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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불교학자 14. 비말라 추른 로 / 조준호
비말라 추른 로(Bimala Churn Law, 1892~1969) : 고대인도 문헌을 섭렵한 독보적 학자
1. 들어가는 말
비말라 추른 로(1892~1969)의 초상
필자가 인도 유학 시 가장 즐겨 보던 저술은 바로 인도 학자 비말라 추른 로(B.C. Law, 1892~1969)의 저서들이다. 로만큼이나 많은 저서를 낸 인도 출신의 학자는 알지 못한다. 평생을 연구와 집필만 하다가 살다 간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의 저술은 양적으로 많고 또한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그래서 로 박사는 소개하고 싶었던 인도 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저술은 주로 인도불교 연구의 토대 학문이자 기초자료라 할 수 있는 인도의 자연, 지리, 인종, 민족, 역사, 언어, 종교, 사회 등과 관련되어 있다. 필자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자연환경과 문화와 사회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불교를 재조명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로의 저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유학 시절 내내 그의 저작물을 통해 불교 흥기에 즈음한 고대 인도를 알아가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그는 주로 불교 흥기에 즈음한 고대 바라문 문헌과 자이나 문헌 그리고 빨리 문헌을 섭렵하여 고대 인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게 해주었다. 필자가 그야말로 오랜 기간 집요하게 석가모니 붓다와 관련한 석가족의 인종적 기원을 추적하면서 참고할 수 있었던 인종과 민족에 관한 저서는 바로 로 박사의 저술이다. 물론 로는 영국 식민 기간에 증폭된 인도-유럽인이라는 인종학과 언어학에 석가모니 붓다의 석가족 또한 당연히 인도-유럽인 계통으로 간주하는 서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님과 당시의 종족들이 모두 백인 계통의 유럽 인종이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유럽 제국주의자들에 경도된 인도 학자의 인종주의, 백인우월주의가 바탕이 된 그의 서술이 끊임없이 거부감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그러한 저술을 다시 비판적으로 재검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필자는 고대 인도의 역사와 문화 등의 지적 목마름을 로 박사의 여러 저술을 읽어 가면서 나름대로 해소할 수 있었다. 그는 고대 인도 전적들, 특히 빨리로 된 초기불교의 자료를 통해 고대 인도의 지리, 인종, 민족, 역사와 문화 등에 다작을 남겼다. 빨리 전적을 로마자화하여 출간하고, 빨리 문헌의 영역 소개 분야에서 그의 연구 성과는 독보적이다.
그는 바라문 산스끄리뜨 문헌과 불교 그리고 자이나 등의 인도 고전을 통해 고대 인도를 재구성하는 데 굉장히 의욕적이었다. 그의 결과물들은 고대 인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리적 인문학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고대 인도의 이해 또는 불교 흥기에 즈음한 동북부 인도-아시아대륙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로 박사의 생애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인도아대륙의 식민 기간은 대략 1757년(또는 1877년)부터 1946년까지로 본다. 로 박사는 영국 식민지배 기간에 활동했던 인도 고전 학자이다. 1892년에 태어나 1969년에 세상을 떠났다. 인도에서도 그의 원래 힌디 이름인 비말 짜라나 라하(Bimalā Caraṇa Lāhā(विमलाचरण ला))를 로마자화한 이름인 비시 로(B. C. Law)로 읽는다. 이에 대한 표기는 저작들에 따라 비말라 추른 로(Bimala Churn Law)나 비말라 차란 라하(Bimala Charan Laha) 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는 벵갈 지역의 출신이며 인도 카스트는 바라문 계급이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성만 보면 대략 출신 지역과 카스트를 알 수 있는 데 반해, 그의 로만화한 이름 때문인지 인도 사람, 그것도 벵갈 출신이라 하더라도 그를 낯설게 여기는 경우도 보게 된다.
