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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초등학교33회
 
 
 
카페 게시글
사랑방[☞◐◑☜] 스크랩 좋은글 희망천사3
jjabnom 추천 0 조회 33 06.08.08 07:1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안녕하세요? 부자메니저 희망천사입니다.(3)


3일차 부자강의입니다.

어제 오늘 스스로 부자가 되겠다고 많이 외치셨죠?

오늘부터는 어제 말씀드린 대로 지금의 당신보다 훨씬 더 어려운 형편과 상황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례를 충분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성공자들이 처음부터 부자였고, 성공한 사람들이었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주영 - 시골 소학교를 나와 쌀가게 점원으로 출발, 결과는 아시는 대로..


김종훈 - 고등학교를 학비가 없어 자퇴서를 써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현재 미국 포브스에 선정된 세계 500대 부자 중 한사람.


윤생진 - 고등학교를 40명중 30등으로 졸업하고 금호타이어에 고졸 생산직사원으로 입사하여, 국내 유일의 30대 상장기업의 상무이사로 승진, 조선대 교수로도 활동.


백성학 - 모자가게 점원으로 출발 연매출 2억 2천만 불(2001년 기준)에 이르는 세계최고, 최대의 모자 브랜드 ‘영안모자’의 창립자가 되었음.


메리 케이 - 실직당한 45세의 화장품 외판사원이었으나 현재 세계 33개국 지점에서 연매출 30억불의 수입을 올리는 ‘메리 케이 코스매틱’의 창업주.


비틀스 - 삼류클럽을 전전하는 삼류 보컬밴드로 출발했지만, 결국 당신이 아는 비틀스의 전설을 만듬.


크리스찬 디오르 - 연필 쥐는 법조차 모르는 엉터리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20세기 유럽 패션계를 대표하는 불멸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강영중 (주)대교 회장 - 동네 과외방 교사였다.


김광석 참존 사장 - 부도로 경찰을 피해 전국을 떠돌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


김옥란 유학원 원장 - 한때 그녀는 파출부였고 청소부였으며 식당종업원이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 원양어선 선원이었다.


김흥국 (주)하림 창업자 -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했다.


김철호 기아자동차 창업자 - 막노동꾼이었다.


나성애 혜진대학 교수 - 15년간 호텔 객실 청소부였다.


박병엽 팬택 사장 - 3류 지방대 졸업.


박상돈 OGN 사장 (대표 브랜드 마루) - 초등학교 5학년 중퇴 후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보조로 시작.


신격호 롯데그룹회장 - 우유 배달부였다.


성호정 송학식품 사장 (국내 1위의 국수업체 사장) - 24살까지 뻥튀기 장사였다.


세스코 - 자본금 300만원, 직원 1명으로 시작했다.


이랜드 - 2평짜리 옷가게에서 시작했다.


이장우 한국 3M 사장 - 수세미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 시작.


조운호 웅진식품 사장 - 상고출신에 야간대학 졸업.


정문식 이레전자 사장 - 고교시절 성적이 61명중 57등이었다.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4년 중퇴. 제약회사 판매사원으로 시작.


최진순 (주)청풍 창업주 - 반신불수의 몸으로 공기청정기 개발시작.


허태학 에버랜드 겸 신라호텔 사장 - 지방대 농대 출신.


허진규 일진그룹(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생산업체) 회장  - 자기 집 창고에서 시작했다.


김미애 2002년 사법시험 합격자 - 26살까지 야간 여상졸업이 최종학력.


김영태 2001년 서울법대합격자 - 고 1때 반 꼴찌였다.


박희경 사법시험 합격자 - 부천여상을 졸업하고 신발공장공원, 자동차 대리점 판매원을 하며 사법시험 준비함.


신상희 중앙대 문과대 수석 졸업자 - 백혈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며 공부했다.


이상재 중대음대 수석졸업자 - 시각장애인이었다.


최민석 서울대 법대 정시합격자 - 두 눈을 전혀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수능 준비했다.


김동환 길라씨앤아이(연매출 100억대) 사장 - 소아마비에 고졸 중퇴 학력 소유자.


박경근 소년 한국일보, 스포츠신문 연재 만화가 - 손가락이 하나도 없다. 두 살 때 화재로 열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박지성 - 축구선수로서 가장 치명적이라는 평발 소유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24살에 직원 2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손위옹 - 50세에 공부를 시작, 서울대 법대에 합격함.


