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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이 시작되면 사찰 주변 잠실은 마라톤으로 도로가 통제되는 일이 많다.
산하 대지엔 이른 산수유, 진달래가 봄을 알리듯 , 불광 형제들은 통제되는 도로 위에서 마라토너들을 보며 봄을 맞는다.
오늘도 통제된 도로를 돌아돌아 법회를 오시는 불광 형제들의 바빴을 발길을 3월의 詩 한 편으로 숨을 고른다.
활짝 피어나라
꽃처럼 피어나라
송이송이 피어나라
기도처럼 피어나라
세상 어둠도 그늘도 싸악 지우고
세상 아픔도 절망도 싸악 지우고
세상 역병도 눈물도 싸악 지우고
원망도 없이
시기도 없이
이기도 없이
서로서로 함께 손잡고 피어나라
3월이여 빛으로 피어나라
희망으로 축복으로 피어라
법회 사무국의 일요법회 아침 풍경. 법회 전, 회장단의 아침 회의.
안내데스크 와 현관에서는 법회보 배부하며 불광 형제들을 맞이하고 지하 4층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봉사팀은 안전하게 운행 도움 중.
찰밥과 생수 보시는 송파 34구, 대원 2구에서 준비해서 나눔 봉사를 하고 있다.
보광당 입구부터 새법우 안내 팀, 법당 안내팀, 방송실, 곳곳에서 법회 준비를 하고 있다.
법회 전에 자성 거사님의 천수경 독송, 추담 거사님 사회로 법회 시작되고 합창단장님 헌향, 여여심, 명조 보살님의 헌다.
3월 26일(음. 2월 8일) 출가재일을 맞이하여 미리 지환스님께서 법문 오신 오늘 두 분(지환, 혜담)스님께 꽃다발을 전달하였다.
마라톤으로 교통통제가 있던 날이었는데도 법회 참석한 불광 형제들은 보광당 가득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법문 듣고, 법회를 이어가고 있는 수승한 불광 바라밀 형제들.
금주의 법문 : 행복과 성공의 길로 나아가는 금강반야바라밀의 생활화
금주의 법어 : 대종사 지환 스님
그동안 청안하셨습니까? 청안이란 말이 참 좋아요. 청이란 고요하고 맑은 마음, 안이란 평안하고 행복한 마음. 그래서 ‘안녕하십니까?’ 보다 ‘청안하십니까?’가 불교적인 인사입니다. 뜻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만날 때마다 제가 ‘그동안 청안하셨습니까?’ 하고 인사하겠습니다.
오늘은 금강경 공부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오늘부터 금강경의 핵심 내용을 우리가 삶 속에서 실천해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사는 내용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우리 불광법회의 큰 축이, 큰 스님께서 세운 양대 축이 반야와 행원입니다. 사실 반야와 행원은 둘이 아닌데 나눠서 말하면 반야와 행원으로 말할 수 있어요. 반야 없는 행원은 진정한 행원이 될 수 없고, 행원 없는 반야는 진정한 반야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반야와 행원은 하나인데 나눠서 말한다면 사람의 몸으로 비유해서 말하면 반야는 눈 역할을 하는 거고, 행원은 손발 역할을 하는 거다. 그래서 한자 용어로 지목행족(智目行足)이라 하는데 지혜의 눈과 행원 즉 실천의 손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원을 실천하려면 반야가 앞서야돼요. 반야사상이 방대한 경전이죠. 반야사상 연구를 우리 혜담스님께서 많이 하셔서 형제 여러분께 많이 잘 법문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 핵심적이고 실천적인 것을 간추려서 반야사상은 아주 압축하면 반야심경으로 담아냅니다. 그래서 불교 의식할 때마다 반야심경을 독송하죠. 반야사상을 압축적으로 짧은 경전에 담아냈는데 좀 어려워요. 외우긴 외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반야사상의 원리적인 측면이 많아요. 실천적인 측면은 조견오온개공이 반야심경의 핵심이기도 하죠.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게 반야심경 전체를 담아낸 내용입니다. 그다음에 부연설명이 뒤에 나오는데 거기서 실천적인 측면은 ‘조견오온개공’입니다. 반야심경은 반야사상의 원리를 담아냈다면 금강경은 반야사상의 원리적인 측면과 실천적인 측면이 함께 다 들어 있습니다. 반야심경에도 실천적인 측면이 들어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금강경은 실천적인 측면 내용이 많이 나와요.