로의 생애에 관한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케임브리지대에서 출간한 왕립아시아협회 논문집(Journal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Volume 101, Issue 2, April 1969, p.196)에 실린 로 박사의 별세를 알리는 노만(Kenneth Roy Norman)의 부고 기사를 옮긴다. 참고로 로 박사의 사망 기사를 쓴 노만은 영국의 언어학자이다. 그는 케임브리지대의 인도 연구 명예교수였으며 빨리 및 기타 고대 인도 언어에 대한 권위 있는 학자로 특히 인도 고대어와 라틴어, 그리스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많다. 그는 1881년 리즈 데이비스(Rhys Davids)가 창립한 영국의 빨리성전협회(The Pali Text Soc-iety, 약칭 PTS)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필자와 같은 초기불교 연구자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빨리 경전인 《테라가타(Theragāthā)》 《테리가타(Therīgāthā)》 《담마빠다(Dhammapada)》 《수따니빠타(Suttanipāta)》 등의 영역과 초기불교 연구로도 유명하다. 노만의 로 박사의 임종에 대한 추도 기사는 다음과 같다.
1969년 5월 3일, 비말라 추른 로(Bimala Churn Law) 박사가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협회는 명예회원 중 한 명과 인도학 분야에서 엄청난 열정으로 많은 집필을 해온 연구자를 잃었습니다. 로 박사는 콜카타의 프레지던시 칼리지(Presidency College)와 콜카타대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그곳에서 학사 ·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를 취득하고 1924년 연구 성과로 아쉬토쉬 무꺼르지(Asutosh Mookerjee) 경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1931년에는 빨리(Pali) 문헌의 역사에 관한 그의 연구결과물이 그리피스 기념상(Griffith Memorial Prize)으로 통과되어 확정되었으며, 1933년 런던에서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는 인도 러크나우(Lucknow) 대학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반나르지연구소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1916년부터 로 박사는 불교(빨리 문헌의 교정출판 및 번역 포함), 자이나교, 고대 인도의 역사와 지리학 분야의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논문 집필과 출간을 시작했습니다. 그에 대해 바루와(B. M. Barua) 박사가 초기 책의 서문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일부 출판물이 선행 저작물의 편집물이라는 설명은 결코 로 박사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고대 인도의 일부 끄샤뜨리야 부족(Some Ksatriya tribes of ancient India)》(Calcutta, 1923)의 서문에서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나는 내 저작과 관련하여 선행 연구나 저작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참고하였지만, 이것은 내 저술을 이루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차용은 늘 조심스러웠으며 이는 단지 로 박사가 산스끄리뜨어, 빨리어 및 쁘락끄리뜨어를 매우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얻었던 사실의 위대한 구조를 구축하는 기초로 제공되었을 뿐입니다.
1946년 그의 55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친구와 추종자들이 모여 그를 기리는 기념논총인 B. C. Law Volume(2권)을 기획 출간했을 때, 기념논총의 앞부분에 실린 로 박사의 저술 목록에는 40개 이상의 주요 출판물과 수많은 소논문과 논문의 정기간행물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46년 이후 그의 출판물에는 자이나교 경전의 번역도 있고(Bom-bay, 1949), 1950년에서 1954년까지 인도학(Indological Studies) 분야의 소논문과 논문들 3권이 콜카타에서 출간되지 않은 채로 제본되어 재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스리랑카에서 빨리로 기록된 역사서인 《디빠왕사(Dīpavaṃsa)》의 번역본(이후 1959년에 스리랑카에서 출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빨리어 텍스트의 번역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연대기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작업과 깔리다사(Kālidāsa) 작품의 지리학적 측면과 고대 인도의 역사 지리학(이후 두 분야 모두 1954년 출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왕립아시아협회(The Royal Asiatic Society)는 로 박사를 단지 시리즈 출판물의 학자나 기고가가 아닌 후원자로 기억할 것입니다(로 박사의 The Magadhas in Ancient India는 1946년 왕립협회의 특정 논문 24로 출판된 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왕립협회는 많은 사람들의 관대한 후의에 힘입어 왔고 그 역시 많은 후의를 베풀었습니다.
로 박사는 막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의료, 사회, 학문의 여러 분야에 걸쳐 기부한 저명한 자선가였습니다. 그는 1947년에 왕립협회가 현재의 주소로 이전할 때 독서실을 제공하기 위해 1,400파운드를 협회에 기부했습니다. 독서실은 그의 이름을 따서 Dr. B. C. Law Room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는 또한 1935년에 불교, 자이나교 또는 고대 인도의 역사나 지리에 대한 원전의 출판을 위해 ‘Dr. B. C. Law Trust Fund’라는 신탁기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 펀드의 후원으로 첫 출판물이 나왔습니다.
