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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알 자지라 방송의 보도 양태 문제점(김정명) |
<겉으로 보기에 한국의 대응책은 일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것을 보도하는 알자지라 방송의 내용이 크게 차이가 났으며, 국내의 외교 혹은 안보팀은 아무런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난 6월 김선일씨 피랍사건은 언론 매체의 보도 양태가 한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고 빼앗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우쳐 주었다. 이미 많은 국내 아랍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알자지라 방송은 김선일씨 신상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을 반복해서 보도했기 때문이다. 특히 24시간의 유예 기간 동안 납치범들과 대화할 수 있었던 유일한 창구가 알자지라 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기사 한 마디는 천금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알자지라의 한국과 일본 피랍 사건 보도 양태 차이점
지난 4월 8일, 일본의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2명과 프리저널리스트 1명 등 3명이 팔루자 근처에서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무장세력들은 인질에 칼을 들이대는 위협적인 장면을 비디오로 담아 알자지라 TV에 우편으로 보내 방송하게 했다. 사건 보도 직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은 줄곧 "테러리스트의 비겁한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와 동시에 일본 정부는 막후에서 납치범들과의 접촉점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가와구치 요리코 일본 외상은 직접 알자지라 TV에 출연해 인질 석방을 호소했다. 한국의 대응도 일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건 보도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반기문 외무장관도 알자지라 TV에서 김선일씨의 구명을 촉구했다. 겉으로 보기에 한국의 대응책은 일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것을 보도하는 알자지라 방송의 내용이 크게 차이가 났으며, 국내의 외교 혹은 안보팀은 아무런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알자지라 방송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알자지라 넷' (aljazeera.net)에 실린 기사들을 검토해 보면, 한て일 피랍 사건을 다루는 보도 행태가 확연히 달랐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인 피랍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4월 9일 20시 28분 기사 타이틀을 보면, '일본 국민들, 납치범들에게 이라크 인질 석방 탄원' 이라고 적혀져 있다. 그리고 '피랍인 나호코 타카토氏, 혈액암에 걸린 어린이를 포옹하고 있다. 그녀는 그 어린이가 일본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계획 중이었었다'라는 설명이 곁들여진 사진을 함께 덧붙였다. 다시 말해, 알자지라는 일본인 피랍 사건을 다루는 첫 기사부터 납치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김선일氏 피랍 사건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그러한 조심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피랍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을 다루는 첫 기사는 '한국 정부, 파병 계획에 변동 없다'라고 간단히 소개하는 데 그쳤다. 반기문 외무 장관이 알자지라 TV에 출연한 직후에 올라온 6월 21일 11시 36분 기사를 보면 더욱 아찔하다. 난데없이 '한국 정부, 납치범들의 요구 조건 거부'가 버젓이 타이틀로 등장했다. 반기문 장관의 호소 내용은 기사 중간에 한줄 간신히 언급되고 있는데, 그나마 한국의 파병 고수 원칙이 강조되면서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피랍 사건을 추적해가는 후속 기사들에서도 한て일 양국간의 차이는 계속 되었다. 일본 피랍 사건을 다루는 4월 12일 기사는 피랍자 가족들이 눈물로 석방을 호소하며 알자지라 방송사에 서한을 전해왔다는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시민 15만 명이 석방촉구 서한에 서명을 했으며, 그들은 일본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다시 말해, 기사 내용에서 일본정부의 파병 고수 원칙은 거의 배제되었고 대신 일본 시민들의 파병 철회 요구만 집중 부각시킨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도 내용은 납치자들에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납치자들은 인질을 석방하면서 "정부가 철군을 결정하도록 일본 국민들에게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인질범들의 심경까지 변화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김선일씨 피랍 사건을 다루는 기사는 사건 발생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정부, 파병 계획 고수'라는 문구로만 일관했다. 김선일씨도 이라크에서 현지인들을 위해 많은 봉사활동을 했었으나, 이러한 미담들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김선일씨는 현지시각 6월 22일 새벽 3~4시경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6월 21일과 6월 22일 새벽 3시 사이의 알자지라 기사는 김선일씨 처리 문제를 두고 고심했을 납치범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 동안 알자지라 웹사이트에 올라온 기사 내용은 최악의 것이었다. 6월 21일 14시 51분 기사 타이틀을 보면, '한국 정부, 3000명 추가 파병 고수 방침'으로 적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일 19시 50분 기사에는 '한국 군대, 이라크 배치 준비 위해 훈련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기동훈련중인 한국군대의 사진이 첨부되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경우 알자지라는 김선일씨 구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면하기 힘들게 되었다.
대(對) 아랍 언론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
한て일간의 피랍 사건 보도 비교 사례에서도 보듯이, 알자지라 방송은 일본에게는 약이 되었지만 한국에게는 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한국 측이 알자지라를 비롯한 중동 언론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또 유력한 언론 인사들과의 연결점을 사전에 구축해 놓지 못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일본은 자위대를 파견하기 전부터 알자지라와 같은 현지 위성 방송을 통해 체계적인 홍보 활동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00명의 대규모 추가 파병을 앞둔 현시점에서, 한국은 대(對) 아랍 이미지 홍보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 졌다. 알자리라의 김선일씨 피랍 사건에 대한 보도 행태는 마땅히 비판 받아야하고 또한 반드시 시정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한국 측도 '알자지라 방송에 무조건 출현만하면 될 것이다'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었는가에 대해서는 반성해 보아야할 것이다.알자지라가 한국 측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길 바라기 이전에, 먼저 한국 측이 이 방송사의 기본 성향을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했다. 1991년 걸프전이 끝나자, 아랍 정부들은 CNN이 세계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했다. 그 이후 그들은 앞을 다투어 자국 소유의 범(汎) 아랍 위성 방송사들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1996년 카타르에서 시작한 알자지라는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개국 8년 만에 3천 5백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한 알자지라 방송은 아랍의 관점에서 아랍어로 방송한다. 서방 언론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당한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가들을 흔히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그들을 '순교자'라고 부른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알자지라는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서슴지 않고 표현한다. 그들이 이라크 주둔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면, 미국의 요청으로 참전하는 한국이 결코 달갑게 보일리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과의 접촉 이전에 조심스러운 사전 물밑 작업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보도 내용에 대해 집중적인 모니터링을 하면서 시정 요구를 하는 사후 작업도 필요했다. 김선일씨에 대한 보도 내용이 부실했던 것은 일차적으로 알자지라의 책임이겠지만, 한국 정부 측도 해외 언론기관을 전담하는 전문가 양성에 소홀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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