그래서 반야사상을 실천해서 반야바라밀이 되려면 금강경 공부는 필수예요. 우리 큰스님께서도 금강경을 매우 중요시하셨고 금강경 법문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금년에 금강경을 다할 수는 없고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서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금년 법회 계획을 잡아봤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금강반야바라밀경의 핵심을 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참고해서 우리가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생활화, 실천해야 돼요. 삶 따로, 부처님 가르침 따로 이러면 안되죠. 부처님 가르침, 반야바라밀 이것이 삶 속에서 생활화돼야 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정리해본 겁니다. 그래서 금강반야바라밀을 생활화해서 행복과 성공의 길로 나아가는 참불자의 삶을 요약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금강경의 핵심을 요약해서 간단히 정리하자면 즉비(卽非)라고 하는 용어가 많이 나오죠. 즉비를 통해서 상을 다 쳐부숴버립니다. 금강이란 말이 사실 범어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아니고 벼락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벼락같이 상을 다 때려부숴버려요. 무상. 우리가 자아중심으로 살아서 내가 있는데 사실은 반야로 보면 나라는 실체가 없어요. 무아. 그리고 우리는 대상에 항상 집착해버립니다. 경계에 우리 마음은 항상 머물러 버려요.(住) 이렇게 무상이 되고 무아가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대상에 머물지 않아서 무주가 돼요. 그렇게 되면 행으로 묘행, 바라밀행이 나와요. 즉비를 통한 무상, 무아, 무주, 묘행의 삶이 금강경에서 강조하는 삶의 내용이어서 그렇게 살자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무상, 무아가 되려면, 무주, 묘행이 되려면 방법론적으로 즉비 수행을 하면 된다고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즉비 수행을 통해서, 즉비 수행을 하면 반야 지혜가 열리게 되어 있어요. 반야 지혜를 여는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반야 지혜를 열 것인가 하는 방법이 있어야 돼요. 즉비 수행이 방법이에요. 즉비 수행을 통해서 반야 지혜가 열리면 당연히 상이 없는 무상, 무아, 그리고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 집착 않는 무주, 묘행의 삶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오늘은 금강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데 키포인트인 즉비 수행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말할 수도 있는데 저는 즉비를 통해서 금강경에서 말하려는 모든 상을 없애는 무상, 자아에 대한 집착이 없는 무아, 그리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 무주, 묘행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즉비 수행을 하자고 말씀드립니다. 금강경에 즉비(卽非)란 단어, 용어가 30여 번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어떻게 사느냐? 항상 마음이란 말이 등장하죠. 마음에 대해서 말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성철조사님께서는 팔만대장경을 뭉쳐서 한 글자로 말하면 마음 심(心)자를 풀어놓은 거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은 참마음이 아니고 망상심, 분별심이에요. 참마음이 자아에 대한 집착과 대상에 대한 집착을 통해서 망상심으로 변절, 굴절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쓰고 있는 마음은 분별심, 망상심이에요. 이 망상심이 다냐? 망상심 바탕에 참마음이 있어요. 비유를 들면 맑은 하늘에 찬란한 태양 광명이 빛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 참마음의 세계요. 그런데 중생들의 현실은 망상 번뇌의 구름이 끼어있는, 번뇌 업장의 구름이 끼어있는 구름 밑의 삶이요. 그러니까 번뇌 업장이 얼마만큼 두터우냐에 따라서 우리 삶이 어두워지죠. 어둡다는 말은 괴롭고 힘들고 불행하게 잘못 산다는 거예요. 진리는 광명이 핵심이잖아요.
우리가 초파일에 광명의 등을 올리는데 이 광명의 등에 대한 의미를 다음에 하겠어요. 불광법회에서 하고 있는 ‘광명의 등’은 초파일에 하는 등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다른 절에는 상에 집착해서 내 등이라고 ‘아무개 등은 법당 앞에 달아주세요’ 이런 식이거든요. 불광은 함께 ‘광명의 등’에 달았어요. 우리나라에서 현대 고승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님 두 분인데 성철대조사님, 광덕대선사님인데 성철조사님의 도량인 백련암에 가면 초파일에 등을 안 켭니다. 그런데 등은 켜야 되는데 불광법회처럼 키면 돼요. 상에 집착해서 내 이름표 다는 식이 아니라 ‘광명의 등’을 달면 돼요.
광명이 없는, 업장의 구름으로 가려 있는 우리 중생의 삶인 현실에서 지금 할 일은 뭐겠어요? 두 가지 측면으로 말합니다. 구름을 어떻게 사라지게 하느냐? 마음에 있는 업장 구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하나 있죠. 또 하나는 우리 삶의 본래 모습, 본래 마음, 본래 면목, 생명 실상, 깨달음의 세계, 하늘 차원의 그 자리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회복이란 말도 약간 어폐가 있어요. 지금 태양 광명이 빛나고 있으니까 회복할 것도 없죠. 우리 마음에 지금 태양 광명이 빛나고 있다는 이게 우리 큰스님 법문으로는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소식이야. 아무리 구호로 외쳐봤자 그 세계가 나한테 열리지 않으면 구호야.
