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초 명조 해설
록록종신의 명조가 되니 임수는 귀물이 되었다
고로 귀물을 생하는 임계수운은 불운이고 임수를 제거하는 운에 발전이 있게 된다
계수가 사화에 앉아 있으므로 무계합화하는까닭에
오히려 화관위겁이 되어 겁재를 키워 임수를 귀물로 만든 연고이다.
【原文】成局干透一官星。左邊右邊空碌碌。
국(局)을 이룬 상태에서 천간에 하나의 관성이 투출하게 된다면 좌우 주변이 공허하여 이루는 게 없이 헛되다
부록 : 적천수천미
① 合官留殺格 :무계합으로 합관류살격이 되었다
壬 丙 戊 癸
辰 午 午 丑
壬 癸 甲 乙 丙 丁
子 丑 寅 卯 辰 巳
此造火長夏天. 旺之極矣. 戊癸合而化火爲忌. 還喜壬水通根身庫. 更妙年支坐丑. 足以晦火養金而蓄水. 則癸水仍得通根. 雖合而不化也. 不化反喜其合. 則不抗乎壬水矣. 是以乙卯甲寅運. 剋土衛水. 雲程直上. 至癸丑運. 由琴堂而遷州牧. 及壬子運. 由治中而履黃堂. 名利裕如也.
이 사주는 병화(丙火)가 한창 여름인 오월에 태어났으니 극도로 왕한 것이다. 무계(戊癸)가 합하여 화(火)로 화(化)하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데 도리어 기쁜 것은 임수가 자신의 고(庫)에 통근을 한 것이고, 거기다가 더욱 묘한 것은 연지(年支)의 축토(丑土)가 화를 어둡게 하고 금을 양성하며, 수를 저장할 수 있으니 계수(癸水)가 통근을 하므로 합(合)은 해도 화(化)하지는 않는다. 화(化)하지 않는 이상 합(合)하는 것이 도리어 좋아 임수가 극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을묘(乙卯)대운과 갑인(甲寅)대운에서 토를 극하고 수를 보호해 주니 벼슬 길이 순조롭게 올라갔고, 계축(癸丑)대운에 들어서서는 금당(琴堂)에서 주목(州牧)으로 올라갔으며, 임자(壬子)대운에서는 치중(治中)을 거쳐 황당(黃堂)으로 올랐고, 명리가 모두 뜻대로 잘 되었다.
② 임철초 명조: 합관류살이 못되고 무계합화로 오히려 겁재가 국을 이루니
임수칠살이 귀물이 되어 록록종신명이 되었다
壬 丙 戊 癸
辰 午 午 巳
壬 癸 甲 乙 丙 丁
子 丑 寅 卯 辰 巳
此鐵樵自造(乾隆三十八年四月十八日辰時). 亦長夏天. 與前造只換一丑字. 天淵之隔矣. 夫丑乃北方之溼土. 能晦丙火之烈. 能收午火之焰. 又能蓄水藏金. 巳乃南方之旺火. 癸臨絶地. 杯水輿薪. 喜其混也. 不喜其淸也. 彼則戊癸合而不化. 此則合而必化. 不但不能助殺. 抑且化火爲刦. 反助陽刃猖狂. 巳中庚金. 無從引助. 壬水雖通根身庫. 總之無金滋助. 淸枯之象. 兼之運走四十載木火. 生助刦刃之地. 所以上不能繼父志以成名下不能守田園而創業. 骨肉六親. 直同畫餠. 半生事業. 亦似浮雲. 至卯運. 壬水絶地. 陽刃逢生. 遭骨肉之變. 以致傾家蕩産. 猶憶未學命時. 請人推算. 一味虛褒. 以爲名利自如. 後竟一毫不驗. 豈不痛哉. 且予賦性偏拙. 喜誠實不喜虛浮. 無諂態. 多傲慢. 交遊往來. 每落落難合. 所凜凜者. 吾祖若父. 忠厚之訓. 不敢失墜耳. 先嚴浙後. 家業凋零. 潛心學命. 爲餬口之計. 夫六尺之軀. 非無遠圖之志. 徒以末技見哂. 自思命運不齊. 無益于事. 所以涸轍之鮒. 僅邀升斗之水. 限于地. 困于時. 嗟乎. 莫非命也. 順受其正云爾.
이것은 1773년 4월 18일 진시 출생인 임철초 나의 사주다. 역시 한창 여름인 오월에 태어났는데, 앞 사주와는 다만 축(丑)자 한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운명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난다. 앞 사주의 축토(丑土)는 북방의 습한 토이므로 능히 맹렬한 병화의 기운을 흡수하고, 오화의 불길도 받아 드릴 수 있으며, 또한 수를 저장하고 금도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사화(巳火)란 것은 남방의 왕성한 화(火)로 계수(癸水)가 절지에 임한 상태라 한잔의 물로 한 수레의 장작불을 끄려는 것과 같은 것이니 혼탁한 것이 좋고 맑은 것이 좋지 않다.
앞의 사주에서는 무계(戊癸)가 합을 하였어도 화(化)는 하지 않았지만 이 사주는 무계(戊癸)가 합하면 반드시 화(化)하게 되어 살을 도와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화(火)로 화(化)해서 겁재로 되어 양인을 도와 발광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 사화(巳火)중의 경금(庚金)을 이끌어 내어 도와줄 방법이 없다. 또한 임수(壬水)가 비록 자신의 고(庫)에 통근을 했다고는 하지만 금(金)이 없어 도와주지를 못하니 맑고 메마른 형상으로 되고 있다.
거기다가 대운까지 40년간 목화(木火)로 가고 있는데 이는 겁재와 양인을 도와주게 되어 위로는 부친의 뜻을 이어 공명을 이루지 못했고, 아래로는 전원(田園)을 지키지 못했으며 창업도 하지 못했다. 혈육육친은 모두 그림의 떡과 같았고 반평생의 하는 일은 떠도는 구름과도 같았다. 묘목(卯木)대운이 되자 임수가 절지에 임하고 양인이 생을 받게 되자 혈육에 재난이 발생되어 가산이 탕진되었다.
옛날에 내가 명리를 배우기 전의 일이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어떤 사람에게 나의 팔자에 대하여 상담을 하였다. 그 사람은 덮어놓고 칭찬만 하여 앞으로 명예와 재산 운이 다 뜻대로 될 것이라고 스스로 믿어 왔는데, 훗날 사실은 하나도 적중된 것이 없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이 아닌가 말이냐!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본래 천성이 괴팍하여 성실하기를 좋아하였지 헛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아첨할 줄 모르고 오만하기만 하다보니 친구들을 사귀는 면에서도 서로 뜻이 맞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조부께서 부친처럼 충후(忠厚)해야 한다는 교훈은 잊지를 않고 있었다.
부친께서 세상을 떠난 후 가업은 점점 소실되어 입에 풀칠이나 할 생각으로 명리학을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키가 육척(六尺)이나 되는 남자로서 원대한 포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찮은 재주로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기를 운명이 그렇다 보니 아무 쓸모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말라버린 수레바퀴 자리에 있는 붕어가 한 바가지의 물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천시(天時), 지리(地理)가 그러하니 아마 운명인가 보다. 그래도 그냥 받아 드릴 수밖에 더 어찌할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