로 박사의 학자로서 탁월함은 그의 학술적 공로를 기리기 위해 알라하바드 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D. Litt)를 수여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왕립아시아협회의 명예회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많은 협회의 명예회원이기도 합니다. (K. R. NORMAN)
로 박사는 영국 식민지배 기간에 태어나서 활동하고 임종하였다. 전적으로 영국 식민지배자들이 만들어 놓은 연구 환경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다. 특히 전문 분야의 연구 과정이 시작되는 석사부터 서양 특히 영국 학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음을 그의 저술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인도학-불교학 분야에서 그가 인용하고 있는 서구의 저작물이나 논문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 저술을 위해서라도 감탄할 정도로 수많은 서양과 인도의 고전과 저작들이 거침없이 인용되고 있다. 그는 서구 인도학-불교학 학자들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인도 고전어인 산스끄리뜨와 빨리 그리고 쁘락끄리뜨에 능통했다.
인도 역사에서 그래왔듯이 바라문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산스끄리뜨를 학습해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쉽고 빠르게 적응하고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교류한 유럽 학자들은 모두 인도학 불교학 분야에서 당대에 유명한 학자들이었다. PTS 창립자인 리즈 데이비스나 존 마셜(John Marshall), 가이거(Geiger), 노만 등이다. 가이거는 1933년에 출간한 《빨리 문헌의 역사(A History of Pāli literature)》의 추천 서문을 썼으며, 노만은 앞에서 소개했듯이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사를 남기기도 했다.
3. 로 박사의 저술과 세계 도서관 비치 현황
로가 집필했던 수많은 저술은 현재까지 세계의 많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읽히고 있다. 필자가 오랜만에 여기저기 뒤섞여 있는 그의 저술들을 찾아 먼지들을 털어가면서 책상 위에 한 권 한 권 쌓아놓고 살펴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 책들을 구하기 위해 30여 년 전 인도의 무더운 날씨를 뚫고 여기저기 서점과 도서관을 찾아다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인도에서도 오래전에 출간한 책이기에 어떤 책의 출판 연도는 필자의 출생보다도 훨씬 이전이다. 책의 정장이 모두 헤지고 낡아빠진 데다 인도의 강한 태양 빛과 쿨러(cooler)의 습기로 절어 있다. 더구나 귀국하면서 3개월에 걸쳐 배편으로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책들은 모두 누렇게 변색되고 너덜너덜 해어져서 모양새가 마치 고서와 같다.
도서 문헌 정보에 의하면 로의 저술은 1920년대 처음 출간된 이후에도 인도는 물론 영국과 폴란드 등의 여러 나라에서 영어와 인도어 등으로 재출간되어 왔으며, 전 세계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현재는 그의 많은 저술이 어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지 월드캣(WorldCat)을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월드캣은 온라인 컴퓨터 도서관 센터 글로벌 협동조합에 참가한 170개 국가와 지역의 72,000개 도서관의 모음집들을 개별 항목으로 만들어 놓은 종합 도서목록이다. 아래에서 필자의 손에 닿은 로의 책 몇 권의 개요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본다(비치된 도서관의 숫자는 월드캣 목록에 표기된 숫자들임을 밝혀둔다.).
월드캣 종합도서목록에 따르면 그의 연구는342종의 저작물이 4개 국어 1,264개 출판물로 전 세계 5,262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불교와 자이나교의 초기 경전에 기술된 인도
(India as Described in Early Texts of Buddhism and Jainism)》
1941년에 출간되고 다시 2015년에 재출간되었다. 초기불교의 빨리 문헌과 초기 자이나교의 쁘락끄리뜨 문헌에 나타난 고대 인도의 왕권과 백성, 사회적 삶, 경제적 상황, 신앙, 교육, 학문 등을 주제로 분석한 저술이다. 물론 여기에는 바라문 산스끄리뜨의 고대 문헌과 당대의 많은 연구자의 저술도 참고되었다.
