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4/14 여정: 이사벨여왕 생가 Madrigal de Las Altas Torres와 어느 한적한 마을 El Bohodon
살라망카에서 N-501를 따라서 중세의 요세 Avila로 가는 도중에 방향을 바꿔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여왕, 카톨릭 부부왕의 하나인 이사벨 여왕이 태어난 마을로 갔다. 주한 스페인 대사관에서 제공한 안내서에서 이 마을을 알고 스페인 여정 중 이곳을 방문한다는 즐거움에 나는 약간 흥분되었다.
카스티아 레온 지역의 넓은 들을 지나며 군데 군데 성당이 있는 조그마한 마을을 보면서 살라망카(8,477Km)에서 40여 분 달려
이사벨 여왕이 태어난 곳에 왔다(8,531Km). 왕실 백작의 거쳐였던 이곳은 아버지 후안2세의 별궁에서 1451년에 태어 났다.
화려한 역사로 인해 큰 후광을 받을 만한 도시이지만 지금은 1800여명이 살고 있는 소박한 마을로 우리4명이 마을 광장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마을이다.
Travelling from Salamanca towards Ávila along the N501 will first take you to Peñaranda del Bracomonte. From here take the road to Medina del Campo along the C 610. About half way along this road and, after passing small villages such as Ragama and Rasueros, a walled town, painted in the sombre colours of stone, seems to spring up from amongst the fields of wheat that completely surround it. Located in the middle of the high plains of Ávila the walled town of Madrigal de las Altas Torres is the place where one of the most powerful monarchs to have shaped the destiny of the Spanish Empire was born: Isabella of Castilla. Better known as Isabella the Catholic, the feminine half of the Catholic Kings, she was responsible for uniting the Iberian Peninsula under one flag after over seven hundred years of the rule of Islam.
살라망카에서 아빌라로 가는 길에는 조용한 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중심에는 교회 건물이 있다.
한적한 마을의 성당
가는 길에서 본 들판:넓은 들, 넉넉한 마을 분위기가 평화스럽다.
이사벨 여왕이 태어 난 이 마을(Madrigal de Las Altas torres)에 오니 광장에는 자전거
타고 가는 노인 한 명만 보인다. 에스파냐를 통일한 스페인에서 가장 위대한 왕의 생가
마을이지만 소박한 마을 분위기가 너무 놀라왔다.
이 마을의 집과 성벽은 마손된데로 방치되어 있다.
마을 공원 가는 길에 이사벨 여왕 동상이 서있다. 그레서 '아, 이곳이 그녀의 탄생지이구나'라고
생각이 든다.
이사벨 여왕이 1451년에 태어 난 집: 아버지 후안 2세의 별궁이었다. 지금은 사원으로 개조.
Augustine 수도원/ 카톨릭 부부 여왕 이사벨 탄생지(Casa natal)라고 쓴 안내판에 두 여인이 섰다.
이곳까지 인도해 준 하나님게 감사 기도를 드리다.
태어난 집 입구 벽에는 미국 텍사스 주 Bexar 마을에서 온 스페인 이민 후예들이
이사벨 여왕을 경배하는 기념판. 기념판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
Homage!
On the Advent of the fifth centennial of the initial voyage of Christopher Columbus to America,
The Citizens of Bexar County, Texas, U.S.A pay Homage to Madrigal De Las Altas Torres,
birthplace of Queen Isabel the Catholic whose intellect, boldness of sprit, Love of Humanity
and Christianity and material Assistance contributed significantly to the discovery of the then
unknown World on October 12, 1942.
Comision De Historia Del Condado De Bexar
Bexar County Historical Commission
San Antonio, Texas, U.S.A. 1984
Dr.Felix D. Almaraz, Chairman
광장 한복판의 십자가에서
이사벨 여왕 태어난 집 뒤에는 산 니콜라스 데 바리 교회
이 교회 75m타워에서 이 마을 명칭이 유래하였다.
이곳에서 Avila로 가다가 48Km 떨어진 곳에 조용한 마을 El Bohodon에 잠시 들렀다.
이곳에 이사벨 여왕의 소녀 동상이 있어 기념 사진을 찍었다.
El Bohodon 마을 입구
El Bohodon 마을도 조용하였다.
마을 성문 안 입구에는 이사벨 여왕 소녀 시절 동상이 있다. 그녀가 여기서 어린 시절 공부하며 지냈다고 한다.
Mrs. 정도 기념 사진
3시 30분 아빌라로 떠났다.
"이사벨 여왕.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해 에스파냐의 황금기를 연 인물이다. 사상 최고의 벤처 투자가이자 근대 경제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여성으로도 꼽힌다.
초년의 삶은 가시밭길. 1451년 4월22일 이베리아 반도 중앙부를 차지한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로 태어난 그는 3세 때 부왕인 후안 2세를 여읜 뒤부터 견제 속에서 살았다. 감시 속에 눌려 지내던 그의 선택은 정략결혼. 방패막이가 돼줄 배우자로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를 골랐다.
국내외의 방해공작을 뚫고 18세에 한 살 연하의 사촌 페르난도 2세와 결혼한 지 5년 뒤(1474년) 배다른 오빠인 국왕 엔리케 4세가 사망하자 이사벨은 스스로 왕위승계와 아라곤 왕국과의 통합을 선언하며 남편과 공동 군주에 올랐다.
통합국가 에스파냐의 힘은 무서웠다. 내륙국가적 성격이 강한 카스티야와 해양국가 아라곤의 장점이 결합한 덕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이 성공한 것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다. 이사벨의 1492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두 가지 사건, 즉 국토회복(레콘키스타)의 완성과 유대인 추방령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남은 마지막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 왕국을 내쫓은 레콘키스타로 유럽의 완전 기독교화라는 숙원을 풀었다.
유대인 추방령은 더욱 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에스파냐에서 쫓겨난 유대인 23만명 중 전문인력과 재산가들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ㆍ영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하는 경로가 세계 경제패권의 이동 경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유대인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이사벨 여왕은 오늘날 에스파냐에서 여걸로 기억된다. 17세기까지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에스파냐의 초석을 깔았기에 그럴 만하지만 이교도에게 관용을 베풀었다면 에스파냐의 영광은 더 오래 지속됐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