불교 수행은 두 가지, 구름 차원의 번뇌 업장을 어떻게 공(空)화 시키느냐는 방법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의 태양이 빛나고 있는 자리를 어떻게 드러나게 할 것이냐는 두 가지예요. 선(禪)에서는 직지인심 견성성불, 곧바로 사람의 참마음을 가리켜서 사람의 참성품을 보아서 깨닫는다. 바로 구름 너머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초기불전 공부해보면 부처님은 양면, 때로는 하늘 차원의 본래면목 말씀도 하시고 때로는 중생 현실인 번뇌 업장을 어떻게 다스릴 것이냐 하는 양면으로 하셨어요. 선(禪)은 소수, 엘리트한테 눈 뜨고 봐, 눈 뜰 것도 없이 이미 진리세계이고 우리가 본래 부처란 말이야. 그런데 본래 부처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눈 감고 있는 사람한테는 눈 뜨게 만들어줘야 돼요. 태양이 빛나고 있다고 외쳐도 눈 감고 있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거든. 본래적인 면, 현실적 면인 양면을 우리가 잘 알아서 수행을 잘해야됩니다.
오늘 지하철 타고 오다가 반가운 분을 만났어요. 연세가 80이라대, 정정하고 얼굴 보니까 순박하고 누군가 했더니 불광 신도야. 야, 어디서 봐도 불광 신도는 표가 나네. 이렇게 착하고 좋으신 불광신도님, 저 멀리서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오시는데 연세가 얼마냐고 물으니 80이래. 그런데 얼마나 정정한지 몰라. 이렇게 훌륭한 불광신도들, 나는 다시 한 번 오늘 또 감동했어요. 너무나 훌륭하고 참 좋으신 분들이다. 광덕스님 상좌들 나빠요. 나부터. 잘못했어요 우리가. 왜 우리 훌륭한 불광 신도들 고생시키느냔 말이야. 때로는 난방이 안 틀어져서 춥고, 여름에는 냉방도 안 된 때도 있었다며. 그런데도 먼 데서 일요일마다 불광법회에 오시는 그 모습을 볼 때 너무 아름답고 정말 훌륭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요법회에 오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 집에서 유튜브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는 업장이 절대 안 녹아요. 왜 유튜브로 공부가 안 되느냐 하면 사람은 공을 들여야 돼요.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봉정암이든 그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공들였기 때문에 그 기도가 성취되어서 우리 자손들이 잘 된 겁니다. 공을 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되는 것은 없어요. 드러누워서 유튜브 보는 식으로는 업을 못 바꿉니다. 유튜브도 잘 봐서 실천하면 좋지만 너무 혼란스러워요. 어떤 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헷갈리게 만들어요. 너무 복잡해.
그러니까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는 공을 들인다. 이렇게 한 걸음씩 집을 출발해서 오늘 일요법회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그 마음을 일으킨 자체가 발심이야. 지하철 갈아타고 걸어서 일요법회 오는 자체가 수행이에요. 일요법회 오면 아침에 천수경 독송하고 삼귀의하고 보현행자의 서원 독송하는 전부가 수행입니다. 수행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번뇌 망상 업장이 싹 사라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일요법회에 꼭 나오셔야 돼요. 공을 들여야돼요. 그래서 여러분 훌륭한 분이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뜻으로 제가 박수 올립니다. (박수)
다른 데는 현장 법회가 자꾸 줄어들어요. 그런데 불광법회만 지금 잘 되고 있다고 봐요. 당시 이기영 박사님이 불광법회를 한국 불교의 모델이라고 했거든요. 오늘날에도 우리 불광법회가 한국 불교의 모델로 자리 잡고 있어요. 이게 꾸준히 계속 가려면 일단 우리 큰스님이 말씀하신 두 가지 부탁을 여러분이 실천하셔야 합니다. 일단 법회에 와서 공부 잘하고, 집에서 일과수행을 꼭 하셔야 돼요. 집중적으로 일요일에 법회 와서 한 주 살 것을 에너지 충전하고 그 충전한 에너지를 집에서 재충전하며 행복하게 살아요. 사람 마음은 참 요사스러워서 시간 지나면 약해져요. 전기도 충전했다 쓰면 오래 못가서 재충전해야 돼요.
우리 스님, 법사들은 참으로 크게 공들여서 오시는 분들에게 양질, 참 좋은 반야법문, 행원품을 정말 공들여서 만들어 들려드려야 돼요. 그래서 법사들 책임이 큽니다. 저도 항상 자격 미달로 부족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제가 등장한 거죠. 상황이 잘 돌아가면 저는 참선 마음껏 하고 싶었어요. 이 상황이 저라도 구원투수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요법회를 의례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공부하는, 수행하는 그런 마음으로 오신 곳이기 때문에 이 자리가 바로 수행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느냐? 하늘 차원의 참마음은 우리가 잘 몰라. 구름 차원에 살고 있어. 구름 차원의 사량분별심으로 살기 때문에 중생들은 차이만 있을 뿐이지 다 괴롭습니다. 괴로움이 크냐 작냐, 깊으냐 얕으냐, 큰 구름이냐 작은 구름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중생치고 안 괴로운 사람 아무도 없어요. 안 괴롭다는 사람은 세 가지, 바보가 된 사람은 안 괴롭고, 깨달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철이 안 든 어린이들은 신체적인 것만 있지 괴로움은 모르지. 일반적으로 중생은 다 괴롭다.