《고대 인도의 산과 강(Mountains and Rivers of India)》
1968년에 영어와 프랑스어로 출판된 이후 22회 재출간되어 168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난 지리(Geography of Early Buddhism)》
1932년에서 출간된 이후 2008년까지 31회 재출간되었으며 164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맥도넬(A.A. Macdonell)과 키이스(A.B. Keith)의 《베다 고유명사 색인(Vedic Index of Names and Subject)》이 베다에서 《우파니샤드》에 나타나는 고유명사 사전이라면, 로의 이 저술은 빨리 경전과 이에 상응하는 주석 문헌을 바탕으로 국명, 특정 지명, 산과 강 등의 고유명사를 조사한 결과물이다. 1904년 PTS 창립자인 리즈 데이비스가 기획하여 스리랑카의 말라라세케라(Malalasekera, 1899~1973)가 완성한 빨리 고유명사 사전의 저본이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전 커닝햄(Cunningham)의 《인도의 고대 지리(Ancient Geogr-aphy of India)》도 참고했으며, 빨리 주석서나 스리랑카에서 저술된 불교 역사서도 참고했다. 이 밖에도 대승으로 이전해가는 초기 산스끄리뜨 문헌과 바라문 산스끄리뜨 문헌에 나타나는 지명도 참고했다. 로는 빨리 문헌에 나타나는 불교 발상지 중심의 중원(Majjhimadesa) 개념을 정리한 후 아대륙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있다. 북인도, 서인도, 남인도 그리고 동인도가 그것이다. 이어서 아대륙의 부속 지역으로 스리랑카와 미얀마(영국 식민시대에 인도 일부로 통치) 등까지 정리하고 있다.
《고대 인도의 역사적 지리(Historical Geography of Ancient India)》
1954년에 출간된 이후 2016년까지 34회 재출간되었으며 전 세계 195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이 저술은 처음 영국에서 영어로 출간 이후 여러 인도어로도 출간되었으며 앞서 소개한 Geography of Early Buddhism을 확대한 지리서이다. 불교 문헌뿐 아니라 베다와 고대 산스끄리뜨, 쁘락끄리뜨, 스리랑카, 미얀마, 티베트, 중국 문헌들까지 총동원되어 고대 인도의 지리를 총정리하고 있다. 여기에 당시의 비문 발견과 고고학적 성과 또한 참고되었다. 인도아대륙을 혜초 등의 과거 동아시아 구법승 여행기처럼 다섯 구역(동서남북과 중앙)으로 나누어 기술하는 형식을 취했다.
《빨리 불교 전적의 역사(A History of Pāli Literature)》(Vols. Ⅰ, Ⅱ)
1933년에 두 권으로 첫 출간 되어 2007년까지 35회 재출간되었으며, 세계 월드캣 회원의 174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서문은 유명한 독일 인도학 학자 가이거가 썼다. 제1권은 빨리의 기원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출한 데 이어 빨리 삼장의 성립사를 제1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음으로 삼장의 분석으로 율장과 경장 그리고 논장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비달마 논서인 빨리 칠론에 대응되는 유부 칠론에 대한 논의로 1권을 마치고 있다. 제2권은 삼장에 대한 후대 주석서와 빨리 문법서와 스리랑카, 미얀마 등지에서 저술된 빨리 문헌을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로의 빨리 전적에 대한 역사에 대한 집필은 삼장의 소개서로 볼 때 기념비적인 저술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삼장과 연계된 문헌에 대한 총체적 개론서 집필은 로가 처음이다. 이전에 독일 학자인 빈테르니츠와 가이거가 부분적으로 시도하였다. 하지만 로에 이르러 이른 시기에 빨리 전적에 대한 종합적 개론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저술은 이후 콜카타대학의 하즈라(Hazra) 교수가 1994년에 출간한 빨리 전적의 개론서 3권의 저본이 되었고, 독일 히누버(Oskar von Hinüber)의 《빨리 전적 편람(Handbook of Pali Literature)》(1996년)의 구성도 이 책을 따르고 있다. 인도의 많은 대학에서는 공무원 시험 등 여러 이유로 빨리 전적이 학습되는데, 로의 이 저술이 많이 읽힌다.
《불교의 관점에서 본 천상계와 지옥(Heaven and Hell in Buddhist Perspective)》
1924년에 출간되어 2005년까지 28회 재출간되었으며, 월드캣 회원의 173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로는 이 연구 결과물로 콜카타대학에서 아슈토시 무커르지(Asutosh Mookerjee) 금메달을 수상했다. 빨리 문헌에 나타나는 육도(六道) 또는 오도의 세계와 우주관과 시간관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있다. 흔히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천상과 지옥의 기원이 이전의 베다나 우파니샤드 등에 기원하는 것인 양 막연하게 서술하는 연구자들이 많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인도 종교사에 있어 초기불교 문헌에 나타나는 천상관과 지옥관 등과 관련한 우주관과 시간관이 바라문 종교의 천상과 지옥 개념과의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제대로 밝히는 연구서는 찾아보지 못했다. 물론 로도 바라문 문헌에 대한 이해에서는 대가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생략하고 있다.
