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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3부 5
니즈니에서 페름까지 오는 동안 네흘류도프는 단 두 번밖에 카튜샤를 만나지 못했다. 한 번은 니즈니에서 죄수들이 철망을 두른 나룻배에 타기전이었고, 두 번째는 페름의 감옥 사무실에서였다. 그는 두 번 다 면회 때마다 카튜샤가 무엇을 숨기려는 듯한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느꼈다. 기분은 어떻고 필요한 것은 없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그녀는 뭔가 피하는 듯한 당황한 태도로, 전에도 가끔 보이던 적의와 비난이 섞인 듯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녀의 이 어두운 기분은 당시 그녀가 괴로워하던 남자들의 짓궂은 지분덕거림에서 비롯된 일에 지나지 않았으나, 네흘류도프에겐 고통의 실마리가 되었다. 네흘류도프는 여행을 하는 동안 괴로운 퇴폐적 환경에 영향을 받은 그녀가,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던 때처럼 자포자기에 빠져버려 또다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마구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지나 않을까 근심이 되었다. 그러나 여행의 처음 한동안은 쭉 면회할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그는 무엇 하나 힘이 되어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정치범 반으로 옮겨놓은 뒤에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불안이 기우였음을 확신했을뿐더러, 오히려 반대로 오래전부터 그토록 안타까이 그녀에게 바라던 내적 변화가 면회 횟수를 더함에 따라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이 눈에 뜨이게 되었다. 톰스크에서의 첫 면회 때 그녀는 다시 출발 전과 같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지도 않거니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기쁜 듯이 순진하게 그를 맞았고, 자기를 위해 해준 일에 대해서, 특히 현재 함께 있는 사람들 쪽으로 옮겨진 데 대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숙박소에서 숙박소로 전전하는 두 달 동안의 행군이 있은 뒤로 그녀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는 외모에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그녀는 좀 여위고 햇볕에 타서 다소 늙어 보이기까지 했다. 관자놀이와 입가에는 잔주름이 잡히고 머리카락도 이마로 늘어뜨리지 않고 수건으로 단정히 묶었으며, 복장에도, 머리 모양에도, 태도에도 이미 이전 같은 음란한 빛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 내면에서 일어난,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이 변화가 네흘류도프의 마음속에 즐거운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그는 카튜샤에게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 감정은 최초의 시적인 연정과도 달랐고, 그 후에 경험한 육감적인 연정과는 더욱 달랐으며, 또 재판 후에 그녀와 결혼하려고 결심했을 때의 자존심과 결합된 의무감과도 아무 공통점이 없었다. 그 감정은 동정과 감동이 뒤섞인 매우 단순한 감정이었다. 그는 이 감정을 감옥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와, 그 후 병원을 방문한 뒤에 혐오를 억누르고 조수와의 스캔들을 용서해주었을 때(이 스캔들이 사실무근이고 부당하다는 것은 뒤에 알았다) 새로운 힘으로 경험했다. 지금의 감정도 그 감정과 똑같았지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의 감정은 일시적이었음에 비해 지금의 감정은 영구불변하다는 것ㅇ었다. 이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전체 기분으로서 그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오직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동정과 애정의 감정이었다.
이 감정은 마치 네흘류도프의 마음속에 있는 애정 흐름의 출구를 터뜨린 것과 같아서, 지금까지 배출구를 찾지 못하던 애정은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퍼부어졌다.
