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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헷갈리는 그 아이덴티티가 있어요. 이제 예술 작용이 앞에 누워 있습니다 자가 안 해서 죄송합니다, 가감해서 말씀 나눌께요, 어저께 인제 금남로에서 희한한 사건이 생겨요 이제 분노 가운데 하루를 보냈어요.
거룩한 땅에서 이럴 수 있을까? 얼마나 그 능욕스러운가 한 것에 대해서 고통 받았어요.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왜 이런 일들이 자꾸 벌어지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가? 우리 집사람 성격이 급해가지고 저것들을 그냥 벼락으로 하지 않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그런 모습들을 봤어요. 도청 앞 그 금남로는 제가 그 오일팔 때 주로 있었던 곳이고 시민군으로 제가 참여하면서 거기만 어쨌든 지켜야 한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그 흉칙한 놈들이 이렇게 있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기독교의 이름 그래도 있잖아 그래서.저는 예수쟁이고 기독교 목사쟎아요. 그런데 그런 모습들을 보면 그 이름을 바꾸고 싶어요. 차라리 그 개들이 기독교라고 하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교라 하든지. 이런 식으로 바꿔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고 교회도 교회라는 말도 이제 쓰기가 싫어. 에클레시아라고 하든지 하여튼 참 이렇게 막 오염돼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독교도 원래 그런 게 아닐 텐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 진달래교회 1년 전에 왔는데 여기 있잖아요. 그 기독교에 대한 그 정리를 좀 하는 입장에서 기독교를 이제 지금 이게 썩어가고 망해가고 있는 오래된 종교가 삼양하게 내일 더 보는 것이 좋겠네요. 예 아니면 그 환불을 도려내고 음 상처를 씻고 해가지고 되살려야 되는가 그만한 명령은 없어요.
그렇지만 그 두 어 어떤 선택지에서 저는 그냥 그 참여하도록 하자 이렇게 생각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 생각을 해서 그쳐가고 있는데 담임 목사가 됐어요. 30년 만에 저는 처음으로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왜 이 마음이 들게 하셨다가 저 마음에 들게 하셨다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어떻게든 한 번 정도는 또 상처를 치료하고 환부를 도려내라 하는 그런 명령으로 틀리기도 해요.
마지막 몸부림으로 그런 발악을 하는 입장으로 이제 기독교의 그 새로운 물결을 일으켜야 된다라고 하면서 인제 몇 가지 지금 작업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리고 요즘 전 아까 말씀들 하셨지만 동학이 약간 유행하는 경향이 있어서 야. 이건 정말 우리 국민이 어떻게 동학을 다시 찾지, 이런 생각을 해요. 수은 선생이 내면의 음성을 들고 들을 때 그 영성이 이렇게 기독교의 영성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는데 이제 한번 운동으로 실패하고 잠잠했지 않습니까?
근데 다시 그 기운들이 싹튼다는 것은 이제 하느님이 이 나라를 점점 보살피시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뭐가 새로운 세상이 영성에 의해서 죽인다면 기독교보다는 동학이나 이런 쪽으로 해서 생길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는 굉장히 그 뭐 이렇게 훌륭한 인격자로 생각하지만 그 기독교라는 곳에서는 종교화된 이런 것에는 상당한 어떤 비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교회도 교회인가요? 교회라고 봐야 되겠죠? 그래서 안 나가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이제 일반 교회를 졸업하고 유치원을 땐 분들이 이제 우리나라에 많다고요? 그런 그 지금 한국기독교는 뭐 다른 나라 기독교도 마찬가지지만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예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너무 유치하기 때문에 도저히 그 앞으로의 그 세계 역사에서 이게 오래 살아날 리가 없어요. 이건 소멸되어 가는 종교예요.
이렇게 이렇게 하나 어 어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그럼 어떻게 할 거냐 하는 물음에, 여기에 동학이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이 다만 수은의 그 신관과 베단타의 그 어떤 인도의 그 신관이 약간 다른데 이런 것은 우리가 조장해 나갈 숙제가 우리 영성을 하는 자들에게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굉장히 영성이 역사화되어. 가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나타났다는 것이 대단한 거죠. 태평천국은 이 동학에 비하면 상당히 유치합니다.
