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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리초등학교총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화구(57회)
서울 도심의 성곽길
오늘은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운동 삼아 내가 사는 아파트 25층 계단을 여섯 번에 걸쳐 올랐다.
나는 가끔 전날 술을 많이 마시면 다음날 새벽에 술을 깨기 위해서 25층 아파트 계단을 5-6회 걸쳐 오르곤 한다.
계단을 오르는 운동은 단시간 내에 운동 강도를 높여 땀 빼기에는 가장 적합한 운동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계단을 오른 건 아니나 오늘도 계단을 오르다 보니 한 겨울인데도 땀이 흠뻑 젖어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생각해보니 오늘은 새벽에 운동도 충분히 하였기 때문에 산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서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생각하다가 도심의 성곽 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싶어 집을 나섰다.
조선 건국초기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 북악산(북현무)을 중심으로 동으로 낙산(좌청룡), 서로 인왕산(우백호), 남으로 목멱산(남주작)이 서울을 에워싼 내사산(內四山)으로 삼았다.
오늘은 그 중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성곽길을 걷기로 하였다. 낙산은 도성의 동쪽에 위치한 左靑龍의 기상을 가지면서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낙산은 낙타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낙타산이라 하다가 낙산이 되었다. 이 산은 지금은 정상 근처까지 아파트와 집들이 들어서 산인지 언덕인지 구분도 안 되지만, 조선시대에는 풍수지리상 도성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산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낙산이 인왕산에 비해 너무 낮고 산줄기도 짧은데 있었다. 인왕의 높이 338m에 비해 낙산의 120m가 너무 낮아 균형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풍수 하는 이들이 볼 때, 우백호인 인왕은 여성, 지차(之次: 둘째 아들 이하)를 의미하고, 좌청룡인 낙산은 남성, 장자를 의미하는데, 좌청룡이 형편없으니 보나마나 왕자, 장자가 힘을 못 쓸 것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때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대립하게 된다. 즉 무학대사는 궁궐의 자리를 인왕산 밑에 잡아 궁궐이 동(東)쪽을 보게 하자고 주장한다. 그래야 북악이 좌청룡이 되고, 목멱(남산)이 우백호가 되어 좌청룡이 든든해지니 왕자, 장자가 힘을 얻어 조선의 왕권이 강화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삼봉 정도전은 임금의 자리는 남면(南面: 임금은 남쪽을 보고 앉는 것이 제 자리라는 유학의 기본 개념)하는 것인데 어찌 동쪽을 보고 앉으신단 말이냐고 강력 반대했다는 것이다.
결국 삼봉의 승리로 끝나고, 경복궁은 북악산 밑에 지어지고 임금은 남면(南面)하게 되었다.
이때 무학대사가 통탄하며 “200년 지나면 종묘사직이 흔들리는 크나큰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사(占辭)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마도 조선 건국 1392년에서 2백년이 지난 시점에 일어난 임진왜란(1592년)을 두고 누군가 가져다 붙인 이야기는 아닐까 싶다.
오늘 나의 낙산 성곽길 걷기 일정은 혜화문(동소문)에서 흥인지문(동대문)까지다
【아래 그림】사람들이 혜화동의 유래가 된 혜화문은 잘 모른다. 더욱이 그 혜화문이 복원되어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우뚝 서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아래 그림】조선 초 도읍을 정하면서 동서남북 네 산을 이어 도성을 빙 둘러 성곽을 쌓고,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세웠다.
4대문은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숙정문(肅靖門. 북대문),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惠化門. 동소문), 광희문(光熙門. 남소문 또는 水口門), 소의문(昭義門. 서소문), 창의문(彰義門. 북소문)이다.
【아래 그림】혜화문에서 길을 건너 계단길을 오르면서 일정은 시작된다.
【아래 그림】혜화문 용마루 위에 설치한 잡상(어처구니)들
어처구니라는 단어에는 잡상을 이르는 뜻도 있다. 잡상은 대궐의 문루에 치장하는 기와를 말하는데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동물상, 용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마루 위에 잡상(어처구니)을 설치하는 것은 액운을 떨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한옥의 용마루 위나 처마 끝에 십장생의 동물형상을 설치하는데 집이 오래되고 수리를 하지 않으면 비바람에 쓸려 그 십장생의 동물형상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이르러 ‘어처구니없다.’라고 한단다.
【아래 그림】낙산 성곽길로 접어들자 주변 분위가가 고풍스럽고 운치가 있어 보인다.
【아래 그림】오늘 서울은 영하의 추운 날이긴 해도 하늘은 파랗고 맑은 날이었다.
【아래 그림】돌담길을 돌아서며...
【아래 그림】성벽 밑 오솔길로 접어들면, 처음 오는 이들은 도심 속에 이런 멋진 길이 있었나 하며 놀라서 탄성을 지르게 될 것이다.
【아래 그림】낙산 능선을 따라 뻗어 있는 성곽은 깔끔하게 복원돼, 건강을 챙기려는 걷기족들에게는 최고의 산책로가 되고 있다.