네흘류도프는 여행하는 동안 줄곧 이러한 마음의 흥분을 느꼈으므로 아래로는 마부나 호송병에서부터, 위로는 소장이나 지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만나온 모든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정심 깊은 친절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마슬로바가 정치범 쪽으로 옮겨진 뒤에 네흘류도프는 많은 정치범들과 사귈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커다란 감방에 전원이 함께 매우 여유 있게 수용되었을 때 알게 되었고, 그 후에는 여행 도중에 마슬로바가 편입된 반의 남죄수 다섯 명과 여죄수 네 명을 사귈 수 있었다. 유형 정치범들과의 친근한 교제는 그들에 대한 네흘류도프의 견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러시아 혁명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특히 3월 1일 사건 이후 네흘류도프는 혁명가들에게 악의와 경멸을 느껴왔다. 그가 그렇게 느낀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반정부 투쟁에서 사용하는 수단의 잔인함과 불쾌함 때문이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암살의 잔인함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전부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지나친 자존심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더 가까이 사귀고 그들이 번번이 아무 죄도 없이 정부의 박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게 되자, 네흘류도프는 그들이 현재와 같은 인간 이외엔 달리 될 수 없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른바 형사범들이 받고 있는 괴로움이 무섭고 무의미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는 판결 전후에 법률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범들에게는 네흘류도프가 슈스토바나 그 후 새로운 친지들 대다수의 예에서 보았듯 그 법률이라는 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사람들에 대한 처사는 그물로 생선을 잡는 것과 같았다. 그물에 걸리는 것은 전부 언덕에 끌어올려지고, 필요한 대어만 골라내면 나머지 송사리들은 돌봐지지 않은 채 강언덕에서 말라죽기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아무 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 아무 해도 끼칠 수 없는 몇백 명을 일망타진하여 체포한 후 때로는 몇 해고 감옥에 처넣어두기 때문에 그들은 결핵에 걸리고 발광하고 자살하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처박아두는 것은 다만 석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며, 또 그들을 가까운 감옥에 가두어두는 동안 심리할 때 무슨 의문을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이 보기에도 무죄인 경우가 많은 이들 모두의 운명은 헌병이나 경찰, 탐정, 검사, 예심판사, 지사, 대신들의 변덕과 심심풀이와 기분 따위로 좌우되고 있었다. 이러한 관리가 심심해지든지 공을 세우고 싶어지든지 하면, 곧 체포해서 자기 기분이나 상사의 기분에 따라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석방하기도 한다. 고급 관리도 마찬가지여서, 역시 무슨 두드러진 일을 할 필요가 있다든지 대신과 어떤 관계가 있다든지 하면, 세계의 끝까지 추방하기도 하고, 독방에 가두기도 하고, 유형이나 징역이나 사형을 선고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귀부인의 청이 있기만 하면 당장에 석방해주기도 했다.
관리들이 그들을 다루는 방식은 사뭇 전쟁 때와 같았다. 그래서 그들도 자연히 자기들에게 행사하는 것과 같은 수단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군인이란 항상 자기 행위의 범죄성을 가려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여론이 공적으로 떠받들어주는 분위기에서 생활하는데, 이와 꼭 마찬가지로 정치범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에서 살아가며서 자유와 생명과 그 밖에 인간에게 귀중한 모든 것을 상실할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들이 취한 잔인한 행위를 역시 악으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용감한 행위로 생각했다. 이러한 해석에 따라 네흘류도프는 생물을 괴롭히기는 커녕 그 고통을 볼 수도 없을 만한 아주 온순한 사람들이 태연히 살인 준비에 가담하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특정한 경우의 살인을 일반의 행복을 위한 수단과 자기방어 수단으로써 합법적이고 옯자른 행위라고 인정하는 놀랄 만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사업에 부여하고 있는 높은 의미, 따라서 자기 자신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높은 평가는 정부가 그들을 너무나 중대시하고 그들에게 과하는 잔인한 형벌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현상이다. 즉 그들이 지금까지 견뎌온 것 같은 일을 끝까지 견뎌내려면 자기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서는 안 되었다.
