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인은 관후한 인품과 대체(大體)를 볼 줄 아는 형안 필요… 남북한 모두 민족 주체의 힘으로 현재의 위기 극복해야▎도올은 주제 강연을 통해 “남북의 문제는 해석학적 오류구조에서 발생하며, 소통의 거부는 곡해와 왜곡과 저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 사진:임진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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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개하는 강연고는 우리나라 상공업계를 대변하는 가장 유서 깊은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의 연례포럼에서 내가 행한 주제 강연의 내용이다. 2017년 7월 19일, 제주신라호텔에서 개막식이 열렸고,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환영사를 했다. 그리고 당일 미래학자 제롬 글렌(Jerome C. Glenn)이 4차 산업혁명에 관해 특별강연을 했다. 나의 강의는 다음날 오전 9시50분부터 진행되었다.
나는 우리나라 기업인들 앞에서 강의를 해본 적이 없다. 더구나 500여 명의 사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몹시 부담되는 측면이 있었다. 사상가로서 나의 사유는 자유로운 데 반해 아무래도 기업인들은 보수적 사유의 경향성이 있다고 사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한상의가 반년 전에 이 강의를 부탁할 때 강의 원고를 미리 제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는 대통령선거 전이었고, 강의 분위기가 어떻게 잡힐지 예측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목만 정해놓고 닥쳐서 해결하자는 식으로 문제를 접근했다. 나는 고착된 사유를 제일 싫어한다. 강의도 고착된 원고대로 읽는 것을 가장 경멸한다. 순간순간 살아 있는 삶의 느낌이 교감되지 않는 담설은 생명 없는 사판(死板)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의 포럼 게시판에는 나의 강의 개요도 실리지 않았다. 일체의 원고가 없이 즉흥적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2시간 동안 상의 사람들과 나는 짙은 감동의 교감에 몰입해 있었다. 웃음과 박수, 눈물이 계속 터져 나왔다. 사실 나는 전날 호텔에서 꼬박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원고가 없으니까 이 책 저 책을 들척이며 계속 머릿속에서 강의 준비를 했다. 먼동이 틀 무렵 한 30분 눈을 붙인 것이 전부였다.
아래의 원고는 그날의 강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그날 강의 내용의 기억을 더듬으며 여러모로 미비했던 주제를 보완하면서 창조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이 원고의 내용은 상의 포럼 속에서 이뤄진 내용을 포섭하기는 하나 상의의 포럼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내용이 야기하는 모든 논리적 문제에 관해서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필자 도올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말해둔다.
여러분 안녕하세요(우레 같은 박수). 하여튼 세월이 변하긴 좀 변한 것 같군요. 저 같은 자유로운 사상가가 여러분 앞에서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절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이 강의 때문에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요. 어제 상의 박용만 회장님의 개회사를 듣고 너무 충격을, 아니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하게 녹아내렸습니다. 박 회장님께서 개회사를 통해 기업인들의 대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하시고,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공익성이 대치한다는 세간의 낡은 인식 패러다임에서 근원적으로 탈피해 어떻게 기업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획득하고 사회적 지위를 높여 가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 통렬한 반성과 창의적 발상을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 위에서 바꿔야만 할 잘못된 관행들을 솔선해 바로잡아 나가고 국가와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설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세간에 “개같이 벌었으면 그냥 개일 뿐”이라고 일갈하신 박 회장님의 말씀이 회자되고 있는데,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는 정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사회적 대의(大義)를 위해 헌신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돈’이 그냥 종이쪽지에 불과한 것이라면 여러분들이 돈 버느라 고생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돈’은 ‘가치(value)’입니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많은 다양한 다른 가치와 교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돈을 번다는 것은 가치를 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치에 대한 바른 ‘관(觀)’이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돈을 지킬 수도 없고, 돈을 버는 행위 자체도 무의미성으로 함입하고 맙니다. 전통학문을 전공해온 사람으로서 저는 여러분들의 사회적 위상에 관해 우선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창업주가 모인 대한상의▎이날 도올의 강연은 일체의 사전 원고 없이 두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짙은 감동의 교감으로 웃음과 박수, 눈물이 계속 터져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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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사회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농촌은 대개 성씨마을로서 사회적 단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반드시 종갓집이 있었고 종손·종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손은 혈통상으로 결정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손은 종손으로서 지녀야 할 덕성을 어려서부터 익히면서 컸고, ‘맏며느리’는 맏며느리로서 지녀야 할 덕성을 지녀야만 했습니다. 이들의 덕성은 대체로 ‘관후(寬厚)’함이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었습니다. 종손이나 종부가 그러한 덕성을 지니지 못하고 박덕(薄德)할 때에는 대소가에 망조가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마을은 서양의 종교 중심의 마을이나 영주 위계질서의 마을에 비해 대체적으로 후덕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지녔습니다. 하회마을에 그토록 오랫동안 탈춤이 전수된 것도, 탈 속에서나마 인간 평등을 구가하고 서로 간의 카타르시스를 도모하는 관후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사회는 자본주의사회입니다. 이 자본주의사회는 수없는 사회들의 사회라는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공무원이나 특수직업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회사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는 대부분 상공업자들이 운영하는 작은 단위의 사회가 중층적으로 구성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회사의 창업자로서, 경영주로서 여러분들이 거느리는 사회의 종가이며 종손입니다. 이 종손들이 박덕하면 이들이 운영하는 사회 전체가 박덕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종손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관후한 인품이 있어야 하고 대체(大體)를 볼 줄 아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형안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우리 사회의 종손들 앞에서 우리 국가사회의 비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열렬한 박수 소리).
‘촛불혁명’의 힘으로 들어서게 된 문재인 정부 시대에는 ‘경제민주화’라는 테제가 국민들의 열망으로 계속 논의되고 제도 개혁에 대한 요청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상징적으로 ‘전경련의 해체’라는 요구가 절박해졌습니다. 전경련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가장 막강한 파워그룹인 소수 재벌의 이익단체인데, 논리적으로 대기업 집단이 조직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보편주의적 사회규범으로 볼 때 난센스에 속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인단체로서는 대한상공회의소와 같은 유서 깊고(1884년 한성상업회의소로 시작), 또 지역적인 하위 구조를 지닌 조직이 보다 주축이 되어 한국 경제를 바르게 이끌어가야 할 것입니다. 전경련의 멤버는 거의 전부가 2·3세인 데 반해 여러분들의 대부분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창업주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일당백이지요(여기서 매우 크게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러분들의 바른 정신만이 우리 민족의 희망입니다!
