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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팔 계(界, 산스크리트어 dhatu) >
--온(蘊)ㆍ처(處)ㆍ계(界)--
십팔계에서 ‘계(界)’란 산스크리트어 다뚜(dhātu)를 번역한 것으로
종족의 뜻도 있고, 본생(本生)의 뜻도 있는데,
여기서는 육근, 육경, 육식의 18개가 동시 작용할 때를 계(界)라고 부른다.
풀이하자면 ‘확립된 원리’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이렇듯 ‘계(界)’란 특정한 사물이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원리란 말이다. 이것을 지님으로써 해당 사물은
다른 무엇과 뒤섞이지 않는 독특성을 발하게 된다.
물이 기름에 섞이지 않듯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서로 다른 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계(界)라는 것을 불교에서는
영역, 경지, 상황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세계라는 뜻도 있다.
일반적으로 세계라 하면 달이 있고, 태양이 빛나고, 별이 있고,
그 지구 속에 인간이 살고 있는 이런 것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불교에서 세계라는 것은 그것과 다르다.
그것은 한 부분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바깥 세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그려진 의식까지 합한 것이 불교적 세계관이다.
불교는 신(神)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초월적인 진리에서부터 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인식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실세계의 관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부처님 법은 목전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는 것,
즉 여실지견(如實知見),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데에 중점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감각기관이 외부세계와 만나 느끼게 되는 것이
자기 밖의 대상을 알게 되는 인식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물을 인지하는 단서인 느낌이 감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현실세계란 과연 어떤 구조와 성질을 가진 것인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유의 구성요소를 종류별로 모아서
온(蘊)ㆍ처(處)ㆍ계(界), 즉 5온(五蘊), 12처(十二處), 18계(十八界)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삼과(三科) 혹은 삼과법문(三科法門)이라 한다.
즉, 불교에서 온(蘊, 빠알리어 khandha)ㆍ처(處, āyatana)ㆍ
계(界, dhatu)를 삼과(三科)라 하며, 이 세상 일체를 분류하는 분류 단위이다.
즉, 불교에 있어서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의 셋은
다 같이 우리 인생을 중심으로 한 일체법, 일체만유의 분류법이다.
그 중에 기본이 오온이고, 그것을 확장한 것이 12처와 18계이다.
12처가 주로 물질적인 색법(色法)의 분류인데 비해
18계는 여기에 심법(心法)을 추가해 색(色)과 심(心) 양면을
다 포함하는 일체만유의 분류법이다.
불교에서는 일체법(一切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일체법이란 ‘일체의 존재’를 말한다.
불교가 목표로 하는 것은 오직 한가지뿐이다.
인간문제의 해결,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 고(苦)의 해결이다.
그런데 인간문제가 일체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해야 인간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풀 수 있다.
우리는 일체법의 참된 모습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고, 집착함으로써 그것이 변하거나 사라질 때
갈등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일체법을 분류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대상은 한 가지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질을 위주로 설명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정신을 위주로 할 수도 있다.
일체법을 이해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능력, 또는 수준에 따라
다른 설명들이 필요한 것이다.
초기경전에 나오는 일체법의 분류방법 가운데서
가장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것은 5온, 12처, 18계이다.
정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5온으로,
물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12처로,
또 정신과 물질 모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18계를 설해서 물질과 정신이 모두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결국 간략한 글을 좋아하고, 그것을 잘 이해하는
상근기 사람들을 위해 5온을 설했고, 간략하지도 번잡하지도 않은
중간의 글을 좋아하는 중근기 사람들을 위해 12처를 설했으며,
자세하게 이야기해야 비로소 이해하는 하근기 사람들을 위해서는
18계를 설했다.
• 5온(五蘊)은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薀)을 말한다.
이 오온으로써 일체법을 설명할 때는 5온이 개인 존재만이 아니라
일체의 만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일체법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5온 가운데서 색온(色蘊)은 물질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薀) 등
4온은 정신 일반(마음)을 가리킨다.
