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쓰려고 하는 매우 끔찍스럽기는하나 지극히 솔직한 이야기에 대하여 나는
독자들이 믿어 주기를 원하지도 않거니와 굳이 믿어 주기를 간청하지도 않는다. 바로
나의 정신작용조차도 사실임을 부정하려 하는 이러한 사건을 딴 사람에게 믿어 달라고
간청한다면 나야말로 미치광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지도 않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지만 내일 나는 죽어야 될 몸
이다. 그러기에 오늘 중으로 내 영혼의 짐을 벗어버리고 싶다.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한 가정 속에서 발생한 일련의 단순한 사건을 솔직하고 간결하게,
구구한 설명을 빼고 세상 사람들 앞에 공개하고 싶을 뿐이다. 그 사건들은 결과적으로
는 나를 공포에 떨게 하였고, 고민을 안겨 주었으며 파멸시키고야 말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건을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 사건이야말로 나에게는 공포 이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준 것이 없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사건은 공포스럽다
기 보다는 오히려 기괴한 인상만을 줄 것이다.
어쩌면 머지 않은 장래에 나의 환상을
보잘것없는 평범한 사실로 간주해 버리고 말 그런 머리를 가진 주인공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냉정하며 논리적이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서, 내가 공포에 떨며 엮어나가는 이 사건의 전후 주위 배경을 살펴보고는 이것
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과 관계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말지도 모른다.
소년시절보터 나는 성품이 매우 온순하고 인정이 많기로 유명했었다. 나의 성품은
얼마나 온순했던지 내 친구들의 놀림감이 될 정도였다. 나는 유별나게도 짐승을 좋아
했기 때문에 양친은 나에게 수많은 온갖 애완동물들을 사주셨다. 그러한 동물들과 함
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포옹해 주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었다.
그러한 성품은 내가 커서도 계속 갖게 되어 어른이 된 뒤에도 나
의 제일 큰 쾌락의 요소가 되었다. 충실하고 영리한 개에게 애착을 가진 일이 있는 사
람들에게는 그러한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이 과연 어떤 것인가,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러한 짐승들의 이기적이 아닌 희생적 애정
이야말로, 단지 사람이라는 한낱 이름뿐인 존재들의 하찮은 우정이라든지 백지장 같은
신의를 자주 겪어본 사람에겐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일찍 결혼했다. 그리고 아내에게서 나와 비슷한 성격을 발견하고는 행복하게
여겼다. 내가 동물들을 아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기회 있을 적마다 귀여운 동
물들을 사들였다. 우리는 새를 비롯하여 금붕어, 멋진 개, 토끼, 작은 원숭이, 그리고
한 마리의 고양이를 길렀다.
이 고양이야말로 유난히 크고 아름다왔으며 온몸이 새까만 것이었는데 사람 뺨치게
영리하였다. 그 영리한 점에 대하여 얘기라도 하게 되면, 마음속으로는 적지 않이 미
신에 빠져 있는 아내는 으레 검정 고양이는 모두 둔갑을 한 마녀라는 옛 전설을 들추
어냈다.
그 점을 아내가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에 와서 얼핏
생각이 났기 때문에 별다른 뜻 없이 이야기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플루토 - 이것이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 는 내가 아끼는 고양이 였고 또한 놀이 친구였다. 이 고양이
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내가 도맡았는데, 이놈은 내가 가는 곳이면 집안에서는 어디든
지 따라다녔다. 외출을 할 때도 뒤따라오기 때문에 쫓아 버리기에 진땀을 빼야만 했
다. 이런 상태로 우리들의 우정은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으나, 그 사이에 내 기질
과 성격은 음주벽이라고 하는 악마 때문에 (입에 담기에 수치스러운 일이긴 하지만)매
우 급격하게 악화되어 버렸다.
날이 갈수록 나의 성격은 침울해졌고, 발끈하는 성미가
남의 감정은 염두에도 두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입에 올리지 못
할 욕설을 퍼부었다. 끝내 나는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아껴 주
던 동물들에게도 그런 나의 기질의 변화가 미치지 않을 리 없었다. 나는 동물들을 돌
봐 주기는커녕 학대를 하게 되었다. 토끼나 원숭이, 혹은 개가 무심히 또는 귀여움을
받으려고 내게 가까이 오기만 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호되게 학대를 했다.
