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휘경여고 동창 아무개라며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름도 모르겠고,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나 싶었더니
현옥이한테서 들었단다. (현옥인 작년, 아니 재작년이던가..
거의 20년 만에 만난 여고 동창생으로 여기에 그 얘기도 쓴 적 있었지.)
‘얘가 뭘 팔려고 전화를 걸었나...’ 퍼뜩 든 생각이었다.
만, 그건 아니었다. ^^;
내년이 우리 30년이랜다. 아니 벌써?
나는 졸업 30주년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전화 끊고 생각해 보니 입학 기준인가 보다.
아무튼 30년이라니... 대단하군, 세월이..
갈래머리 여고생..에서 30년이라.. 고2때 전학을 왔으니
나의 서울 생활도 30년이 다 되어간다는 소리고...
안그래도 지하방 아가씨 보일러 수리 때문에 내려갔다가
그런 얘기 나누다 올라온 참이었는데...
뭐냐 하면 그 아가씨가 얼마 전에 해피투게더 프렌즈에 출연한 이야기.
김혜선(대장금에서 장금이 엄마)이 동창인데 꽤 친한 사이였다고..
친구 덕에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또 다른 친구가 그걸 보고
연락이 오고 한 이야기..
이름을 들어도 모르겠고 나중에 앨범에서 얼굴을 확인해도
전혀 모르겠는 이 친구가 전화를 건즉슨,
그러니까 30주년인 내년에 아마 전체모임(행사)을 가질 모양인데,
얘가 우찌우찌하다 총대를 매게 됐단다. 그래서 주소록도 만들고
올 가을쯤 한번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가르쳐주고 나서
수고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삼십년, 삼십년.. 30년이라..
실로 오랜만에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찾아보았다.
5반이라 그랬지? 5반은 이과.. 아는 얼굴이 거의 없을 텐데...
역시 얼굴만이라도 아는 아이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
전화 건 그 친구는 얼굴도, 이름도 전혀 낯설다.
꺼낸 김에 앞장부터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30년 전으로 돌아가 볼까나...
1978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휘경여고에 전학을 와보니
우리 학년은 다섯 반이, 윗 학년은 세 반만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 들온 1학년이 일곱 반이었던가..
그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내가 3회 졸업생이니),
서울 변두리 조그만 신설학교였던 것.
학교도 덜 지어져, 교실도 그렇고 부속건물이니 운동장 시설이니
졸업할 때까지도 내내 공사소리를 들었던 거 같다.
(벽돌을 날랐던가.. 우리가 직접 거든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학교 앞에서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도로포장도 안 되어 있어서
비가 오면 진흙창길이 되기 일쑤였고,
(아무리 조심조심 걷는다 해도 10분 이상 걸어들어가다 보면
신발은 물론이고 까만 스타킹에도 흙탕물이 튀어 엉망이 되곤 했지..)
큰물이라도 지면, 학교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지.
암튼 세월은 흘러 30년이 넘었으니 이제 내 모교도 신생이 아니라
장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구나..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실 나는 휘경여고가 모교라는 느낌이 영 안 든다.
기정 사실이라 해도... 오히려 1년밖에 안 다닌 효성여고가 더 따스하게
느껴지니까, 아직도. 이런 것들이 안타까운 내 정체성인가.. - -;)
.....
앨범 거의 맨 앞장에 교가.. 모르겠다.
다시 듣게 된다면 생각이 날지 모르지만...
여자 이사장의 사진 아래 이런 글귀가 적혀 있구나..
절벽에서 떨어져도 폭포물은 다시 일고
서로 갈린 시내물은 바다에서 만난다네
(이사장님이 직접 쓴 글씨 같다..)
교장, 교감, 선생님들의 얼굴...
3학년 때 담임 김건일 선생님(영어 과목이었지).
2학년 때 담임은 우리하고 1년 같이 있다 전근을 가셨으니
앨범에 없다. 수학을 가르치던 이쁘장한 여선생님이셨다.
그리고 각 과목 선생님들.. 얼굴을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느낌과 함께...
벌구라는 별명의 미술 선생님.
많은 선생님들 가운데 별명이 기억나는 단 한 명의 선생님.
‘벌리면 구라’라는 뜻이었지.^^ 말 엄청이도 해댔으니..
그리고 작문 선생님(그 시절엔 ‘작문’ 시간이 있었지). 유일하게
선생님 집에 가본 경험을 만들어준 선생님이시다.
(처녀 선생님이셨으니 엄마네 집이었지만.)
작문 시간에 찍혀(!) 글짓기대회 같은 데 보내지거나,
교지 같은 거 만드느라 친해져서 아마 그랬겠지.
