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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2:34
"선을 위해 싸운 사람이 감옥 안에 있는데, 감옥 밖은 왜 그리 조용한가?" 감옥의 본회퍼를 힘들게 한 것은 수형의 고통도, 악인들의 거친 아우성도 아니었습니다. 선한 사람들의 끔찍한 침묵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고통스러운 것도 십자가가 아니라 선민 유대인들의 불신이었습니다. 공주야! 예수님은 이적을 많이 행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시기까지 하셨다. 하지만 그 표적들이 무리를 온전히 믿음으로 이끌지는 못했다.참된 믿음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주님의 말씀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Why is it so quiet outside the prison when there is a man who fought for good in the prison?" It was neither the agony of the prisoners nor the harsh outcries of the wicked that made the prison's Bonhofer difficult. It was the terrible silence of the good people. What was painful for Jesus was not the cross, but the distrust of the Jewish people of the good people. Princess! Jesus made many transfers and even saved the dead. But the targets did not lead the pack to complete faith. How is true faith formed? The word of the Lord should be at th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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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그 마음의 어둠을 밝혀야 진정한 진리의 길을 향해 갈 수 있다. 그리스도로 기대했던 예수의 죽음 암시에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고 알고 있던 이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예수는 이제 자신이 죽을 것을 부인하지 않으시고, 이제 제자들과 사람들이 자신을 믿기로 결단할 시기는 지금뿐이라는 의미로 빛이 있을 동안 빛을 믿으라고 하신다. 빛의 아들이 될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소속을 점검하라. 그리고 신앙의 결단을 미루지 말라.
Only when the darkness of the heart is revealed with words can we go on the path of true truth. Those who knew that Christ was forever present at the insinuation of Jesus' death, which was expected to be Christ, are confused. However, Jesus does not deny that he will die, and tells his disciples and people to believe in light while there is light, meaning that now is the only time for them to decide to believe in him. There is not always an opportunity to be a son of light. Check your affiliation. And don't put off making a decision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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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심판하러 오시기 전에, 빛이 있는 지금 빛의 자녀들이 되라! 예수는 표적을 보아도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몸을 숨기신다. 이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이를 내다보고 이스라엘의 불신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완악함에 있음을 말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실 일은 단 하나, 심판뿐이다.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고 들으려고 해도 듣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완악한 그 마음의 대가를 스스로 담당하게 하신다.
Before the Lord comes to judge, be the children of light now that there is light! Jesus hides himself from those who do not believe even when they see the target. This is not surprising. Isaiah has already predicted this and said that Israel's distrust is not responsible for God, but for their totality. Now there is only one thing God will do to them: judgment. Even if you try to see it, you will not see it, and if you try to listen, you will not hear it. You will be in charge of the price of your heart that is 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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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살피고 성찰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놀라고 두려워하라. 누군가의 절절한 조언과 책망에 화만 난다면 나를 경계하라. 더는 나를 구원할 길을 찾지 못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도 예수를 안 믿는 상황에서 관리 중에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 있다. 몰론 그마저도 대단하지만,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알면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 맹인의 부모처럼 드러나게 신앙을 고백하지는 못했다.
Be surprised and afraid if you've reached the point where you can't look into your mind and reflect. Be wary of me if you're just angry at someone's desperate advice and reproach. The day will come when you no longer find a way to save me. There are people who believe in Jesus even when many people see the target and don't believe in him. Molon is great, but they couldn't confess their faith like blind parents because they were afraid that the Pharisees would be expelled if they 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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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에 십자가를 선택하시는데, 그 예수의 온전한 제자가 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나는 어떤 믿음의 사람인가? 내가 욕심 부리기 때문에 내버려두신 일이 무엇일까? 불신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는 지금 어떻게 참 제자도를 실천할 수 있는가?