왜 괴롭냐? 사량분별심으로 살기 때문이죠. 내가 지금 사량분별심으로 사는 줄 모르면 끝까지 괴롭게 사는 거야. 아, 이 마음이 사량분별심이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이 괴로움을 해결하는 시작이야.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일어나는 감정 등을 뭉쳐서 마음이라고 부르면 마음 우리는 망상심으로 사는 거요. 망상심은 뭐냐? 참마음과 망상심이 섞였어. 망상 부릴 때도 참마음이 함께 해. 망상심이란 참마음 플러스 망상심이야. 우리는 크든 작든 다 망상심이 있어요. 나는 망상심이 없다고 착각하면 큰일 나는 거요. 그래서 마음, 망상심이 일어날 때마다 망상심을 즉각 일단 스톱하는 거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판단 정지하고 즉각, 즉각 멈추고는 ‘이것은 참마음이 아니야’ 하는 겁니다. 즉각 멈춘다, 즉비, ‘이건 참마음이 아니야’. 이러면 정화가 되는 겁니다.
물로 말하면 우리 마음이 흙탕물인데 흙탕물은 먹을 수도 없고 쓸 수도 없어. 이 흙탕물을 정화해서 쓰려면 정화하는 방법이 즉비, 이 마음을 즉각 멈추는 거야. 딱 멈추고 이것은 맑은 물이 아니야. 그 흙탕물 쪽으로 가는 마음이 쉬어지면, 즉각 멈추면 망상심으로 끌려가질 않아. 구체적으로 금강경에서는 이건 환상이야, 꿈이야, 가상이야, 진짜가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꿈 마음은 참마음이 아니야. 참마음이 없이 꿈마음이 나타날 수는 없어요. 꿈마음의 배경은 참마음인데 우리들의 현재 마음은 무명 업장의 꿈마음이란 말이야.
잠자며 꾸는 꿈은 잠꿈이고 우리 삶의 꿈은 업의 꿈, 업꿈이야. 이게 깨기도 어려워. 꿈인 줄도 모르고 진짜인 줄 아니까 이게 꿈인 줄 알면 꿈에서 우리가 고통을 받아. 전쟁 나서 총 들이대면 얼마나 괴로워. 진짜같지만 이게 꿈이라면 허허하고 웃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진짜로 여기니까 두려운 거라. 깨고 보니까 하하 꿈이었네. 이거거든. 우리가 이걸 꿈으로 여기기가 어려워요. 우리의 업장이란 것이 살아온 업장심, 무명의 특징이 뭐냐 하면 이 몸이 나고 이 모든 게 진짜라는 건데 이게 뿌리가 굉장히 깊어서 우리가 꿈으로 볼 수가 없거든.
우리가 금강경 수행을 통해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꿈 같은 거야 하는 이게 즉비심이야. 진짜가 아니란 말이야. 즉각 멈추고 ‘꿈같은 거야’ 하면 내가 현상에 매몰되지 않아요. 화나는 현상이 일어날 때 화에 빠져버리거든. 미운 현상이 일어날 때 미움에 빠져버리고 질투 마음이 일어날 때 질투에 빠져들거든. 시기 질투 욕심 집착 다 들어가는데 즉각 멈추고 이건 참마음이 아니야, 이건 꿈같은 꿈마음이야. 이렇게 보면 거리가 생겨.
이게 알아차리는 이건 어디에 해당되느냐? 이 알아차리는 마음은 거울로 말하면 영상 측면, 거울빛 측면, 거울 측면 하늘로 말하면 달 측면 달빛 측면 물속 달 측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 거울에 뜬 영상이 전부야, 우리 중생들한테는 진짜인 줄 알아. 이 참마음이라는, 참마음 이 단어에 오해가 있을까봐 저는 진공심이라 합니다. 진짜 텅 빈 참마음 그게 거울이야. 참마음 빛이 나와 그게 거울빛이야. 거울빛이 있음으로 해서 거울에 영상이 떠. 우리는 참마음 거울 자리를 몰라. 우리는 영상 마음만 알아.
지금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은 영상이라 좋은 영상도 있고 나쁜 영상도 있고, 아름다운 영상, 추한 영상, 행복한 영상, 불행한 영상 전부 다 영상이야. 그런데 영상이 진짜인 줄 알면 영상에 빠져버린단 말이야. 이건 영상이야 하면 그 경계에 안 떨어진다는 뜻이야. 우리는 전부 마음이 일어나는 그 경계에 떨어져버려. 그러니까 희노애락이 있고 우비고뇌가 있고 그래요. 그때 알아차리는 거야. 아, 이건 영상 마음이야. 이건 꿈 마음이야. 이건 진짜가 아니야 하고 알아차려.
알아차리는 것은 거울로 말하면 거울의 빛이야. 알아차림은 영상이 아니야. 알아차림은 참마음의 진작용이야. 우리한테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어. 영상 같은 경계에 떨어진 마음. 보통 중생은 경계에 떨어진 마음으로만 살아.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은 경계에 떨어진 마음을 알아차린단 말이야. 경계라고 하는 것이 사람마다 달라. 선한 생각도 경계요, 악한 생각도 경계인데.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제악막작이라. 모든 악은 작은 악이라도 짓지 마라. 이게 과거 칠불통계(七佛通戒), 기본적인 가르침이야.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작든 크든 모든 선은 다 봉행하고 한 걸음 나가서 이것을 초월하는 거야. 상대적인 선과 악을 보통사람들은 오락가락하잖아요. 선악을 초월한 청정한 마음 되는 것이 자정기의여.