유상옥 코리아나 화장품 사장 - 50세에 창업했다.


음용기 이노티브 사장 - 50세에 미국유학, 회갑 때 벤처기업 창업.


정행화 - 50세에 에어로빅 시작, 뉴욕 플러싱 YMCA 에어로빅 강사가 되었고, 58세에 뉴욕 한의대에 입학하              여 미국 한의사 국가고시 패스.


권원강 교촌치킨 사장 - 처음 치킨집을 시작하여 수 개월간 하루 이삼천 원의 수입을 올렸다.


김장훈 - 92년도 대학로 소극장에서 첫 콘서트에 다섯 명의 관객이 들었는데 그 중 3명이 초대 관객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 신인시절, 특종 TV연예 ‘신인무대’에 출연, 사상 최악의 심사평을 받았다.


조용모 제일화재 부장(전북권 최고 세일즈맨) - 입사시험만 108번을 보았고 전부 퇴짜.


송승환 - 난타를 들고 6개국을 돌며 홍보활동을 벌일 때, 외국인들로부터 ‘한국에서도 연극이란 걸 하느냐?’는 조롱을 들었다.



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성공사례는 이 세상의 수많은 성공자들의 극히 일부분의 사례입니다.

제가 어제까지 말씀드렸듯이 이 성공자들 중 자신은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이 성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할 수 있다! 는 확신과 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앞으로 좀 더 시간을 할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당신은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룬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의 마음으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이 메일은 절대 직장에서 상사분이나 동료의 눈치 보면서 읽지 마시고,

아무런 방해받지 않는 당신만의 장소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하여 이 글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코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부자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너무 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매일 조금씩 말씀드리는 것도 지금까지 가져온 빨리빨리 습관을 고치기 위해섭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쌀을 씻어서 물을 붓고 불에 올린 후 뜸이 들어야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보내 드리는 매일 매일의 글은 절대로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하루 5분정도의 시간으로 이 글을 읽으며 차근차근 쌓아 나간다고 생각하세요.

처음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당신이 하는 일과 함께 제가 약 10일후에 제안하는 방법으로 당신은

빠르면 삼년, 길면 오년 내에 당신은 틀림없이 부자가 됩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의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말씀드리죠.

결코 지루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차분한 시간에 흥미진진한 소설책 읽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부자 되기 준비운동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완벽한 육체를 불러 낸 마법의 힘, 꿈.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오스트리아의 한 학교에는 ‘말라깽이’라고 놀림을 받는

빈약한 체구들의 소년들이 각 반마다 여러 명씩 있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홀쭉이’ ‘말라깽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소년들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심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람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싶다’

놀림을 받을 때마다, 말라깽이 소년들의 가슴 속에서 외치는 무의식 세계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년들은 이 목소리를 부정하거나 그냥 흘려버렸습니다.

극히 소수의 학생들만이 이 목소리에 응답해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생들마저도 점차 부정적이 되어 갔습니다.

체육관을 찾는 학생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단 한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너무 힘들다. 꼭 이래야만 하는 걸까? 다른 친구들도 다 그만 뒀잖아. 여기서 그만 둔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 그냥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될까? 헤라클레스같은 근육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체육관의 헬쓰기구에서 풍겨 나오는 이 쇠비릿내! 이젠 정말 싫다. 싫어!”

의식세계의 자아는 갖가지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소년에게 그만 운동을 포기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습니다.

“너 요즘도 매일 체육관에 다닌다며?  꿈 깨라. 너는 체질적으로 보디빌더가 될 수 없어.”

“가죽에 바람 집어넣는다고 그게 근육이 되냐? 안쓰럽다, 안쓰러워. 너무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는 말도 모르니? 이러다 너 진짜 잘못되면 심장마비로 죽게 될지도 몰라! 적당한 선에서 그만 둬라.”

주위 사람들 역시 하나같이 소년에게 운동을 그만둘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무의식 세계가 보여주는 ‘꿈’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자신의 몸이 태산처럼 커지는 꿈에 취할 대로 취한 소년은, 전문 보디빌더들도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느끼고 휴식을 취하게 되는, 체력극한점을 도달하고도 매일 서너 시간씩 운동을 더 했습니다.

한계를 초월한 소년의 노력은 무의식 세계가 그려내는 완벽한 신체를 점점 현실 속으로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소년은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의 우승자가 되고, 세계 육체미 대회를 10여 차례나 석권하는 꿈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입니다.