어제 저녁 환영만찬 자리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건배 제의를 했고, 또 각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제가 그렇게 기업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줄을 몰랐어요(웃음). 서로 사진 찍자고 달려드는데 정말 놀랐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에 대한 경계심이 다 사라졌어요. 그래서 좀 편하게 강의할까 해요. 어려운 강의하기 전에 노래 하나 부르고 시작할까 하는데 괜찮겠어요?(박수)
오늘 강의에는 6·25 얘기가 많이 나와요. 이 노래는 6·25가 끝나갈 무렵 1953년 봄 대구에서 그 음반이 제작되었습니다. 한국의 시인 100명에게 한국가요 중에서 가장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를 뽑으라 했더니 압도적 다수가 이 노래를 뽑았습니다. 이 노래 3절을 보면 주인공은 열아홉 살 먹은 새댁인 것 같은데 아마도 신혼의 남편이 전쟁에 끌려 나갔겠죠? 전쟁이 끝나가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낭군을 기다리는 심정, 그 알뜰한 맹세에 봄날은 간다!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우리 민족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켜 표현했습니다. 아시죠?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나는 제1절만 무반주로 구성지게 불렀다. 반응은 압도적이었다.)
연분홍 치미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박수와 침묵이 흐른 후에 나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저는 이런 노래의 멜로디, 그리고 그 가사에 깃든 감성, 정취, 반복되는 추억…. 이 이상의 ‘철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래는 단순히 대중가요라는 장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정신과 감정, 그러니까 우리 민족 전체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어요. 제가 이마누엘 칸트를 강의한들 이런 느낌이 전달될 수 있겠어요? 이러한 사소한 듯이 보이는 감성의 체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철학을 말하고, 우리의 진실한 종교를 말해야 해요.
자아! 주제로 진입하기 전에 상의에서 등록자 여러분들에게 선물한 <도올의 로마서 강해>라는 책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어요.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가장 권위 있는 잡지,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간하는 ‘기독교사상’(나의 학창 시절에도 ‘사상계’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잡지로 1957년부터 꿋꿋하게 명맥을 유지했다. 현재 통권 703호) 7월호에서 <강해>에 관한 훌륭한 서평을 싣고 표지에 소개했습니다. 도올은 철학자이기 전에 마땅히 신학자 반열의 사상가로서 대접해야 한다, 도올의 교차 고전적 해석방법은 한국의 토착신학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도올의 애정 어린 충고에 감사하며 이 책이 한국교계의 새로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고 매우 정중한 멘트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로마서 강해는 정통성을 강조하는 한국의 신학계에서도 창조적인 견해로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바울은 어떻게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게 되었나?▎2. 개회사를 하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박 회장은 개회사에서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감과 자기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3. 4차 산업혁명을 강론한 미래학자 제롬 글렌.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경쟁적 지능이 아닌 시너지 지능을 탐험하라”고 주문했다. / 사진:임진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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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로마서라는 문헌은 신약성서에 6번째로 편집되어 있는(4복음서, 사도행전 후에) 바울의 편지(Epistle)입니다. 바울이라는 인물을 아시죠? 바울이 살아 있는 예수를 만난 적이 있나요? (많은 사람이 “없어요” 하고 대답). 그렇죠! 바울과 예수는 나이도 비슷하고 서로 멀지 않은 지역에서 살았지만, 예수 생전에 이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어요. 바울은 예수가 죽은 후에, 예수가 부활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임이 드러났다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어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역사적 인물의 이름)가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아·구세주의 뜻. 그리스도는 기능적 규정이다)임을 믿는 사람들(크리스티아노스. 행 11:26)이라는 뜻이지요. 바울은 역사적 예수가 그리스도일 수 없다고 굳건히 믿었지요. 어떻게 그리스도(=메시아, 히브리어)가 로마형틀(십자가)에서 맥없이 죽을 수 있느냐? 물론 바울은 십자가에서 육신으로써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어요. 그만큼 바울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람이었죠. 헬라어·라틴어·아람어·히브리어에 능통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으니까요.
그토록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바울이 어떻게 자기 친구뻘이었던(비슷한 나이에 같은 유대인)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게 되었나? 이것을 영어로는 ‘컨버전(Conversion)’이라고 하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 스토리는 사도행전 9:1~22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핍박하던 크리스천의 믿음을 부정하다가 긍정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를 ‘컨버전’, 즉 ‘역전’이라 표기합니다만 우리말 번역으로는 ‘회심’ ‘개종’이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도무지 적당하지를 않아요. 나는 ‘역전’이라는 방향성의 단어보다는 ‘대오(大悟)’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과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것을 확신하는 수백·수천 명의 동포가 역사적으로 바울 시대에 엄존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들의 믿음이 틀렸다고 박해하다가 오히려 이들의 믿음이 옳다고 돌아서게 되는 계기가 바울의 생애 어느 시점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인 것 같습니다. 바울은 실상 역사적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바울의 서한 속에는 인간 예수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 있질 않습니다. 오직 바울의 관심은 십자가와 부활, 즉 죽음과 삶, 이 두 가지 테마에만 집중해 있었습니다.
로마서라는 서한의 특징은 고린도서나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와 같은 여타 편지가, 자기가 만든 교회 내부에서 신앙·교리·의례·사도성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를 교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쓴 것임에 반해 자기가 가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로마의 크리스천을 향해 쓴 편지라는 것입니다. 당대 로마에 교회(에클레시아)가 과연 있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모종의 기독인 집회가 있었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미래선교전략을 위해 로마의 지적이고 부유한 기독인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자기를 소개하고, 자기가 전파하는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설파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따라서 여타 편지는 매우 구체적인 교회 내부의 현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에 반해, 로마서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고 개략적입니다. 개인적 주제가 아닌, 기독교 원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를 통해 어떻게 기독교라는 것이 형성될 수 있었는지 그 원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요.