그들과 가까워진 네흘류도프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 타고난 악당도 아니려니와 또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듯 철저한 영웅도 아닌 보통인간들로서, 그중에는 세상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중간치도 있다는 점을 확신했다. 그들 중에는 현존하는 악과 싸우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 끝에 혁명가가 된 사람도 있었으나, 이기적인 허영심이란 동기에서 이 활동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전시 중 네흘류도프가 경험한 바 있는, 위험과 모험을 바라고 자기 생명을 걸고 향락하고 싶어 하는 혈기 왕성한 청년 시절의 특유한 감정으로 혁명에 끌려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세상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들 사이의 도덕적 요구가 일반인들 사회에서 보통 인정되는 것보다 훨씬 높다느 ㄴ데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절제와 엄격한 생활, 성실, 무욕뿐만 아니라 공동 사업을 위해서는 전부 다, 자기 생명까지도 희생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중간 이상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네흘류도프보다 훨씬 더 훌륭해서 드물게 보이는 높은 도덕서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으나, 중간 수준 이하의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떨어지는 사람들이어서 가끔 부정직하고 위선적인 동시에 독선적이고 오만했다. 이런 탓으로 네흘류도프는 새로 사귄 친구들 가운데 몇 사람에게는 존경을 나타내고 마음속 깊이 애정도 바쳤지만, 다른 몇몇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유지해갔다.
부활 3부 6
네흘류도프가 유달리 좋아한 사람은 카튜샤가 편입된 반에 있는 징역수 크릴초프로, 결핵을 앓는 청년이었다. 네흘류도프는 예카테린부르크에 있을 때부터 이 청년과 알게 되었으며, 그 후 여행 중에 몇 번인가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어느 여름 날 숙영지에서 하루 휴식할 때에 네흘류도프는 거의 온종일 그와 함께 지냈다. 크릴초프는 숱한 이야기 끝에 자신의 내력과 혁명가가 된 경위를 들려주었다. 그가 투옥되기까지의 경로는 매우 간단했다. 그의 아버지는 남러시아의 유복한 지주였는데, 그가 아직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외아들이었던 그는 어머니 손에 양육되었다. 중학과 대학에서도 무난히 진극ㅂ했고, 대학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대학에 남아서 유학을 가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정하기를 주저했다. 그때 그에게는 좋아하는 처녀가 있었으므로 그녀와 결혼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여 러 가지 일을 다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무렵 대학 시절 친구들에게 공동 사업을 위한 기부금을 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그는 그 공동 사업이라는 것이 혁명운동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당시에는 그런 데 전연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로서의 의리와 겁쟁이로 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에서 돈을 주었다. 그런데 기부금을 받아 간 친구들이 검거되고, 메모가 발견되어 크릴초프가 돈을 냈음이 밝혀졌다. 그는 체포되어 처음엔 경찰서에 유치되었다가 나중에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제가 들어간 감옥에서는"하고 그는 네흘류도프에게 말했다. (그는 우묵 들어간 가슴을 안고 무릎에 양쪽 팔꿈치를 괸 채 높다란 나무 침상에 앉아서, 간혹 어쩌다가 열기에 촉촉히 빛나는 아름답고 총명하고 선량한 눈으로 네흘류도프를 바라보았다.) "그 감옥에서는 그다지 심한 취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린 벽 통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복도를 거닐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음식이나 담배를 서로 나누기도 했으며, 밤에는 합창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나는 이래뵈도 목소리가 좋은 편이랍니다. 정말 어머니 일만 아니었다면....하여간 어머니는 비탄에 잠겨 있었으니까요. 나는 감옥에 있는 것이 더 좋은 듯했습니다. 유쾌하고 무척 재미있었어요. 거기서 나는 그 유명한 페트로프와 또 그 밖의 사람들을 알게되었죠. 하긴 페트로프는 그 후 요새 감옥에서 유리로 경동맥을 끊고 자살해버렸습니다만. 그렇지만 난 혁명당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옆방에 있는 두 사람과도 알게 되었습니다. 