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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5월 7일 부활 제5주일 (생명주일)
해마다 5월의 첫 주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의 문화’의 위험성을 깨우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참된 가치를 되새기는 ‘생명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95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내 오다가,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이를 ‘생명 주일’로 바꾸며 5월의 첫 주일로 옮겼다. 교회가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생명의 문화’를 이루어 나가자는 데 생명 주일을 지내는 뜻이 있다.
오늘은 부활 제5주일이며 생명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당신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 주시고 무엇이 참된 삶인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성실히 걸어갈 때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생명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제13회 생명 주일 담화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생애 말기의 윤리적 도전과 생명의 의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제13회 생명 주일입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도전받는 이 시기에 생명의 의미와 가치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지난 2022년 6월 15일 국회에서는 이른바 ‘조력 존엄사법’이라는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말기 환자이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입니다. 조력 자살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로 안락사에 해당합니다. 안락사는 의도적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생명을 중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습니다.
2.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을 법제화하려는 시도는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생애 말기가 무의미하며 죽음조차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가 절대적이며 고통은 어떤 의미나 가치도 없다는 실용주의와 공리주의적 사고에서 비롯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고통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없애야 할 해로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의학의 발전으로 점점 더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지만, 고통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종교적인 시각은 그만큼 잃어 가고 있습니다.
3. 노인 자살이나 노인 고독사도 이러한 문화를 보여 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회원 국가의 평균 자살률의 2배를 웃돌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 또한 OECD 평균의 2.7배에 이르고 있습니다(2019년 기준). 이는 노인들을 그저 사회가 짊어져야 할 짐으로 여기는 ‘버리는 문화’가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버리는 문화’로 말미암아 사회에서 배척된 노인들은 사회적 역할의 상실과 경제적 빈곤으로 삶의 무의미함을 느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입니다. 고령층 1인 가구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도 걱정스럽습니다. 고령층 1인 가구는 경제적 빈곤과 질병에 시달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고독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4. 물질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인간 생명의 시작과 마침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주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근본적인 가치입니다. 생명이 없다면 인간의 다양한 활동도 사회 공존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국가는 생명 보호를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를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법은 타인의 자살을 돕는 ‘자살 방조’도 처벌하고 있습니다. 안락사나 조력 자살의 법제화는 이와 같은 생명 보호의 원칙을 무너뜨립니다.
5.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며 선물을 통해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생명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으며 매 순간 주어지는 생명의 선물을 받으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 갑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생명의 선물을 거부하는 것이며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6. 교회는 “때때로 죽여 달라는 중환자들의 간청이 안락사에 대한 진정한 원의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도움과 사랑을 구하는 고뇌에 찬 간원이다”(안락사에 관한 선언 「가치와 권리」, Ⅱ)라고 전합니다. 질병과 고통을 겪는 생명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그 무엇보다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을 받아야 하는 소중한 생명입니다. 만일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법제화된다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죽음을 강요받는 상황도 생길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안락사를 선택하여야 할 만큼 고통을 겪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시설의 확대와 환자를 돌보는 이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생명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가정에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하며, 모든 형제자매가 생명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5월 7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문 희 종 주교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30188?gb=K1200 ]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입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2,4-9
사랑하는 여러분,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6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 돌을 놓는다. 선택된 값진 모퉁잇돌이다.
이 돌을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믿는 여러분에게는 이 돌이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하는 그 돌이며,
8 또한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그 돌에 차여 넘어집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축일5월 7일 성녀 로사 베네리니 (Rose Venerini)
신분 : 동정녀, 설립자
활동 연도 : 1656-1728년
같은 이름 : 로싸, 로즈
성녀 로사 베네리니(Rosa Venerini)는 1656년 2월 9일 이탈리아의 비테르보(Viterbo)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고프레도(Goffredo)는 안코나(Ancona)의 카스텔레오네 디 수아사(Castelleone di Suasa) 출신으로 로마(Roma)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비테르보의 대형 병원에서 의사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비테르보의 오래된 가문 출신인 마르지아 잠피체티(Marzia Zampichetti)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 즉 도메니코(Domenico),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ddalena), 로사 베네리니, 오라지오(Orazio)를 두었다.
로사 베네리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함과 비범한 감성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가정교육을 통해 확고한 그리스도교적 원칙 안에서 형성된 많은 심리적인 재능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녀의 첫 번째 전기 작가인 지롤라모 안드레우치(Girolamo Andreucci) 신부에 의하면 그녀는 7살 때 이미 자신의 삶을 봉헌하기 위한 서원을 했다고 한다. 청소년기 동안 그녀는 세상의 매력과 하느님께 드린 약속 사이에서 고민하며 지냈는데, 이 위기를 의심 없는 기도와 금욕으로써 이겨냈다. 20살 때 로사 베네리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 여성들의 삶은 결혼 아니면 수도생활이라는 두 가지 방향의 선택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그녀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존중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유익과 당시 사회를 위해 다른 계획을 깨닫도록 그녀를 부르셨다. 이러한 예언적인 내적 움직임에 의해 그녀는 완전히 혁신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때까지 고통과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676년 가을, 그녀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서원을 완성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의 도미니코회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그녀의 이모인 안나 체칠리아(Anna Cecilia) 옆에서 그녀는 침묵과 묵상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녀의 수도원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입회 몇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가족에게 주어진 불행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녀의 오빠인 도메니코가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그로부터 몇 달 뒤에 어머니 또한 세상을 떠나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는 중에 언니 마리아 막달레나는 결혼을 했고, 집에는 이제 막내 오라지오와 24살이 된 로사 베네리니만이 남게 되었다.