그러나
플루토에게만은 아직 학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은 점차 더심해 갔다. 도대체 알
코올 중독에 비길 만한 병이 또 어디 있으랴! 마침내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공연히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앙탈을 부리는 플루토, 이 플루토까지도 나의 고약한 성미
의 희생물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날 밤, 내가 잘 다니는 술집에서 잔뜩 취해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까 고양이가
어쩐지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양이를 홱 붙들었다. 그러자 고양
이는 나의 난폭한 행동에 놀라서 앞발로 내 손에 상처를 냈다. 순간 악마와도 같은 분
노가 나를 휩쌌다. 나는 제 정신을 잃었다.
나의 원래의 영혼은 단숨에 내 몸으로부터
빠져나가고 그 대신 술에 젖은 잔인한 악의가 내 육신의 구석구석까지 찡하니 번졌다.
나는 조끼 주머니 에서 주머니칼을 꺼내어 편 다음 가엾은 동물의 모가지를 움켜잡고,
한쪽눈알을 눈자위로부터 잔인하게 도려냈다! 이런 저주스러운 흉측한 행동을 글로 엮
자니 내 얼굴은 달아오르고 내 몸은 화끈거리며 몸서리마저 쳐진다.
이튿날 아침,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한 밤을 자고 전날 밤의 술기운이 싹 가셨
을 때,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하여 나는 공포와 후회가 반반 섞인 감정을 갖게 되었
다. 그러나 그것은 고작 막연하고 미약한 감정에 지나지 않았을 뿐 내 영혼을 일깨우
지는 못했다. 나는 또 다시 폭음을 하게 되었고 머지 않아 그러한 못된 짓에 대한 기
억은 깡그리 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 고양이의 상처는 차차 아물게 되었다. 눈알을 도려냈던 눈자위는 정
말 끔찍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 고양이는 조금도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고양이는 전처럼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으례 그러리라고 여긴
것이지만 고양이는 내가 가까이 다가서기만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아나 버렸다.
전에는 나를 그렇게도 잘 따르던 짐승이 이렇게 분명히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보
자. 처음에는 아직 옛날의 우정이 남아 있는 탓으로 슬퍼졌다. 그러나 그런한 생각은
당장 괘씸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저지르고 말 것 같은 비뚤어진 생각이 솟아올랐다.
이러한 비뚤어진 생각에 대해서는 별로 학문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비뚤어진 생각이란 인간 본성의 원시적인 충동의 하나인 것이며 인간의
성품을 좌우하는 불가분의 기본적 성능, 또는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임을 나는 굳게 믿
는다. 단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우리들은 그러한 금지된
비열한 짓 또는 어리석은 짓을 수없이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올바른 판단
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오직 법률이 어떠하다는 것을 아는 까닭만으
로,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범하려는 것은 아닐까?
거듭 말하거니와 이런 비뚤어진
생각은 끝내 나에게 마지막 파멸을 가져오고야 말았다. 아무 죄도 없는 짐승에게 나는
한층 더 심한 학대를 계속했고, 결국에는 극단에 이르기까지 계속해 나가게 된 것은,
인간 본래의 영혼에 거역하고 싶은, 본래의 천성을 짓밟고싶은, 다만 악만을 위해서
악을 저지르고 싶은 이 불가해한 욕구 때문이었다. 어느날 아침, 나는 잔인하게도 고
양이의 목에다 올가미를 걸어 나뭇가지에다 그것을 매달았다.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후회를 하면서 매달았던 것이다.
이 고양이가 나를 굉장히 따랐
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화낼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
기 때문에, 그뿐 아니라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죄 만일 그런 일이 있을수만 있다
면 가장 자비롭고 가장 두려우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심조차 미칠 수 없는 그런 곳으
로 나의 불멸의 영혼을 쫓아낼 만큼, 영혼을 위험한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무서운 죄
를 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고양이를 매단 것이다.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날 밤, 나는 "불이야!" 하는 고함소리에 잠에서 깼다. 내
침대의 커어튼이 타오르고 있었다. 집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 화재로부터
아내와 하인과 나, 세 사람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모든 것이 타버렸다. 나의 모든
재산이 사라져 버렸으므로 나는 절망에 빠졌다.
나는 이 재앙과 그 못된 행동과의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를 찾으려 할 만큼 나약한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일련의 사실을 소상하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무엇 하나 설명을 불충분하게 남겨 두고 싶은 마음은 없다. 불난
이튿날, 나는 불난 자리에 가 보았다.
