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성은 차갑다. 장현성을 보면 항상 피아노선처럼 긴장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배우의 이미지는 그가 지금까지 어떤 배역을 맡았는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가 지금까지 맡은 배역은 대부분 지적 고뇌에 빠져 있는 지식인이거나 차가운 감성의 도시인이었다. 실제로 그를 만나 보면, 이런 이미지가 우연히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우라는 직업이 누구를 쉽게 만나서 금방 친해지기는 힘든 직업이다. 대신 그는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는 1970년 경남 거제 출생이지만 구파발 부근의 삼송리에서 성장했다. 학창시절에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게 꿈이었다. 대학도 경제학과에 진학했다가 그만 두고 친구 따라 서울예대 연극과에 갔다. 대학시절 그는 연출 전공이었다.
[어렸을 때는 연기에 관심이 없었고, 연기는 취미 삼아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가 소중하고 나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것을 느꼈다.]
그를 연기자로 만든 사람은 김민기였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와서 연극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그에게 대학로에서 학전 소극장을 운영하던 김민기는 본격적으로 연기공부를 할 것을 제의했고, 장현성은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다. 설경구 황정민 등을 잉태시킨 대학로 스타 배우의 산실인 [지하철 1호선]은 아직 또 한 사람의 스타를 더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로 1호선]에 등장하는 남자 배역은 모두 60여개. 장현성은 그중에서 3개만 못해 보고 다 해봤을 정도로 [대학로 1호선]의 안방주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대중들 앞에 나타난 것은 동년배의 배우들보다 훨씬 늦은 편이다.
그렇다고 장현성이 실제로 영화에 뒤늦게 합루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지난 1997년 [백수스토리]로 스크린 데뷔를 했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년) 김기덕 감독의 [실제상황](2000년) 등에 연이어 출연했으니까 비교적 작품운도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문승욱 감독의 디지털 장편영화 [나비](2001년)를 통해서였다. 강혜정 김호정 등과 공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택시운전수 역을 맡아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나비]에서 처음 장현성을 발견했다. 그의 연기는 충무로의 관습적인 제스처에 적응하지 않았고 날이 서 있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도는 푸른 긴장감은, 상업주의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그 뒤로도 장현성은 [베사메무쵸](2001년) [비디오를 보는 남자](2002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2003년) [꽃피는 봄이 오면](2004년) 등의 영화작업을 하면서 TV 드라마 [로즈마리][부모님전상서] 등에 출연했다. 특히 [부모님 전상서]는 작가 김수현의 작품으로서, 알려져 있다시피 배우 고르는 데 까다로운 눈을 가진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다. TV 드라마는 그의 연기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었지만, 장현성만의 개성적인 연기를 펼치기에는 TV는 너무 대중적인 매체다.
[지금 TV를 안하는 이유가, TV 속의 내 모습에서 나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나를 객관적으로 봐도, 저 연기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오직 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개성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다. 내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딱 부러지는 역할보다는 은은한 매력을 가진 것이 좋다. 무겁지만 느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연기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TV는 당분간 안하려고 한다.]
장현성은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깃][마법사]에 연이어 출연했다. 또 그의 인상적인 주연작 [나비]에서 함께 했던 문승욱 감독의 새 영화에 출연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렇게 그를 선호하는 감독들은 비교적 한정되어 있다. 그의 연기를 좋아하는 감독들은 열렬히 그를 지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감독들은 그를 범상한 배역에 출연시킨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목록들은 화려하지 않다.
장현성의 영화들은 대부분 작가주의 영화이거나 그런 작품이 되려고 노력한 것들이었다. 그중에서 완성도가 빼어난 것은 송일곤 감독의 [깃][마법사], 문승욱 감독의 [나비] 등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는 성공작보다는 더 많은 실패작에 출연했었다. 왜 그랬을까? 물론 배우가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출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비디오를 보는 남자]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각각 90년대 한국소설문학을 대표하는 김영하 등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들이다.
장현성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속류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도시적 감성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방황하는 자아를 찾기 위한 내면적 탐구 같은 인문학적 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이미지를 회색빛 지식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도 감독들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나도 다른 배역을 할 수 있다. 다양한 배역을 해보고 싶다고 건의하지만, 내 의지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배우라는 존재 자체가 선택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애초에 나를 선택한 감독이, 나를 선택할 때는 무엇인가 나에게 요구하는 게 있다. 내가 그 영역 밖으로 튕겨져 나가 연기할 수는 없다. 나는 하나의 배역이라도 여러 가지 칼라로 감독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선택하는 사람은 감독이다. 아직 나는, 내가 가진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좀 더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위치가 되지 못했다. 대신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영평상 신인감독상을 받는 방은진 감독의 데뷔작 [오로라 공주]에서 장현성은 음험한 악역을 맡았었다. 그리고 [연애]에서는 단란주점 접대부로 일하는 전미선의 상대역으로 출연한다. 여전히 그는 방황하는 도시인이다. 그의 내면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매우 투명한 재료여서 감독에 따라 각각 양념을 다릴 하면 얼마든지 다른 맛을 내는 요리가 될 수 있다.
그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영화는, 올 초에 촬영 들어가려고 했던 연쇄살인 사건 소재의 영화다. 사랑하는 7명의 여자를 토막 살인해서 인육을 씹어 먹는 역이었다.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 작품을 목숨 걸고 하고 싶었지만 촬영이 무산되고 말았다.
전미선과 함께 공연한 [연애]에서 그는, 수입차 딜러로서 단란주점에서 처음 만난 전미선에게 호감을 품고 친구가 되자고 먼저 말하지만, 전미선과의 섹스를 원하는 회사 상사에게 그녀와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이기적인 속물, 민수라는 배역을 연기하고 있다.
[이 남자가 착한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누구도 재단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복잡한 정서의 복합체다. 민수가 그녀를 사랑했을까? 사랑의 정서는 것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민수는 그녀에게 자상한 것 같기도 하고 친절한 것 같기도 하다. 사회에는 도덕이 존재하고 규칙이 있어야 되겠지만, 민수라는 인물을 통해 이기적인 모습이든, 선한 모습이든 열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술집에서 남자들이 노는 장면만 보면 나쁘지만, 수믈 마시기 전까지 현실에서 겪는 그들의 고통도 존재하는 법이다]
12월 한 달 동안은, 유지태가 대표로 있는 극단 [유무비]에서 제작하는 연극 [육븐의 륙] 공연에 매달려야 한다. 유지태와 함께 더블태스팅되었다. 이해제 각본 연출로 대학로 사다이 아트센터에서 12월 한 달 동안 공연되는 이 연극은 예매 시작한지 며칠만에 한 달 공연 티켓이 모두 매진되었다.
촬영이 없을 때 배우들은 무엇을 할까? 일산에 살고 있는 장현성은, 4살 된 아들과 호수공원이나 정발산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탄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보고 싶은 연극을 보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공연장에 가서 자판기 커피를 마실 때이다. [델리카트슨]이나 [아이다호]처럼 색깔이 분명한 영화를 좋아하고,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펄프 픽션]이 자신의 감성과 잘맞는다. 채플린의 DVD는 모두 가지고 있다.
장현성의 다음 작품은 안진우 감독의 [잘 살아보세]다. 감독과는 사적인 자리에서 많이 만났지만 일은 처음으로 같이 한다. 장현성은 시나리오가 느낌이 안와서 망설였는데, 평범함 속에 재미있는 삶을 보여주려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내년 4월 개봉 예정이고 김정은과 이범수가 함께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