《불교의 귀신 개념(The Buddhist Conception of Spirits)》
1923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0년까지 32회의 걸쳐 재출간되었다. 전 세계 월드캣 회원의 196개 도서관에서 비치되어 있다. 몸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할 수 있는 영혼이나 귀신(peta/ preta)은 존재할 수 있는가. 빨리의 경장 중 다섯 번째인 《페타바투(Petavatthu)》가 이러한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슈바고샤, 마명(馬鳴) 보살(Aśvaghoṣa)》
1946년에 왕립아시아학협회(Royal Asiatic Society) 출간이다. 쿠샤나 왕조 까니시까왕 시대 마명 보살의 생애와 저술을 중심으로 마명의 다양한 활동상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당시 연구 결과물까지 자유롭게 참고하고 있다.
《붓다고사의 생애와 저작》
《붓다고사의 생애와 저작(The Life and Work of Buddhaghosa)》
1923년에 첫 출간 이래 2017년까지 28회 재출간되고 전 세계 월드캣 회원의 162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5세기경의 유명한 빨리 삼장 주석가인 붓다고사의 생애와 업적을 다루고 있다.
《논사(論事) 주석서 (The Debates Commentary (Kathavatthuppakara-na-atthakatha))》
1940년에 첫 출간 이후 1999년까지 27회 재출간되고, PTS 번역시리즈(Pali Text Society Translation Series) No.28이다. 전 세계 152개 도서관에서 비치되어 있다. 붓다고사가 빨리 7론 가운데 주석한 《논서(Kathavatthu)》의 영역본이다.
《인시설론(人施設論, Designation of Human Types》
PTS 번역시리즈 No.12로 1922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다. 빨리 논장의 7론 가운데 《뿍갈라빤냣띠(Puggalapaññatti)》의 영역이다. 현재는 일역을 따라 《인시설론(人施設論)》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여러 유형을 하나부터 열까지의 법수로 논하고 있다.
《불교 문헌 속의 여성(Women in Buddhist Literature)》
1927년에 첫 출간 이후 2011년까지 영어와 벵골어 등 3개 언어로 24회 재출간되어 전 세계 월드캣 회원의 147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로는 서문에서 이 주제로 집필하기 위해 오랫동안 주의를 집중하였으며 이와 관련한 주제의 출간은 최초일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불교 문헌에 나타나는 여성의 일생에 대한 정리이다. 고대 인도 여성의 결혼, 몸종 여자, 유녀(遊女), 무희, 여성 교육 상황, 여성과 불교, 비구니 승가에 대해 전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경전 속에 나타나는 뛰어난 비구니와 우바이에 대해서도 정리하고 있다.
《인도불교의 끄샤뜨리야 부족》
《고대 인도의 끄샤뜨리야 부족(Some Kṣatriya Tribes of Ancient India)》
1923년 첫 출간 이래 2009년까지 34회 재출간되었으며 전 세계 월드캣 회원의 141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이 책은 Kṣatriya Clans of Buddhist India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되었다.
《고대 인도의 부족(Tribes in Ancient India)》
1943년 첫 출간 이후 2017년까지 10회에 걸쳐 재출간되었으며 전 세계 월드캣 회원 141개 도서관에서 비치되어 있다. 필자가 로의 고대 인도 지리서와 함께 가장 흥미롭게 오랫동안 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초기 경전에 나타나는 당시의 종족들을 중심으로 산스끄리뜨와 자이나의 초기 문헌 그리고 당시 인종과 민족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이 참고된 고대 인도의 종족에 대한 총정리이다. 대략 78개 종족이나 부족들에 대한 정리에 이어 소소한 규모의 종족도 거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고대 인도의 자연, 역사, 인종, 민족,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역사적 인종적 문화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저술이다. 필자가 오랜 기간 하고 있는 붓다의 석가족에 대한 인종적 성격 연구에도 이 책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초기 경전에서 석가족의 근친으로 나오는 리차비(Licchavi)족이나 말라(Malla)족 등에 대한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다. 약 400쪽이 넘는 분량으로, 앞서 출간한 Kṣatriya tribes of Ancient India와 연결 선상에 있는 저술이다. 고대 인도의 인종과 민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럽 학자들의 연구가 있다. 특히 리즈 데이비스가 Buddhist India 등 그의 저서와 번역서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종족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서두에 요절한 그의 아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밝히고 있다. 로의 저서와 관련하여 한 가지 언급할 점은 자신은 물론 북인도인과 유럽 인종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나아가 당시 유럽인에 팽배했던 백인 우월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분위기이다. 인도-유럽인 속에 아리안(Aryan)을 배치하고 그 외를 비아리안으로 분명히 구분하는 구도로 저술이 이루어졌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인이지만 거의 식민지인이라는 의식 없이 자신들이 유럽계 인종과 동종이라는 자부심이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로의 저술에서 아리안 중심주의와 같은 인종주의 관점은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읽어나가야 한다.