벽은 오직 한군데를 빼놓고는 딴 곳은 모두가
무너져 있었다. 그 한 군데라는 곳은 집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내 침대 머리쪽의
그다지 두껍지 않은 간막이 벽이었다. 벽의 회를 바른 곳이 불에 상당히 견디어 낸 것
을 보면 근간에 새로 발랐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벽 주위에서 사람들이 그벽의 한
쪽에 유난히 신경을 쓰며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다!","기묘한걸!",그
밖에 다른 비슷한 표현들이 나의 호기심을 끌었다. 그곳으로 다가선 나는 그 벽의 하
얀 거죽에 마치 얇게 조각이라도 한 것 같은 커다란 고양이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
을 보았다. 그 모양은 놀랄 만큼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고양이의 목에는 밧줄까지
걸려 있었다.
처음으로 이 유령 나에게는 그렇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을 보았을 때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과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끝내 나는 다시 지난 일을 생각하며
자위했다. 그 고양이는 내가 기억하건대 집 근처의 정원에 매단 것이었다. "불이야!"
소리에 이 정원에는 곧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중에 누군가 한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고양이의 줄을 끊고 그 시체를 창문이 열린 내 방으로 던진 것이다. 그것은 필
시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기 위해서 한 짓이리라.
내 잔인한 소행으로 희생된 고양이
의 시체는 얼마 전에 새로 칠한 벽에 부딪치면서, 맞은편 벽이 무너지며 떨어지는 통
에 압착되어 붙어 버린 것임에 틀림이 없다. 벽의 석회는 불꽃과 동물의 시체에서 나
오는 암모니아의 작용에 의해 드디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그대로의 고양이의 초상을
만들어 낸 것이리라.
방금 자세히 말한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양심에는 무언가 거리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성으로서는 별 괴로움없이 설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상상력 속에는 심각한 인
상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달 동안 그 고양이의 환영은 아무래도 지워 버릴
수가 없었고 그동안 내 마음에는 후회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으나 무언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솟았다.
그런 감정은 그 짐승을 잃은 것을 애석하게 여기게까
지 되었다. 그리하여 그 고양이를 대신할 만한 역시 똑같은 고양이 이거나, 아니더라
도 다소 닮은 애완동물을, 요즘 뻔질나게 드나드는 선술집 같은 곳에서라도 찾아내기
로 마음먹게 되었다.
어느날 밤, 나는 아주 고약하기로 소문이 난 어떤 소굴에 얼큰히 취해서 앉아 있었
는데, 그 방에서 제일가는 가구라고 할 수 있는 진인지 혹은 럼인지의 술통 위에 얹혀
져 있는 무언가 시커먼 것이 문득 내눈을 끌었다. 나는 몇분 전부터 이 큰 술통 위를
계속 보고 있었는데 그위에 얹힌 것을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
했다. 나는 그 곁으로 다가가서 그것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것은 한 마리의 검은
고양이였다. 플루토만큼이나 큰 것으로, 다만 한가지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점에서 그
놈과 꼭 닮았다. 플루토는 몸 전체 어디에도 흰 곳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이 고양이는
온 가슴패기 전체에 걸쳐 커다란, 그러나 어쩐지 윤곽이 확실치 않은 하얀 반점을 지
니고 있었다.
내가 손으로 건드리자 고양이는 금세 몸을 일으키고는 커다란 소리로 목청을 울리면
서 내 손에다 몸을 비비대는 꼴이 자기를 알아 주어서 반갑다는 시늉이었다. 바로 이
놈이야말로 내가 찾던 고양이다. 당장에 나는 주인에게 이 고양이를 사고싶다고 했다.
그러나 주인은 이 고양이는 자기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전혀 알지 못하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나는 고양이를 계속 애무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니까 고양
이는 나를 따라서 가고 싶어하는 눈치를 나타내 보였다. 나는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걸
어가면서 이따금 몸을 굽혀 고양이를 애무해 주었다. 집에 돌아오자 고양이는 당장 길
이 들었고, 따라서 고양이는 아내의 온갖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 가지 않아서 이 고양이에 대하여 싫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의 일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까닭에 그렇게 되는 것
인지조차 알 수 없었으나, 이 고양이가 분명히 나를 따른다는 사실이 도리어 싫증을
일으키게 했고, 나를 귀찮게 하고야 말았다. 이러한 싫증과 귀찮다는 생각은 조금씩
커져서 결국에는 격렬한 증오로 변했다.
