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제주도 한달살이 왔었으니 제주도에 발을 디딘지 1년되었습니다. 물론 작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제주도살이가 시작되었으나 제 마음에는 작년 4월이 시작깃점입니다. 간만에 작년 4월에는 제주도 어디를 갔었는지 행적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날씨가 어땠는지, 그 때 제주도를 대하는 마음은 어땠는지 사진을 쭉 보니 새삼스럽고 아이들에게서 변화들이 느껴집니다.
작년 4월 사진을 보니 완이는 태반이 신발을 벗은 채 다니고 있고, 태균이는 뱃살이 장난아니었네요. 1년 전인데도 준이는 지금보다 어린 티가 납니다. 그 때는 얼굴 쪽 틱이 심할 때라 손으로 늘 얼굴을 누루고 있었던 것이 눈에 띕니다. 벚꽃보다는 바다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작년 4월 어린 녀석들이 둘이나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제주도에 대한 이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고나 할까요. 제주도에 대한 사랑도 훨씬 더 커졌습니다.
지난 주에 창고정리할 일이 있어 알바모집 공고를 올렸더니 5분도 안 되서 어떤 청년이 지원을 해왔습니다. 같이 창고정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놀랍게도 한림 쪽에서 여기까지 왔답니다. 한림이면 여기와는 완전 반대편으로 버스타고 두 시간이나 걸려서 왔다니 괜히 미안해집니다.
참으로 참한 청년이 덩치도 크지 않은데 무척 열심히 일해줍니다. 제주도 본토박이 출신인데 이 쪽 동쪽을 처음 와본다니 그게 더 놀랍습니다. 물론 관광지의 중심인 중문도 안 가보았다니 이런 사실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제주도에서 가본 곳으로 치면 30년을 산 사람보다 우리가 훨씬 많습니다.
자기 또래들은 놀러가면 서울로 가지 제주도는 안 간답니다. 도시사람들은 제주도를 그리워하고 제주도 본토박이들은 서울을 그리워하고... 삶이란 이렇게 모순되면서도 자기가 처한 반대편을 그리워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태균이를 보고는 조금 놀라는 듯 하더니 일끝내고 돌아가면서 만원을 도로 주면서 태균이 과자사주라고 꼭 부탁을 하고갑니다. 안 받으려고 하니 차에다 놔두고 내려버립니다. 버스타는 곳까지는 데려다 주어야 했거든요. 그렇게 하진 않겠지만 가끔 친구삼아 태균이 데리고 야외도 놀러가면 어떨까 생각만 해보았습니다.
암튼 제주도민들에게 제주도는 그저 삶의 터전, 생존의 현실일 뿐입니다. 관광지로 이름난 지역에 사는 도민들의 삶은 관광객처럼 여겨지기 마련이지만, 요즘 극성맞게 고사리뜯으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아 이게 그들의 삶이였구나'하는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생존과 휴식이 공존하는 이런 공간에 저의 입장은? 영원한 이방인으로 그저 제주도를 좋아하는 휴식흠모자로 남길 바랍니다.
1년간 가장 많은 발전을 한 사람은 태균이입니다. 태균이의 전두엽 발달상황을 보면 심각한 결정장애 단계에서 서서히 결정기능이 커지고 대신 집착과 의문의 단계로 진입한 듯 싶습니다.
태균이가 아침에 순대볶음이 먹고싶다고 재료를 다 끄집어 내놓는데 정작 순대가 없습니다. 순대볶음의 발단은 깻잎순 사다놓은 걸 보고 나서부터입니다. 순대사가지고 오라니 하는 수 없이 차몰고 농협 마트까지 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잘 사가지고 가겠다 통화를 3번이나 했는데도 궁금해서 무려 18통이나 전화를 해대고... 순대사가지고 잘 가고있다 통화를 하고도 한번더 전화를 했네요.
엄청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기는 한데 자신의 결정상황을 엄마에게 강요하는 단계로 들어선 듯 합니다. 이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이라고 생각해야 되겠지요. 돌이켜보면 1년동안 알게 모르게 태균이 머리가 많이 깨어난 듯한 느낌입니다. 운동의 효과가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6월 말에 이사가면 되는데도 벌써부터 마음이 바빠져서 오늘은 저번에 다 못한 또다른 창고를 종일 정리했습니다. 새로 이사가면 어떻게 주거모양새를 할 것인지 요즘은 그 생각으로 설레임 가득합니다. 마지막 즐거움이 집꾸미기 아닐까 하는데요, 그 동안 숱하게 학교공사를 하면서 직접 해보고 싶었던 내맘대로 건축을 한번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하루를 즐겁게 살려면 이발을 하거나 머리를 하고, 일주일을 즐겁게 살려면 복권을 사고, 한달을 즐겁게 살려면 결혼을 하고 (신혼의 달콤함이 한달이면 끝이니 좀 슬프기는 합니다 ㅎ), 1년을 즐겁게 살려면 집을 사라고 했습니다. 집사고 꾸미는 데 1년은 흠뻑 재미에 빠지겠지만 맨 땅에 자기멋대로 건축을 해보면 한 5년쯤은 재미가 떠나질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평생을 즐겁게 살려면 정직하게 살라!라는 격언을 주기위해 서론이 길었지만 모두 타당한 말입니다. 오후되자 늘 그렇듯 운동가자고 재촉하는 태균이의 뜻에 따라 수산한못을 열심히 걷습니다. 오늘도 한라산은 전체 모습을 아련히 내보이고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 봄볕 아래 그 모습은 더욱 늠름해보입니다.
'한라산 배경이 잘 나오도록 잘 좀 찍어봐' 주문을 했더니 정말 한라산을 잘 잡아주었습니다. 야외에서 사진놀이도 태균이에게는 큰 즐거움인 듯, 자주자주 결과를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곧 수국이 화려하게 펼쳐질 모양입니다. 수국천지 제주도가 유채꽂에 이어 눈을 즐겁게 해줄 것입니다. 수산한못의 수국도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니 꽃볼 날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작년의 수국사진입니다.
첫댓글 벌써 이사준비를 하시는군요. 대표님은 분명 전생에 유목민이였을꺼라는 강력한 확신이... (진정한 바람의 딸)ㅎㅎㅎ 태균씨 살빠지니 인물이 확 사네요.
태균씨 발전한다는 모습이 제일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