“율법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포럼이 끝나고 만찬장에서 만난 세 사람. 좌로부터 박용만 회장, 도올 김용옥, 제롬 글렌. / 사진:임진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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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론의 핵심은 제1장부터 제8장까지에 압축되어 들어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난해하고 바울의 논리의 핵을 이루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 롬 1:17부터 나타남)’라는 개념이지요. 이것은 하나님이 의롭다는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인간의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에 의롭다든가 의롭지 못하다든가 하는 인간적 가치판단의 대상은 아니지요. 여기 ‘의’(디카이오쉬네)라는 말은 원래 법정용어인데, ‘무죄판결’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의(義)가 하나님의 속성임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롭게 하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판의 법정에서 인간이 무죄라는 것을 판결하신다, 인간은 무죄가 된다는 매우 복합적인 뜻입니다.
인간이 “무죄다” “의롭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무죄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율법에 저촉됨이 없다”는 뜻입니다.
과연 범법을 안 하면 무죄가 되는 것일까요? 바울은 이에 아주 추상같이 호통을 치지요. “율법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아무리 인간이 법률을 잘 지켜도 법률에서 해방될 수가 없죠.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은 딱지는 떼지 않겠지만 법규로부터 자유로워지지는 않습니다. 항상 그 법규에 얽매여 움직이는 것이지요. 구약(토라: 모세5경)은 율법의 세계였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삶이었고 문화였고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율법을 잘 지키면 지킬수록 인간은 더욱 더 율법에 얽매이고 죄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도다!”(롬 7:9~10)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무죄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로지 ‘믿음’(피스티스·pistis)에 의거할 뿐입니다.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됨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그것은 예수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 되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그것은 바로 예수의 ‘십자가사건’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사건’이란 무엇인가요? 바로 예수가 삶 속에서 걸어간 수난(Passion)의 역정을 나의 삶 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라는 혹형을 받고 죽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 많은 우리 인간을 대신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다”는 것은 곧 그 ‘믿음’을 통해 죄 사함을 얻는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을 때만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롬 6:10)라 했으니 “단번에 죽는다”는 말은 “철저히 죽는다”는 말이요, “죄의 영역에서 철저히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멸집(滅執)’과 같은 뜻이며, ‘무아(無我·아집이 사라진 상태에 이른다)’와도 상통하는 말이지요. 인간이 부활한다는 것은 썩은 육체가 재조합되어 다시 디엔에이가 작동된다는 뜻이 아니고 영적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바울이 말하는 종말이 아닌 희망▎도올은 강연에서 “남·북한의 역사를 통관(通觀)할 때만이 우리의 정당한 현대사가 복원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사진:임진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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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오직 십자가사건으로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철저히 죽을 때만이 살 수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명장 이순신도 “우리는 진정으로 죽을 때만이 살 수 있는 것이다(必死則生)”고 말씀하지 않았나요? 한국의 기독교는 십자가의 수난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부활의 달콤함만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삼중오중 축복만 외치는 것이지요. 부활은 종말론적 사건이며 아직 실현되지 않은 테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오직 리얼한 것은 ‘십자가’ 뿐입니다. 십자가는 율법의 패러다임, 죄의 패러다임, 사망의 패러다임에서 근원적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제2의 아담, 새로운 아담, 새로운 존재(New Being)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동학이 말하는 바 “다시 개벽”의 새로운 역사패러다임을 장악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낡은 주체가 사라지고 새로운 주체가 태어나며, 낡은 역사가 사라지고 새로운 역사가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제가 지금 부흥목사로서 외치고 있나요? 여러분들 실존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대한상의의 사람들이야말로 낡은 역사의 패러다임을 멸절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개벽해야만 하는 일꾼이라는 것을 제가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전쟁의 패러다임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로운 평화의 패러다임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촛불혁명’은 바로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최순실·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의 적폐, 그 죽음의 그림자들을 모두 십자가에 못 박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살아 숨 쉬는 영원한 생명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민중 개개인의 자각의 에너지가 타오른 횃불이었습니다.
그것은 문재인의 당선으로 끝나버린 사건이 아니라 진실로 지금부터 타올라야만 하는 시작의 사건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종말’은 피니스(finis:종료)가 아닌 텔로스(telos:목적)이며, 끝이 아닌 시작이며, 파멸이 아닌 희망입니다.
하나님이란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희랍어로는 ‘테오스(theos)’라 하고, 영어로는 ‘갓(God)’이라 하고, 라틴어로는 ‘데우스(deus)’라고 하는데 이 말이 과연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대신 ‘엑스’라 말해도 별 차이가 없잖아요? 모두 다 부호일 뿐 의미가 없잖아요? 20세기 최고의 조직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1886~1965)는 구원해야 할 것은 인간이 아니라 기독교 개념들이라고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어요.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얼티메이트 콘선(Ultimate Concern)’이라는 말로 대치했어요. ‘궁극적 관심’이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무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자기 삶 속에 궁극적 관심이 없으면 그때 비로소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이므로 ‘존재자(a being)’일 수 없어요. 그것은 존재·비존재의 대상이 아니에요.
자아! 여러분들의 궁극적 관심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아하~ 물론 상의의 여러분들은 돈을 많이 버셔야죠. 남의 돈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타의 재화가 같이 증식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셔야죠. 그래야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훌륭한 나라가 되잖아요. 그러나 돈이 궁극적 관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저보다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죠. 돈은 우리 삶의 수단이 될지언정 목적이 될 수는 없지요. 돈이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 될 때, 돈이 맘몬(mammon)이 될 때, 그것은 우상(idol)이 되지요. 그것은 궁극적 관심일 수가 없어요. 궁극적 관심은 항상 그 너머에 있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내 자식을 잘 교육시켜 고위공직자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 관심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네요. 엄마가 어린 자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토록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집념을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힘들죠. 그러나 장성한 자식이 과연 그러한 부모의 기대나 집념이나 헌신에 꼭 부응하는 것은 아니죠. 일류대학을 나와 변호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어 봐야 부모님한테 잘하지도 않고, 또 사회적으로도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사는 것 같고, 더구나 효(孝)라는 개념조차도 없는 서구사회의 엉터리 교육이론을 신식 교육이론으로 받아들인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그런 괴리는 심하게 나타나죠. 자식도 궁극적 관심이 아니라 우상이 되고만 것이죠. 종교개혁시대의 칼뱅(Jean Calvin·1509~1564)이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우상제조공장이다”고 했다는데 정곡을 찌른 말이지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앎은 저열하다”▎1972년 ‘7·4남북 공동성명’ 합의서에 서명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 지도부장의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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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그럼 과연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무엇일까요? 사실 궁극적 관심이란 우리의 존재의 깊이를 나타내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그래서 남은 시간에 ‘궁극적 관심’ 대신 여러분의 ‘긴박한 관심(Imminent Concern)’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지금 경제활동에 종사하시는 여러분이나, 나같이 보이지 않는 문화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긴박하게 느껴지는 공통된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야~ 한반도에 전쟁이 날까?” “북한 핵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야~ 김정은 그 친구 도대체 어떤 인물이야?” “트럼프가 어떻게 나올까?” 이런 유의 질문은 누구에게든지 실존적 관심을 증폭시킵니다. 남북 문제는 여러분들의 경제활동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무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적합한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럴듯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신문 사설도 끊임없는 중언부언이요, 독사(doxa:편견, 개인적 소견·진리를 의미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에 반대되는 말)의 나열일 뿐이지요.