나는 이 고양이를 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
떤 수치스러운 생각과 함께 전날의 잔학한 행동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고양이를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것만은 주저했다. 몇 주일 동안인가 때리지도 않았거니와 그렇다
고 난폭하게 학대를 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차차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 말
할 수 없이 혐오하면서 고양이를 바라보게 되었고, 마치 몹쓸 병에 걸린 환자의 호흡
을 피하듯이 그 보기 싫은 몰골을 말없이 피해버리게까지 되었다.
이 고양이에 대해 내 증오감을 갖게 된 것은, 그것을 데리고 온 이튿날 아침에 플루
토와 마찬가지로 이 고양이도 역시 한쪽 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한쪽 눈이 없다는 이 사실이 아내의 경우에는 고양이를 점점 더 사랑스럽
게 생각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아내는, 한때 내가 지녔던 남다른
특징이 있었으며, 또한 더없이 순박하고 순수한 온갖 나의 기쁨의 원천이기도 했던 인
정미가 넘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에 반해 고양이는 일방적으로 나를 더욱 따르는 것 같았
다. 고양이가 나를 좋아하며 따르는 정도는 내가 독자들을 이해 시키기 곤란할 지경이
었다. 내가 앉으려 하면 의자 밑에 웅크리거나 무릎위에 뛰어올라서 징그럽게 핥거나
몸을 비벼대었다. 일어서서 걸음을 걸으려고 하면 다리 사이로 끼어들어서 그 때문에
내가 곤두박질을 하게 되고, 또는 그 길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옷을 할퀴면서 내 가
슴께까지 기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런 때에는 단숨에 쳐 죽이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런
짓만은 꾹 참곤 했다. 한편으로는 그전의 죄진 것이 생각나기 때문이었으나, 그러나
무엇보다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짐승이 끔찍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은 정확하게 말해서 내 몸에 위험이 미친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분은 아
니었다. 다만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꼭 지적하여 말할 수가 없을 뿐이다. 고백하기조
차 부끄러운 노릇이긴 하나 사실 이 중죄수의 독방 속에서도 고백하기가 부끄러
운 노릇이지만 이 짐승이 나에게 환기시키는 두려움은 거의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어떤 망상에 의해서 더욱 커진 것이었다.
그것에 대해선 이미 말했지만 이 고양
이의 하얀 털의 반점, 이 괴상한 고양이와 내가 죽인 고양이와의 오직 하나의 확실한
차이점인 하얀 털의 반점의 특징에 대해서 아내는 여러 번 내게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독자는 이 반점이 큰 것이기는 하지만 본래 그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
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천천히,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그러나 오
랜 기간, 내 이성이 마비된 것이라고 극력 믿으려고 애쓰기도 했으나, 이 반점은 마침
내 아주 분명한 윤곽을 이루게 되었다. 이제 와서 그것은 그 이름만 입에 올려도 몸서
리가 쳐지는 어떤 물체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
짐승을 미워하게 되었고, 두렵게 여기게 됐으며, 마음을 다잡을 수만 있다면 없애 버
리고 싶었다. 그렇다, 이제 와 보니 그것은 그 무서운,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 교수대
! 오오, 공포와 범죄의, 고민과 죽음의, 두렵고도 비참한 형틀의 형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비참한 처지는 결코 다른 사람은 겪을 수 없는 처지나 전락에 도달했다. 더구
나 한 마리의 짐승이, 내가 비록 제 친구를 보잘것없이 죽여버렸다고 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 놓은 인간인 나에게 이처럼 참을래야 참을 수 없는 고
통을 안겨 주다니! 오오, 낮이나 밤이나 내 마음엔 안식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다니!
낮에는 그 짐승이 잠시도 나를 혼자 있게 하지 않았고, 밤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악몽
에 눈붙일 사이도 없이 나를 소스라쳐 깨어나게 해서, 그 짐승의 뜨거운 숨결이 얼굴
을 뒤덮고 그 육중한 무게로 쫓아버릴 수 없는 악몽의 화신이 끊임없이 내가슴을 내리
누르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이러한 고통의 압박으로 인해 그나마 아직 미미하게 남았던 나의 착한 마음마저 자
취를 감추고 말았다. 흉악한 생각이, 더 이상 비할 데 없는 극악무도한 생각만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평소의 나의 울적한 기질은 차차 모든 사물과 모든 인간에 대
한 미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따금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돌발적인 광란의
발작으로 아무 이유도 없이 몸부림을 쳤고, 그때마다 불쌍한 내 아내는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런 고통을 꾹 참고 견디며 피해를 입어야 했다.
