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환시인의 “호남문화의 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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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파 선생의 작품모음 ©
| | 처서가 지나고 백로의 절기를 맞는 지금, 장마도 아닌 때에 폭우가 쏟아진다. 빗속에 바라보는 산천은 짙은 푸르름을 간직하고 아늑한 물안개 꽃피어 오르는 듯, 시인들의 가슴을 설레임으로 물들여 버린다.
가슴이 따뜻한 대 담자 일행은 정소파 시인의 삶과 시의 이력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정소파 선생은 1929년 매일신보에 “잃어진 시”를 발표하고 1930년 개벽지에 “별건곤別乾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여 1930년대부터 1940대 일제치하에서 중앙신문과 잡지책인 “어린이, 소년, 새 벗, 학생, 신천지, 사해공론 ,신인문학, 신동아, 신여성, 월간문예” 등에 시를 발표하였다.
1942년에는 동인지 “설창雪窓”을 간행하고 1947년 동광신문 과 1948년 조선중보 신춘문예, 19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설매사”로 당선, 당년 정부주최(범문단 汎文壇)제1회 전국백일장대회본선에서 장원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한다.
1936년부터 1951년까지 전남도청등에서 16년 동안 사회경력을 쌓았고 1951년부터 1986년까지 교직생활을 하였다.
대담자 일행은 시상과 시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선생님의 저서를 감상하는 기회를 얻는다. 정 소파 선생의 시혼을 찾아 길을 재촉하는 필자는 필자만의 고집과 선생의 자서自書로 표현한 시의 세계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조개 줍는 노파老婆
정 소파
늦가을 낙조落照 어슬피 떠는
쓰러져 가는 한칸 모옥茅屋이 있는 포변浦邊.
백발白髮 성성히 저녁 햇빛 부우여ㅎ고
힘줄 울둑 불둑-
거칠은 손등에 흘러간 세월歲月 ...... .
구겨진 주름살로 누벼진 얼굴
빙그레 웃음 짓는 보살菩薩같은 할머니.
칼들락 날락 날랜 솜씨에
산더미로 쌓여 가는 조개껍질들.....
바람은 차가이 노골老骨에 사무쳐-
캐어 다간 까고
---- 18년이 이내 흘러갔건만
풀리쟎는 生活에 머리는 세어.....
밀려왔단 물러가고, 갔단 다시오는,
밀물과 썰물에 조개는 낳고..... .
조개는 자라고..............
<1949년 2월10일“ 동광신문”소재.>
1950년대는 6,25의 비극적 골육상쟁으로 폭음과 함께 우리에게 역사의 체험을 강요하여 의식의 혁명과 자각을 요청했던 시기다.
이에 따라 문학인들은 새로운 의식을 통한 체험감각의 소유로 현실을 과감히 표출시켰다.
1955년 을미년(단기 4288년)12월10일, 정소파선생의 나이43세에 첫 시집 “마을”을 출판한다. “조개 줍는 노파”는 첫 시집인 “마을“ 첫 장에 나오는 시다.
정소파시인은 “ 25시”란 시간을 초월한 감각과 의식 속에 험난한 가시밭길을 거닐며 시대를 읽었다. ‘뒤돌아 볼 사이도 없이 줄달음쳐 걸어온 것이 꽤 멀리 온 것 같다. 기다릴 사람도 없는 외로운 길인지라 쓸쓸하기 그지없고 말벗 없이 걷는 길은 가장 멀기만 했다.
어느새 산그늘이 접어들고 히뜩 히뜩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뉘엇 뉘엇 서산을 넘는 해가 초라한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한다. 또다시 쉬지 말고 걸어야겠다. 발이 부르트고 가슴에 사랑의 불길이 사윌 때까지.... “
정소파시인은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시를 쓰고자했다. 그리고 일제 치하에서 억압과 설움을 받고 쓴잔을 깨물던 겨레의 애달픔을 노래한다. 기쁨과 슬픔이 어리고 서린 두메 마을! 이 마을에서 잔뼈가 구리어진 몸이 掘람의 노래를 불러 장래 할 아름다운 마을의 풍속을 이어가자는 것과 우리가 살아가는 바탕이 마을로부터 연유한다는 뜻으로 시집 이름을 “마을”로 하였다 시인은 말한다.
햇 빛 어둠 살라
동 녘이 밝아 왔다.
하늘과 땅이 안고
몸부림 쳐 울던 그 날.
깃발이 내를 이루고 , 골목마다
넘쳤었다.
막힌 강물은 흐르고,
메마른 산 우쭐댔다.
어마 , 아바 사랑 속에
오붓히들 살자 했다.
겨레여!
그날의 기쁨, 꿈 이였나.....
생시였나..... .
남은 북을 부르고
북은 또한 남을 불러---
그리고, 서린情을
풀길 없어 땅 쳐 울다.
골 백번
이 날을 맞은들 무삼 기쁨
될 리야......