왜 그럴까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북한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를 근본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 그 이야기는 전적으로 들을 가치가 없다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의 경험이 잘 말해줄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북한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떠드는 남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미 국무성의 이야기를 들을 까닭이 없지요.
왜 북한을 모르나요? 우리가 경직된 이념의 틀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여러분들, 자문자답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프랑스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북한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파리에 입성하는 드골 장군의 인상만큼이라도 평양에 입성하는 김일성 장군에 대해 그 자세한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북한 정치사의 내면의 흐름을 내 자식의 성장 과정만큼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냐? 이 말이지요!
이것은 여러분들뿐만이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북한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북한의 실상을 리얼하고 생생하게 전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말라빠진 뼈다귀 같은 죽은 정보를 우리의 삶으로부터 소외시켜 전합니다. 모든 언어에 빈정거리는 톤이 배어 있지요. 그것은 애초부터 긍정의 대상이 아니라 부정의 대상이지요. 우리 역사의 가치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려는 시각을 지닌 일제 식민지 관변사학자들의 역사기술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말하면서도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기술이 그 기초를 떠나지 않아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앎(Knowledge)’은 그것보다도 훨씬 저열하지요. 이것이 바로 반공이데올로기의 적폐입니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 자체가 법에 저촉되기 십상이었으니까요. 결국 이러한 문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이해(Understanding)’를 상실했습니다. 이해는 오직 쌍방의 감정이입(Empathy)에서만 성립 가능한 인간 이성의 작동체계입니다. 이해의 부족은 소통을 거부하게 되고 곡해와 왜곡과 저주를 낳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다 이러한 해석학적 오류 구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유효한 민족통일의 3대 기본 원칙▎1992년 2월 17일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원식 총리 등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와 3부 요인, 이북 5도민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각각 서명, 발효절차를 끝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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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한 얘기를 하겠다니까 다들 긴장하시는 것 같네요. 문제가 돼도 제가 다 혼자 뒤집어쓸 테니 여러분들은 편하게 긴장을 풀고 들으세요. (웃음. 청중들의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숨소리 하나 없이 집중해왔는데 좀 긴장을 풀었다. 여기저기 기침 소리가 들렸다.)
북한의 역사는 남한의 역사를 빼놓고 성립할 수가 없어요. 남한의 역사도 알고 보면 다 북한의 역사와 엮여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고립된 역사기술이 실제로 불가능합니다. 남북한의 역사를 통관(通觀)할 때만이 우리의 정당한 현대사가 복원될 수 있습니다. 너무 방대한 주제라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생각해보세요! 우리나라의 남북의 역사가 반드시 단절된 것만은 아닙니다.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을 때에도 북한은 박정희의 형님 박상희(1946년 10월 대구민중항쟁의 리더. 의식 있는 사회주의자)의 절친한 친구인 황태성(黃泰成·1906~1963, 연희전문학교 상과 졸업. 조선건국동맹 전라남북도 책임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외무성·상업성·무역성 부상을 지냄)을 내려 보냈고(서울교도소에서 총살됨), 군사 쿠데타 초기, 미 대사관의 문정관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1922~1988.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의 저자)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거사로 미 국무성에 보고했습니다. 그 맥락이 어찌 되었건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민족통일의 3대 기본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만든 이 성명은 언제 다시 들어도 기분이 좋지요.
생각해 보세요! 4·19혁명이 나기 전해인 1959년 12월 16일 재일동포 975명을 태운 귀국선(북송선)이 5만여 명의 환영인파 속에 청진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북한으로 간 재일동포 숫자는 자그마치 4만9036명에 이릅니다. 그리고 다음해 1961년에 줄기는 했지만 2만2801명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자유주의 자본주의국가에서 사회주의국가로 대규모 민족이동이 이뤄진 인류 역사상 유일한 사례에 속합니다. 일본에서 억압받고 인간 대접 못 받던 사람들이 북한 사회에서 해방감을 얻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았다는 얘기지요. 이들이 과연 계속 그러한 만족감을 유지했느냐 하는 것은 별도의 역사적 연변(演變)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당시의 북한 사회는 우리 동포들을 유혹할 만한 매력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대규모의 자발적 이민이 어떻게 사기성 연출로 가능하겠습니까?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高容姬·1950년생)는 본래 제주도 사람인데(제주 고 씨) 오사카에 살다가 북송선을 탄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여러분! 아웅산 폭파사건을 기억하시죠? 그토록 많은 남한의 고위관료가 대규모(각료·수행원 17명 사망. 1983년 10월 9일)로 일시에 목숨을 잃은 불행한 사건이죠. KAL기 폭파사건, 문세광 사건 등 남북 간에 일어난 것으로 보도된 많은 사건이 있지만 이 아웅산묘역 테러처럼 남한의 대통령의 목숨을 직접 노린 북조선의 인민무력부 테러행위로 명백하게 드러난 사건은 없었습니다. 전두환 개인으로 볼 때에도 묘역에 몇 분만 일찍 도착했더라도 그는 목숨을 잃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직후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허락 없이는 일체의 군사행동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제를 부탁한 것이죠. 희생자 장례식을 치르고 난 며칠 후 특별담화에서도 “이것이 우리의 평화의지와 동족애가 인내할 수 있는 최후의 인내”라고 말했습니다. 무력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죠. 그리고 그 다음해 남쪽에 190여 명이 생명을 잃고 손실액 1300억원이 넘는 수재가 발생하게 되는데 북한이 쌀 5만 석과 시멘트·옷감·의약품 등의 지원을 제안하자 1년 전 테러사건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덥석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적십자회담 본회담, 이산가족 고향 방문, 예술공연단의 교환 방문을 실현시켰고 남북 간 최초의 경제회담도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남북정상회담까지 제의합니다.
