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 가 민며느리가 되었다던 여인은
아이를 낳기 전엔 부엌 한 켠에서 밥을 먹어야 했고,
작은 체구 비틀거리며 매일 집안 일에 허덕여야 했다.
그 여인은 과연 시어머니을 미워했을까.
아이들을 하나둘 낳고보니 세월도 흘러 민며느리의 시절도 가고
시어머니도 세월과 함께 가셨으니 그 여인은 이제 마음이 편할까.
어느덧 아이들도 장성해 시집보내지고, 장가보내지고...
서러운 민며느리 시절을 생각하며 그 여인은 며느리에게
또는 손주들에게 아들에게 너무나도 인자한 여인상으로 남게되었는데,
그렇게 말없이 가족들에게 충실했던 그 여인의 며느리는 어떠했을까?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건 생각할 수도 없을 만치 딸처럼 친정어머니처럼
사이가 좋았다는데...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또다른 세월이 흘러 그녀는 세월과 함께 묻혀지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인자하심을 본받아 이시대속 어딘가의 시어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두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두 며느리의 시어머니가 되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만 하면 모든 것이 두려울게 없을 것같은 마음에
두 아들보다 며느리에 대한 정이 각별했기에.
딸처럼 지냈다. 어떠한 호통도 어떠한 꾸짖음도 없이
마음으로 눈빛으로 알아주길 바라던 그녀에게
며느리들은 그 옛날의 자신과 시어머니의 사이처럼 정이 생기질 않았다.
어느날 섬광처럼 깨달은 말
"한 다리 건너 두 다리인게야, 네가 나한테 아무리 잘해도
한 다리 건너 두 다리째는 어려움이 있을게야"
시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며느리에게 최선을 다했지만
이시대의 며느리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며느리와의 벽을 느낀 그녀는 그 옛날 시어머니가 말씀하시던
한 다리 건너 두 다리를 생각하며
세월과 함께 흘러버린 이 시대를...
시간과 함께 변해버린 사람들을 원망했을까.
한 다리 건너 두 다리.
핏줄도 인연이 따른다는 말일까.
뿌린만큼 거둔다는 말은
"한 다리 건너 두 다리" 그 시어머니의 경험속에서 관념을 깨뜨렸다.
한 시대, 한 사람이 복으로 살았다면
그 다음 다음의 한 사람, 한 시대는 인력으로도 않되는
인연이 있다는 나의 고조할머니의 말씀이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