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고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읽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팔자에 없는 치킨집을 하다보니 늘 새벽 2시를 넘겨 3시쯤에 잠자리에 들때가많다
오늘은 출석부를 쓰겠다고 스스로 자진했으니 아마도 4시를 넘길것같다
세상일이 어디 만만한게 있겠냐마는 정말 쉬운게 하나없다
특히나 어제 같은날은 온 몸에 힘이 다 풀리고 세상만사가 다 허탈해지는 날이었다
가게 오픈준비로 몸도마음도 분주한 시간에 핸폰이 울린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다
"김ㅇㅇ님
"신청한 현대카드 배송기사입니다"
"네? 현대카드요?"
"현대카드 신청 한적없는데요?"
"현대카드 쓰다가 작년 5월에 해지했는데요?"
주소가 동작구 무슨 동이라며 남자는 아무래도 명의도용당한것같다며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전화를 하란다
해서 11시 오픈하자마자 주문이 들어오고 바빠지니 깊이 생각 할 겨를이 없이 불러주는 번호로 전화를하니 40대 중반쯤 되는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받는다
주문들어오는 닭도 튀겨야하고 그여자랑 통화도 해야하고 옆에서 서방님은 닭손질하면서 뭔 쓰잘대기없는 전화를 하냐며 짜증이다
해서 뭔지 빨리 말하라하며 채근하니 그여자 왈
지금 명의 도용당한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냐며 자기가 시키는대로 핸폰을 누르란다
이러저러 그여자가 내 핸폰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휘젓고 다 주무른다 그러면서 하는말
오늘하루만 핸폰에 깔린 은행앱을 손대지말란다
그러면서 가게 점심시간이라 바쁘니 언제쯤 한가하냐고 묻는다 한시쯤에 한가하다하니 그때 금감원으로 전화하라며 그때 자기도 전화를 한다며 1332라며 전화번호까지 알려주곤 끊었다
그리곤 열 몇개 들어온 주문을 다 내 보내고 1시가 좀 지나서 여자가 알려준 금감원으로 전화를 해서 이차저차 현대카드라며 얘기 채 끝나기도전에 그 여자 왈
"보이스피싱 당하셨네요 그러면서 금융사 모두 지급정지하라고 긴박하게 1 2 3 나열하며 얼른 조치를 하란다 핸폰도 공장 다 비우고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다 다시 발급 받으란다
놀라서 허둥되는 마누라가 어이가 없는지 사기당한 돈 못찾는단다
그러든가 말든가 서둘러 마감하고 가게 정리를 하고 주거래은행인 신한으로 전화를해서 보이스피싱당한것같다니까 내가갖고있는 통장 증권사 등등 모든 금융권을 지급정지한단다 혹시 돈이 빠져나간게 있나하고 확인 했더니 다행이 돈은아직 못빼간건지 그대로 있단다
농협도 가서 확인하니 아직 돈은 못 빼간듯하다
마침 딸아이가 3월달 부터 이직하느라 쉬고있으니 딸아이한테 전화해서 엄마 보이스피싱당한것같다니 놀래서 택시타고 가게로 왔다
경찰서로 동사무소로 이러저러 몸도 마음도 정신없는 하루 였다
딸아이 왈
"엄마 보다 더 돈많고 손쉬운 상대가 나타나서 엄마꺼 손 못댔나보다 ㅎㅎ"
그래도 금전적피해가 없으니 안심이되는지 실없는 흰소리도 해 된다
경찰서에 갔더니 하루에 10명이상씩 보이스피싱 비해자가 온단다 몇억씩 피해본 사례도 있다하며 우리는 금전적피해가없어서 접수가 안된단다
오늘은 정지시킨것 해제하러다니느라 은행 몇군데 들리느라 오후 4시넘어서 가게 문을 열었으니 참 힘든 날이다
오랫만에 삶 방에 글 쓰면서 그닥 좋은일이 아니라서 송구합니다 살다보니 이런일도 당하네요
딸아이말대로 엄마잘못이 아니라는데도 왠지 자괴감이생기고 삶의 의욕이 다 떨어지는데 실제로 큰돈을 잃은 분들은 너무나 허탈할것같아요
딸애말에 의하면 갓 스무살넘긴 여자아이가 보이스피싱으로 300만원을 빚을 지고는 자살했다더만 돈 300이라는게 큰돈은 아니지만 그아이한테는 얼마나 큰 상심과 자괴감으로 세상을 버리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참 슬픈 날입니다
우리 모두 조심합시다
답 댓글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문 짬짬이 카페 들여다보니
늦은 댓글을 씁니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가니
믿을사람이 없어지고 무조건 의심부터
해야하는 현실이 참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