자아! 노태우 정부 때는 어떠했나요? 노태우는 ‘북방정책’으로 유명합니다.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 1988년 2월 25일입니다. 그해 9월 17일 역사적인 88올림픽이 열립니다. 노태우 정부는 그 성공적 개최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올림픽 개최 전에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인 7·7선언을 발표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동반자관계로 발전시킬 것을 약속하며 남과 북이 사회·경제·문화 부문에서 자유로운 상호교류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서울올림픽 다음해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미·소 냉전의 분위기가 녹아 내리고 동구권이 해체되며 소비에트연합은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줄 알았던 노태우 정권은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1990년 9월 30일 한·소 국교를 수립하고(한·중 수교보다도 2년이나 빠르다), 다음해인 91년 9월 17일에는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는 쾌거를 올립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13일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정원식 국무총리와 연형묵 정무원 총리 사이에서 체결합니다. 저는 이 합의서의 내용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이 없었더라면?▎1994년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앞줄 가운데 김일성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왼쪽이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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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에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했고, 제2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아니 한다고 했습니다.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아니 하며(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 한다(제4조), 남과 북은 국제 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여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제6조)고 했습니다. 민족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하며(제17조)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항로를 개설한다(제19조)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너무도 많이 들어 있어요.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세계 인식의 지도가 이렇게 넓게 펼쳐졌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또 현대사의 복원이 그나마 이렇게 이뤄지는 행운이 불가능했습니다. 우리의 독립운동사와 관련된 자료들이 실제적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에 대부분 기록·복원되었고, 그 유적지가 탐방되었는데 시대적으로 모든 자료가 훼멸되어 가는 시기였기에 너무도 소중한 마지막 작업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노태우 북방정책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길 줄 알아야 합니다.
김영삼은 비교적 남북문제에 관해 뜨거운 가슴이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하여튼 노태우 북방정책을 단절시키지는 않았습니다. 1994년 6월 15일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의 중재로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6월 28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이 이뤄졌고, 김영삼은 7월 25~27일 평양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이 민족의 불우한 운명일까? 김일성은 정상회담을 17일 남겨두고 그만 7월 8일 서세하고 맙니다. 심장마비로 급사했다고 하는데, 혹설에 의하면 병구에 너무 회담 준비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여튼 북한 사람들의 실망과 슬픔을 너무도 컸습니다. 19일 장례식 날, 북한 동포들은 너무도 구슬피 하늘이 떠나갈 듯 통곡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조문도 하지 않았고 타인의 조문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서 너무도 졸렬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처사였습니다.
자아! 그 뒤로 김대중의 햇볕정책,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 그리고 노무현의 10·4 남북정상선언 등등이 이어진 것은 제가 부언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다 할 수도 없겠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해방 후 남한의 정국을 전관(全觀)해 볼 때 모든 지도자들이 북한과의 평화로운 교섭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러한 남한의 시도에 대해 북한이 성실하게 응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역사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이질적인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명박이라는 해괴한 정치인의 의미 없이 파괴적인 정책 방향이죠. 그토록 ‘의미 없는’ 4대강 사업의 낭비를 강행하는 그의 멘탈리티 속에서는 금강산 관광을 전면 중단하는 것쯤은 별 부담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대통령 당선된 지 얼마 안 돼 북한의 고지식하고 미숙한 병사의 실수로 인해 우리나라 아주머니 관광객 한 분이 돌아가신 사건을 빌미로 금강산 관광사업 전체를 백지화한다는 것은 국가정책 면에서 볼 때 너무도 터무니없는 오판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관광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1001마리 소몰이 방북을 계기로 햇볕정책과 함께 시작된, 남북한 인민의 훈훈한 가슴속에 어렵게 쌓아 올린 소통과 이해의 공든 탑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역사의 역행, 평화를 저주의 절벽으로 떨어뜨리는 우행의 극치지요. 그리고 다음다음해 정확한 이유도 규명되지 않은 천안함 침몰사건(2010년 3월 26일)을 빌미로 5·24 대북제재조치(남북교역 중단, 국민의 방북 불허, 대북투자 금지, 대북지원사업 보류)를 발표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만약’입니다! ‘만약’ 천안함의 침몰이 북한의 소행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북한 사람들의 눈에 금강산 관광 중단이나 5·24 조치가 얼마나 황당하게 보이겠습니까? 더구나 이러한 이명박의 기조를 ‘의미 없이’ 계승한 박근혜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광명성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대응조치로 개성공단 폐쇄라는 어처구니없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2016년 2월 11일). 최후에 꺼내도 될, 아니 꺼내서는 안 되는 카드를 사태의 진전에 앞서 먼저 꺼내버린 것이죠.