《빨리어로 기록된 불교 역사(The History of Buddha’s Religion)》
1952년, 첫 출간 이래 2013년까지 12회 재출간되었으며 월드캣 회원의 140개 도서관에서 비치하고 있다. 이 저술은 1861년에 미얀마 고승이자 왕사였던 빤냐나사미(Paññās-āmisirikavidhaja)가 빨리어로 저술한 《불교 역사(Sāsanavaṃsa)》에 대한 영역이다. 일종의 세계불교사인데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가 아시아의 아홉 지역에 전래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스리랑카, 미얀마, 북서인도의 카슈미르, 간다라 등과 함께 마지막으로 중국(Cīna)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마우리아왕조 때의 제3결집의 결과로 파견된 다섯 명의 포교승에 의한 것으로 설명된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 중국은 조상과 귀신 숭배에 있다가 《전법륜경》을 붓다의 가르침을 시작으로 중국에 불교가 전해졌으며 중국은 가끔 카슈미르와 간다라를 정복하고 지배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당시 테라바다 불교권이 이해하는 불교 전래와 중국의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배에 대한 이야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불교의 결집 역사(A Manual of Buddhist Historical Traditions)》
1941년 첫 출간 이후 1999년까지 25회 재출간되었으며 126개 월드캣 회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14세기에 담마끼띠(Dhamm-akitti)에 의해 빨리로 저술된 《삿담마 상가하(Saddhamma-saṅga-ha)》에 대한 영역이다. 이 빨리 전적은 제1 결집부터 제4 결집까지 정리되어 있다. 물론 제4 결집의 경우는 설일체유부 전적에 나타나는 쿠샤나왕조 시대의 결집과는 다르다.
《스리랑카불교 연대기(On the Chronicles of Ceylon)》
1947년에 첫 출간 이후 1994년까지 17회 재출간되었으며 123개의 월드캣 회원 도서관에서 비치되어 있다. 스리랑카에서 빨리로 작성된 《디빠왕사(Dīpavaṁsa)》 《마하왕(Mahāvaṁ)》 《꿀라왕사(Cūḷavaṁsa)》 등의 불교 역사서에 대한 개론서이다.
《마하바스투의 연구(A Study of the Mahāvāstu)》
1930년에 출간하여 2011년까지 16회 재출간되었으며, 123개의 월드캣 회원 도서관에 비치되어 읽히고 있다. 유명한 영국의 인도학자인 키이스(A. B. Keith)가 《마하바스투》의 해제를 써주었다. 여기서 저자는 빨리와 다른 성격의 《마하바스투》에 사용된 언어를 ‘혼성 산스끄리뜨(mixed Sanskrit)’로 명명하고, 대승불교 문헌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1953년에 에드거튼(F. Edgerton)에 의해 《불교 혼성 산스끄리뜨 문법 사전(Buddhist Hybrid Sanskrit Dictionary Grammar and Dictionary)》이 2권(New Haven, Yale Univ. Press)으로 출간된 후, 존스(J. J. Jones)에 의해 《마하바스투》는 3권으로 영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Sacred Books of the Buddhists, London: Luzac & Co, 1949–1956). 나중에 《마하바스투》는 대승의 전적이 아닌 대중부(Mahāsāṃghika) 출세간부(出世間部: Lokottaravāda)의 전적으로 밝혀졌다. 《마하바스투》의 정확한 경명은 Mahāvastu Avadāna이다. 여기에 사용된 언어는 학계에서 Buddhist Hybrid Sanskrit, 줄여서 BHS로 이름하며 일본 학자들은 불교혼성범어(佛敎混成梵語)라 옮기기도 한다. 우리나라 불교학계에서는 별로 연구되지 않지만 필자가 공부했던 델리대에서는 학과 과정에서 초기 대승 경전의 언어이기에 상당한 비중으로 학습되고 있다. 《법화경》 등의 대승 경전 언어인데 초기불교 부파의 문헌인 《마하바스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야기된다. 한역이나 티베트역은 존재하지 않는데, 현존하는 고대 인도 불교의 전적은 대부분 테라바다 계통의 전승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하바스투》는 초기불교 부파는 물론 대승불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적이다.
