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예순 살이라도 청춘의 이름으로 살 수 있네.
“자각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표를 가르쳐 주고 길을 밝혀 준다.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해서 살아가야 하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살아가는 이치가 즐겁다. 환희에 찬 내 마음이
일체와 더불어 자유스럽게 살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떤 조건이나 이유도 없이
오직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아름다운 향기로 모두를 감싸준다.
고로 자각을 아는 삶은 고(苦)가 아니다.”
어떤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미 빛 볼, 붉은 입술, 강인한 육신을 뜻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뜻하나니. …./
때로는 스무 살의 청년보다 예순 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
그렇다. 인생의 깊은 샘에서 끊임없이 에너지가 솟아오른다면
예순 살 노인일지라도 스무 살 청년보다 더 활기찬 삶,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
시인의 말처럼 청춘이란
연령의 청춘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청춘인 것이다.
따라서 스무 살의 노인이 있는가 하면 예순 살의 청년도 있을 수 있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는다.
고로 어떤 생명체든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과정을 밟는다.
심지어 모든 사회제도나 질서, 문화적 관습들도 그런 과정에 맞춰져 있다.
때로는 꽉 쫘 여진 틀처럼 그런 과정이 역으로 우리의 삶을 구속한다.
우리는 속절없이 자신의 삶을 그 과정에 맞게 채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느 새 삶이란 다 그런 것이라며 체념한다.
육신의 나이테가 뭐 길래 거기에 얽매여야 한단 말인가?
늘 천진동자(天眞童子)로 살면 안 되는 가?
만년청춘의 역동적인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치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시인은 이렇게 단언한다.
‘그대가 기개를 잃고, 그대의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라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타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인생이라는 게임에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다.
그 둘은 이상하게도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다닌다.
마치 우리들과 시소타기를 즐기기라도 하려는 듯
우리들의 삶을 거기에 태우고선 오르락내리락 한다.
즐거움이 느는가 하면 그 속에서 괴로움이 싹 터 자라나고
괴로움이 커지는가 하면 다시 즐거운 일이 생겨
그 괴로움의 쓴 맛을 잊게 한다.
사람에 따라서 혹은 때에 따라서
시소가 한 쪽으로 오래 기울기도 하지만
인생은 결국 고락의 시소게임이다.
이왕 한 철 사는 인생인데 늘 청춘으로 살 수는 없을까.
늘 즐거운 삶을 이어갈 수는 없을까.
그 방법은, 그 해답은 자각 속에 있다.
자각은 우리가 왜 사는지 가르쳐 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나아가서 청춘으로서 길게 사는 법,
괴로움을 멀리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제시해 준다.
자각 속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청춘의 샘이 있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줄지 않는 즐거움의 샘이 있다.
바로 마음의 도리이다.
그러나 늘 청년의 에너지가 샘솟게 하는 일,
즐거움의 샘이 고갈되지 않게 하는 일만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각자의 마음먹기.
육신의 나이테를 피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의 나이테는 자신들이 하기 나름이다.
육신엔 정년이 있고 노년기가 있겠지만
마음엔 정해진 정년도 없고 노년기도 없다.
시인의 말처럼 여든 살이 되도록 청년정신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낙관주의, 자신감, 긍정적 사고…,
그렇게 한 생각 돌리는 거기에서 청년의 샘은 솟아오른다.
괴로움의 경계에 부딪혔을 때 비관적인 생각으로, 냉소적인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면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반면에 실망과 공포와 근심을 떨쳐버리고 신념과 기개를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도전의식으로 경계에 맞서면
삶의 색깔은 서서히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
마음먹기. 佛法은 그 속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샘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자각은 모든 고통 받는 자신을 감싸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거기엔 언제나 아름다움과 희망과 기쁨이 있고
용기와 힘을 주는 메시지가 있다.
고로 자신을 아는 삶은 苦가 아니다.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