한국사회 성공 제 1조건

대한민국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 치고 꿈을 갖지 않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의 성공은 전부 꿈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물려받은 재산도, 연줄도, 학벌도 아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전부 비웃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라며 혀를 차는 그런 비현실적인 꿈, 그것 하나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던 이십대 청년 김철호는 어느 날 자전거 가게를 열고 자전거 안장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자전거 안장을 만들면서 그가 품었던 꿈은 “나는 언젠가 자동차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드는 사람이 된다.” 는 것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기가 막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포 주인 김철호는 자신의 말대로 기아자동차 창업자가 되었습니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1가 25번지에서 톱밥난로 하나 갖다놓고 사업을 시작했던 삼십대 청년 신용호의 꿈은 한국에서 제일 큰 보험회사와 서점을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업계획서를 100명의 저명인사가 검토했는데, 99명이 ‘한국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하다’라며 반대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99명의 부정적인 의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밀고 나갔는데, 그가 세운 회사의 이름이 ‘교보’였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은 다들 ‘꿈’이라는 무형의 자산에서 시작했지, 어느 누구도 ‘돈’이라는 유형의 자산 위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한상복 씨의 저서 <한국의 부자들>이란 책을 보면, 한국 부자들의 제 1 성공요인은 다름 아닌 꿈이라고 써 있습니다.

한국에서 맨손으로 시작해서 30억 원대의 부자가 된 한국사람 33명을 조사해서 <부자들의 돈 버는 습관>이라는 책을 펴낸 김명규 씨 역시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부자들은, 놀라운 인내와 끈기로 자신의 꿈을 끝까지 붙든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성공 제 1조건은 돈이 아니라 꿈인 것입니다.


네 안에 기적의 씨앗을 뿌려라

또 한편으로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전부 마음속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습니다.

그들은 월급 32만원 받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부자들이 부러워? 해봐! 너라고 200억을 벌지 못하란 법 없잖아?’하는 마음의 속삭임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사람들(던필드 정재승 회장)이었고, 자본금 4백만 원에 지하 셋방 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세계 최고의 꿈을 꾸지 않는 자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간판을 내다 거는 사람들(KJ프리텍 홍준기 사장)이었습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마음속의 속삭임이 있을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 부자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들이 해낸 걸 나라고 왜 못해? 해봐! 너도 할 수 있어. 저렇게 될 수 있어, 아니 어쩌면 저들보다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어" 하고 외치는 또 다른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겁니다.

바로 그 목소리를 신뢰하십시오. 바로 당신 안의 또 다른 ‘나’가 가르쳐 주는 당신의 참모습입니다.

당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너도 할 수 있어! 하는 마음속의 속삭임은 절대로 들려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그것은 단 한 장면도 당신의 마음속에서 그려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진정 할 수 있기에, 당신이 분명 이룰 수 있기에 꿈의 목소리는 들려오고, 꿈의 그림은 그려지는 것입니다.

지금 통장엔 단돈 10만 원밖에 없는데 자꾸만 100억 원이 그려진다면 그 꿈의 영상을 당신의 인생목표로 정하고 당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십시오.

100억 원이 아니라 1,000억 원을 벌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단칸 셋방에 사는데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면, 언젠가는 그것을 갖게 될 거라고 완벽하게 믿으세요.

분명히 그런 집에서 살게 됩니다.

한국의 성공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이는 꿈일지라도 꿈을 마음속에 품으면, 바로 그때부터 기적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고.


벼랑 끝에서 꿈을 가진 한 사람

1920년대 초반은 미국 경제가 팽창가도를 달리던 시기였습니다.

주가는 연일 폭등을 거듭했고, 사업은 벌이기만 하면 쑥쑥 커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축복 받은 경제 호황기에 슬픈 얼굴로 생활하는 한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커피 분쇄기와 정육점용 저울을 주로 판매하는 ‘컴퓨터 태뷸레이팅 레코드사’의 사장 토머스 왓슨이었습니다.

왓슨이 그늘진 얼굴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른 회사들은 들어오는 돈을 주체 못해 야단인데, 자기 회사는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왓슨의 회사는 얼마 전 거의 부도 직전까지 갔었고, 그 이후로는 막대한 자금을 차입해서 겨우 버티어 오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회사의 미래 또한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직원들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매장에 앉아 담배나 피워대면서 하루를 소일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나마 들어오는 매출액은 죄다 이자로 빠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사람을 정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함이 마땅한 그 때, 왓슨은 비현실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초라한 패배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니 뭔가 거대한 ‘꿈’을 세우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 회사를 수년 내에 미국 최고의 회사로 만들고, 수십 년 내에 국제적인 규모의 회사로 키워내겠다.’