불통의 시대! 과연 이러한 불통이 이명박이나 박근혜의 구상대로 북한을 압박하는 아주 말끔한 카드였을까요? 지금 금강산이나 개성공단만 살아 있더라도 우리가 북한과 남북을 둘러싼 세계 정세를 상대하기가 매우 용이할 것입니다. 북한만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통의 시대에는 남한도 똑같이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됩니다. 이명박―박근혜 9년의 불통의 시대에 온갖 범죄와 부패와 사기와 무책임, 김기춘·최순실·우병우와 같은 이름으로 대변되는 전횡과 도덕적 무감, 무능 속에 세월호의 생명들이 죽어갔고 그들의 애타는 가슴과 더불어 국민의 양심도 함께 침몰해 갔습니다. 이것이 자유와 풍요를 가장한 남한 사회의 시공 속에서 진행된 고난의 행군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북한을 컨트롤하는 능력은 미국이 장악▎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상대로 부품 등을 납품해온 중소업체인 태진티제이 고재권(54) 대표. 개성공단 폐쇄로 사업체를 잃은 고씨가 오리백숙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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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이러한 고난의 행군이 촛불의 행군으로 변했고, 남한 민중들은 마침내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제가 사상가의 양심과 양식을 걸고 정확히 판단하건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성립한 그 어느 정권보다도 우리 사회 공동선(Common Good)을 향한 헌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재인이라는 인간은 사리를 버리고 대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으며, 정책 구상에 있어서도 남북문제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또 남북문제는 외세에 의한 해결보다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해 주체적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문제는 그 이니셔티브를 남한 정부가 쥐고 나가야 한다는, 여태까지 어느 지도자도 생각하지 못했던 과감한 발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남북문제의 이니셔티브는 남한이 장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휴전협정’의 당사자에서 대한민국이 빠져 있다는 매우 복잡한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만 그 주제는 지금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이니셔티브는 어디까지나 북한에 있으며,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봅시다. 20세기 세계질서의 맹주는 뭐니뭐니 해도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군사력을 합쳐도 미국 한 나라의 군사력에 못 미칩니다. 다시 말해 미국은 그러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큰 형님(Big Brother)으로 세계질서의 중심축(Central Axis) 역할을 해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참전은 세계질서의 대의를 위한 도덕적 역할이 있었습니다. 해방군으로서 세계 인민의 존경을 받았고,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위대한 무용담 영화가 많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그 도덕적 평가가 매우 애매합니다. 그런데 월남전에 오면 미국은 전혀 도덕성이 없습니다.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전쟁에 너무 막대한 달러를 퍼부었습니다. 그래서 닉슨 독트린이 나오고 중공과 수교를 하고,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면서 냉전의 시대를 종료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20세기에 누렸던 군사력의 중심축과 그에 동반되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력, 그리고 세계를 지배하는 데 필요한 도덕성까지 다 21세기에 지속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소련도 사라지고 중국도 개혁·개방이 된 마당에 어떻게 그 군사력과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실상 미국으로서는 북한이라는 맹랑한 날쌘돌이는 매우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들 이렇게 호들갑입니까? 북한이 대륙간탄도탄을 쏘아 올렸다고요? 그게 뭐가 그렇게 대수롭습니까? 북한은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핵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경제적 능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핵무기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핵무기처럼 전체적으로 볼 때 상대방에게 위세를 과시하고 주목을 끌 수 있으면서도 돈이 적게 드는 집약적인 성격의 무기는 없습니다. 북한은 고립과 위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다고요?
자아! 한번 생각해보세요. 오늘의 북한의 안간힘은 모두 남한과 일본과 미국이 합심해 그러한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향으로 휘몰아온 것입니다. 1995년 경수로사업만 서방세계가 확고하게 밀어줬어도 북한은 오늘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트집을 잡기 전에 확고하게 밀어주고, 신념을 주고, 그 결과물에 따라 북한 인민의 삶을 본질적으로 개선하는 아량과 여유가 우리에게 부족했습니다.
북한 문제는 내일이라도 당장 해결이 가능합니다. 미국이 주도적으로 북한 당국과 대화하고, 체제를 인정하며, 모든 경제적 봉쇄를 풀고 충분히 원조해주며, 대사를 교환하고, 북한의 우수한 인력 3000명만 당장 미국 대학에 유학시켜보세요. 북한 문제는 없었던 문제처럼 다 사그라지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호전적 자세를 유도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가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은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평화를 원하는 나라가 아니라 전쟁패러다임을 지속시킬 수 있는 대적적 존재를 요구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왜 부시가 “악의 축”을 운운하고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를 운운하면서 북한을 개무시했겠습니까? 오늘의 북한의 모습을 원했던 것이지요. 제가 너무 정직하게 얘기한다고 불안해하지 마세요. 이것은 사상가의 통찰인 동시에 사계의 상식이니까요.
남북이 진리의 길을 예시해 미국이 따라오게 해야▎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백악관에서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박수를 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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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상 평화적 해결을 원치 않는 미국으로 하여금 평화적 해결로 나아가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니셔티브라는 것은 성명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호응을 가능하게 하는 오묘한 분위기를 끊임없이 창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재인은 트럼프를 너무 일찍 만날 수밖에 없었고, 또 충분한 합의나 성과를 얻어내지도 못했습니다.
미국이 도덕적인 길을 선택하지 아니 하고 전쟁의 패러다임을 고집할 경우 우리에게 남은 가장 바람직한 카드는 남과 북이 한마음이 되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남북문제의 진정한 당사자임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고, 서로를 도와가면서 진리의 길을 예시함으로써 미국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6자회담이 뭔 필요가 있습니까? 남북의 당사자회담 합의도 성립할 수 없는 마당에 6자회담이 뭔 의미가 있겠냐고요? 공론의 쳇바퀴일 뿐이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는 북한에 너무도 깊은 불신의 벽을 쌓아왔습니다.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없이 훌륭한 공동성명들을 팽개쳐 버렸고, 그토록 엄청난 투자를 한 금강산지구나 개성특구를 초개 같이 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가 베푸는 입장이니까 임의로 그만 베풀어도 별 상관없다, 대강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퍼 주는 것보다는 우리가 ‘퍼 받는’ 것이 더 많았다는 저의 주장도 나중에 한 번 잘 생각해 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자아!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 북한이 가장 바람직한 교섭의 양심적 상대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남한의 지도자가 들어섰는데 그가 아무리 호의적인 호소를 해도 듣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해답은 온갖 매스컴의 낭설이 난무할 것입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단상만을 소개함으로써 본 강연을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북한의 역사와 그것이 지향하는 이념체계, 그 주체철학에 관한 방대한 담론이 저에게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은 다른 기회를 빌려야 할 것 같군요. 안타깝습니다.