우리 마음을 정화하는 청정한 마음자리. 일단 기본적으로는 악한 짓을 하지 않아서 악한 짓의 대가를 받지 말라. 현상계에서는 우주의 법칙이 엄연합니다. 해탈 열반의 세계는 우리와 차원이 다르니까 여기서 말할 필요 없어요. 우리 중생계 현상계는 우주 현상계나 인간 사회 현상계나 우리 마음 현상계는 반드시 인과법칙이 적용됩니다. 이 인과법칙을 모르고 지금 인과를 모르기 때문에 전부 잘못을 저질러요. 인과법칙을 알아도 잘못을 해. 왜? 그동안 살아온 습관적인 힘 때문에. 어리석음의 힘 살아왔던 게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인과를 알아도 잘못을 해. 그런데 인과를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잘못 살겠어요? (보리광 보살님 녹취)
지금 당장 여러분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이 주변에서도 인과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과를 모르는 사람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또 어떤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거나 간에 인과를 모르는 사람이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인과를 알아야 돼요. 인과를 알고 어떻게 사느냐 가능한 좋은 일을 많이 해. 착한 일을 많이 해. 같은 가능한한 악한 짓을 하지말고 말야. ‘중선봉행(衆善奉行)’하고 ‘제악막작(諸惡莫作)’하라 이거야. 기본적인 현상계는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복을 쌓고 공덕을 짓고 이렇게 한 요소들이 쌓이면은 인과법에서 빽은 하나 기본적으로 그러면 우리 불광 형제들은 그걸 기본에다가 플러스 한 단계 더 해탈법을 알아야 돼 해탈법. 인과법만 알아 같고는 불교의 반밖에 못 보는 거야. 불교만 인과법을 말하는 거 아니예요 다 인과법을 얘기하고 있어요.
또 인과법의 원리에서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 모든 인과는 우리는 이제 뭘 배워야 되냐 인과법은 기본이고 해탈법을 배우는데 해탈로 가는 한 걸음이 금강경 공부를 통해서 바로 즉각즉각 순간 해탈 순간 해탈이 벌어지는 거야. 완전한 해탈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루어 짐에 완전한 해탈이고 우리는 순간순간 해탈을 하는 거예요. 술 먹은 사람이 술을 안 먹으면 술로부터 해탈이라는 담배 피운 사람이 딱 담배 끊으면 담배를 어떻게 해탈해 거짓말하는 사람이 거짓말 안 하면 거짓말로부터 해탈했다. 그게 자각을 해탈 순간순간 해탈 해탈이 힘을 실어서 영원한 해탈로 가는 거니까 우리가 해탈에 가는 가장 빠른 길 마하반야바라밀의 실천이잖아.
이 금강경을 가지고 즉비수행(卽非修行)을 하면 즉각즉각 해탈적으로 사는 방향이 바뀐단 말이에요. 그게 나를 항상 업장심으로 가는 것을 스톱시키고 이건 아니야., 그렇게 걸고 알아차림 하면은 방향이 바뀐다고 방향이 바뀌어. 그런데 잘 안 바뀌어. 왜 어느 쪽으로 가는 힘이 세면. 스톱 브레이크로 가려고 하는 것이 관성의 법칙이에요.즉 선풍기 빵빵 켜 놓았다가 껐어도 돌아 관성의 법칙이 있어요. 그러면 물리적인데만 관성의 법칙이 있느냐 진리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어요. 우리 마음에도 본래 실상 없이 마음대로 안 고쳐진단 말이에요. 무서워 안 하려고 해도 그 무엇이 나와 그래서 공부가 쉬운 게 아니예요. 정진해야 돼. 그러니까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엔 바뀐다.
한 예를 들게요. 초등학생도 실천했어. 초등학생도 중학생 애가 게임에 빠져서 때리는 PC방 이야기를 합니다.
학교에서 나오다가 집에 가는데 그 게임방에 있어. PC방 가고 게임하고 싶어. 이제 지금까지 자기 집에 오는 버릇입니다.
그래서 진짜 스님한테 이놈이 법문 듣고 아 초등학생이 실천하는 거야. 이 사람 마음은 경계의 마음이야. 경계의 마음이 그러니까 알아서 살려라 이거지 이런 경계의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이 ‘안이비설신의’라고 하는 생명 작용하는 기관에서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 눈에 대상 색 귀의 대상 소리 이렇게 경계 항상 마주쳐서 마음이 일어나 이 마음을 경계에 반영하는 마음이다. 이 말이야.