우리는 빈털털이가 되어 하는 수 없이 우리 소유의 낡은 집에 살았는데, 어느 날 아
내는 집안일로 나를 따라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고양이도 나를 따라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다가 하마터면 나를 곤두박질치게 할 뻔했으므로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
다. 나는 지금까지 어린애처럼 참으면서 집어삼켰던 두려움마저 잊어버리고 울컥 치미
는 분노 때문에 도끼를 번쩍쳐들어서 고양이를 콱 찍어내리려고 했다. 마음내키는 대
로 내리쳤다면 물론 단숨에 고양이는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말리는 통
에 내리치지 못했다. 나는 방해를 받은 것에 자극되어 악마도 당할 수 없는 격분에 휘
말려서는, 아내가 잡은 팔을 뿌리치고는 아내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찍고 말았다. 아내
는 끽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 버렸다.
이런 참혹한 살인을 저지르고 나자 나는 곧 빈틈없이 신중하게 시체를 감추는 일에
착수했다. 낮이건 밤이건 간에, 이웃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이 집안에서 시체를 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여러 가지 계획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시체를
토막토막 잘라서 그것을 불에 태워 버리려고도 생각했다. 혹은 앞뜰에 있는 우물에다
던져 넣는 일이라든가, 상품처럼 포장을 해서 상자에 넣은 다음 일꾼들을 시켜서 집에
서 내갈 것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드디어 이러한 방법보다도 가장 좋은 방법
을 생각해 내게 되었다. 즉 시체를 지하실의 벽 속에 넣고 발라버리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기록에도 있듯이 중세기의 승려들이 자기네가 죽인 사람들을 벽 속에 넣고 발
라버린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이 지하실이 안성마춤이었다. 벽은 서투르게 쌓아올려진 데
다가 흙손질마저 변변하게 하지 못한 채, 최근에 회로 살짝 발라 버린 것이 지하실 안
의 습기 때문에 아직도 굳어 있지 않았다.
더구나 벽 한쪽은 장식용의 굴뚝이 아니면
난로를 설치했던 쑥 비어져 나온 곳으로서, 그곳은 이미 메워져 있어서 지하실의 다른
곳과 비슷하게 되어 있었다. 그 부분의 벽돌을 떼어내고 그자리에 시체를 밀어넣은 다
음, 누가 보든지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전처럼 모두 발라버린다는 것은 쉬운 노릇이라
고 나는 확신했다.
이와 같은 나의 계획에는 빈틈이 없었다. 쇠지렛대를 가지고 손쉽게 벽돌들을 뜯어
낸 다음 벽 안에다 시체를 기대 세워서 쓰러지지 않도록 손질을 하고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전과 같이 그대로 벽을 쌓아 올렸다. 반죽한 회와 모래, 그리고 터럭을 마련해다
가 조심조심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벽돌과 벽돌 사이의 벽을 아주 꼼꼼하게 발랐
다. 일을 끝낸 다음 나는 만사를 훌륭하게 해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벽에다 손을 댄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길이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들까지도 정성을 들여
말끔히 주워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주위를 둘러본 다음 혼자서 중얼거렸다. "자아,
이만하면 헛수고를 한 것은 아니겠지,"
다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와 같은 불행을 자아내게 한 그 짐승을 찾는 일이었
다. 왜냐하면 마침내 나는 그 짐승을 찾아내서 죽여 버리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에 고양이가 있기만 했더라면 고양이의 운명이 어찌되었을 것인가는 너무
도 빤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약삭 빠른 짐승은 그처럼 내가 무섭게 화를 낸 데 겁
을 집어먹었던지 현재와 같은 기분을 가진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꼴도 보
기 싫던 짐승이 자취를 감추자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아늑하고도 홀가분한 기분은
그야말로 묘사한다거나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날 밤에도 고양이는 모습을 나타내
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 짐승이 집에 들어온 뒤로 최소한 하룻밤만은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마음속에 살인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잠을 잔 것이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으나 역시 나를 괴롭혔던 상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숨을 내쉬었다. 괴물은 겁을 먹고 내집에서 영영 도망갔
구나! 다시는 그 짐승을 보지 않게 되겠지! 나는더할 나위없이 행복했다. 내가 저지른
그 어마어마한 범죄에 대한 죄의식마저도 별로 나를 괴롭히진 못했다. 몇 차례의 심문
을 받기는 했지만 거뜬히 대답해 냈다. 가택 수색까지 받았어도, 물론 무엇 하나 드러
나지 않았다. 앞으로의 행복이 틀림없이 보장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암장을 한 지 나흘째 되던 날, 뜻밖에도 경관대가 집에 몰려와서 다시금 건물을 엄
중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체를 숨겨둔 곳을 알 까닭이 없다고 나는 굳게
믿었기 때문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경관들의 수색하는 동안 개가 입회할 것을 명
령했다. 경관들은 구석구석까지 한 곳도 빼놓지 않고 조사했다. 그리하여 최후로 그들
은 이번 까지 세 번째인지 네 번째로 다시 지하실로 내려갔다.