김정은(金正恩)은 김정일의 3남으로 재일동포 출신 고용희와의 사이에서 1984년 1월 8일 북녘 땅에서 태어났습니다(출생지는 평양, 원산, 평북 창성군의 세 가지 설이 있다). 그 어머니 고용희는 정은이가 20세 때 사거했으며 현재 평양혁명열사릉 부근에 묻혀 있습니다. 장남 김정남(1971년생·2017년 2월 13일 사망)은 정은과는 배가 다릅니다. 김정남의 엄마는 성혜림(成惠琳)이라는 여인인데, 2002년 모스크바에서 객사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일의 정부인 노릇을 한 것은 실제로 고용희였습니다. 고용희는 자식을 셋 낳았는데, 첫아들이 김정철(金正哲·1980년생)이고 둘째 아들이 정은이고, 그 밑으로 딸 김여정(金與正·1987년생)을 하나 더 낳았습니다. 고용희는 자기 세 자식이 모두 외국에서 교육받기를 바랐는데, 그 이유는 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식들이 국내에서는 특별하게 격리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평범하게 키우기 위해 외국을 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김정은을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봐야▎이날 포럼에 참석해 도올과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왼쪽). 원 지사는 대학시절부터 도올의 저술을 애독했다. / 사진:임진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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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스위스의 수도 베른으로 유학을 갔는데, 김정철이 1993년에 제일 먼저 갔고, 김정은은 1996년 여름부터 2001년 초까지 만 4년 이상을 베른에서 유학했습니다. 그리고 여동생 여정이도 같은 시기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들은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이들은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그냥 공립학교를 다녔습니다. 베른은 독일어권이기 때문에 교육은 독일어로 받았습니다. 이들은 스위스의 북한대사관원의 자식들로 등록되어 있었고 김정철은 박철, 김정은은 박은, 그들의 부친은 박용수로 학적부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디가드와 같은 경호원도 없이 자유롭게 조용히 살았습니다. 베른은 세계에서 삶의 질이 높기로 유명한 10대 도시로 꼽히며 고시가지는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정은이는 이곳에서 11세부터 16세까지 살았습니다. 친엄마는 병치레를 하느라 유학길에 동반하지 못했고, 그들을 보살핀 것은 이모 고용숙(高容淑)과 이모부 이강(李剛)이었습니다(이들은 1998년에 미국으로 망명).
정은이가 다닌 공립중학교는 집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정은이는 그 길을 내내 혼자서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아무런 방해나 위험을 감지하지 않고 평온하게 아름다운 소년 시절을 보냈던 것이죠. 정은이는 독일어와 영어가 다 서툴렀습니다. 그런데 반에 포르투갈에서 이 베른의 독일어권으로 이사를 온 이민자 학생이 있었는데, 성격도 얌전하고 독일어를 정은이처럼 못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 포르투갈 이민자 학생과 절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이름을 ‘죠아오 미카에로’라고 했어요. 미카에로와 정은이는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같이 자전거를 타곤 했는데, 정은이는 미카에로 엄마가 만들어주는 경양식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같이 숙제도 하고 텔레비전 게임도 하고 항상 붙어 다녔어요. 그런데 이 두 학생 사이에는 우정에 금이 간 적이 없었어요. 내내 짝짜꿍이었죠.
정은이는 농구광이었는데 하루는 NBA 게임을 보러 파리에 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미카에로를 데리고 둘이 비행기로 갔는데 그것도 게임만 보고 당일 무사히 귀가했다고 해요. 정은이는 농구를 보고 즐긴 것뿐 아니라 매우 적극적인 플레이어였다고 해요. 학교친구들 말에 따르면 정은이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운동신경이 발달했고 대단히 건강했다고 합니다. 게임을 자기가 조직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훌륭한 플레이어였답니다. 지금 정은이가 매우 뚱뚱하게 보이지만 그것은 연출된 체형이지요. 어릴 적엔 매우 슬림했습니다.
정은이가 다닌 학교 교장인 피터 부리 교장의 증언에 따르면 정은이는 지극히 평범한, 눈에 띄지 않는 정상적인 학생이었다고 해요. 부리 교장의 말을 들어보죠. “북조선대사관 직원의 자식이라고만 들었어요. 여기서는 그런 상태가 이상하게 여겨질 아무런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정은이는 학생으로서 신기하게 여겨질 아무런 이유가 없었어요. 문제를 한 번도 일으킨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으니까요.”
정은이는 수학을 잘했고, 사회 과목 점수는 낮았고,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농구를 좋아해 한국에서 주문해온 만화 ‘슬램덩크’의 애독자였다 하고, 제임스 본드 007시리즈 영화, 성룡의 영화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2000년 가을 학기부터 정은이가 귀국하기까지 마지막 학교생활을 담당했던 지도교사 모네 쿤은 정은에 대한 추억을 매우 아름답게 회상하고 있어요.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담임교사로서 별로 손쓸 일이 없는 매우 훌륭한 아이였습니다.” 부리 교장도 이렇게 말하죠. “정은이는 아~ 정말 무엇이든지 열심히 달려드는 노력가였어요. 지는 것을 싫어했어요. 모든 분야에 있어 자기가 노력해서 좀 더 좋은 점수를 따고 싶어 하는 그런 적극적 성격의 아이였지요.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뻐했지요.”
하여튼 김정은이 베른에 남겨놓은 추억은 부정적인 것이 없어요. 우리나라 고관대작이나 부유한 집안의 소수 자녀들의 행태와 오히려 대비될지도 모르겠어요. 4년을 평범하고 조용하게 모범생으로 주위 사람들과 융화하면서 지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김정은이 괴물 같다든가 미치광이 같다든가 오판투성이의 망나니라는 식의 험담은 일체 접어두고 냉철하게 문제를 분석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김정은은 어떤 인물일까요?
나는 정치적인 인물을 평가할 때 최소한 하기의 네 가지 조건의 시각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째가 도덕성, 그 둘째가 권한성, 그 셋째가 능력성, 그 넷째가 조직성입니다.
첫째의 도덕성이란, 과연 A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도덕적 정당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지요. 문재인은 촛불혁명 과정 중 민주적 선거방식을 통해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기에 그 자리에 앉을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3·15 부정선거를 거쳐 당선된 이승만·이기붕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될 수 있는 도덕성이 전무했습니다. 그래서 4·19혁명에 의해 무효화되었습니다.
자아! 과연 김정은이 북한의 국가원수가 될 수 있는 도덕성이 있는 인물일까요? 물론 여러분들의 상식체계에 있어서는 ‘백두산 혈통’이라는 말이 전혀 의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그 도덕성을 인정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헌법과 당-규약의 질서 내에서, 그리고 북한 인민의 의식구조 내에서 김정은의 도덕성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김일성은 당·군·국가의 질서 내에서 투쟁과 숙청으로 그 도덕성을 확립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그 도덕성을 승계한다고 했을 때 그 사실은 만만하게 인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김정일이 국가수반이 되는 과정은 자그마치 20년이 걸렸습니다.
