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에서 그만 두도록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제발 좀 나가주세요.” 올해로 입사 20년차인 아무개 차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미팅하자며 본부장에게 불려가 강제 사직 압박을 받고 있다. 그래도 계속 버티자, 그에게 영업사원도 쓰지 않는 일일활동일지를 쓰게 하고, 일일이 꼬투리를 잡아 노골적인 수모를 주기 일쑤다.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현대맨으로 시작해 차장까지 승진 가도를 달렸던 아무개 차장. 그런 그에게 소위 노란 봉투가 날아 든 것은 지점장 달고 1년 뒤인 2004년 10월. 회사는 ‘중고차사업’한다는 명분아래 전국에 있는 연봉제노동자인 과장, 차장, 부장 25명에게 ‘노란봉투’를 날렸다. 그러나 1년 동안 지방으로 부당 전출, 퇴직강요 등을 이겨냈고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 승소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에 회사는 지난해 말 부사장과 담당이사까지 짤랐다. 올해부터는 각 영업본부로 한 두 명씩 나눠, 본부장이 이들의 사표를 받아내지 못하면 대신 본부장이 사표를 내도록 하는 게 방침이다. 그는 자신이 중간관리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몽구의 노예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현대차관리직 20여명 금속노조 가입…
기아차노조 연봉제에 대한 노란봉투 막아…
대우버스사무직지회는 교섭 중=
1월 26일 현대차관리직노동자 20여명은 금속노조에 가입원서를 냈다. 이들에게 비인간적인 회사의 해고강요와 협박에 맞서서 싸울 큰 울타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인권위원회에 제소할 준비도 하고 있다. 27일 현대자동차노조도 현장 관리자 보직 해임은 구조조정 신호탄이라며 철저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차노조 김치용 조직부장은 “같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좌시 않겠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며, 이 문제는 일부 관리직의 문제가 아니라 사무직 노동자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회사에게 굴종을 강요당하면 산별전환을 하는데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26일, 기아차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일반직에 대한 구조조정관련 즉각적인 투쟁배치 및 대응의 건이 긴급 발의됐다. 당시 약 150명 가량이 노란 봉투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 날 대의원대회를 정회하고 준법투쟁으로 정시퇴근 특근거부 지침을 내렸다. 확대간부들은 본관 4층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다음 날 노사는 “책임자 인사조치. 노란 봉투는 전면 철회하고 이후에도 연봉제 사원에 대해 강제퇴직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합의했다. 기아차노조 정윤조 정책실장은 “비록 합의사항을 비공개회의록에 남겨놓긴 했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창립한 대우버스사무직지회는 160명이 가입했고 꾸준히 가입이 늘고 있다. 지회는 사무실과 교섭위원 상근을 확보했다. 2월9일 7차 교섭을 벌였고, 가입대상을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회는 차장까지를, 회사는 과장 아래로 회계와 경리담당은 빼고 하는 등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금속노조에 사무관리직 가입 줄이어=
한 월간지에서 복수노조시대가 되면 사무직과 현장 감독자들의 노조결성이 가장 먼저일거라 분석했다. 금속노조에 가입한 현대차관리직 한 명은 본사에 있을 때 “노조 언제 만드냐”는 얘길 많이 들었다고 했다.
관리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엄청나다는 얘기. 때문에 회사는 복수노조시대에 대비해 다루기 힘든 이들을 빨리 내 보려고 안달이 난 것 아닐까. “회사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냐”고 했다. 관리직 노조라고 한다. 이들은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벌어 들였고, 무엇을 꿈꾸고 있는 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금속노조에 사무직노동자의 가입이 줄을 잇고 있다. 대우종기사무관리직, 기아차사무관리직, GM대우차사무지부(준), 대우버스사무직, 현대차관리직노동자들…. 자본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생산직과 사무직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가야 하나 우리 앞에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부양지부 정혜금 조직부장은 “사무직들이 고용 문제 때문에 노조를 만들지만 이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계속 남아있을 것인가”라며 반신반의 한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보다 더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현행 기업별 노조가입의 문이 닫혀있어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다. 소외된 그들에게 금속노조는 희망의 빛이다. 스스로 단결하고 나섰다. 금속노조 김천욱 수석부위원장은 “취약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취업 보호망을 만들어 나가는 게 산별노조의 역할”이라며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