우리가 지금 1년 이상 이렇게 마가 복음을 쭉 해오고 있어요. 오늘 이 대목이.걸렸는데 어 유난히 요즘 시대에 맞는 말씀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좀 하면서. 이게 묵시적이죠, 미래를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성서의 묵시적 표현들을 개인적으로는 안 좋아합니다. 그런 걸로 해서 많은 혹세무민의 그 역사를 그리고 요한 계시록 무슨 뭐 어떤 성서의 몇 가지 그런 묵시적인 것들 미래를 마치 내다보면서 이야기하는 것 이런 것들은 상서해서 싹 다 빠져 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굳이 이 말씀이 정말로 예수의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13장에 정말 예수의 말씀이라면 어 좀 더 우리가 깊이 성찰해 보면서 깊은 어떤 그 신비주의적 내지는 뭐 이런 지식들이 필요한 내용이죠, 자기 멋대로 해서 해야 될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이 기독교가 이렇게 계속해서 이야기했듯이 미혹하게 할 것이다, 내 이름으로 어 이게 너무 이제 많이 좀 보이고요 사이비나 유사종교부터 시작해서 뭐 **훈에 이르기까지 목불인견의 모습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것이 이제 슬픈 거죠? 그러니까 그냥 예수도 교회도 다 그냥 버려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그 사람들한테는 들게 한다 아닙니다, 여기에게 저는 슬픔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예수님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죠, 이런 일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대에 이런 해악한 모습이 있어야 되니까 그다음에 그걸 끝까지 견뎌야 되는 거죠. 하느님의 그 묵시적 말씀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완전 듣기 싫습니다. 이 말씀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서 항상 반기를 들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죠 이걸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러나 나는 항상 반대할 준비를 합니다. 어 수행자라는 게 진리를 찾아가는 자들 있잖아요.
예수는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자유케 하는 진리를 우리가 알아가고 얻어 가는 과정에서 그 어떤 권위로 찍어누르는게
동학에 그런 정신이 있어요. 이게 말하자면 찍어두지 않아요? 진리를 가지고 우리 기독교 하면은 유난히 그런 게 많아 가지고 어 이용을 했어요.
저는 이제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한 십 년 빈민 선교를 한 다음에 한 30년 이상 산속에 있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향해서 가는 하느님의 자녀들 예수의 제자들은 그 어떤 어 정형화된 쪽이나 어떤 신학에 복종하지 않는다. 그게 제대로 된 예수의 정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타마 싯달타도 마지막에 이렇게 손바닥을 펴잖아요? 나는 너희들에게 숨기는 게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네 자신을 등불삼아라 그렇게 해서 성숙한. 어 신앙인, 성숙한 수행자 어떤 성숙하게 진리에 접근하는 자의 태도를 끊임없이 강조해요.예수도 마찬가지 사실은 우리의 그 오래묵은 노예 근성이 어 권위를 받아들이게 하고 그 권위 안에서 살려고 하고, 그 권위 안에서 자신의 세속적 이득을 취할려고 하고 그 권위를 내세워서 민중들을 압살하고 권위 안에서 어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했던 거지 아 이런 모든 것들이. 무슨 중세의 마녀사냥 이단종교 이런 것으로 발전되었고 그 영향을 백프로 받은 불행한 나라가 힌국이다.
그렇게 생각을 이제는 우리 가나안 교인들처럼 그러한 교회를 거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눈치 볼 게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달래교회도 참 모순이 있는 것 우리 진달래교회도 미래 지향적인 예수쟁이가 되기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신앙을 새롭게 해야 될 것인가에 그런 고민들을 치열하게 해 나가야 된다고 이런 말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할 것이고 오직 진리만이 우리는 새롭게 할 수 있다.
저는 이제 좀 너무 많이 가버렸어요. 이를테면 제가 이제 가지고 있는 어떤 상식들을 교우들에게 이해하는 거는 좀 미안하지. 나 이렇게 뭐 한 5 단 정도 돼요.
그러니까 나는 이런 말씀을 듣고도 그러니까 화내지 않는 진달래 교우들이 너무 감사하고 그럼 이게 선수다라고 생각은 합니다, 이런 게 있습니다.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지금 현실이 면 백 프로 나의 그 영혼의 상태에 반 그죠 그러면 나는 지금 이놈 시키는 내가 좋아하는 적이 없어 근데 깨달음의 궁극의 영역에 가면 이놈이 나예요. 그러면 그 뇌 안에서 염원의 세척 작업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놈이나 그놈은 계속해서 내 앞에 나타나 어, 이것은 우리 집사람한테도 이해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가나안교회 손원영 목사님과 형제들
동학 수련모임에서 함께 자리한
귀한 예배였으며 모두가 함께한
기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