손 떨린 형제 자매.....
흐느낌이 들리는 듯.
애끓는 오늘 이 사연
웃어볼가, 울어 볼가.
굳 닫힌
쇠문을 부시고, 열고 보자!
새 하늘.
- 열고보자, 새 하늘(다시 8.15에 부치는 노래)/ 정소파
1957년12월에 발간한 “산창일기 山窓日記”시조집에 나온 시다.
잠시 머물다 가는 뜬 구름 같은 공허空虛한 인생이라 하더라도 이른 아침햇살에 슬어지는 아침 이슬에 비기랴! 여사(旅舍)에 드새는 나그네의 이름으로 세상에 낫다 잠간 쉬어간다 하겠거니와 그러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허전한 생애일지라도 먼 훗날에 그대와 나의 못 잊을 회상을 위하여 무엔가 하나 남겨두고 떠나고 싶다.는 심정으로 산창일기를 발간한다.
정소파시인은 1930년과 1940년 사이를 제2의 근대시조시대로 볼 때 현대시조의 출발기점에 근대 시조시인으로 현대 시조문학을 개척하고 부흥하는데 일익을 담당한다.
산창일기를 보면 시조의 배열과 배행을 현대시의 연 가름으로 하여 시각적으로 새로운 문학적 감각을 시도한 작품으로 현대 시조의 시맥을 만든 작품이라고 필자만의 생각을 피력해본다. 시조는 천여 년을 내려온 우리의 고유의 문학이요, 유일한 민족문학이다.
1950년 초기에 정소파 선생은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순수한 본격문학으로 참신하고 고아한 그릇에 향기 높은 정수만을 담아 볼 것인가, 당시 시조문학 사조의 흐름에 의문을 던지며 쓸어져가는 시조문학의 부흥에 힘쓰면서 아동문학에도 관심을 갖는다.
유리창 캔버스
정 소 파
네모꼴 유리창에 비쳐 오는 것.
흰 물결 남실대는 넓은 봄 바다.
조으는 고깃배 흰 돛이 하나,
아득한 외딴 섬 검은 점 하나.
파도가 밀려 와선 차알싹 찰싹........
밀려 왔단 넘어지는 하이얀 선 둘.
물결 이랑 넘나드는 갈매기 한 쌍.
춤추며 동그라미 하나 둘 셋.
바다가 내다뵈는 유리창 위에
저절로 그려지는 봄 바다 그림.
- 1958.4.13일 조선일보/윤 석중 선생이 엮은 한국 동요 동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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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파선생의 시화작품 ©
| | 육당六堂 최 남선 선생과 춘원春園이광수 선생이 우리나라의 새 문학의 길을 터준 이후
소파 방정환 선생이 “ 어린이” 라는 순수아동 문학잡지를 내면서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이 동시나 동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아동문학의 역사는 80여년이 됬다.
새로운 아동 문학의 형태로 동요나 동시를 써서 아동문학발전에 이바지한 石童 윤 석중 선생이 1964년에 엮은 한국 동요동시집에 반달의 윤극영, 꼬부랑 할머니의 최영애, 주요한의 “꽃밭”, 유치한의 “메아리”, 박두진의 “잠자리”, 조지훈의 “달밤”, 피천득의 “아가의 슬픔” 과 정소파 선생의 “유리창 캔버스”란 작품이 함께 담겨져 있다. 선생은 어린이에 지대한 관심과 함께 윤석중 선생과의 교분을 통해 아동문학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고 1971년 34편의 작품이 실린 “정소파 동요 동시선”을 발표한다. 선생은 무등산 설월당에서 “ 늙으면 늙을수록 젊어지는 마음 , 이는 곧 앳된 어린이 마음이다. 맨 처음 동요를 짓기 시작한 것은 열다섯 살 때다. 나는 노래 속에서 크고, 노래 속에서 자라 나의 마음은 늙을수록 젊어지고 젊을수록 점점 더 어린이다워 질 것이다.” 그렇다. 지금, 96세의 나이에 젊음이 기득함은 이런 동심의 세계에서 한 세기를 살아 왔음이리라.
필자와 대담자 일행은 선생의 작품세계로 들어가 심연의 자세를 통해 정소파선생의 시혼에 빠져든다.
헐벗는 겨레의 안타까운 신변에 봄빛이 감돌아 주린 생령들이 배를 두둘겨 살 수 있는 빝가는 노래가 한결 듣고 싶은 마음 사뭇간절 할 뿐이외다. - 1961.3 정소파/봄빛에 부치는-
“오, 내 조국 산하여! 이르는 곳마다 바위요, 물이요, 매부리들이거니, 어찌 이 땅에 태어남이 복되지 않으리오, 떠나가기 싫은 발길을 어디로 옮기랴.”
