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관심이 많다.
며칠 전에 썼던 프리모 레비 글에 이어 연속으로 쓰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어 이어가지를 못했다.
쓰고 싶은 글은 많다. 그러나 머리 속에 쓰고 싶은 내용이 많은들 뭐 하겠는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글도 그렇다.
오늘은 영화 이야기다.
*페르시아어 수업/ 감독, 바딤 페렐먼/ 2022
나는 이 영화를 타인의 고통과 연계해 쓰기 위해 제목으로 두 개를 생각했다.
1.작은 배려가 생명을 구한다.
2.이토록 기막힌 우연이 또 있을까.
이 중에서 고른 제목이 바로 작은 호의로 구한 목숨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인생 영화까지는 아니어도 꼭 언급하고 싶은 영화로는 꼽는다. 그동안 머리 속에만 담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시간이 왔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등 나치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 사건은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지만 이 작품도 그런 부류다.
이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나는 오직 두 사람만을 부각시켜 말하고 싶다. 수용소에 끌려 온 유태인 남자와 수용소를 감독하는 독일군 장교다.
이것은 내 방식의 영화 해석이다.
유태인 남자 <질>은 유태인이란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 가던 중에 배가 너무 고프다고 호소하는 사람을 만난다.
불쌍한 생각에 질은 자신이 갖고 있던 먹을 것은 나눠 줬고 그 사람은 책을 한 권 내민다. 페르시아어로 된 책이다.
읽을 줄도 모르는 책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으나 음식 얻어 먹은 보답으로 주니 받아 두었다.
그러나 이 책이 질의 목숨을 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날 밤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은 집단 총살을 당하는데 총소리 난무한 와중에 질이 손을 들고 나선다.
자신은 페르시아인이라며 갖고 있는 책을 내민다. 그냥 무시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그만이련만 총살을 실행하던 병사는 총질을 멈춘다.
얼마전에 페르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거든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했던 장교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상금으로 통조림을 준다고 했기에 독일 병사는 이 유태인 남자를 장교에게 데리고 간다.
물론 당장 살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이 가지만 우선 상품부터 타고 볼 일이다. 한 사람의 목숨이 통조림 몇 개로 좌우되는 것이 슬프지만 현실이다.
독일군 중에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용소 보급품을 담당하고 있는 독일 장교 <코흐>다.
그는 아끼던 동생이 이란으로 떠났는데 전쟁이 끝나면 동생이 살고 있는 이란에 가서 식당을 차릴 계획을 갖고 있다.
이때부터 독일군 장교는 가짜 이란 사람인 유태인에게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당장 죽고 싶지 않아서 거짓으로 말한 것인데 갑자기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려니 유태인은 막막하기만 하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못할까.
누가 봐도 말도 안 돼는 생존법이라 주변 곳곳은 온통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장교 또한 긴가민가하다.
이때부터 유태인 질의 눈물겨운 언어 창조 작업이 시작된다. 살고 싶다는 욕망은 이토록 없는 재주까지 쥐어 짜게 만드는 것일까.
엄마, 아버지, 동생, 바다 등 하루에 몇 개씩 페르시아 단어를 창작해 가르친다. 배우는 중에도 장교는 수시로 묻는다.
"하늘을 뭐라고 하지?"
"네, 하울이라고 합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질은 장교의 개인 교습을 한다는 이유로 보직도 편한 것을 받고 음식도 질 좋은 것으로 따로 제공 받는 혜택을 누린다.
이것이 배가 아픈 독일 병사들은 그가 페르시아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틈만 나면 이런저런 실험으로 덫을 놓는다.
질은 자기에게 제공된 음식을 다 먹지 않고 밤이면 수용소 숙소로 가져 가서 동료에게 준다.
옆 침대에는 이탈리아에서 끌려온 형제가 있는데 영양실조에다 강제 노동에 시달리느라 몸이 좋지 않아 밤새 기침을 했다.
이것을 측은하게 생각한 질은 매일 몰래 음식을 가져와 그에게 건넨다.
가짜임이 들킬 듯하면서 위태위태하게 위기를 넘기던 질에게 진짜 위기가 찾아 온다. 실제 페르시아인이 그가 있는 수용소에 들어온 것이다.
그 사람을 데려와 몇 마디만 나누게 해도 질이 페르시아인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들통날 것이다.
패르시아어를 배우던 간부는 이 소식을 듣고 바로 명령을 한다.
"그 페르시아인을 당장 데려 와라."
독일 사병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수용소 막사로 간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페르시아인은 목에 예리한 칼침을 맞고 죽어 있었다.
질에게 음식을 얻어 먹은 이탈리아인이 그 남자를 죽인 것이다.
이탈리아인은 이미 질이 가짜란 것을 알고 있었고, 전날 입소한 사람이 진짜 페르시아인이란 걸 알고는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이탈리아 남자는 매일 음식을 가져와 자신을 구해준 질에게 이렇게 은혜를 갚은 것이다.
숱한 고비를 넘기며 목숨을 유지했던 질이었지만 그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번의 호의가 결정적이었다.