일체법은 이와 같은 5개의 요소가 결합해서
항상 변하면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 어디에도 실체적인 것이 없다.
결국 일체법은 무아이고 무실체적이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나의 존재’란 5개의 요소로 이루어 진 것,
그리고 그것은 실체적인 아(我)가 아니라는 것, 즉 무아(無我)라는 말이다.
5온을 설하는 대상인
물질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으로서 무상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정신은 실체적인 것으로서 영원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5온 이론에서는 정신적인 것 역시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물질 부분보다는 정신부분에 대한 설명을 훨씬 더 상세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오온은 ‘색’ 하나에 ‘수ㆍ상ㆍ행ㆍ식’ 4온으로 구성돼 있다.
5온은 상근기에 속하는 사람을 위한 설명이다.
상근기, 즉 법을 이해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5온에 대한 설명만 들어도 일체법이 실체적이 아니라는 것,
즉 무아(無我)임을 이해 할 수 있다.
• 12처(十二處)에서 처(處)를 구역(舊譯)에서는 ‘입(入)’이라고 했다.
이 말은 처(處, ayatana)란 ‘ayat’와 ‘ana’로 이루어져 있는데,
‘ayat’는 ‘들어온다’는 뜻이고, ‘ana’는 ‘것’과 ‘곳’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ayatana라는 말은
‘들어오는 곳[處]’ 또는 ‘들어오는 것[入]’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12처(處)라고도 하고, 12입(入)이라고도 한다.
12처란 눈[眼根], 귀[耳根], 코[鼻根], 혀[舌根], 몸[身根], 마음[意根] 등
6개의 감각기관[6根]과 그것에 상응하는 6개의 대상,
즉 빛깔과 형태[色境], 소리[聲境], 냄새[香境], 맛[味境],
닿는 촉감[觸境], 생각[法境]등을 합친 것이다.
보는 작용은 눈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듣는 작용은 귀를 통해서,
냄새 맡는 작용은 코를 통해서, 맛보는 작용은 혀를 통해서,
감촉은 몸(몸의 각 부위에 있는 피부)을 통해서,
생각은 마음[意]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들 눈, 귀, 코, 혀, 몸, 마음[眼耳鼻舌身意] 등을 6개의 기관이라는
의미에서 6근(根)이라 부르고, 6내처(六內處)라고도 한다.
6근의 ‘근’은 기관(器官)이라는 의미 이외에,
기관이 가지고 있는 기능까지를 포함한다. 안근이라고 해서
안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눈의 기능까지 포함한다.
6근에서 제6의 의근(意根)은 기능만 있지 실제로 구체적인 기관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식(意識)이 생기므로 일종의 기관으로 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의근(意根)을 뇌로 생각하는 경향이다.
이렇게 되면 육근을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뇌」라고 할 수도 있겠다.
6근에 상응하는 바깥 세계의 대상, 즉 빛깔과 형태, 소리,
냄새, 맛, 닿을 수 있는 것, 생각 등을 6경(六境)이라 부르고, 6외처(六外處)라고도 한다.
정신작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각기관과
거기에 상응하는 대상이 만나야 된다.
즉, 눈에는 빛깔 또는 형태, 귀에는 소리, 혀에는 맛,
몸[피부]에는 첩촉할 수 있는 그 무엇, 마음[意根]에는 생각[法],
이렇게 각각이 만나야 한다.
여기에서 법을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12처 가운데서 ‘11처(處)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현상’이 법이다.
그리하여 12처란, 6근과 6경, 즉 6내처와 6외처를 합친 것이다.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존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것을 요약해서 분류하면
주관계(主觀界)와 객관계(客觀界)로 나눌 수 있다.
주관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6근[6내처]이고,
객관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는 6경[6외처]이며, 이를 합친 것이 12처이다.
