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월) 사순절 5일차 – 죽음과 고난의 두려움에서 해방하시다
말씀제목
– 죽음과 고난의 두려움에서 해방하시다
말씀본문 – 히브리서 2장 17절
“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새번역)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말씀묵상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1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영광스러운 통치자를 가리켰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수난’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요. 마치 네모난 삼각형이나 무채색의 무지개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되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평생 이러저러한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고통은 우연이나 벌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고 필연적인 삶의 조건과도 같습니다. 고통과 수난은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 삶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합니다. 고통과 수난이 썰물처럼 나갈 때에도 우리는 그것이 마지막 아픔이 아님을 압니다. 삶의 부정적인 사건은 언젠가 또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죽음이 우리를 덮치겠지요. 하여 인생의 고통과 수난과 죽음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사람은 두려움에 휩싸여 살아갑니다.
그레꼬-로만 세계와 유대인 교사들은 여러 문헌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고 또 보다 덕스럽고 명예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죽음이 주는 삶의 허무함, 운명론적인 무기력감에 시달리는 것은 오늘 여기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 소크라테스 같은 시대의 스승들은 죽음을 넘어서서 어떻게 덕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지를 가르쳤으며,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생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하시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수난을 다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끝내 부활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우리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삶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와 다른 조건에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동일한 처지에서 고통과 죽음을 정면으로 돌파하여 우리에게 부활의 삶을 알려주셨습니다. 죽음의 종노릇하던 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구원의 삶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죽음을 넘어서서 고통과 수난에 종 노릇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친히 형제 자매라고 부르시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믿음의 선구자이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기로 선뜻 신을 신고 나서시는 이번 사순절이시길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죽음과 고통,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에서 우리를 해방하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통해 우리는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참된 삶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고난의 과정이 있음도 압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하시며 참된 삶의 활력과 능력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