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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위인 찾기’ 캠페인의 첫 출장지는 춘천이었습니다.
서울을 벗어나자 점점 건물은 사라지고 나뭇잎을 모두 떨궈 낸 산등성이가 시야에 가득 찼습니다. 춘천에 다다르자 ‘밭’ 건물이 거대한 자태를 뽐내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촬영 장비를 이고 지고 4층으로 올라가자 이번 인터뷰이인 대표님께서 손수 커피를 내려주시며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이번 캠페인의 열 번째 이웃집위인, 이미소 대표님을 소개합니다.
“‘다름’으로 결핍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삶의 큰 원동력이자 경쟁력이 되었어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렸습니다.
이미소: 안녕하세요. 농업회사법인 ‘밭’ 주식회사 대표 이미소입니다.
‘밭’은 춘천에서 감자를 닮은 빵을 개발해 2022년 기준 연매출 200억원을 돌파한 회사입니다. 저도 춘천 여행 갔을 때 감자빵을 먹어 봤는데요. 쫄깃한 빵피에 달콤한 으깬 감자가 들어있어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미소: 밭은 제가 8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하다가 춘천에 내려와서 1인 기업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의 농업회사법인 밭 주식회사라는 회사의 형태로 갖추어진 지는 4년 차가 된 스타트업입니다. 부모님의 감자 농사를 지속 가능하게 하고 싶어서 감자빵이라는 아이템을 만들게 되면서 지금은 저희의 주 아이템인 감자빵을 판매하고 있어요.
지금은 당당하고 어엿한 대표이지만 학창시절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고 해요.
이미소: 저는 소위 말하는 왕따였거든요. 따돌림을 정말 많이 당했어요. 제 턱이 21mm 정도, 턱이 좀 많이 나오고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턱 기형아”, “너 못 생겼어”, “마귀 할멈” 이런 괴롭힘을 많이 당해서 친구도 없었어요. 그렇게 초·중·고등학교 때 따돌림을 많이 당했는데도 저는 굴하지 않던 아이였어요.
사춘기 때 외모는 정말 민감한 주제인데요. 놀림을 당했고,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발랄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이미소: 아마도 ADHD 덕분에 그런 학창 시절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니까 ‘때문에’도 있는데 ‘덕분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때문에’는 주의력 결핍이다 보니까 친구들이 얘기를 하는데 그 얘기에 집중을 못하는 거예요. 너무 주의력이 결핍돼 있으니까 공부도 못해, 집중도 못해, 대화에도 못 끼어들어 이러니까 또 따돌림을 당했던 거죠.
‘덕분에’라는 건 따돌림을 당하는 거에도 개의치 않는 거죠. 따돌림을 당해도 그 슬프다는 감정에도 집중을 잘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너무 밝은 거에요. 따돌림 당해서 너무 슬프다가도 저기 있는 꽃이 너무 예쁘면 또 세상이 밝아지는 거예요.
ADHD ‘덕분’이라고 이야기하는 대표님의 말이 왠지 아팠습니다. 힘들었던 때를 지나 대학에 패션디자인 전공으로 수석 입학한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이미소: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학교 성적이 좋지 못했고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그때 당시만 해도 비평준 고등학교였는데 미달로 404명 중에 400등으로 입학을 했거든요. 그때 부모님께서 과외 선생님을 붙여주셨는데 과외 선생님이 첫 달을 하고 교육비를 돌려주셨어요. “못하겠다. 얘를 가르칠 수 없다. 이 아이는 영어를 읽을 수 없어서 초등학교 수준부터 다시 가르쳐야 된다”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파닉스부터 다시 공부를 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혼자 그 세상에 빠져서 역대로 살면서 처음으로 1등을 해본 경험이었는데 제가 대학교 때 수석으로 입학을 했거든요. 가문의 영광이었죠.
고등학생 때 진로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처음으로 갖게 됐어요. 그때 당시 온스타일 프로그램에 프로젝트 런웨이 아메리카도 있었고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라는 것도 있었어요. 그때 필요했던 공부를 하게 되고 재미를 붙여서 디자이너의 꿈을 갖게 됐어요.
디자인 공부하다 갑자기 감자빵을 만들다니요?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보았습니다.