둘 다 그 폴란드 독립선언 사건으로 붙들려 역으로 끌려갈 때 호송병 손에서 탈주하려던 죄로 기소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는 로진스키라는 폴란드 사람이고, 또 하나는 유대인으로 로조프스키라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이 로조프스키는 아주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자기는 열일곱이라고 그랬지만, 열다섯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검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마르고 자그마한 발랄한 소년이었는데, 유대인은 모두 그렇듯이 매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아직 성대가 트이지는 않았습니다. 노래는 잘 불렀습니다. 그렇지요. 내가 있을 때 그들은 재판소로 끌려갔습니다. 아침에 끌려가서 저녁에 돌아왔는데, 둘 다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되리라고 예기치 못했지요. 그들은 죄라는 건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호송병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려 했을 뿐이지 아무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로조프스키 같은 소년을 사형하다니, 도대체 있을 법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옥중에 있던 우리는 모두 그저 한번 위협한 데 지나지 않고 그런 판결은 확정되지 않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처음엔 놀랐습니다만, 차츰 안심하게 되어 또 종전 같은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간수가 내 방문 앞으로 다가오더니, 지금 목수들이 와서 교수대를 만드는 중이라고 몰래 일러주었습니다. 나는 처음에 대체 무슨 일인지, 무엇을 위한 교수대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늙은 간수가 무척 흥분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저 두 사람 때문이로구나 하고 직감했습니다. 벽 통신으로 여러 친구들과 상의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만, 두 사람 귀에 들어갈까 봐 망설여졌습니다. 친구들도 아무런 기척이 없더군요. 아마 모두 알고 있었던 게죠. 복도건 어느 감방이건 밤새도록 죽음 같은 고요만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벽 통신도 없거니와 합창도 없었습니다. 10시경에 간수가 또 나한테 오더니 모스크바에서 사형집행인이 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곧 가버리기에 나는 다시 오라고 간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로조프스키가 복도를 사이에 둔 자기 방에서 크게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그래요? 왜 간수를 불러요?' 나는 간수가 담배를 갖다 주었다고 얼버무렸지만, 저쪽에선 아무래도 눈치를 챈 듯이 왜 모두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 왜 벽 통신을 안 하는지 따위로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겁니다. 나는 그때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이 안 납니다. 그저 더는 소년과 이야기를 안 하려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서운 밤이었습니다. 밤이 다하도록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밝히고 있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자 갑자기 복도 문이 열리고, 누군지 많은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창가로 다가갔습니다. 복도에 램프가 켜져 있었습니다. 맨 처음 들어온 것은 소장이었습니다. 뚱뚱한 사나이로 자신만만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같이 보였습니다만, 그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습니다. 파랗게 질린 얼굴에 고개를 푹 속이고 겁을 먹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뒤에 부소장이 미간을 찌푸리고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간수였습니다. 그들은 내 문 앞을 지나 옆방 문앞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부소장이 괴상한 목소리로 '로진스키, 일어나서 깨끗한 내의로 갈아입어'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곧 문이 열리고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나더니 잇따라 로진스키의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복도 맞은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소장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장은 창백한 얼굴로 선 채 단추를 끼웠다 끌렀다 하면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별안간 무엇에 놀란 듯이 한쪽 옆으로 물러났습니다. 로진스키가 그의 곁을 지나 내 방문 쪽으로 왔기 때문이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로진스키는 말쑥하고 아름다운 폴란드 타입 청년이었습니다. 엷은 아마 빛 고수머리가 모자처럼 덮여 있는 곧은 아마, 하늘빛 아름다운 눈, 참으로 생기가 넘치고 건강한 미남자였습니다. 