이와 같은 분류방법은 일체존재의 주체인
인간의 인식능력을 중심으로 구분해서 체계화한 것이다.
일체법에서 12처를 논하는 근본 목적은
역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를 밝히는데 있다.
특히 이것은 물질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물질이 실체라고 생각하거나,
물질 가운데 실체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설해지는 것이다.
즉,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12종의 요소에는 고정 불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12처에 의해서 주관계와 객관계를 모두 포섭하고,
이 모든 것들이 무상이고 무아라고 하는 것이다.
12처는 중근기(中根機), 즉 법을 이해하는 능력에 있어서
중간 수준에 속하는 사람을 위해 설하는 가르침이다.
• 18계(十八界)의 ‘계(界, dhatu)’는 구성요소, 또는 영역, 종류의 뜻이다.
18계란 12처 즉 6근과 6경에다가 6식(識)을 합친 것이다.
18계의 분류 방법은 근ㆍ경ㆍ식(根.境.識)의 3사화합(三事和合)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무엇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식기능을 가지고 있는 기관[根]과
인식대상[境]과 인식작용[識]의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눈을 통해서 빛깔이나 형상을 보기 때문에
그것을 식별하는 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을 안식(眼識)이라 한다.
예컨대, 눈(根)이 저기 오는 빨간 색 옷을 입은 대상(境)을 봤다고 하자,
그러면 아 여자다!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識).
즉 근ㆍ경ㆍ식이 만나 인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귀로서 소리를 듣기 때문에 이식(耳識),
코로서 냄새를 맡기 때문에 비식(鼻識),
몸으로 무엇을 접촉하기 때문에 신식(身識),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기 때문에 의식(意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6식(識)이다. 18계의 상호 관계를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6근> <6경> <6식>
1) 안계(眼界) ― 7) 색계(色界) ― 13) 안식계(眼識界)
2) 이계(耳界) ― 8) 성계(聲界) ― 14) 이식계(耳識界)
3) 비계(鼻界) ― 9) 향계(香界) ― 15) 비식계(鼻識界)
4) 설계(舌界) ― 10) 미계(味界) ― 16) 설식계(舌識界)
5) 신계(身界) ― 11) 촉계(觸界) ― 17) 신식계(身識界)
6) 의계(意界) ― 12) 법계(法界) ― 18) 의식계(意識界)
18계설에서는 일체의 존재를 이와 같은 18계의 요소로 분류했다.
이때는 12처의 경우와는 달리 6근과 6경을 합쳐서 객관계로 보고,
6식을 주관계로 본다. 즉, 12처설에서는 육근이 주관이요
육경이 객관이나 18계에서는 육식이 더해지므로
육식이 참다운 주관이 되고 육경과 육근은 함께 객관이 된다고 하겠다.
일체(세계)는 12처에 의해 생기는 것이며,
일체(세계)는 18계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며,
일체(세계)는 5온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18계에서는 일체존재를 12처에서보다 상세하게 분류한 것이다.
12처를 설명할 때 봤듯이 일체를 구성하고 있는
12가지 요소 모두가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요소들이 만나서 생기게 된 식(識)
역시 실체적인 것일 수가 없다.
객관세계의 모든 것, 즉 물질적인 것도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주관세계의 것, 즉 정신적인 것도 실체가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18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체법은 물질적인 것에서도,
그리고 정신적인 것에서도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18계를 설할 대상자는 물질과 정신에 모두 어두운 사람이다.
이와 같은 사람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두를
실체적이고 영원하다고 믿는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근기(下根機)이다.
18계설은 이와 같은 사람을 위해 물질과 정신의 참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그것에 대한 집착을 끊도록 하기 위함이다.
18계설은 하근기,
즉 법을 이해하는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을 위한 가르침이다.
십팔계(十八界)란 여섯의 감각기관(六根)과 여섯의 감각대상(六境)
그리고 이들을 조건으로 발생하는 여섯 식(六識)을 내용으로 한다.
