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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2:1
어떤 사람은 '좋다'와 '싫다'만 봅니다. 그러나 삶을 조금 알게 되면 '진찌'와 '가짜'가 보일 것입니다. 가짜를 가려내는 것은 명분이 아닌 속내입니다. 민족의 안녕을 명분 삼아 예수를 향한 헌신을 비난하는 제자 모두 가짜가 아닙니까? 공주야! 값나가는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 자신의 머리털로 닦아 드리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돌출행동이었음에도 예수님은 그 행위에 깊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셨다. 그녀에게는 예수의 마음과 삶을 향한 깊은 공감이 있었고, 예수님은 바로 그 기준으로 여인을 판단하셨다.
Some people only see "good" and "no." However, if you get to know life a little bit, you will see "jinzi" and "fake." Screening out fake is not just a justification, but an inner world. Aren't all disciples who criticize the devotion to Jesus for the well being of the nation fake? Princess! The act of pouring valuable enjoyment into Jesus' feet and wiping it with his own hair was a protruding act that was difficult to understand, but he was deeply comforted and encouraged by it. She had deep sympathy for Jesus' heart and life, and Jesus judged women based on that very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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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엿새 전에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머물던 예수가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이르신다. 거기는 나사로의 집이 있다. 마르다는 일로 예수를 섬기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자리하고, 마리아는 비산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어 섬긴다. 각각 자신의 역할을 잘 나누어 그들이 사랑하는 예수를 섬기고 있다. 우리 집에 오시는 예수님을 나는 오늘 어떻게 섬기려는가? 가룟 유다는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Six days before April Day, Jesus, who had been staying in the neighborhood of Ephraim, reached Bethany near Jerusalem. There is a house of Nazarro. Martha serves Jesus for this, Nasarro sits with Jesus, and Mary serves him by pouring the scattering perfume into his feet. Each is serving Jesus, who they love, divided his roles well. How am I going to serve Jesus who comes to my house today? Jarod Judas thinks that Mary's pouring expensive perfume into Jesus' feet is a w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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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한 번에 한 분 예수의 발에 붓기보다 다수의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명분일 뿐 사실은 그 돈을 제자들에게 맡기면 그중 일부를 착복할 생각이었다. 그는 예수님보다 예수님을 통해서 누리게 될 물질적 혜택을 더 기대한 사람이다. 그 기대에 예수가 방해 된다면 언제든 돌아설 준비가 된 사람이다. 유다와 마리아 모두 이 향유 붓기가 예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 될 것임을 알지 못했다.
It is thought that it would be better to give it to a large number of poor people than to pour it into Jesus' feet one at a time. In fact, if the money was entrusted to his disciples, he would pocket some of it. He is a person who expected more material benefits from Jesus than he would. He is a person who is ready to turn around at any time if that expectation interferes with Jesus. Neither Judas nor Mary knew that this enjoyment pouring would be a preparation for Jesus' fu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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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슨 의도로 하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뜻대로 사용하신다. 예수님을 배반한 것도, 그를 위해 향유를 붓는 헌신도. 예수의 베다니 출현에 사람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다. 나사로를 살린 사건은 이미 유대 전역에 큰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뿐만 아니라 나사로마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동네에 예수만이 아니라 나사로 역시 제거의 목표 대상이 된다는 의미였다. 나사로가 존재 하는한 그를 살린 예수는 항상 기억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Whatever our intentions, God will use them according to your good will. His betrayal of Jesus and his dedication to pouring pleasure into him. People show explosive interest in the appearance of Jesus' Bethany. This is because the incident that saved Nasarro has already become a hot topic throughout Judea. Not only Jesus but also Nasarro was at the center of the topic. However, this meant that not only Jesus but also Nasarro in the neighborhood were targeted for removal. This is because Jesus who saved him as he exists will always be an object of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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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의 사랑'에 어떤 사랑으로 화답하려하는가?
나는 예수와 함께한다는 이유로 어떤 고초를 당하는가?