김정은은 과연 북한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가?▎과연 이런 만남이 가능할까? 지난 8월 7일 홍콩 번화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닮은 사람들(왼쪽부터)이 모여 포즈를 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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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공식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조직·선전담당비서가 된 것은 1973년 9월이었습니다(31세). 그리고 그가 실질적 최고 권한의 포스트인 국방위원장이 된 것은 1993년 4월이었습니다(51세). 김정일은 그 20년 기간 동안에 진정한 통치의 실력을 과시해 그 도덕성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병으로 쓰러진 후에나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김정일이 위원장으로 있는 당 중앙군사위의 부위원장이 된 것은 2010년 9월(26세)이었습니다. 다음해 김정일이 사거하고 신설한 당제1서기의 포스트에 앉았으니까 그는 불과 1~2년 안에 원수의 자리에 오른 것이죠. 그의 도덕성은 최단기간에 혈통으로 물려받은 도덕성이라는 취약성이 있으나, 하여튼 제1의 주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둘째는 권한성의 문제인데, 그가 앉은 권력의 자리가 과연 어떠한 권한을 가지는 자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도 김정은이 장악한 포스트의 명과 실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최고의 권한이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습니다. 김정은은 현재 조선노동당위원장,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라는 군사칭호를 지니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명목상으로 당·군·국가를 통괄하는 진정한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셋째, 그 명목에 합당하는 인간의 능력에 관한 문제인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입증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나는 그 인간이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그의 성장 과정의 편린을 통해 말했을 뿐입니다.
자아, 넷째 문제는 그러한 포스트를 운영해 나갈 수 있는 휴먼 네트워크가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 그 인맥이 김정은 자신의 것일 수 없으며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지적될 수 있습니다. 최근 장성택이 처형되고 김정남이 독살된 사건은 김정은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인맥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성택이 입이 가벼웠을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여유 있는 로맨티스트였고 실력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김정남도 할 말은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친중파’입니다. 이것은 김정은 인맥이 보다 경직된 주체사상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다 흘러가버렸습니다. 이제부터 뭔가 북한에 대하여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중단하지 없을 수 없겠군요.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 문재인이 김정일을 상대하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수월하게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기본적으로 아직까지는 ‘가게’에 불과합니다. 아시잖아요?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작품,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삶을 다룬 ‘가게무샤(影武者)’ (1980)라는 영화!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외모가 같다는 것, 그의 부인 이설주도 할머니 김정숙(김일성의 최초의 부인)과 모습이 흡사하다는 것, 이런 연출이 본시 극장국가인 북한을 움직여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연출에 충실한 배우, 김정은은 매우 정상적인, 말 잘 듣는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것이죠. 이에 비하면 자신의 실력에 의해 지도자동지가 된 김정일은 남한의 ‘촛불’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직 자기판단이 없습니다. 김정은을 움직여가는 엑스그룹(노동당 조직지도부일까?)과 그는 항시 토론을 해야 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역사의 위기상황에서 그 엑스그룹에 자기 개인 실존의 카리스마를 과시할 수 있는 그런 역량이 없습니다. 집단체계는 항상 가장 문제가 없는 방향으로 소극적으로 움직입니다. 미사일 전략이 수립되었으면 그것을 그냥 밀어붙이고 마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나라는 변혁의 호기를 맞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변혁을 가로지르는 수없는 내외의 방벽에 부딪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 방벽을 뚫는 어떠한 묘안을 제시해도 현대사의 방향은 항상 엉뚱한 함수들을 도입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타당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하늘의 나라는 아직 이 땅에 없는 평화의 질서▎제주 민속촌 민가 앞에 앉아 있는 도올. 제주도 포럼 여행을 통해 도올이 파악한 제주는 ‘슬픈 아일랜드’와도 같이 핍박받았던 사람들의 섬이었다. / 사진:임진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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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우리가 북한의 체제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남한의 민주정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통일보다 평화우선’의 화해전략은 너무도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러한 제안의 본의와 진의를 왜곡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주정치는 선거라고 하는 시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평화전략을 내세워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여론과 인기의 저하가 일어나고,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 모든 것이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만다는 시한성의 의미를 북한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현 정권의 필연적 3대 과제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그 첫째는 남북 화해를 이룩해 국제정치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고, 그 둘째는 재벌·검찰 등의 적폐를 청산해 국내의 경제를 안정시키는 일이고, 그 셋째는 이러한 개혁의 지속을 위해 인물다운 인물들에게 정권을 넘겨줘 개혁정치를 계속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목표가 모두 한국 사회의 상층부에서는 아름답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주제들입니다.
자아! 저는 여기까지 ‘긴박한 관심’을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마디!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무엇일까요?
나는 본시 본 강의에서 북한의 주체철학을 강론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의 흐름상 기회가 유실되고 말았어요. 저는 북한의 주체철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맑스레닌주의를 본질적으로 뛰어넘는 새로운 독창적인 인간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현재 공산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북한은 주체주의국가라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대로 인간이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규정성은 크게 잘못된 사상일 수가 없어요. 인간이 주체가 되어 주체적으로 환경과 세계를 변혁해 나간다는 사상의 형성 과정은 그 나름대로 역사적 필연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북한의 동포와 지도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당신들의 주체사상대로 주체적으로 문제를 풀어갑시다! 우리의 문제를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전 민족 주체의 힘으로 해결해 나갑시다! 제발 주체적으로 남한의 주체에게 가슴을 여십시오. 저의 이 제안은 시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주체를 계속 고립시켜 나간다면, 당신들이 생각하는 하나의 방편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은 결국 주체를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의 나라’입니다. 하늘의 나라는 아직 이 땅에 없는 이상의 질서입니다. 이상이란 이데아가 아니고 허공의 관념이 아닙니다. ‘이상의 질서’는 곧 ‘평화의 질서’입니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전쟁의 패러다임을 평화의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역사이며 인간이 실현해야만 할 인간다운 역사입니다. 장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가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 도올 김용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