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커플
서울시 은평구 용암동에 사는 강혜(34세)씨는 7년전에 한국인 김현동(40세)씨와 결혼하였다. 강혜씨의 친구들뿐만아니라 당지 한국인들까지 그들을 두고 “원앙커플”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고향이 화룡인 강혜씨는 몇년전에 청도의 한국독자기업에서 일할 때 회사컴퓨터디자인 부장인 김현동씨와 면목을 익혀 사귀면서 2년간 자유련애끝에 결혼하였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얼굴을 붉힌적 없이 행복하게 생활하고있다고 했다.
“여느 한국남자들과 판이하게 다르지요.가무처리에서 사소한 일에는 전혀 관계치 않고 저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주지요.월급통장도 몽땅 저에게 맡기지요.제가 고생한다고 남새며 찬거리 같은걸 사는건 모두 남편의 몫이지요.거리에 나갈 때도 꼭 자가용으로 태워준답니다.”
남편에 대한 강혜씨의 자랑은 끝이 없었다.첫 해산에 오누이 쌍둥이를 낳을 때 출혈이 심하였는데 남편은 꼬박 일주일간 곁에서 미음을 먹이면서 간병하였다며 정찬 눈매로 남편을 쳐다보았다.올 8월 한달간 귀국하여 부모집에서 휴식하는 동안 남편은 하루에도 아침,저녁 두번씩 전화를 하고 꼭 강혜씨와 아들딸의 목소리를 듣고야 시름을 놓았다고 한다.그래도 너무 그리워 회사에서 일주일간 말미를 맡고 중국으로 날아왔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강헤씨가 인천공항에 내리자 마중나온 남편은 안해와 아이들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강혜씬 한국녀성들과 전혀 달라요.순수하고 예쁘고 일 잘하고 센스가 있고 례절이 바르지요.게다가 떡판같은 쌍둥이 오누이를 부모님께 척 안겨드렸지요.”
남편 김현동씨는 안해가 시부모님께 어찌나 잘해주는지 동네에서는 “효부 강혜”라면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든다면서 래세에 다시 장가를 간다 해도 또다시 강혜씨를 선택할것이라고 했다.
찰떡궁합과 넘지 못할 벽
3년전에 한국인 강모(46세)씨에게 시집간 김경옥(34세)씨는 결혼전 남편과 함께 “쪽집게”집에 가서 점을 보았는데 같은 룡띠여서 천생배필이고 남편이 부친처럼 자상히 대해주고 사랑해줄것이라며 찰떡궁합이라고 하길래 결혼을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딱 맞는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 강남구에서 세무사를 경영하는 남편은 거부로 불릴만큼 잘사는 사람이지만 안해와 언제 한번 시뚝할 때가 없고 먹을것,입을것을 손수 챙겨준다고 한다. 지어 아이의 기저귀와 그녀가 좋아하는 돼지족발, 순대 같은것도 직접 차를 몰고 먼 가게에 가서 사오는 스타일이라고 한다.그녀는 여태껏 시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며 집 랭장고에는 항상 먹을것이 가득하다고 한다. 남편은 또 중국에 있는 장인,장모를 초청하여 손수 명산대천을 관광시키는 등 지극한 효성도 보이군 한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에 대한 편견과 생활습성의 차이로 하여 부부간에 갈등이 생길때도 있다고 한다.
한민족이지만 체제와 리념이 다른 두 나라에서 살아오다보니 마음속의 장벽이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고있다고 그녀는 말했다.실생활에서 웬만한것은 모두 양보할수 있지만 중국과 조선족을 업신여기는데 대하여서는 절대 참을수 없다고 했다. 운동선수출신인 그녀는 중국팀과 한국팀이 경기할 때면 언제나 중국팀을 응원한다면서 남편과의 혼인운세는 찰떡궁합이지만 리념적으로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것 같다며 유감을 표했다.
6년 동안 매맞으며 산 조선족녀인
동대문구 제기동에 사는 김소연(45세)씨는 2004년에 한국인 현모(56세)씨한테 시집갔다. 처음에 맞선을 볼 때 자칭 건축회사 사장이라고 하던 현씨가 막상 시집가서 보니 월세집에 살고 노가다판에서 허드레일이나 하면서 그럭저럭 허송세월하는 알건달이나 다름없었다.게다가 계집질과 도박에 이골이 나고 술만 마시면 다른 남자를 꼬신다며 안해를 매질했다. 어느 한번은 집부근에서 남편의 딱친구를 만나 잠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귀가하던 남편의 눈에 띄였다. 집에 들어온 남편은 이제는 자기친구까지 꼬시느냐며 다짜고짜 옷을 홀랑 벗기고 바줄로 몸을 묶어놓고는 사정없이 매질을 했다.한시간 남짓이 때리던 남편은 맥이 진했는지 술을 병채로 꿀꺽꿀꺽 들이켜더니 그녀더러 현관에 3시간 동안 서있으라는 벌을 주고는 쿨쿨 잠을 잤다.
그녀는 고통과 실망때문에 여러번이나 가출을 했는데 번마다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거나 깡패를 동원하여 용케도 찾아냈다.찾은 다음에는 안해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지만 그때뿐이라고 한다.
더는 참을수 없게 된 그녀는 지금 한 인권변호사의 도움으로 리혼소송을 준비하고있었다.
연변일보 리철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