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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했던 선암사는 이제 시끄러웠다.마침 경내에 들어선 시각은 낮 12시 30분,공양 시각이었다.어느 사찰이나 시끄러운 때인데 유난히 선암사는 그 소리가 크다. 주지를 종단에서 일방적으로 교체하는 바람에 이 절 스님들이 주지 퇴거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경비용역업체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단식 농성을 벌이는 모양이었다. 경내를 돌다 어느 전 안을 넘어다보니 '보도자료-선암사 충돌'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풋 웃음이 나왔다. 절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태고종의 종찰이라 그런가 싶었다.
송광이 중창불사에 힘입어 옛것과 오늘의 것이 뒤섞여 있는 반면, 선암은 옛것이 훨씬 더 눈에 들어온다. 요사채도 시간을 되돌리는 것들이 많았다.
송광으로 나아가는 등산로 입구와 맞닥뜨렸다.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갈망이 두드렸지만 어머니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는 일이어서 그냥 나왔다. 선암 들어가며 나오는 길 역시 송광처럼 널찍했지만 훨씬 더 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특히 절 입구에 있는 다리는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모양이었다. 돌로 쌓아 만든 다리였는데 상당히 아름다웠지만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기다리던 어머니는 아야 은제 밥 묵냐, 배고프다야 하신다.
쪼금만 참으시랑께요.엄니.지가 맛있는 것 사드릴팅께.
내가 낙안읍성을 처음 찾은 것은 허준이란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던 1998년인가 99년 무렵이었다. 편집부에서 막 빠져나와 문화부 방송 담당을 하면서 엠비시 제작진이 한창 촬영에 열중하는 이 곳을 찾았다.홍보부는 읍성 앞 식당에 점심을 준비했는데 들어간 기자들 모두 입을 쩍 벌렸다. 한상 그득 차려져 있었는데 우리 모두 왕실 세트 촬영 준비인가 싶었다. 새벽에 출발해 휴게소에서 변변찮은 아침 먹고 읍성 안 돌아다니며 촬영 장면 기웃거리느라 허기져 있던 일행에게 이건 그야말로 산해진미였다. 일행 중 누군가 홍보부 사람에게 슬쩍 음식값을 물었다. 한사람 당 8000원이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면 결코 싸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홍어와 세발낚지 꿰어 산적 마냥 만든 것, 피조개 데친 뒤 양념장 뿌린 것, 토란국 등 전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에다 인절미 등 온갖 떡 종류, 식해 등 지금주워섬길 수 조차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음식이었다.
그때 허준 역을 맡았던 전광렬 씨에게 매일 촬영 오면 이렇게 먹냐고 물어봤던 것 같고 대충, 이보다 조금 못하지요.오늘은 기자님들 오신다고 특별히 신경쓰신 모양이네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이름 났던 황수정 씨와 촬영 틈틈이 이런저런 얘기 나누었던 기억도 있다. 후에 마약 사건으로 연루돼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매번 복귀를 시도하다 좌절될 때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하여튼 낙안읍성은 이렇게 한국의 전통 취락을 살펴볼 수 있는 민속학적 가치보다 내겐 맛,침을 꼴깍 삼키게 만드는 달콤한 추억으로 다가오는 곳이었다. 선운사를 빠져나와 이제는 정남향으로 내려간다. 길은 더 호젓해졌다. 대로 한 구석을 차지한 벼 말리는 자리를 보고 우리도 덩달아 흔감해진다. 가실을 넉넉히 하고 겨울을 맞는 여유, 그러나 어머니랑 난 계속 걱정거리다. 서울에서부터 여정을 되밟건대 어디 한 군데 벼농사가 잘못된 곳이 없었다. 모두가 풍년이었다. 누군 안 된 이가 있어야 풍년의 의미가 각별할 터인데 모다 잘 됐으니 풍년의 기쁨은 반감될 터이다. 난 어머니께 이렇게 되면 정부에서도 전량 수매를 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읍성 가는 길은 고개를 두 번 넘었다. 이 길은 주암호를 버리고 상사호라는 곳을 끼고 돈다. 물길이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두번 째 고개를 넘자 갑자기 시야가 툭 터지고 낙안읍성이 자리잡은 너른 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너른 들에 읍성이 자리하고 있었구나. 온통 가을빛으로 넉넉함이 밀려온다.