-1964.8.27.정소파 作 /시인의 산하에서-
1966년 수필집에 64편의 작품을 실어 “시인의 산하”를 발표하고 1981년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 시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풀기위해 남은 상념의 감흥을 수필집 “세월 가는 그림자”와 1995년 “그리움과 사랑의 앙금”이라는 수필집을 발간한다.
문학은 만인의 사랑 속에서 꽃을 피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창작되고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특히 수필은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의 정신이 “나”라는 혹은 “우리”라는 화자로부터 향이나오는 개성이 강한 삶의 바탕을 전개한 글이라 필자는 말하고 싶다.
피천득선생은 그의 작품“수필”에서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라 했다.
필자는 정소파선생의 수필집 “ 시인의 산하”를 음미하며 선생의 조국애와 조국강산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하는 숭고한 큰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시상이 떠오르면 일상의 공총한 생활 속에서도 시상과 영감이 나를 정갈하게 만들고 손을 씻고 향불 없는 책상에 앉는다는 마지막 남은 민족의 대시인 정소파.! 선생의 작품들은 고결한 산란의 내음이 감돌고 청초한 사향의 풋풋한 향기가 난다. 시심이 높은 정신의 소산으로 몸의 단아함 또한 난과 청자에 비하겠는가?
두 개의 하늘 밑엔
아예 살 수 없는 것이-
설령, 그것 있고 보면
둘 다 함께 죽는 것을......
- 하늘은 하나만 두자,
네가 물러 서거라.
해와 달도 각기하나
별은 총총 반짝인다.
맞서면 싸움이라,
좋을 건 무엇인가
손잡아 얽히어 살자,
두리둥~~·둥~~ 춤추자.
사랑은 사랑으로
원수 본디 없는 것이--
참 좆아 따라오라,
그름 깨쳐 따라오라.
한 하늘 밑에서 우리
의초로이 살잔다.
- 1958.3.8 두 개의 하늘밑( 슬픈 조국에 부쳐-)/정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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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을 바라보며 사색하고 있는 시인 정소파 선생 ©
| | 위 시는 시집 “슬픈 조각달”에 나오는 시다. 시조집에 나오는 작품을 보면 조국과 민족에 부치는 불안의식에 주어진 기도를 하는 심정이요, 인간 부재의 부조리로 인한 실존 철학의 현실을 척결하고 역겨운 현실의 대결과 저항을 노래했으며 인간과의 영원한 정회와 조국산하를 이야기하면서 풍물에 대한 서정을 노래한다.1979년 정소파 시인은 시집 “잔조殘照”를 발표하면서 시조집이란 제호를 거부한다.
“나는 즐겨 자유시를 써오다 잠시 시조로 바꾸고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전반의 차원 에서도 모름지기 시도해 봄직하여 몇 편의 자유시를 제외한 현대 시적인 시조이기에 짐짓 시조집이란 제호를 붙이지 않는다.” 이 세상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시를 써야 참 시인이다는 선생의 마음을 한 켠에서 읽을 수 있었다.
필자는 정소파 선생님과의 대담을 통해 선생의 삶속에 비춰진 시혼의 세계는 고독과 외로움속에 순백하고 자상한 인품이 흐르고 강직하며 한국적인 정감이 듬뿍 담겨진 고도의 예술적 시어들과 시상이 도인을 훌쩍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렀다 생각한다.
정소파시인은 외노에 시달리며 온갖 수모와 굴욕과 치분으로 뒤 덥힌 36년의 모진 질곡 속에 항거의 횃불을 들고 학생독립운동의 대열에서 독립을 외쳤고 6.25를 지켜보며 동족상잔의 조국과 민족의 슬픔을 함께하며 통한의 절규 속에 피 눈물을 흘렸고 4.19. 5.16. 5.18등 학생 민주화 운동을 보며 한 세기를 살아온 역사의 증인으로 문예사조에 입각하여 세계조류에 순응하기위한 자유시에의 동경 과 표출로 민족 문학의 현대화 작업에 공헌하였다.
韶坡 정현민시인! 선생은 마지막 남은 우리나라의 민족 시인으로 생애를 통해 습작을 제외하고도 시와 수필, 동요, 동시, 소설 등 많은 대작을 남겼다. 그는 참 교육자요. 참문학인으로 생을 살아온 우리의 대 스승이다. 시 창작 속에 한 세기를 살아온 소파 정현민 선생이 현대 문학사에 쌓아 올린 공적은 후학들이 높이 받들고 기려야 한다.
청자 빛 하늘에 흰 구름
筆鋒으로 천하를 노닐다
서산에 지는 해 바라보며
솔가지 바람 되어 흩어지니,
松香 되어 날리운 魂.
萬古에 사르리랏다.
- 정소파선생을뵈오며 /春崗 나일환 -
대담자 일행은 선생의 높은 문학적 가치와 인품을 뒤로하고 필자는 정성어린 한편의 시를 올리며 아쉬운 마음으로 종결을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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