【아래 그림】걷다보니 이곳에는 아직도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삶의 공간으로 아직 재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허름한 주거공간들도 보인다.
【아래 그림】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조성한 고풍스런 성벽은 6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 온 수도 서울의 상징이자,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조선왕조의 당당한 자존심이다.
【아래 그림】성곽길을 걷다 뒤돌아보니 저 너머로 우뚝 솟은 북한산 봉우리들
【아래 그림】자세히 보면, 돌의 색깔과 모양으로 시대구분을 할 수 있다.
검은색 돌의 크기나 모양이 제각각인 곳은 조선 초기에 축성한 것이고, 그보다 조금 큰 장방형의 돌로 이뤄진 곳은 조선 중기에 보수한 것이고 하얀색 새 성돌은 1990년대 들어 복원한 것이란다.
【아래 그림】마치 중세 유럽의 성곽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지만, 지나는 이는 많지 않아 호젓하다.
【아래 그림】오른쪽 뚫린 암문(暗門)을 통해 성곽 안으로 들어오니 낙산공원이다
【아래 그림】낙산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래 그림】낙산공원에서 바라본 풍광
멀리 좌측으로 인왕산은 右白虎의 모습으로 우측으로 북악산은 한양의 주산으로 늠름해 보인 반면 내가 서있는 이곳 낙산은 너무 약해 보인다.
【아래 그림】저산이 청와대 뒷산으로 북악산이다.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 낙산공원이 있는 산)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왔다.
【아래 그림】멀리 보이는 남산은 남쪽에 있는 주작답게 봉황새처럼 보인다.
【아래 그림】이곳이 낙산 정상이다.
【아래 그림】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오늘은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도 맑고 푸른 하늘 때문에 아름다울 것만 같다.
【아래 그림】낙산 정상에서 동대문(흥인지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아래 그림】성곽길을 걷다 뒤돌아본 풍광도 아름답고 오늘 서울 날씨도 쾌청하다.
【아래 그림】나도 잠시 짬을 내어 인증샷(shot)을 찍어보고 나는 오늘 영하의 추운날씨라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길을 나섰다.
【아래 그림】이곳은 언덕배기에 있는 창신동이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서울의 성곽은 중국의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문화유산이다. 길이는 비록 짧을지라도 보존상태나 축조기술은 서울성곽이 더 낫다는 평가도 있다.
【아래 그림】걷다보니 벌써 목적지인 동대문 성곽공원이다.
【아래 그림】옹성으로 구축된 동대문
좌청룡인 낙산이 그 지세가 약하여 풍수지리적인 비보책을 많이 썼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낙산의 지세를 연장하기 위해 한양의 사대문 글씨가 모두 세 글자인데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산맥을 연상케 하는 갈 지(之)자를 한자 더 추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대문에는 볼 수 없는 옹성을 구축하였다.
【아래 그림】왜 동대문은 흥인문(興仁門)으로 하지 않고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했을까?
서울의 사대문(四大門) 이름은 숙정문, 숭례문, 돈의문, 흥인지문인데 무엇 때문에 동대문만 흥인문(興仁門)으로 하지 않고 흥인지문(興仁之門)한 이유는 좌청룡인 낙산의 지세가 약하니 지(之) 자(字)를 넣어 늘려 주는 비보를 한 것이란다.
【 마치면서 】
새해가 밝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수요일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다.
물론 매서운 추위가 우리 곁에 서성이고 있어 아직은 봄을 노래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만은 봄을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이미 봄날이다.
끝으로 지난 1월 한 달 간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무실점 전승으로 결승까지 올랐지만 개최국 호주에게 1-2로 패하며 55년만의 아시아 정상 탈환에 실패했지만 좋은 경기로 우리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이 흘린 눈물이 앞으로 한국 축구를 더 발전시킬 영양가 가득한 자양분으로 자랄 수 있길 기원해본다.
이화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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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난했던 우리들,낙산 시민아파트 살때 그이전 아파트 짓기전에 거그서 셋방 살다가, 나중엔 아파트가 지어져 아파트에서 전세살다가롱개 무침을 새콤 콤 맛나게 해주어서롱개 5천원어치를 사다 무침하면서 낙산 성곽도 생각났어요.
시집을 왔어요. 동대문 근처 성곾도 생각나고 잘 다듬어 놨군요. 가고싶어지네..
동대문 근처 성곾이 시작되던 고샅에 첫 사랑 그남자가 살었는디 지금은 죽었는지 살었는지(당시 중앙대 경제학과 3학년인디 백혈병이라고)
성곽아래서 셋방살던 이모 친구는 요맘때 나와 이모를 초대해서
엊그저께
추억의 고몰길들
구경 잘했어요
서울 구경 추운겨울 앉아서 잘 했습니다.
설명을 읽어보니 사진빼면 한편의 수필입니다. 내가 스크랩해서 편집해둘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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