즉,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眼耳鼻舌身意)의 6근(根)과
객관을 이루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境)을
합한 12처에다가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의식(意識)이라는 인식행위인 6식(識)을 더한 것이 18계이다.
그리고 이들 18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은
독자적인 경계를 유지하면서 경험세계를 발생시킨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세상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에 의해 그렇게 드러난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세상이 나에게 드러나는 가’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이 연기법이고, 그 연기법을 설명하는
다양한 방법[방편] 중 하나가 18계(十八界)이다.
우리가 세상을 아는 순간, 그 세상은 나에 의해 이해된 세상이다.
저 밖에 있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에게 물로 보이는 것이 물고기에게는 집과 길로 보이고,
아귀에게는 피고름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보이는 것은
지난 자기 삶 속에서 형성된 각각의 선입견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수건으로 보였던 것이
누구에게는 행주나 걸레로 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부처 눈에는 부처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인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이 세상이 18계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18계들이 어떻게 엮어지느냐에 따라 각기 인식하는 게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보자.
십팔계에서 ‘계(界)’란 빠알리어 dhatu를 번역한 말로서,
여기서는 ‘확립된 원리’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중생들은 계에 따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저열한 신념을 가진 중생들은
저열한 신념을 가진 자들끼리 어울리고
좋은 신념을 가진 중생들은
좋은 신념을 가진 중생들과 함께 모이고
함께 어울린다.” 좌파는 좌파끼리 모이고,
똥개는 똥개끼리 모인다는 말이다.
오온이 인간 내지 사물을 구성하는 골격이며,
이는 나아가 정신계와 물질계로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세계의 기반이 된다.
말하자면 인간을 포함한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오온설이다.
오온은 불교에서 생멸, 변화하는 모든 것,
즉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다섯 요소를 말한다.
이것들을 축약하면 육체(물질-色)와 정신(마음-受ㆍ想ㆍ行ㆍ識)을
구분할 수 있다.
색온은 육체를 말하고,
나머지 수온(느낌, 지각), 상온(인식, 표상, 생각),
행온(행동욕구, 의지), 식온(마음, 의식)은 정신(마음)이다.
사람이야말로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중생이다.
그리고 12처(處)란 불교의 여러 일체법 분류체계
또는 분석방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12처설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이며,
우주의 모든 존재에 대한 일종의 분류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존재들은 주관과 객관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관을 이루는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眼耳鼻舌身意)의 6근(根)과
객관을 이루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境)을
합한 것이 12처이다.
그리하여 일체(一切)는 12처에 포섭된다는 말이다.
모든 존재현상 중 12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없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안에 있는 여섯 가지 업처(業處), 밖에 있는 여섯 가지 없처,
이외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의 모두(일체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잡아함경>
위에서도 말했듯이,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의 셋은
다 같이 인간계뿐만 아니라 일체법, 일체만유의 분류법이다.
18계란 십이처에 인식작용의 주체인 육식을 포함한 것이다.
실로 우리의 모든 심적 활동은 감각기관과 인식대상,
그리고 인식작용 세 가지가 합쳐졌을 때[삼사화합(三事和合)]에만 일어난다.
만일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결코 우리의 심적 활동은 일어날 수가 없다.
안으로 여섯, 밖으로 여섯, 그것을 취한 중간의 의식으로 여섯,
그것을 합친 것이 십팔 세계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바깥 세계만 세계가 아니라
마음속에 그려진 것(의식)까지 합한 것이 불교적 관점의 세계관이다.
어떤 사람이 무지개를 보고, 그 무지개의 여러 가지 색을 알아본다고 하자.