나를 보면 사람들은 어떤 예수를 떠올리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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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헌신적 반응(1-3)
a.베다니에 오신 예수님:1
b.잔치 중에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2-3
가룟 유다의 반응과 예수님의 반응(4-8)
a.향유를 아까워하는 가룟 유다:4-6
b.마리아를 칭찬하시는 예수님:7-8
유대인들의 반응(9-11)
a.예수님과 나사로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유대인들:9
b.나사로까지 죽이려 하는 대제사장들: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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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엿새 전에(1a)
예수께서(1b)
베다니에 이르시니(1c)
이곳은(1d)
예수께서 죽은 자(1e)
가운데서 살리신(1f)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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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예수를 위하여(2a)
잔치할 쌔(2b)
마르다는 일을 보고(2c)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2d)
앉은 자 중에 있더라(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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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3a)
지극히 비싼 향유(3b)
곧 순전한 나드(3c)
한 근을 가져다가(3d)
예수의 발에 붓고(3e)
자기 머리털로(3f)
그의 발을 씻으니(3g)
향유 냄새가(3h)
집에 가득하더라(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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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중 하나로서(4a)
예수를 잡아 줄(4b)
가룟 유다가 말하되(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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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향유를 어찌하여(5a)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5b)
가난한 자들에게(5c)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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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함은(6a)
가난한 자들을(6b)
생각함이 아니요(6c)
저는 도적이라(6d)
돈 궤를 맡고(6e)
거기 넣는 것을(6f)
훔쳐 감이라(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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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7a)
저를 가만 두어(7b)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7c)
이를 두게 하라(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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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은(8a)
항상 너희와 함께(8b)
있거니와(8c)
나는 항상 있지(8d)
아니하리라 하시니라(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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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큰 무리가(9a)
예수께서(9b)
여기 계신 줄을(9c)
알고 오니(9d)
이는(9e)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9f)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9g)
나사로도 보려 함이라(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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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들이(10a)
나사로까지 죽이려고(10b)
모의하니(1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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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 까닭에(11a)
많은 유대인이 가서(11b)
예수를 믿음이라(1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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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환대와 마리아 마르다의 환대_
Jesus' hospitality and Maria Marda's hospitality.
가룟 유다의 냉대_
Cold noodles by Karyot Juda.
예수님의 반응과 사람들의 반응_
Jesus' reaction and people's re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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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를 작정하시고 베다니에 나타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바른 헌신은 때를 알고 주 안에서 행하는 섬김인 것을 배웠사오니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행하는 섬김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주께서 내게 붙여주신 공동체가 있는데도 내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내 안에 탐욕스런 유다 때문이 아닌지 되돌아보게 하옵소서. 부활을 경험한 마리아가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기 위해 비싼 향유를 주의 발아래 부었던 것처럼 주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 갈수록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I praise the Lord who appeared in Bethany with determination to die. I have learned that good devotion is the service of the Lord, so I will try to serve in the midst of God's guidance. Let me look back on whether it is because of the greedy Judah in me that I cannot help even though there is a community that the Lord has attached to me. Just as Maria, who experienced resurrection, poured expensive enjoyment under the feet of the Lord to comfort and support Jesus' heart ahead of the cross, let his love for the Lord deepen and become a believer who serves his neighbors.
2026.3.11.wed.Clay
신학 비평//
1) 베다니의 집 — 사랑의 세 가지 얼굴
요한복음 12장은 매우 조용한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앞두고 베다니에 오십니다. 이 집에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a. 마르다 – 섬김으로 예수를 맞이합니다(봉사, 손으로 드리는 사랑). b. 나사로 – 예수와 함께 앉아 있습니다(동행, 존재로 드리는 증언) c. 마리아– 향유를 붓습니다(향유, 마음으로 드리는 헌신). 세 사람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예수를 섬깁니다. 참된 헌신은 형태가 아니라 예수 중심성입니다.
2) 향유 사건 —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입니다. 당시 노동자 1년 임금에 가까운 돈입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분명히 낭비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말합니다. “왜 이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았느냐?” 표면적으로는 윤리적 주장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유다의 속내를 폭로합니다. 그는 도둑이었다. 여기서 요한복음이 보여주는 통찰은 매우 깊습니다. 인간의 위선은 대개 고상한 명분을 입습니다.(정의/공익/가난한 자/민족) 그러나 하나님은 명분이 아니라 동기를 보십니다.
3) 예수의 평가 기준 — 사랑의 직관
예수는 마리아의 행동을 즉시 이해합니다. “나의 장례를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마리아는 아마도 십자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순한 교리 이해가 아니라 사랑의 공감입니다. 마리아는 신학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고독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녀의 행동을 장례 준비라고 해석합니다.
4)“가난한 자는 항상 있다” — 오해된 말씀
이 구절은 자주 오해됩니다. 예수가 가난한 자를 무시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뜻은 반대입니다. 가난한 자는 항상 있으니 항상 섬길 기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특별한 순간입니다. 십자가를 앞둔 예수를 향한 사랑은 이 순간에만 가능한 행위입니다. 즉, 사랑에는 때(카이로스)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5)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종교 권력
대제사장들은 이제 예수와 나사로 둘 다 제거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는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늘 권력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권력은 늘 증거를 지우고, 기억을 지우고, 사람을 지우려 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생명을 지울 수는 없다. 요한복음 12장은 단순한 향유 사건이 아닙니다. 이 장면에는 세 종류의 신앙이 있습니다. a. 마리아– 사랑의 신앙 b. 유다– 계산의 신앙 c. 대제사장 – 권력의 신앙 예수는 그중 하나만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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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래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납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진짜 사랑은 언제나 숨길 수 없습니다. 향기처럼 세상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리아인가 유다인가? 나는 예수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예수를 이용하는가? 나를 보면 어떤 예수가 보이는가? 내 삶이 누군가에게 예수의 증거가 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