경계에 반영하는 마음 우리 전부 다 경계에 반영하는 마음이예요. 이게 경계에 반영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습관적이고 잘못된 쪽으로 가지 않도록 스톱을 시켜줘야 되는데 알아차리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그동안 살아왔던 대로 욕심도 부리고 비겁하고 내가 잘났다고 미워하기도 하고 내가 우월하기도 하고 너는 못났다고 우월감 있고 다 그래 나 잘났다. 그러고 나도 나라는 게 얼마나 나의 삶에서 항상 나라는 게 있잖아요. ‘나’라는 놈이 한 명 사라져야 되는데 한 명 사라지고 에고가 사라지면 찰나야.
그래서 부처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깨달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깨달은 사람이 완전히 쉽게 말하면 에고가 사라진 사람이야. 우리는 에고가 나야 에고라는 놈을 우리 ‘나’라고 알고 있어. 이놈을 아름답게 만들고 이놈을 좀 더 돋보이게 만들고 이놈을 더 어떻게 하고 전부 다 그런식이야. 에고를 해체시켜야 되는데 그런데 이제 에고 강화 말고 강화 에고라는 너무 교활해서 얼마나 영리하고 교활한지 잘 해체가 안 됩니다.
공부한다고 해도 더 상이 붙어 아상이 모여 와서 힘 다 타 그러니까 이게 금강반야바라밀경에 그다음에 실천을 해서 이제 아상도 다 부숴버리고 그럼 이 초등학생이 말이야 이 용어를 잘 한번 보세요. 우리가 지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이렇게 통해서 ‘안이비설신의’가 그 대상이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이 경계잖아요. 경계 방향에서 그 경계에 반응하는 마음이 일어난단 말이 그게 우리들의 마음이야.
근데 이 초등학생이 게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어. 그랬더니 알아차려야 어떻게 이런 경계마음 경계 이렇게 하다가 이놈이 순진하니까 그 스님 말을 듣고 이렇게 했는데 지나가 버린 거야. 그러면 여기서 벗어나 버려 그때는 계속 게임했는데 일어나니까 경계 마음 통과하고 가버려 집에 가서 공부하고 그때는 지나가는데 또 들려서 게임하고 싶어 경계 마음 하고 알아차리고 가버려 몇 번 하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PC방 앞을 지나가도 가만히 지나가는 거야. 이제 PC 중독에서 벗어났다 이 말이에요. 우리는 전부 중독에 빠져 있어요. 전부 다 아는 거는 우리의 마음이 전부 다 중독이 전부 중독에 걸려 있어. 중독 좋은 중독들이 나쁜 중독도 있다. 이제 초등학생 이 학생이 스님 말씀을 잘 듣고 게임 중독성이 벗어났단 말이에요. 그리고 공부를 잘해서 초등학생도 실천했다고 그래요. 이 방법이 이거라. 경계 마음 나아졌다는 걸 알아차려요. 그러니까 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한 동작 뛸 때마다 그냥 하지 말고 그냥 행동하지 말고 반드시 한 번 거쳐라. 무엇을 알아차림을 거쳐라.
그냥 습관적으로 직관적으로 가 마음이 얼마나 빠른지 몰라. 나 잘났어 이 마음이 팍 하다가 내가 원해 하는 마음을 팍 하다가 나 중심적인 마음을 팍 한다. 에고 마음이야. 우리는 지금 누구나 다 처음부터 에고 마음으로 삽니다. 에고 마음 이 에고 마음을 볼 줄 아는 알아차림은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이것을 분별심이 있어. 지금 우리 앞에 그것이 있는 줄 몰라. 있는지 모르니까 이걸 안 켜고 그러면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이 거울에는 영상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거울 빛이 있기 때문에 영상이 뜨는 거예요. 만약에 거울에 빛이 없으면 그러면 이 돌은 반짝반짝 왜 거기는 영상 안 뜹니까? 그 빛이 없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상이 떴다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세 가지가 함께 있는 거예요. 영상, 거울 빛, 거울 그런데 우리 마음으로 말하면 우리들이 알고 있는 마음은 영상이기 때문에 절대 우리는 거울을 모릅니다. 우리 마하반야바라밀인데 참마음인데 왜 몰라. 깨달아야만 그 배경을 안다고요. 깨어나니 이제 70에 이제 공부를 하는 경우는 그러니까 알아차림이 어디에 해당되고 있냐 말이야.
우리의 마음에 거울로 말하면 거울 빛이고 마음으로 말하면 참마음에 제 작용에 해당하기 때문에 알아차림을 참마음 하면 제 작용이 나오고 있는데 뭐가 그랬느냐 업장이라는 것이 업장이 이 알아차린 힘을 저렇게 키워 알아차리는 힘을 가하면 그동안의 습관, 버릇, 관념이 이 알아차림이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나중에는 내가 알아차린 힘으로 반야바라밀의 지혜의 몸으로 사는 거야. 그럼 그 단계까지 가려면 굉장히 많은 수행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만 안다고 내 것이 아니야. 운전법 배웠다고 운전 잘 할 수 있나요? 실습이 아무것도 아닌 것도 운전법 알아가지고 부단한 실습을 해야 나도 운전을 잘 할 텐데 이 마음 문제는 쉬운 게 아니에요. 그래서 운전법을 잘 들어야 돼. 그리고 법문은요 재미있게 하는 법문만이 다가 아니야.
