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늦게까지 이것 저것 많이 먹는 바람에 식구들이 아침 생각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점심을 좀 빨리 먹기로 했다. 인계동에 오사또에 해물탕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어제는 고기류를 계속 먹었으니,오늘은 해물을 먹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오사또는 재료는 최고급인데 맛은 내 입에 맞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는 곳이다. 나는 해물탕이라면 종로쪽인가에 있는 보통집이 더 내 입에 맞다. 보통집은 전에 인간극장에도 나왔던 집이다. 이집의 재료는 앞서 말한 오사또보다 못하지만 국물이 칼칼한 것부터 종합적인 맛이 내입에 더 맞다. 그래서 나는 이집 단골이다. 마침 오사또가 휴일이라고 했다. 나는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큰 언니를 모시고, 보통집으로 갔다. 최 정원 선생 둘째딸 호정이도 함께 갔다.
어머니와 큰언니에게 옷을 하나 사 드릴려고 백화점으로 갈까 하다가 무슨 시장으로 갔다. 백화점에는 비교적 젊은 감각 위주의 옷들이 많이 걸려 있을 것 같아서, 어머니 옷을 사기에는 오히려 시장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어머니 모시치마와 쪼끼 그리고 윗옷까지 세트로 사 드리고, 큰 언니에게도 옷을 사 드렸다.
원천유원지로 갔다. 초입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유원지를 한바퀴 돌았다. 날씨나 너무 더워서 차 밖에 나가기가 싫다고들 했다. 차라리 냉방이 잘되는 차 안이 시원하고 좋았다.
오후 3시에 나를 캐슬 호텔 앞에 내려주고, 최 선생은 어머니와 큰 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갔다. 너무 더워서 나무 밑에도 푹푹 찌는 바람에 물가나 나무 밑에 앉아서 논다는 것이 도리어 불편할 것 같았다. 그 때마침 어머니의 장손(최정원 선생의 오빠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를 뵈러 장손 내외가 원주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수원에 오신 줄을 모르고 장손 내외는 원주로 직행을 한 것이다. 어머니가 수원에 와서 이틀씩이나 머물 것을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오늘 밤도 수원에서 잘 것이라고 하자 장손 내외는 수원으로 인사하러 오겠다고 했다.
가족들이 장손 내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8시 전에 장손 내외가 아장 아장 걷는 손주를 데니고 수원 최 선생 집에 도착했다. 그러자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화로본가라는 새로생긴 갈비집으로 갔다.이집에 가면 지배인부터 종업원들이 우리에게 아주 잘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역력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집에 갈 때마다 귀한 대접을 받아서 기쁘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장손이 차로 원주까지 어머니와 큰 언니를 모셔 드리겠다고 하였다. 그바람에 수원에서 주무시려던 계획이 바뀌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이틀을 주무시려고 했는데, 장손의 호의로 그 밤에 원주로 가시게 되었다. 최 선생은 내일 아침 식사를 맛있게 차릴려고 장을 다 봐두었는데, 그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내 생각에는 어머니께서 원주로 가셔서 어머니 집에 주무시는 것이 더 편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이번 휴가는 내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뜻깊은 휴가였다.어머니에게 잘해 드린 것도 없고,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인데, 그 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휴가를 이렇게 보람있게 보내기는 난 생 처음이다. 이것 하나만 봐도 그 동안 얼마나 내 깜량이 작고 소견머리가 좁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참 어리석고 한심하게 살았던 것이다.
며칠 전에 우리 회원 구문님이 열린 이야기 방에 올린 다음과 같은 글이 생각난다.
"수욕정이 풍부지요 자욕량이 친부대라(나무는 고요하고저 하나 바람이 가만 놔두지 아니하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저 하나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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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참회(1)
--치매 어머니를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면서
송현(시인)
아,
어머니
어머니가 안에 계시는데
밖에서 문을 잠그는
저는
이제
어머니 아들도 아니고
불효 자식은 커녕
인간 말종도 아니고
사람새끼도 아닙니다.
어차피
아들을 못 알아보시니
옆짚 아저씨나
길가는 사람으로 생각하셔요.
그래야
어머니 마음도 편하실 거 아니겠어요.
열여섯에
손이 귀한 집에 시집와서
십여년 아들을 못 낳아
은진 송가네 대가 끊어지는 줄 알고
온 동네 사람들 다 걱정할 때
그 구박,
그 눈총에
꽃이 피면 뭘하고
새가 울면 뭘했겠습니까.
칼을 물고
아니면
목을 매고
죽을 때 죽더라도
그 잘난 고추 달린
아들 하나 낳아주고
죽어야겠다던 그 모진 마음을 이제사 저도 알겠습니다.
보잘것 없는 고추 하나 달고 나온
저를 낳았을 때
온 동네가 다 기뻐했댔으니
잔치 중에 그런 잔치가 어디있겠으며
경사 중에 그런 경사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 귀한 아들이
벼락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고
백발이 성성한 것만도 불효막심한데
어머니를 안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어머니 아들도 아니고
불효 자식은 커녕
인간 말종도 아니고
사람새끼도 아닙니다.
저는
이제
아예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www.songhyun.com 200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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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참회(2)
--치매 어머니를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집을 나서면서
송현(시인)
아,
어머니
이제
개도
소도
저를 비웃고
산천초목이
저를 비웃고
세상 사람들이
저를 비웃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가는 길은
길이 아닙니다.
하늘도
어제 그 하늘이 아니고
땅도
어제 그 땅이 아닙니다.
어차피
어머니 몸도 성치 않으시니
오늘부터 집에서
편안히 쉰다고 생각하셔요.
고향도 잊고
노인대학 동무들도 잊고
회갑이 넘은 큰딸
둘째딸 적정도 마시고
독일 사는 셋째달 걱정도 마시고
아무리 심심해도
창밖도 쳐다보지 마시고
시계는 절대로 보지 마셔요.
그래야
어머니 마음도 편하실 거 아니겠어요.
거실에 알맞은 소리로
종일 나오는 유선방송을 틀어놨으니
텔레비 앞에 놓아둔
박하사탕 드시면서
송해가 나오는 전국노래자랑 재방송도 보시고
웃으면 복이 와요 재방송도 보시고
천하장사 이만기 나오는 씨름 재방송도 보시면서
제가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 혼자 노셔야 해요.
딴 방송 보시려고 이것저것 만지다가
다시 테레비 못 켜실까 봐서
테이프로 채널을 아예 고정해놨어요.
전기세 아끼려고
절대로 테레비 끄지 말고
종일 켜 놓고 보셔요.
제게
이길 밖에 길이 없으니
이 방식에 익숙해져야
어머니도 편하고 저도 편할 거예요.
점심 때
배고프면
백발이 성성한 2대 독자 아들과 손녀딸이
개다리 상에 차려놓은
점심상을 챙겨 드셔요.
밥도 식고
국도 식었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밥은 아랫목에 넣어둘까 하다가
혹시 어머니가 못찾으실까 봐 상위에 올려뒀어요.
어머니
아들도 못 알아보는
지금 그 모습으로라도
하루라도 더 사셔야 해요.
그래야
제 불효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게요(2005.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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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