They still loved the glory of man more than the glory of God. Jesus chose the cross because he loved the glory of God more, but it was not enough to be a full disciple of him. What faith am I? What did you let me do because I was greedy? Is there a reason to justify distrust? How can you practice the true discipleship now that you cannot see Jesus with your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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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믿으라(34-36)
a.인자의 들림에 대한 질문:34
b.빛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권유:35-36
표적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37-41)
a.표적을 믿지 않는 사람들:37-38
b.표적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39-41
표적을 믿으나, 두려워하는 사람들(42-43)
a.자신의 믿음을 숨기는 사람들:42
b.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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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34a)
무리가 대답하되(34b)
우리는(34c)
율법에서(34d)
그리스도가(34e)
영원히 계신다 함을(34f)
들었거늘(34g)
너는 어찌하여(34h)
인자가(34i)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3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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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자는 누구냐(35a)
예수께서 가라사대(35b)
아직 잠시 동안(35c)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35d)
빛이 있을 동안에(35e)
다녀(35f)
어두움에(35g)
붙잡히지 않게 하라(35h)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35i)
그 가는 바를(35j)
알지 못하느니라(3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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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아직(36a)
빛이 있을 동안에(36b)
빛을 믿으라(36c)
그리하면(36d)
빛의 아들이 되리라(36e)
예수께서(36f)
이 말씀을 하시고(36g)
저희를 떠나가서(36h)
숨으시니라(3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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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표적을(37a)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37b)
저를 믿지 아니하니(3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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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38a)
선지자 이사야의(38b)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38c)
가로되 주여(38d)
우리에게 들은 바를(38e)
누가 믿었으며(38f)
주의 팔이(38g)
뉘게 나타났나이까?(38h)
하였더라(3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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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능히(39a)
믿지 못한 것은(39b)
이 까닭이니(39c)
곧 이사야가(39d)
다시 일렀으되(3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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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눈을(40a)
멀게 하시고(40b)
저희 마음을(40c)
완고하게 하셨으니(40d)
이는 저희로 하여금(40e)
눈으로 보고(40f)
마음으로 깨닫고(4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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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내게 고침을(40h)
받지 못하게(40i)
하려 함이니라(10j)
하였음이더라(4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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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41a)
이렇게 말한 것은(41b)
주의 영광을 보고(41c)
주를 가리켜(41d)
말한 것이라(4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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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관원 중에도(42a)
저를 믿는 자가 많되(42b)
바리새인들을 인하여(42c)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42d)
이는 출회를 당할까(42e)
두려워함이라 (4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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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사람의 영광을(43a)
하나님의 영광보다(43b)
더 사랑하였더라(4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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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을 동안 빛을 믿으라_Believe in the light while there is light.
빛을 비춰야 할 사람_The one who needs to shine.
빛을 가로막는 사람_Someone who blocks the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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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빛으로 나아오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내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고 하셨고,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어 빛의 아들이 되라고 하셨으니 내 안의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Lord, the reason why I don't trust Jesus is because I hate to come out into the light. Because I pursue my own glory rather than God. He told me not to be caught by darkness while there is light, and to believe in light and become the son of light while there is light, so let me go through the darkness inside me and into the light
2026.3.14.sat.Clay
신학 비평//
1) 침묵의 신학 — 본회퍼와 요한복음의 공통 질문
당신이 인용한 질문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선을 위해 싸운 사람이 감옥 안에 있는데 감옥 밖은 왜 그리 조용한가? 이 질문은 Dietrich Bonhoeffer가 감옥에서 던졌던 도덕적 절규였습니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나치의 폭력이나 감옥의 고통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는 수많은 표적을 행했고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진리가 드러났는데도 사람은 믿지 않는가?
2) 군중의 질문 — 메시아 이해의 충돌
군중은 예수에게 묻습니다. “율법에서는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했는데 왜 죽는다고 하는가?” 이 질문은 매우 논리적인 질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 기대는 이렇습니다.(a. 정치적 메시아-로마를 몰아낸다 b. 영우너한 왕-죽지 않는다 c. 다윗 왕국 회복 -이스라엘을 다시 세운다. 그러나 예수의 메시아 이해는 전혀 달랐습니다.십자가-고난, 죽음-구속, 부활-새로운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와 예수가 말하는 메시아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3) 빛의 신학 — 요한복음의 핵심 상징
예수는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요한복음에서 <빛>은 단순한 은유가 아닙니다. 빛은 바로 예수 자신입니다. 요한복음 1장은 이미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빛은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4) 표적의 한계 — 기적이 믿음을 만들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놀라운 사실을 말합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믿지 아니하니…”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적을 보면 믿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기적은 믿음을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믿음은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미 마음을 닫으면 기적도, 진리도, 말씀도 그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요한복음은 여기서 Isaiah의 예언을 인용합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이 구절은 종종 오해됩니다. 마치 하나님이 일부러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사람이 계속 진리를 거부하면 결국 그 거부가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영적 눈멀음으로 굳어집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완악함(hardening)이라고 부릅니다.
5) 숨겨진 믿음 — 관원들의 딜레마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관원 중에도 믿는 자가 많되 드러내지 못하였다.” 이들은 완전히 불신앙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입니다.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출교/사회적 비난/권력 상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랑하였다.” 이 문장은 매우 날카로운 신학적 진단입니다. 믿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박해가 아니라 체면입니다.
6) 빛이 떠나는 순간
본문의 가장 무서운 장면은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떠나가 숨으시니라.” 이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 이것은 은혜의 시간의 종료를 의미합니다. 빛이 떠난다는 것은 기회가 사라지고, 결단의 시간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말합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믿으라.” 빛이 왔는데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침묵하고, 거부합니다. 그래서 진짜 믿음은 빛 앞에서 마음을 열 때시작됩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너는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나는 빛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 나는 진리를 들을 때 기뻐하는가, 아니면 불편해하는가? 내가 사랑하는 영광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