이것이 바로 무능한 직원들을 데리고 도산의 위기를 간신히 극복해 나가고 있던 당시의 그가 세운 꿈이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한시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회사 이름까지, ‘국제’가 들어간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머신’으로 바꾸고, ‘꿈’을 향해 달려간 그를 후세 사람들은 세계적인 컴퓨터 기업 ‘IBM'의 창업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 꿈을 가져라

인생의 벼랑 끝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꿈’입니다.

주위 사람 모두가 미쳤다고 욕하고, 화내고, 손가락질하게 만들 정도로 크고, 놀랍고, 대담하고, 위대한 ‘꿈’, 오직 그것 하나뿐입니다.

‘꿈’을 갖는 것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고통스런 때일수록, 우리는 ‘꿈’을 호흡하고, ‘꿈’을 먹고 마시며, ‘꿈’과 함께 잠들고 ‘꿈’과 함께 깨어나야 합니다.

언제나 ‘꿈’을 말하고, 어디에서든지 ‘꿈’으로 인해 불타오르고, 누구든 ‘꿈’으로 제압하고, 무엇이든지 ‘꿈’으로 점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인생에 빛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사업에 실패하고 쥐들이 들끓는 빈민가로 내몰렸을 때 ‘디즈니랜드’의 꿈을 가졌습니다.

이 ‘꿈’이 있었기에 그는 남들이 먹다 버린 빵을 주워 먹는 생활을 하면서도 매일 팔이 아플 때까지 만화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라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생계를 위해 술집에서 웨이터 생활을 할 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이 ‘꿈’이 있었기에 소로스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 찌꺼기로 식사를 대신하면서, 돈을 모아 ‘런던 경제 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100만 명에 달하는 뷰티 컨설턴트가 활동하는 ‘메리 케이 코스 매틱사’의 창설자 매리 케이는 실직하고, 남편은 사망하고, 병까지 걸린 45세의 나이에 ‘여성이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이 ‘꿈’이 있었기에 그녀는 변호사와 회계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돈 5,000달러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세기의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오르는 ‘당신은 디자이너 일에 맞는 사람이 아닙니다’는 소리와 함께 수십 곳의 회사로부터 취직 거절을 받은 상황에서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이 ‘꿈’이 있었기에 그는 끝까지 도전할 수 있었고 마침내 자그마한 의상실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억만장자 보도 섀퍼는 신용카드를 남발하다 파산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상태에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워 지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이 ‘꿈’이 있었기에 그는 인생을 포기하고 부랑자로 떠도는 대신 열정적으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성공자들 역시 벼랑 끝에서 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치병인 근육무력증에 걸려 5년간이나 침대생활을 할 때, 한국에서 가장 바르고 정직한 기업을 세우겠다는 꿈을 세웠습니다. 이랜드의 박성수 사장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한 뒤 해결사에게 언제 죽을지 몰라 가슴에 유서를 품고 다닐 때, 전국을 제패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사업체를 세우겠다는 꿈을 세웠습니다. 헤리코리아의 김철윤 사장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한강 둔치에서 3년씩 노숙생활을 할 때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에센시아 신충식 대표입니다.

다른 많은 성공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눈물과 한숨, 절망과 좌절만 계속되는 어려운 한때를 만납니다.

그 때 어떤 사람들은 눈물과 함께 주저앉고 한숨과 함께 쓰러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꿈과 함께 다시 일어나고, 희망과 더불어 앞으로 나갑니다.

한국의 성공자들은 인생의 암흑기에 꿈이라는 등불을 켰던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조금 당신의 가슴에 불이 붙여집니까?

나도 부자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이십니까?

아직 불이 안 붙은 분을 위해서 내일도 성공자들의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 이어지는 사례들을 좀 더 살펴보고 당신 스스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굳은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 자신감이 없이는 제가 어떤 방법을 말씀드려도 당신은 자신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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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11.08 10:31

    첫댓글 잡놈 조만간에 메트라이프 최대주주 되는거 아니녀...

  • 작성자 05.11.15 10:54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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