유튜브 황창일 신부가 들여다보면은 내용이 없어 주님만 계셔. 요즘 사람들은 재미있는 거 좋아해 나도 재미있게 깔깔 웃게 만들고 재미있고 그렇게 보다는 난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입에 달콤하고 이런 음식들은 해로운 게 많아 몸에 좋은 건 써 .이 법문도 딱딱한 법문이 내 안의 업장을 녹일 힘이 달콤한 그게 쏙 들어오는 그것만 갖고는 여러분들은 지금 한국 불교에서 가장 지금 많은훌륭한 불광 형제들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한 단계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난번에 농담 삼아 이번 새해 때 받은 서원을 해야 돼.
올 한 해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이게 새해 기도예요. 새해 기도의 한 대목이라 기도에 대한 얘기도 하지만은 얘기가 한정식도 좋지만 비빔밥도 맛있어. 밥도 오늘 비빔밥 법문인데 여러분들이 하는 그 기도 있잖아요. 다 됩니다. 우리들은 지금 수준 높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축원이 뭐 읽어준다고 되는 거 아니야. 기도하려는 마음 맺고 축원한다고 이었고 공양도 올리고 벌써 기도의 반은 붙어 있어요. 이게 다 기도 공덕이 되는 거예요.
기도 법문은 지난번에 했으니까 다시 돌아와서 기도를 알고 보면은 이거예요. 내 잘못된 생활 패턴을 바꾸는 거예요. 기도라고 하는 수행을 통해서 우리들은 이 생활 습관이 아주 잘못 들어 있어요. 이것을 기도를 통해서 생활 습관을 바꾸고 이래서 저래서 우리가 이 여기에서는 반복하느냐 이 말을 반복 학습을 하고 있느냐 한 번 들어가가지고 내 마음이 그렇게 작동이 안 돼요. 정확하게 내가 이해하고 작동할 만큼 딱 올려야 돼요.
오늘부터 이 초등학생처럼 오늘 이 얘기를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저기 부도가 나 가지고 남편도 죽고 참 잘 나가던 싫다 이렇게 해서 새벽 쫓겨나 가지고 나가서 금강경 공부 해가지고 새로운 삶 성공하고 행복 사는 어떤 보살님의 얘기를 예로 들리는데 시간 없으니까 다음번에 돌리고 예를 하나씩 초등학생 얘기만 끝났는데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때 결심이 서야 돼. 공부를 편안하면 잘 안 돼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뭔가 어려울 때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 생겨. 그런데 타성에 빠진 사람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요. 그런데 훌륭한 불자는 어떤 사람이냐 꼭 목마를 때 샘 파는 방식이 아니고 어려울 때 평소에 꾸준하게 제대로 하는 사람이 훌륭한 불자다 이거에요. 여러분들은 그런 분으로 알겠습니다. 꾸준히 평소에 일요법회 잘 나와서 꾸준하게 공부하고 계기로 실천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 실천 팁을 이렇게 말씀드리는데 이거는 딱 이 정리가 돼야 실천을 하게 되니까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게 아닌데 떠오를 때마다 생각이 떠오르고 할 때마다 굉장히 힘이 세요.
정말 한번 점검해 보세요. 얼마나 센가 할 때 알아차리는 진리 그게 제일 쉬운 게 그림 생각 그리게 하지 말고 판단 정지를 해버리는 거야.
생각을 하지 말라. 아니 생각 안 할 수는 없어. 그 생각을 내가 막 없애려고 하면 어렵지만은 그 생각을 그 순간에 잠깐 스톱시키기는 쉬워요. 스톱하는 거예요. 그냥 스톱 스톱 그래놓고는 올라오는 이것들은 이 경계의 마음은 참 마음이 아니야. 그 고등학생 말로는 경계의 반야라는 경계의 마음이야. 여러분들 이걸 어떻게 보느냐 이 영상 마음이야 그렇게 영상 마음이야. 참 마음은 거울이고 요 마음은 지금 영상 같은 말이 영상 영상은 거울이 아니잖아. 영상은 거울이 아니듯이 지금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이 마음들은 영상 마음이기 때문에 내 참마음 아니라 이 말이에요. 이 아름다운 영상도 영상은 영상이야. 추한 영상도 영상인데 추한 영상이 있으면 더 괴롭고 아름다운 영상이 있으면 그때는 즐거워. 그래도 영상은 영상, 해탈은 아니야. 아름다운 영상이 뜨면은 어떻게 되느냐 우리는 그걸 갖고 싶어 계속 유지하고 싶어 그건 탐심으로 작용이 돼요. 추한 영상이 뜨면은 우리 추한 영상이 뜨면은 처음에 싫어 진심으로 이렇게 적혀 있어요.