하느님을 위해 뭔가 큰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1684년 5월에 주변의 처녀와 부인들을 모아 저녁마다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그들과 기도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기도 전후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슬픈 현실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당시 여성들은 문화적 · 교육적 · 영성적 가난의 노예와도 같았다. 로사 베네리니는 하느님께서 젊은 여성들의 교육과 그리스도교적 양성이라는 보다 높은 사명을 위해 자신을 부르고 계심을 이해했고, 산발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현실적이고 참된 감각을 갖고 투신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1685년 8월 30일 아버지의 집을 떠난 로사 베네리니는 비테르보의 주교인 우르바노 사케티(Urbano Sacchetti) 추기경의 승인을 받고, 두 명의 친구이자 협력자인 제롤라마 콜루첼리(Gerolama Coluzzelli)와 포르지아 바키(Porzia Bacci)와 함께 혁신적인 계획을 따라 기도 안에서 성숙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여학교를 시작하였다.
설립자로서 로사 베네리니의 첫 번째 목적은 소녀들을 그리스도교적 정신으로 양성하고 사회생활을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거창한 주장은 없었지만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소녀들을 위한 공립학교를 개교한 것이었다. 비록 시작은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예언적이라 할만 했다. 여성들의 인간적 증진과 영성적 향상이 현실화되었고, 교회와 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첫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 자신의 직무로서 교리교육을 담당하는 성직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고, 무지한 소녀들의 교육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비테르보의 중상류 계층 여성들의 대담함에 충격을 느낀 순응주의자들로부터 호된 의혹을 사기도 했다. 로사 베네리니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며 자신이 하느님의 계획을 올바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질 때까지 주어진 길을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옳았다는 것은 교육사업의 결과로써 입증되었다.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목자들로부터 그녀의 교육방법이 가져온 교육적 개선을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창시한 혁신적 교육방법의 타당성이 인정받으면서 그녀의 명성은 교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비테르보 프로젝트의 특징을 잘 이해한 몬테피아스코네(Montefiascone) 교구의 마르코 안토니오 바르바리고(Marco Antonio Barbarigo) 추기경은 로사 베네리니를 자신의 교구로 초대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항상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던 그녀는 이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였다. 그래서 1692년부터 1694년까지 몬테피아스코네와 볼세나(Bolsena) 호수 주변 마을에 열 개의 학교를 개교하였는데, 바르바리고 추기경은 적극적인 물질적 후원을 제공하였다. 한편 교사들의 훈련과 학교들을 조직할 기구의 필요성을 느낀 로사 베네리니는 추기경의 도움으로 교사 훈련원을 세웠고, 이곳에서 비슷한 사명을 수행하던 성녀 루치아 필립피니(Lucia Filippini, 3월 25일)를 만나 그녀와 함께 ‘자비로운 교사회’를 공동으로 설립하였는데, 오늘날 베네리니의 자매회로 불린다.
비테르보와 몬테피아스코네에 여학교를 개교한 로사 베네리니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 서부 라치오(Lazio) 지방에서 또 다른 학교들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706년에 로마로 진출했으나 한 동안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시 당국의 신뢰를 얻기까지 6년의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1713년 12월 8일 베네리니 가족의 위대한 친구인 아바테 데글리 아티(Abate Degli Atti)의 도움으로 로마의 중심지인 캄피도글리오(Campidoglio) 바로 아래에 학교를 개교할 수 있었다. 1716년 10월 24일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는 8명의 추기경을 동반하고 그녀가 설립한 학교를 시찰하기 위해 방문하여 “당신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에 행복을 가져다 줄 이 학교에 대해 너무도 고맙습니다.”라며 치하하였다. 이를 계기로 여러 지역의 당국자와 추기경들로부터 자신들의 지역에 학교를 세워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였다. 그녀는 힘겨운 여행을 계속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기쁨과 희생이 뒤섞인 고된 작업을 이어갔다. 그녀가 새로운 학교를 시작하는 곳 어디서든 짧은 기간 안에 젊은이들 안에서 높은 교육적 증진의 효과를 가져왔다.
로사 베네리니는 1728년 5월 7일 오후 로마의 성 마르코 공동체에서 성인다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녀는 일생 동안 40개 이상의 학교를 개교하였다. 그녀의 유해는 평소 그녀가 사랑했던 제수(Gesu)의 성당 근처에 안장되었고, 시복식을 즈음하여 로마에 있는 관구 본부의 경당으로 이장하였다. 그녀는 1952년 5월 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로사 베네리니 (Rose Venerini)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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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