작은 호의가 질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영화의 결말은 실소를 머금게 하는 두 가지 행보로 나뉘지만 행여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을 위해 남겨 두려고 한다.
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고, 또 누군가는 반대하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질은 결국 살아 남았고 그가 있던 수용소에서 희생된 2800여 명의 유태인 명단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끝까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삶이든 일단은 살고 볼 일이다.
첫댓글 유현덕 아우가 나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
줄거라하니 고맙네...흑흑~
저 영화는 "페르시아어 수업"인데 "마지막 수업"
이라는 소설도 있는것처럼 대한민국 국어도
잘 아끼고 사용해야하는데, 사전에 있지도
않은 낱말들을 당연하듯이 오용하는 현실이
나는 마음이 아프다네...
작은 호의가 쌓여 큰보답으로 돌아 올 수 있으니
훈민정음에 계속 호의를 보여 잘 살려주시게...
적토마 선배는 무슨 고통이든 스스로 달랠 수 있는 긍정의 능력이 있기에 걱정하지는 않을랍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기라도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혼자서 가짜 언어를 창조하느라 고심하는 대목이 정말 아슬아슬하데요.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언어 창조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답니다.
안부가 궁금했던 적토마 선배를 이렇듯 댓글로나마 접할 수 있으니 좋네요. 늘 좋은 날들 되시길요.
@유현덕
현덕아우도 긍정의 에너지가 있기에 그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껏 살아왔으니 조만간
관운장과 장비도 도원결의를 맺으러 올걸세~
부디 사나이 붉은 피 조국에 바쳐 멋진 대장부가
되어주기를 ...화이팅~!! (^_^)
언급한 영화를 저도 다 본 영화네요
그가 살아남아 희생된 사람들을 줄줄 말할수 있었던것도
페르시아어를 만들며
살기위해 짜낸 아이디어였었죠
쉰들러리스트 피아니스트도 감동으로 본영화에요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ㅡ드라마라 보다가 중지상태네요
역시 독일 치하의 파리가 배경이거든요
오늘 교육 받으며
선한 영향력의 짧은 영상에서 참 감동이었어요
현덕님 글도 큰 울림을 가슴에 줍니다
와우~ 언급한 영화를 정아님이 모두 보셨다니 영화 취향이 저와 비슷한 듯합니다.
맞습니다. 나치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수용소의 유태인 명단을 모두 소각했지만 질이 그 명단을 기억해서 세상에 알릴 수 있었습니다.
바로 유태인 질은 그 명단에서 힌트를 얻어 페르시아어를 창작했기에 모든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으니까요.
피아니스트는 제 인생영화 10에 들어가는 작품으로 서너 번은 본 듯합니다. 쇼팽의 피아노 선율에 운명을 실은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기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참,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도 보셨겠지요. 이 작품은 내 인생영화 11에,,^^
정아님이 언급하신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함 찾아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모르는 작품을 알려주신 정아님 감사하네요.
평온한 밤 되시길요.
@유현덕 인생은 아름다워ㅡ당연히 봤죠
수용소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게임처럼 숨바꼭질하며
숨기고 감추던
살아남기 작전ㅠ
결국 아버지는 죽지만
게임승리인줄 아들은 탱크인가 타고 나오던장면 기억도 납니다
난 앞으로 좋은 영화를 가져와 현덕씨께 드릴겨
다 읽은 현덕씨가 자신이 느낀 감동의 앙금과 마음에 들어온 뜻과 해석으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시라고 ㅎㅎ 너무 듣기 좋아용~ 부탁해요 감동 감동~
ㅎ 운선님이 주시는 영화라면 기꺼이 받아서 잘 먹겠습니다.
어떤 영화든 제 속으로 들어오면 내 방식으로 소화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영화뿐인가요. 소설이든 시든 그림이든 어떤 작품도 안으로 들어오면 내것으로 만들 수 있지요.
본래 맛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맛을 느끼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답니다.
운선님한테 칭찬 받았으니 아직 못한 숙제 마저 해야겠네요. 일단 점심밥부터 먹구요.ㅎ
질 ...가슴뭉클 감동입니다
몰입해서 읽어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유현덕님 다음에 또 글 기대합니다
햇살같은 하루 되세여
둥근해님께서 공감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살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면 없는 능력도 창조해 발휘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데요.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려는 질의 호의가 자신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님이 언급한 햇살같은 하루라는 말 참 좋네요. 둥근해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세상을 부대끼며 살거나
같은 책을 읽거나 같은 영화를 보아도
풀어내는 방법이 다르니
몰입하여 단숨에 읽어내려간 글의
끝맺음이 아쉬워 말미를 더 붙들고 싶어집니다
누군가는 제 글이 길어서 다 못 읽고 간다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댓글을 쓰는 그리움님은 활자와 친숙한 분인 것 같아 반갑네요.
작가든 화가든 작품에서 본인의 성품이 드러나듯이 제 글에도 조금이나마 저만의 색깔이 있기를 바란답니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인들을 보면 그저 좋다는 것으로만 끝내고 싶지 않아서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이 생기나 봅니다.
닉처럼 어떤그리움님의 댓글 또한 여운이 남아서 좋네요. 항상 평화로운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