그 밖에 역사, 가정, 물상, 정치경제, 사회윤리, 한문, 음악, 생물...
아, 생물 선생님.. 유일한 총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귀한
총각 선생님으로서 인기 있었지. 강원도에서 전근 오셨는데,
그리 미남은 아니었지만, 우스개와 함께 지루하지 않게 이끈 수업,
약간의 감성적인 면까지(특활로 기타반을 새로 만드시기도 했지),
여자아이들 여럿 껌뻑 가게 만들었지. 껌뻑까진 아니지만
나도 그랬고.. ^^* 학기중에 어머님상인가 치르고 다시 나오셨을 때
유난히 까만 양복과 까만 넥타이.. 매점 앞에서 딱 마주친 순간,
그 까만색이 왜그리 가슴을 애리게 하던지..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리고, 체육..
내가 학교 체육시간을 싫어하는 편이 아닌데,
그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체육 선생님.
체육시간보다는 조회시간이나 무슨 행사 때..
그러니까 규율을 잡는다고 그랬겠지. 참 무섭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다 큰 여학생들 뺨따귀도 때리고(뒷덜미였던가)..
암튼 크게 맞은 기억은 없지만 옆의 다른 아이가 맞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고 외면하고 싶었으니...
아, 선생님들 얘기는 이제 그만.. - -;;
3학년 1반, 우리 반.
급훈, 실력배양. 재미없군.
두 갈래로 단정하게 머리 땋은 여학생들. 물론 흑백사진.
흑백이라 더 그런가, 하얀 교복칼라 때문일까..
하나같이 또릿또릿한 얼굴들. 이름과 얼굴을 번갈아본다.
모두 기억난다. 어떤 느낌 남아 있다. 70명이 넘었지만.
내 얼굴. 역시 뚱하니 약간 화난 듯한 표정이구만. - -;
명함판 사진 사이로 끼리끼리 모여 찍은 사진들 배치되어 있네.
(졸업하기 전 모여 앨범사진 찍으러 어린이대공원 갔지..)
표정들이 훨 자연스럽구만.
2반, 석노수 선생님. 정경을 가르쳤는데,
맨날 '쪽바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지..
(쪽바리, 쪽바리들 하면서 말이야. 일본인을 비하하여..)
아는 얼굴들 더러 있다.
3반, 이봉자 선생님. 가정, 가사 담당.
이 반도 아는 얼굴 꽤 있다. 내가 2년밖에 안 다녔지만,
반이 적다 보니 이과반 빼고는 한 반에 한 스무 명 정도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겠지.
4반, 신혜숙 선생님. 역사 담당. 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치셨지.
내가 역사를 좋아해서 이 선생님을 따랐던 거 같다.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4반은 취업반. 인문계 학교였는데도 3학년 올라갈 때
취업반을 뽑았다. 아니, 만들었다. 대학 가기 힘든, 갈 수 없는
아이들 반을 하나 만들었던 것. 그게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도 아는 얼굴 많이 있구나.
2학년 때 나 바로 다음날 전학온 친구 얼굴도 보인다.
이리에서 왔댔지. 이리 폭발사고 나고 얼마 안 지났을 때라
아이들이 관심을 가졌던 게 생각난다.
5반. 5반은 역시 아는 얼굴이 거의 없구만.
한 반뿐인 이과반. 2학년 때 문과, 이과 갈렸으니 나랑은 같은 반 했을 수가 없다.
3학년 올라갈 때 다시 한번 문과 이과 바꿀 기회를 주었으니
2학년 때 한 반이었던 아이 몇몇만 알겠구나. 그리고 학교에서
눈에 띄던 아이 두 명 정도..
그 뒷장에, 교내활동(특활반)과 교련검열 사진,
축제와 체육대회를 비롯한 갖가지 행사 사진,
그리고 2학년 때 간 경주 수학여행 단체사진 몇 장..
낙서란, 편집후기, 주소록..
그리고 앨범 맨 뒷장에 끼워져 있는
상장(1년 개근상^^)과 졸업증서..
후, 다 훑어 보았네. - -@
30년 세월...
바뀌어진 것은?
송혜주 : 관악구 방배1동 산 61-65 전화 50-4082
주소록에 쓰여진 내용
집은 그대로인데(집은 새로 지었고, 위치가 그대로지),
주소는 바뀌었다. 전화번호(국번)도..
그게 다다. (8.22)
첫댓글 세상에나! 30년 동안 집 주소도 전화번호도 안 바뀐 집이 있네~ 서울에서...
그런가요? 글쿠나.. 저희 집안이 다들 엉덩이가 좀 무겁습네다. ^ ^;; 뭐 우짜겄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