《고대 인도의 마가다(The Magadhas in Ancient India)》
1944년의 첫 출간 이후 1976년 사이에 14회 재출간이 되었으며, 109개 월드캣 회원 도서관에 비치되어 읽히고 있다. 불교 등 인도사는 북인도가 중심 지역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마가다 지역이 중심이었다. 붓다 시대의 마가다 왕조에 이어 마우리아왕조나 굽타왕조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갠지스강의 중하류에 위치하며 철광석 등의 산출과 풍부한 농산물 산지로 정치적 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이 지역은 불교 흥기의 주요 지역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로 박사는 고대 인도 전적과 티베트와 중국의 기록은 물론 비문과 발굴 유물 등을 바탕으로 마가다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 원래 불교의 절이 많아 현재 주 이름도 불교의 절을 의미하는 비하르(Bihar)로 불린다.
《고대 인도 전적에서 왕사성(Rājagṛiha in Ancient Literature》
1938년 첫 출간 이후 1999년까지 21회 재출간되었으며, 101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마가다의 수도인 라자그리하는 왕사성(王舍城)으로 번역되었다. 왕사성은 불교의 제1결집 장소이기도 하지만 불교 교단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빔비사라왕의 왕도이다.
《대탑 건립의 역사(The Legend of the Topes)》
1935년 첫 출간 이후 1993년까지 17회 재출간되었으며 107개 월드캣 회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투빠왕사(Thūpavaṃsa)》는 13세기에 스리랑카의 바찟사라(Vācissara)가 쓴 대탑 건립에 대한 찬송의 서사시이다.
불교의 개념
《불교의 개념(Concept of Buddhism)》
1937년 첫 출간 이후 1965년에 재출간되었다. 불교의 주요 전문용어와 개념이 정리되고 있다. 예를 들면, 귀의(sarana), 진리(ariyasacca), 8정도, 연기, 바라밀, 계, 선정, 인간존재, 업, 자비, 법, 열반 외에도 카스트(Jāti) 등의 용어에 관하여 빨리 삼장을 전거로 분석하였다. 이 저술은 라이덴(Leiden)의 보겔(Vogel) 교수의 요청으로 집필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불교 개념어 사전의 성격으로 이후 빨리 전적에서 전거가 되는 출처를 잘 명시하고 있어 불교 개념어 연구에 기초자료 역할을 할 수 있다.
《로 박사 기념논총(B.C. Law Volume)》
로의 위상과 영향력을 알 수 있는 것은 1945년에 그의 53세 생일을 맞아 인도연구소(Indian Research Institute)에서 그를 기념하는 B.C. Law Volume이라는 이름의 총서가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1권은 705페이지, 2권은 476페이지로 40여 명의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그의 생일을 축하하고자 논문을 제출해 주었다. 불교 관련 분야만이 아니라 고고학, 역사, 문학, 인도 종교, 예술, 교육, 법학 등도 포함되었다. 유명한 인도학 학자인 반다카르(D.R. Bhandarkar) 등 다섯 명의 출간인을 대표로 인도학의 대가인 키이스 등의 축사가 실려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이미 당대에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유명한 인사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로가 집필하여 출간한 저작들은 유럽 학자들의 논문이나 저서에서도 많이 인용된다. 로가 집필한 저술은 지금 보아도 놀랍다. 그가 인용하거나 이용하고 있는 참고문헌을 보면 당시의 유럽 학자들과 유럽에서 출간된 학술지들이 대거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통신망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지만 당시 콜카타가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중심지였기에 콜카타대학에는 이용 가능한 모든 자료가 비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이때가 인도 독립 이후보다 자료 활용 측면은 훨씬 유리하지 않았나 싶다. 델리대도 마찬가지로 인도 독립 이후보다 영국 지배 기간에 비치된 오래된 인도학 불교학 자료에 놀랄 때가 있는데 같은 이유일 것이다.
