좋은방님 덕분에 교회 이름도 알게되었네요. 그 고등학교도 아주 좋은 학교처럼 느껴지던데 과거에는 귀족 자제들만 다녔을 것 같은 분위기의 학교던데....학생들 모습을 봐도 얼굴에 모범생 이라고 씌어 있던데.......
맞아요, 그 옆에 있는 고등학교는 '앙리 4세 고등학교'라는 전통있는 명문 고등학교랍니다. 교육 평준화가 되어있는 프랑스에서도 일반 대학 외에 소위 "프랑스의 뇌"라는, 프랑스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소수의 엘리트들만 양성하는 명문대학인 그랑제꼴들이 있는데, 이 그랑제꼴 입학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 앙리 4세 고등학교에 다닌답니다. ^^ 학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기 500년경의 수도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학교 건물 자체도 이 시기인 초기 중세시대때 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거친 건물들이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중요한 명문학교죠. ^^
어쩐지.... 학생들 얼굴 모습에 이미 스마트 함이 보이더라구요.
보통 서울 강남권 인문계 고교생들보면 교복 입은 모습부터 다른데 그 학교앞에 버스기다리는 학생들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거든요.
한국도 보면 변두리 학교나 그저 그런 학교 학생들 교복 입은거 보면 자기 마음대로 줄이고 줄여서 여학생들도 교복 상의가 여며지지도 않는 교복을 단추도 다 열어제치고 속에 흰티하나 입고 그위에 교복입은,,
얼굴에는 불량기가 가득한..
그런 모습들인 것에 비해 학교건물도 고풍스러운게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 앞에 서있는 학생들의 모습이나 질문에 대답하는 자세를 보니 이학교 명문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맞군요.
동감합니다. ^^ 사람의 얼굴 표정이나 자세, 옷 매무시, 언어습관 만으로도 그 사람의 교육 & 교양수준을 가늠할 수 있죠. ^^
최근 저소득층 중에서도 뛰어난 아이들에게 상급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이 학교에 진학시키는 비율이 조금씩 늘고 있는데요, 첫 번째 준비학년(?)에서는 학과수업 보다는 교양수업이 주를 이룬다고 해요. 주로 문학작품, 예술작품 등을 통해 교육하는데, 그저 줄줄 외우는 식의 지식만이 아닌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여주는 지혜와 교양까지 철저히 교육시키기는 것이죠. 명문학교의 명성은 이런데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저도 지난번퍀키지여행때 루브르박물관은 갓엇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거작 "모나라자상"도 보앗습니다.
크기가 생각보다는 작더군요. 모나리자상앞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먼발치서 모나리자상을 보앗습니다.
팔등신미인인 미로의 비너스도 보앗습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너무 아름답더군요.
승리의 상징인 사모트라케의 니케상도 보앗는데 얼굴부위가 없는것이 않되엇더군요.뱃머리에 잇는모습이 너무
날렵하면서 아름답더군요. 완전한모습이었으면 좋앗을텐데.... 아쉬움이 남더군요.
비전님덕분에 로뎅박물관 군사박물관 잘보앗습니다.
그리고 파리 전망좋은방님과 비전님 두분의 해박한 지식에 다시한번 탄복합니다.
루부르 박물관에 가셔서 핵심(?) 세가지를 다 보셨네요 ㅎㅎㅎ 루브르가 워낙 전시품이 많아서 정말 뭘 어떻게 봐야 할지 지치게 하는 곳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