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인생의 마지막이 보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은수저를 망치로 두들겨 만들던 친척 형이 있었다.
폐암인 그는 내게 엑스레이사진을 보내 삶아 며칠남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었다.
그는 호흡이 가빠져서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를 쓰고 눕기 직전까지 은수저를 만들었다. 그리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게 친척형의 천직이었던 것 같다.
암에 걸린 시인의 임종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죽기 전날까지 시 쓰는 공책을 병원 침대의 매트리스 밑에 두고 시를 썼다.
정년 퇴직을 한 아버지는 ‘파랑새집’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했다. 마지막까지 새들을 돌보다가 저 세상으로 가셨다.
자기 일을 하다가 죽는 게 행복이고 평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명의였던 허준을 그린 드라마를 두 편 본 적이 있다. 한 편에서는 서안 앞에 앉아 붓을 들고 동의보감을 집필하다 죽는 장면이었다.
또 다른 장면은 환자에게 침을 놓다가 방 구석에서 조용히 앉은 채로 굳어버린 죽음이었다.
아름다운 죽음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살아있는 사람은 마지막 인사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임종을 앞두고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혼수상태의 뿌연 의식 속에서 어머니는 어디를 돌아다니고 계실까 궁금했다. 칠십년 전에 떠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던 북에 둔 가족들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죽기 직전 어머니의 의식이 영혼의 밀물에 실려 잠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희미한 눈으로 침대옆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그때였다. 탈진해 있던 어머니의 오른손이 시트 아래서 움찔했다. 다음순간 그 손이 천천히 들려올라오고 있었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모습에 의아했다.
이윽고 그 손은 침대 난간을 잡고 있던 내 팔을 한번 쓰다듬었다. 피가 통하는 같은 따스함이 전해졌다. 어머니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한번 만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희미하게 꺼져가는 촛불같은 어머니의 생명이 아직 남아 있을 때 나는 분명히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 고마웠어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눈물 몇 방울과 함께였다. 그때부터 세월이 여러해 흘렀다. 여러 사람이 저 세상으로 옮겨가는 걸 봤다.
누구든지 언젠가는 허물어지거나 망가진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점점 더 지고가는 짐을 벗어놓아야 하는 것도 배웠다.
등산할 때 가급적 가벼운 차림을 해야 등산이 쉽듯이. 죽을 때도 걸리적거리는 게 적어야 영혼의 무게가 가벼워지지 않을까.
수천억 부자였던 어떤 노인의 말이 지금도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내가 번 돈들을 모두 마당에 모아 불싸 지르고 싶어요. 아니면 바다에 던져 버리던지.”
일생을 돈만 따르다 갑자기 폐섬유증으로 죽게된 노인의 말이었다.
곡괭이 한 자루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큰 건설회사를 설립한 노인이 있었다.
어느날 그 노인은 수액이 다 빠진 마른 고목같이 앞으로 ‘픽’ 쓰러졌다. 죽음의 다가온 것이다. 노인은 죽음을 부정했다. 자신은 아직 죽을 수 없었다.
그는 죽음의 천사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던 그는 자기가 소유한 부동산 목록을 손에 꼭 쥐고 저 세상으로 끌려갔다.
세상에 대한 집착은 영이 하늘로 올라가는데 장애가 될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영은 땅과 하늘의 중간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헤맨다는 얘기도 들었다.
오늘아침은 메모해 두었던 스티브 잡스의 짧은 글이 화두로 나타났다.
그는 미국인이면서도 이따금씩 동양적인 철학을 한두마디 내뱉을 때가 있다. 그가 예일대 졸업식장에서 이런 연설을 했었다.
“저는 매일 아침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삶의 진수를 뽑은 말 같았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어떤 일을 하지? 누구에게 전화를 하지? 내가 바다를 본 건 언제지? 밤하늘의 별을 본 건? 대충 그런 것들일 것이다.
그냥 매일 버릇같이 해 오던 작은 글을 쓰고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죽어가는 느낌 그 자체를 생생하게 묘사하면 인생 최대의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환상이 보이면 그걸 적나라하게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했다고 말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때 할 일을 오늘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지금 동해안 청담색의 드넓은 바다를 앞에 놓고 있다. 오후가 되면 따뜻한 커피향이 감도는 단골 까페에서 노트북에 글을 쓴다.
나는 지금 회색의 죽음을 말하려는 게 하니다. 가장 생동감있는 삶의 역동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 엄상익 변호사의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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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당케 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