무지개의 여러 가지 색은 알아보면서도 무지개를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의 안식계(眼識界) 속에는
여러 가지 색을 분별할 수 있는 안식은 있지만,
의식계 속에 무지개라는 이름의 사물을 분별 할 수 있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무지개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무지개를 분별하지 못하다가 누군가가 그 이름을 알려주거나
책 등의 자료를 찾아보고 스스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
이때 비로소 무지개를 분별해 알아 볼 수 있는 의식이 생겨서
의식계 속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18계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우리의 삶에 의해,
즉 업(業)에 의해 형성돼, 같은 종류끼리 계역(界域)을 형성하고 있는
의식의 집단이다.
그런데 이 18계는 구체적인 인연이 주어지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상호작용[삼사화합]을 해야 구체적인 인식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씩은 나타나지 않고 반드시 셋이 모여서 나타난다.
삼사화합(三事和合)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이는 것이 없으면 보는 놈이 나타나지 않고,
보는 놈이 없으면 보이는 것이 나타나지 않으며,
보는 놈과 보이는 것이 없으면 보이는 것을
분별하는 의식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이 나타나는 계기는 행위, 즉 업이다.
어떤 욕탐을 가지고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보는 나(주관)’, ‘보이는 사물(대상)’,
‘이것을 분별하는 의식’이 나타나 함께 화합한다[삼사화합].
즉, 「온(蘊). 처(處). 계(界)」 셋의 부딪침이 촉(觸)이다.
그리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과 지각(想)과 생각(思)이 생긴다.
우리가 ‘있다, 즉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촉을 인연으로 해서,
즉 업에 의해 형성된 ‘18계’가 화합해서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면, 책을 놓고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상(床)을 보면, 상은 책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욕구가 다르면 다른 인식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음식을 놓고 먹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보면
동일한 상이 밥상으로 인식되고,
마작(麻雀)을 하려는 의도로 보면 그 상은 마작상이 된다.
좀 더 살펴보자.
예를 들어, 귀(耳)로 음악을 듣고 있다고 할 때,
그냥 듣기만 한다면 귀는 이근(耳根)이요, 소리는 성진(聲塵)인데,
거기 의식이 작용을 하면, 이 음악소리는 클래식이다,
이 소리는 판소리다, 아니면 흥타령이다 하고 분별하게 된다.
이러한 분별이 내 잠재의식에 익힌 습관에 따라
좋다, 나쁘다 하는 분별식을 만들고 나아가서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에 따른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이러한 육식(六識)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육근(六根), 육진(六塵-六境), 육식(六識)을 합해서 18계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세계가 이 18계 안에 포함된다.
그래서 18계를 일체만유의 분류법이라 하고,
불교의 세계관 내지 우주관이라 한다.
그러면 18계에 대한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자.
“눈으로 사물을 대하게 되면 사물의 형체를 분별하는 안식(眼識)이 생기며,
귀로 소리를 듣게 되면 그 소리를 분별하는 이식(耳識)이 생기고,
코로 냄새를 맡게 되면 그 냄새를 분별하는 비식(鼻識)이 생긴다.
혀가 맛을 대하게 되면 그 맛을 분별하는 설식(舌識)이 생기며,
피부가 접촉을 하게 되면 촉감을 분별하는 신식(身識)이 생긴다.
마음(意)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그것을 분별하는 의식(意識)이 생긴다.
이처럼 우리의 내적 감각기관[六根]이 외적 대상[六境]을 만날 때
여섯 가지 분별[六識]이 생기는데[도합 18계],
이때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감각이 일어난다.“
― <잡아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18계는 경험세계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해 상정된 원리이다.
이것을 이루는 개개의 요소들은 변화하지 않는
근원적 실재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모두 무상한 것이고, 경계해야 하고 버려야 할 대상이다.
육근이 실체가 아닌 것처럼 육경도 실체가 아니다.
동시에 육식도 실체가 아니다.
결국 18계설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참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 대한 집착을 끊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어떠한 온(蘊)ㆍ처(處)ㆍ계(界)이든 그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그와 같이 헤아리지 않는 자는 세상에 대해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므로 동요하지 않는다.
동요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완전한 열반에 든다.”고 했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