나는 까딱도 하지 않았
다. 내 심장은 마치 아무 죄도 지은 일이 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는 사람처럼 조용히
뛰고 있었다. 나는 지하실 이 끝에서 저끝까지 걸었다. 가슴에 팔장을 낀 채 태연히
왔다갔다했다. 경관들은 아주 만족한 듯이 떠날 준비를 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나의 기쁨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강렬했다. 나는 보란 듯이 무언가 한마디 해서 자신이
무죄라는 것에 대해 경관들에게 확신시키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여러분!" 하고 드디어 나는 계단을 향해 올라가는 일행을 불렀다. "여러분들이 혐
의를 풀어주어서 정말 기쁘기 그지없군요, 나는 여러분의 건강을 비는 동시에 좀더 예
의를 지켜 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말씀예요, 여러분, 이 집, 이 집은 썩 잘 지어진 집
이올시다 (아무것이나 간에 태평스럽게 지껄이고 싶어 견딜 수 없었으므로 무슨 소리
를 지껄이고 있는지조차도 몰랐었다.) 아주 잘 지은 집이라도 해도 좋겠지요, 이 벽돌
은....아니, 여러분, 돌아가시는 건가요?...이 둘레의 벽돌은 아주 튼튼합니다. "이렇
게 말하고는 공연히 미치광이처럼 허세를 부리고 싶어 사랑하는 아내의 시체가 있는
바로 그 부분의 벽돌벽을 나는 손에 쥔 단장으로 쾅 하고 두들긴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이시여, 저를 보호하사 마귀의 독아로부터 구해 주옵소서! 벽을 두들
긴 울림이 침묵 속으로 가라앉자마자 곧 무덤 속으로부터 응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이 아닌가! 처음에는 어린애가 흐느껴 우는 것 같은 목이 멘 듯한 짤막짤막한 울음소
린가 싶었는데, 드디어 그것은 길고 큰 연속적인 외치는 소리로, 사람소리라고는 인정
할 수 없는 고함치는 소리로,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저주받
은 사자들과, 그것을 기뻐하는 악마들이 함께 뒤범벅이 돼서 공포와 승리가 반반씩 섞
인, 지옥이 아니고서는 들을수 조차 없는 그런 고통의 외침으로 울려오는 것이었다.
그때 내 기분이 어떠했는가를 말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일 것이다. 나는 아찔해
서 그만 맞은편 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때, 계단을 올라가고 있던 경관대는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착 달라붙듯이 까딱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
간, 여섯 남자의 억센 팔이 그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벽은 모조리 부서져 떨어졌다.
어느덧 몹시 썩고 피가 엉겨붙은 시체가 모든 사람의 눈 앞에 곧바로 서 있었다.
그리
고 그 시체의 머리 위에는 새빨간 주둥이를 딱 벌린 채 불 같은 노여움의 외눈을 번뜩
이면서 그 두려운 고양이가 나를 살살 꾀어 살인을 하게 하고 또한 다시 울음소
리를 터뜨려서 나를 교수형 집행인의 손으로 넘기고 만 그놈이 앉아 있었다. 나는 무
덤 속에다 그 괴물을 쳐넣고 벽을 발라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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