4. 마치는 말
로의 저술은 인도 연구의 토대와 관련되어 있다. 로의 저술은 인도를 알고 싶어 하며 인도로 떠났던 나에게 고대 인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특히 그의 연구와 저술의 범위가 불교 흥기 즈음한 고대 인도에 주로 집중되어 있었다. 로는 이를 정리해 나가면서 불교의 빨리 문헌을 중심으로 바라문 산스끄리뜨 문헌과 자이나 문헌 등을 총동원하였다. 고대 인도의 자연, 지리, 역사 등에 관한 나의 궁금증과 지적 욕구를 해소시켜 준 것이 바로 그의 저술이었다.
로의 저술은 기본적으로 베다 문헌, 《브라마나(Brāhmaṇa)》 《아란야카(Āraṇyaka)》 그리고 《우빠니샤드(Upaniṣad)》 문헌들과 요가와 《마누 법전(Manusmṛti)》 《마하바라타》 등 힌두 법전류, 다르마 수뜨라(Dharma Sūtra)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는 이러한 고대 바라문 문헌들을 자유롭게 참고하고 인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빨리 경전은 물론 자이나 문헌 또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자료와 함께 근현대 서구 유럽의 인도학 불교학 관련 자료 또한 섭렵하고 있었다. 그는 영어를 비롯한 서구어 구사가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저술을 통해 당시 인도학 불교학 연구에 이름을 떨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거의 모든 학자들을 접할 수 있다. 리즈 데이비스, 캐롤라인 리즈 데이비스, 올덴버그(H.T. Olden-berg), 빈테르니츠, 가이거, 토마스(E. J. Thomas), 야코비(H. Jacobi), 라모뜨(E. Lamotte), 맥도넬(Arthur A. Macdonell), 키이스, 레비(Lȇvi) 등의 이름이다. 물론 서구학자들만이 아니다. 유명한 인도학자인 더트(N. Dutt), 쿠마라스와미, 자인(J.C. Jain), 바팟(P.V. Bapat), 아그로왈(V.S. Agrawal), 라다크리슈난(S. Radha-krishnan), 라훌 상크리탸얀(Ra-hul Sankrityayan) 등의 이름도 만날 수 있다.
로는 영국 식민지배 기간에 문헌학을 기초하였던 서구 학계의 영향을 받았다. 혹자에 따라서는 서구 학자들만큼 철저하거나 엄격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로는 지리와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고대 인도의 역사와 문화의 틀을 제공하기 위해 바쁘게 저술 활동을 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구 학계의 영향을 받다 보니 그의 저작물의 출처 인용은 상당히 충실하다. 논문과 저술 속에 인용되는 산스끄리뜨나 빨리 경전의 인용은 매우 정확하며, 그의 영역(英譯)은 또한 신뢰할 만하다.
이 글을 집필하면서 동국대 도서관에 로의 저술이 얼마나 비치되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대략 9권 정도가 비치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 불교학계에서는 참고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연구 방향이나 풍토가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해외의 불교학 연구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연구에 반영하려는 연구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국대의 ‘불교학 자료실’에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는 인도학 불교학 정기학술지가 제대로 비치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예전에 필자는 해외 정기학술 논문집 목록을 들고 동국대 불교학 자료실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는 논문들이 많았다. 세계화와 국제화 시대에 우리의 연구 성과를 해외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의 전문 학술지를 쉽게 열람하며 세계 연구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연구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최근 일본의 도쿄 대학에서 “비말라 추른 로 기념 강좌(Bimala Churn Law Memorial Lecture)”라는 제목으로 로 박사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고 한다(2018년 2월 18일). 필자가 이 내용까지 자세하게 열람해 보지는 않았지만, 훗날 누군가에 의해 로의 연구결과물이 제대로 재평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되려면 앞으로 국내 인도학 불교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로의 저작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동국대, 인도 델리대 불교학과 졸업(석사 · 박사).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고려대 철학과 연구교수,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연구원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위빠사나 수행의 인식론적 근거〉 〈초기불교에 나타난 행복감의 차제적 고양단계〉 등과 저서로 《불교명상-사마타 위빠사나》 《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 역서로 《인도불교부흥운동의 선구자: 제2의 아소카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 등이 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문화연구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