이미소: 저는 디자이너가 ‘그냥’ 되고 싶었던 게 아니고, ‘정말’ 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 패션 보그 잡지도 구독했었고 제 모든 교과서가 잡지로 다 스크랩이 돼 있었을 만큼 누구보다 디자이너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그런데 22살의 저는 제가 패션에는 감각이 없는 것 같다는 판단을 했었어요. 그때 당시 어린 마음에는 ‘나는 감각이 없다. 난 좀 다른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저희 아버지께서는 뭐 좀 해달라 이런 부탁을 안 하시는데 저한테 연락하셔서 대뜸 감자 농사를 도와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아빠 부탁을 들어주는 마음도 컸지만 아빠 밑에서 집값이라도 아끼면 학자금은 빨리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8년 전에 춘천에 내려오게 된 거예요. 그렇게 춘천에 내려가서도 감자빵을 개발하기까지 5년이 걸렸어요. 그 사이에는 처음에 감자 피클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 감자 분말식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 감자로 즙을 내려보기도 했고, 감자로 막국수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고구마+감자+마늘빵을 줄여서 고감마빵, 감자 프레첼, 감자 단팥빵, 감자 파이, 감자 닭갈비 썸띵 등 별의별 거를 다 만들다가 마지막에 감자빵을 만들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갑자기 춘천에서 감자 농사를 짓고, 감자빵을 만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이미소: “실패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았어요?” 이런 질문들도 하시거든요. 그 모든 과정들이 저에게는 작은 성공들이 모였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이 성공이 안 됐던 이유는 돈이 안 됐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땐 그것 또한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미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감자 농사를 지으면서 수백만 원, 수천만 원씩 매월 돈을 까먹고 있으셨는데 제가 가서 좀 덜 까먹었어요. “더 까먹을 건데 덜 까먹었잖아. 너무 기쁘다.” 저희 부모님도 안 좋은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셨던 게 이 모든 과정들을 견디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이제는 돈을 까먹는 정도가 아니라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회사가 되었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미소: 저희 아빠한테 배운 대로 진실되게 해온 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중간중간에 저희가 실수한 부분이나 부족했던 부분이 있더라도 그런 것들을 고객들과 내부 조직원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소통하려고 했거든요. 그렇게 하면서 결국에는 더 단단한 관계가 되고 신뢰도 쌓였어요. 내부의 크루들(직원들)도 함께 풍파를 견디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지면서 다음 라운드로 갈 수 있게 됐던 것 같아요.
제가 18살 때 첫 책을 읽었던 게 『카네기 행복론』, 『인간관계론』부터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같은 책들이에요. 사업을 하고 경영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은 이미 그 책들에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지금도 힘들 때나 난관에 봉착했을 때, 어디서 가장 많은 조언을 받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2만 원이면 책을 사잖아요. 두꺼운 것도 3만 원이면 사는데 그 값에 비해서는 정말 작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천 배까지도 수익이 높거든요. 투자 대비 효용이 높은 건 저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주식회사 ‘밭’의 가치 중 ‘다양성’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라고 합니다.
이미소: 제 인생의 아젠다(주제)는 다양성에 대한 증명이라고 생각해요. ‘다름’이 틀린 게 아니고 ‘다름’은 더 나아가서 사랑이에요. 그게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하필이면 저희 아버지께서 농사지었던 게 일반적으로 알고 계시는 하얀색 감자가 아니라 빨갛고, 노랗고, 파란색인 다양한 색깔의 감자였어요. 동그란 감자가 아니라 생강, 고구마처럼 생긴 다양한 모양새였지요. 그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다 보니 감자빵이라는 아이템이 나온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희 회사나 개인, 그리고 우리 조직에서 다양성은 굉장히 큰 가치에요. “세상 이상한 사람들 다 모인 것 같아.”라고 저희 직원들끼리 웃으면서 이야기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랫동안 조직을 이루려면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해요.
스스로 자신의 단점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누군가는 당신이 가진 강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미소 대표님은 남들과 달랐던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가진 경쟁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미소: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남들과 다른 게 축복이고 사랑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왕따를 당할 때는 학교를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고 이 세상은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들과 다른 게 너무 싫었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많아요. 결국엔 그런 결핍들이 지금의 저에게 엄청나게 큰 원동력이 됐지만 그때는 몰랐어요. 그때는 다른 게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게 된 거죠.