그럼 알아차림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 가지로 가면 안 된다고, 세 가지로 우리는 보통 생각이 일어나거나 감정이 올라오거나 뭐 할 때 세 가지 쪽으로 갑니다. 하나는 좋아 좋아 그건 좋아하면은 탐심으로 탐심 작용으로 연결됩니다. 싫어 미워 이러면 그 마음은 진심 작용으로 연결돼요. 멍하면은 치심 작용을 해 깨어 있어야 되는데 멍하기 때문에 그때는 심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탐진치가 제로가 돼야 되는데 탐진치 힘을 못 써야 되는데 그냥 매 순간 좋은 것은 탐심 작용으로 세력을 보내주고 싫은 것은 진심 작용으로 세력을 보내주는 멍한 것은 치심 작용에다가 힘을 보태주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에요.
우리 불광 형제들은 이제 그러지 말자 이거지. 일어날 때 무탐, 무지, 무치가 되어야 하고 일어날 때 즉비수행. 무탐, 무치로 안 가고 진심으로도 안 가고 멍해 갖고 지심 쪽으로 힘을 보탤 수도 없고 깨어 있는 사람 알아차려라 어렵지 않습니다. 실수를 잘만 하면은 어떻게 한다고요? 어떤 것이 올라오든지 간에 좋은 생각이 내가 좋아하고 어쨌든 그것도 막 싫어하고 어떤 천간지대든 어떤 것이 어떻든 간에 일단 스톱하고 알아차려요. 이것은 영상이야. 영상 이건 영상이야 하면은 꿈맘이라고 한 말은 꿈이 나타난 바탕 참마음이 있다는 얘기고 이게 영상이라고 하는 말은 영상은 거울이 아니라 이거야. 거울이 있단 말이야. 이 거울 같은 자리 이 꿈마음이 나온 참마음자리 이게 뭐라고 하냐 ‘마하반야바라밀 내 생명 부처님 무량 공덕 생명’ 자리란 말이야. 여기에서 어마어마한 힘들이 나와요. 앞으로 우리 창조 행위라고 하는데 나는 창조라는 말은 창조라는 것은 없는 것이 만들어지면 창조잖아요. 업계(業界)는 창조란 없어. 이 참마음의 작용을 내어 쓰는 거지. 점점 더 크게 내어 쓰는 거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 ?부처님 힘으로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주님의 영광을 받아서 그렇게 살면 된단 말이야. 그게 정말로 행복하고 그렇게 살면 성공하고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한번 공부를 잘 해봅시다.
우리 현문 수석 부회장님이 서울 의대 의학회의 명예전당에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현진 법회장님, 다른 임원들 이렇게 사회적 불교 내부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분들이 우리 불광의 일을 함께하고 계시니 영광이고 다시 한번 찬탄드립니다. (월광화 보살님 녹취)
♬ 찬탄곡 : 밝은 햇살처럼 (대석스님 작사. 서근영 작곡 ,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
발원문 낭독 : 염송팀장 자심행 보살님 (불광사. 불광법회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현진 법회장님
불광에 첫 발걸음 하신 새 법우 환영식. 우리 모두 반갑게 맞이하며 회장님과 사진도 한 컷.
법회가 끝나고 정겹게 갖는 법등 모임. 각양각색의 점심 공양을 준비해서 서로 나누며 담소하는 법등 형제들.
법당 안내팀들과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 찍으시는 지환 스님의 환한 미소가 따스한 봄날 같다. 늘~ 한결같이 불광 형제들과 함께 하시길.
언제나 법회 끝 마무리는 많은 쓰레기 뒷 정리. 불광 형제들은 버려진 쓰레기 만큼 온갖 번뇌도 모두 날려보냈으리라.
일요 법회 후에도 대웅전에서는 금강경 독송은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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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정진 법회 역사]
제1회 구도 정진법회는 1976년 1월 10일 저녁 6시에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은평구 진관사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갈매리 보현사 등 서울 인근 사찰을 순례하며 진행했다고 합니다.
제 1회 구도 정진법회 동참 인원은 120명이라 합니다.
2026.3.11. 확인한 초대 구도 부장 혜덕 스님의 증언입니다.
오후 1시 30분 부터 2026년 3월 구도정진 법회가 진행되었고, 무아거사님 사회로 참석 인원 125명이 함께 하였다.
금강경 독송
지환 스님의 짧은 법문, 참선. 명상
바라밀 염송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일요법회 준비를 위한 보광당 청소, 법회 좌석 배치 및 정리에 보현행을 실천하는 청정 봉사팀.
지난주, 조계사, 봉은사, 동명사에서 1인 시위 정진 기도 정진 중인 불광 바라밀 형제들.
토요일 불광사 호법시위 정진단
「검은 먹구름을 날려 보내야 불광의 청천하늘이 밝게 드러납니다. 그 먹구름을 날려보내는 것은 오직 바람뿐입니다. 호법시위 정진단은 지금 그 바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불광사 소나무가 동명사 소나무로 주소이전하였다고 합니다.
|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항상 빛나는 불광법회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 찍으신 보현화님, 지환스님의 즉비수행을 받아쓰신 보리광, 월광화님, 멋있게 편집하신 마음님의 보현행으로 불광은 계속 기록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