그는 내 창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으므로, 나는 그의 얼굴을 빤히 볼 수 있었습니다. 홀쭉하고 침울한 얼굴이었습니다. '크릴초프, 담배 가진 거 있어?' 하기에 나는 내주려고 했습니다만, 보소장이 조금이라도 늦을까 봐 자기 담배를 꺼내주었습니다. 그가 한 개비 빼 드니까 부소장이 성냥을 그어주더군요. 그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만,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이윽고 뭔가 생각해내기라도 한 듯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잔인해, 너무 부당해. 네겐 아무 죄도 없는데, 난.....' 내가 눈을 뗄 수 없던 그 희고 젊음이 넘치는 목에 가늘게 경련 같은 것이 일어나더니, 그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래요. 그때 복도 쪽에서 로조프스키가 유대인 특유의 가느다란 목소리로 외쳐댔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창문에 로조프스키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눈에 눈물이 글썽한 천진스러운 얼굴은 새빨갛게 상기되어 땀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깨끗한 내의를 입고 있었습니다만, 바지가 너무 길어서 노상 두 손으로 바지를 끌어올리면서 온몸을 덜덜 떨었습니다. 그는 애처로운 그 얼굴을 내 창문에 갖다 대고서 말했습니다. '아나톨리 페트로비치, 의사가 내게 탕약을 처방해준 게 사실입니까? 나는 가슴이 나쁘니까 탕약을 마셔야겠어요.' 아무도 대꾸를 안 했으므로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보기도 하고 소장을 보기도 했습니다. 대체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느닷없이 부소장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또다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무슨 농담을 하고 있는 거야? 자, 그만 가자.' 로조프스키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는지, 오히려 모두의 선두에 서서 복도를 거의 달리다시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완강히 버티고 섰습니다. 폐부를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운 외침과 울음소리가 들려오더군요. 퉁탕거리는 소리와 발을 구르는 소리도 났습니다. 그는 날카롭게 외쳐대고 울부짖었습니다. 이윽고 그 소리도 점점 멀어져가고 복도 문이 철컥 닫히자 모두가 조용해졌습니다.......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교살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 다 밧줄로 교살된 것입니다. 다른 간수가 현장을 보고 와서 내게 이야기해주더군요. 로진스키는 저항하지 않았지만, 로조프스키는 오랫동안 날뛰는 바람에 교수대에 끌어올려 억지로 밧줄을 목에 걸었다고요. 그 간수는 좀 모자라는 사람이었죠. '난 무서운 거라고만 들었습니다만, 조금도 무서운 게 아니더군요. 두 사람 다 매달리더니 그저 두어 번 이렇게 어깨를 꿈틀거렸을 뿐이에요'하며 간수는 어깨가 경련을 일으키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을 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형집행인이 더 잘 죄어들게 올가미 줄을 잡아당기자 그걸로 끝장이 나더군요. 그다음은 꼼짝도 안 했습니다. 조금도 무서운 게 아니었어요.'" 크릴초프는 이렇게 간수의 말을 되풀이하고 웃음을 지으려 했으나, 웃는 대신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뒤로 그는 오랫동안 괴롭게 숨을 몰아쉬고는, 목구멍에 복받치는 오열을 삼켰다.
"내가 혁명가가 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자기 얘기를 간단히 끝마쳤다.
그는 인민의지파의 일원으로 파괴 공작단 단장이기도 했다. 그들의 임무는 정부가 자발적으로 정권의 자리에서 물러나 민중에게 호소하도록 하기 위해 테러로 위협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러한 목적을 품고 페테르부르크에 가기도 하고, 외국으로 가기도 하고, 키예프로 가기도 하고, 오데사로 가기도 해서 가는 곳마다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다가 그가 신뢰하던 사내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2년 동안 옥중에 처박혔다가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그 뒤이ㅔ 종신 징역으로 감형이 되었다.
그는 옥중에서 결핵에 걸렸고,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 몇 개월도 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자기가 해온 일들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일 다시 한 번 세상에 태어난다면 그 생명도 역시 같은 목적, 그러니까 그가 보아온 것과 같은 일이 허용되고 있는 현 제도를 파괴하는 데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네흘류도프는 이 청년의 말을 듣고 그와 친해짐으로써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하던 것들 가운데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