아까 ADHD에 감사하게 됐다고 했는데요. ADHD는 과몰입도 주의력 결핍의 예시에요. 주의력이 결핍된 것은 엄청나게 싫은데 솔직히 16시간 동안 누가 집중하겠어요? 전 집중이 쉽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너무 편해요. 하루에 14시간씩 아무것도 안 하고 빵만 개발하는데 사람들이 질려서 도망가요. 이게 비단 집중력 하나만이겠어요? 예를 들면 제가 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그때의 저는 철학적인 사고, ‘나’에 대한 고민, 본질적인 질문 이런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아버님의 부탁으로 시작했던 감자 사업이었는데요.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을지 궁금했습니다.
이미소: 저는 머리 염색을 빨주노초파남보 다 했었어요. 그런데 회사에 입사해야 되니까 검정색 머리로 염색하고 아빠를 처음 딱 만났는데 아빠가 “내가 지금까지 봤던 네 머리 중에 가장 실망스럽다. 나는 네가 남들과 달라서 좋았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서도 되게 좋아하셨어요. 예를 들면 왕따를 당해서 힘들어할 때도 “네가 모두를 왕따시켜”라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꼴찌를 했을 때도 혼나본 적이 없어요. “네가 꼴찌를 하니까 누군가 1등을 하는 거야. 괜찮아. 꼴찌는 중요하지 않아” 이렇게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 긍정하는 마음이 강하셨어요.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을 들어보았습니다.
이미소: 제가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가 김수영 작가님의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인데 그 책에 편의점 앞에서 짜장면 먹을까, 라면 먹을까, 짜파게티 먹을까 고민하는 학생들 같다는 말이 나와요. 초중고 해봤자 이제 막 학교에서 교과 과정만 공부해 본 친구들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세상에 나와보면 파에야나 똠양꿍 같은 정말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데 내가 알고 있는 것 안에서만 결정하려고 하다 보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게 사실 너무 없는 거죠.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초중고등학생 때 많은 기회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그걸 대학 때 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예를 들면 손석희 선생님도 제가 알기로는 마흔 살에 저널리즘을 공부했다고 들었어요.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사실은 되게 유의미한 과정이고 나한테 맞는 걸 언제 찾을지는 모른다는 것들을 얘기해 주고 싶어요.
진로 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님, 선생님 등 교육 관계자 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마디를 들어보았습니다.
이미소: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려면 안전망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이걸 했을 때 진짜 즐거운지, 내가 이거 했을 때 진짜 싫은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사람 심리는 남을 기쁘게 해주고 싶기 때문에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나 이게 좋아”라고 말할 수도 있거든요. 정말로 “나 이거 싫어”라는 말을 아이들이 편하게 하려면 부모님들이나 주변의 어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리더들이 그런 감정들을 느껴도 괜찮다는 안전망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들의 마음 상태를 한 번 더 들여다 보고 그것에 대해서 “너 그렇게 느껴도 괜찮아. 너 진짜 공부가 싫구나. 공부가 싫으면 그럼 딴 거 해도 돼”라는 이야기를 해줘야 되는데 사실 그럴 수 있을까요? “공부를 안 하면 사회적으로 도태돼!” 하면 나는 공부가 싫은데 좋아하는 척을 해야 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좀 더 진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면 어떨까요?
이미소: 그때는 저도 계속 결핍을 겪었던 학생이었어요. 만성 결핍이 되어 있고 뭔가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고 나를 증명해야 된다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안아주고 싶어요. 그냥 다독여 주고 싶고 “지금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이 과정에서 충분히 즐겨도 넌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기 브랜딩’이 뜨고 있는 요즘입니다. 내가 가진 가치와 이미지로 ‘나’를 브랜딩하는 거지요. 브랜딩 과정에서 자신의 ‘다름’을 찾는 건 필수적입니다. 그렇지만 ‘다름’은 때때로 차가운 시선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시선에 오랫동안 방치되면 자기다움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잠잠히 기다려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글·편집 김보람
재단법인 교육의봄 정책연구팀
첫댓글 모두가 자신만의 밭을 일구도록 응원합니다.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