고개를 내려오는 길에 낙안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없던 시설이다. 일찍 조계산 산행을 마친다면 이곳에 들러 노천온천에서 너른 들을 조망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읍성 들어서자마자 예전 그 식당을 찾아 두번이나 돌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고깃집으로 바꾼 듯했다. 어떡할까. 어머니께 굉장히 죄송했다. 어머닌 아무 데나 들어가자 하신다. 읍성 들어가자마자 바로 왼쪽에 음식점 하나가 보였지만 옛날 봐둔 게 생각나 어머니를 잡아 끌었다. 엄니 쪼금만 더 가요잉.
해서 들어간 집이 민속집 2호점. 바로 앞에 1호점이 있었지만 손님들이 가득했다. 이 곳들은 마치 시간을 과거로 돌린 듯 장터 음식파는 곳처럼 꾸며져 있다. 마당에 편상 같은 것을 깔아놓고 그 위에 올라 앉아 편히 음식을 즐기는 식이다. "주모, 여그 탁사발 하나"라고 외치고 싶은 착각이 든다.
한참 밀고 당기기가 시작됐다. 제일 비싼 메뉴가 팔진미상인데 만원이었다. 아주머니께 여쭈니 여덟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고기는 없이 순전히 나물만으로 꾸민 상이라 했다. 통박이 잘 돌지 않았다. 이걸 시켰다가 후회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아줌마, 그럼 그거 하나랑 다른 거 하나 시키면 안되나요 했다. 안된다고 딱 지른 아주머니는 백반 하나 하고 다른 걸 시키라고 했다. 해서 이런 집이면 혹시 손으로 밀어 만든 국수,할머니들이 만들어주시던 칼국수가 생각나 그걸 시켰다.
조금 기다린 뒤 나온 상은 기대를 전혀 외면하지 않았다. 송이버섯 구이,양념게장,고사리나물 등 맛깔스러운 반찬이 무려 14가지가 나왔고 된장국까지 딸려 나왔다. 맛은 어땠냐고, 당근 맛있었지요. 칼국수도 옛날 먹던 식으로 두툼하고 비뚤비뚤하게 썰은 국수발이었다. 국물도 도회지에서 먹던 맛과는 달리 텁텁하고 토속적인 맛이었다. 어머니가 특히 반하신 것은 양념장 끼얹은 북어구이였다. 원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메뉴여서 어머니는 정말 맛있게 드셨다. 한참 먹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들이 계산한 뒤 나가면서 하는 말이 "앞집보다 낫네"였다. 내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기뻤다.
포만감을 줄이려 성곽 위 올라가 잠깐 거닐어본다.어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아 이런 구경할 수도 없다.돌아와 위로의 말씀 드렸더니 니가 봤으니 되았다. 아까 우에서 다 보지 않았냐 괜찮다 하셨다.읍성을 빠져나오니 그 많은 학생들을 토해냈던 관광버스는 모두 어디론가 떠났다.
읍성을 나와 순천 시내에 들어가 휴대전화 충전하고 그 틈을 타 잠깐 눈을 붙였다. 잠깐의 휴식이 얼마나 몸을 가볍게 하는지. 순천만 들어가는 길은 의외로 좁았다. 만 들어가는 길이라 넓고 활달한 길을 기대했는데 영 아니었다.
우리가 순천만 들어간 시각은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주차장은 차로 복작여 더 가까운 농로 쪽에 차를 세우고 난 구름다리 건너 나무 데크를 따라 거닐었다. 어머니는 만 일대를 일람하고는 야 이란 디 머하러 왔다냐 볼 것 없구만 하셨다. 그러나 데크를 따라 들어간 난 조금 달랐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 그림자를 따라 갈대들이 몸을 누인다. 내가 순천 산다면 이곳에 매일 러닝하러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다리 아래 선착장에선 만 일대를 돌아보는 유람선이 떠나고 있다. 여유가 있었다면 유람선을 탔겠지만 난 용산전망대란 곳에 올라 일몰 구경을 할 욕심에 쫓기고 있었다.데크는 1킬로미터 쯤 뻗어있었고 그 맨끝에 전망대 올라가는 곳이 있었다. 언뜻 보아도 해발 100미터나 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산줄기가 뻗어있는데 그 끄트머리에 용산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길을 오르는 데 상당히 힘이 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15분 이상 걸렸던 것 같다. 가파른 계단을 숨가쁘게 오른 뒤 소나무숲을 지나 전망대로 향한다. 언뜻 만 일대의 풍경들이 비치는데 나무 그림자에 가리긴 했어도 꽤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일감하니 이곳은 완전 딴세상이었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무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같았고 외계인이 다녀간 흔적이라는 설이 있는 스코틀랜드의 어느 들판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서클. 그렇다. 만 일대에 떠있는 섬, 아니 풀섬들의 모습은 똑 미스터리 서클 같았다. 너다섯명의 아마추어 작가들이 열씨미 카메라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해는 이제 바야흐로 서산에 걸려 있고 말간 햇살을 만 일대에 고스란히 뿌리고 있다. 빛의 산란.
내 마음속은 심란. 기다리는 어머니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결심과 태양이 조금 더 궤적을 늘어뜨리면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힘겨루기를 한다. 난 결국 어머니쪽을 택했다. 머릿속에는 29일 집안 행사 때문에 이곳을 다시 다녀올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계산 또한 있었다. 해서 난 과감히 발길을 돌려 전망대를 내려왔다. 그리고 내 마음이 돌아설까 두려워 데크 위를 뛰었다.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세상에,이런데서 뛰는 사람도 있나 하는 표정이다.
그렇게 뛰었더니 구름다리 위로 아들이 모습을 내비치길 목 빠지게 기다리는 어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날이 저물고 있다. 왜 이리도 급한 걸까. 너 운전허는 데 힘들어 안된다 빨리 돌아가자고 재촉하는 어머니를 따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만을 나오면서 왼편 하늘에 펼쳐진 장관을 보고 차를 멈춰야 했다. 빛의 산란. 아까보다 훨씬 빛의 산란. 이젠 하늘이 마치 붓질한 듯 태양의 마지막 빛을 심하게 붓질했다. 마치 산발한 듯 태양이 어지러운 그림자를 남기며 들어간다. 파란 가을 하늘에 펼쳐진 빛의 산란이 아름다워 나뿐만 아니다. 많은 차량들이 거북이 걸음으로 이 만을 빠져나간다. 가기 싫다는 듯.
순천 시내로 다시 들어가 시의 북쪽에 있는 호남 고속도로로 들어가 광주 집에 도착하니 오후 7시 30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오늘 여정의 가장 좋았던 곳은 순천만이었다. 오롯이 그 아름다움을 다 만끽하지 못해, 다음을 기약해야 했기에 더 아름다웠지 않았던가 한다.
서울에 돌아와 포털 검색창에 선암사를 쳤더니 지난해 11월 둘째주에 다녀와 올린 사진에도 진한 가을이 매달려 있었다. 해서 지리 다녀오면서 11월은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일부 회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송광사~조계산~선암사~낙안읍성~순천만 일정을 밀어붙여 볼까 고민 중이다. 어차피 12월은 지난해처럼 가까운 곳으로 가 망년 정기산행을 해야 할테니 말이다.
첫댓글 순천만의 뻘단풍^^, 칠면초도 보구 오셨나요? 언제더라...누군가 칠면초 사진에 '칠면조'라고 써 놔서 "대체 갯벌에 칠면조가 왜 사는 거샤? 내눈엔 통 안보이는디?" 그랬던 적이 있담다(으~~~무식!). 그 붉은 식물이름이 칠면초라는 걸 안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어요. 흐흐
엄니, 참 좋으셨겠다.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니 제 짝들 찾기 전(메눌 눈치보기 전) 내가 끼고 있는 동안에 만끽해야지. 물론 수발 받을 일 없이 손주들 치다꺼리까지 하다 바람처럼 가는 거이 소원이지만. 난 아들땀시 fangdang! 아들입대후엄마증후군에서 슬슬 벗어나려는데 벙글거리며 엄마~하고 나타났다는...그래서 꿈인지 생시인지 잠시 멍했다는.....접때 라섹 하고 왼쪽 시력이 쫌 퇴행인데 의사 왈 변동이 있으니 일단 지켜보고 필요하면 제대 후에 재수술을 해주겠대서 찝찝한 채 보냈더니 군의관이 치료 더 하고 두 달 있다 오라네. 요샌 군대서 악화되면 귀찮응께.ㅎㅎㅎ다시 보니 좋아서 서로 눈만 마주치면 방실방실.
헬렌 형. 틈틈이 아들과 여행 많이 다니세요. 난 아무래도 너무 늦게 시작했나봐요. 그리고 물어보세요. 내 마음이 보이나요? 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