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위씨 씨족문화에는 한반도란 터에서 살다간 선현들의 눈물과 좌절 , 그리고 성공과 기쁨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638년 시조공 한반도 동래 이후 장흥위씨는 타문중에 비해 독특한 씨족문화 몇 가지를 지니고 있다. 이는 선대로부터 상속된 유형자산과 피로 유전된 DNA를 기반으로 위씨문중을 중흥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련의 과정에서 집단적인 혈족문화로 표출되었다. 2018년, 무술년 현재 시점에서 전통적으로, 또는 최근 나타난 독특한 우리 문중만의 크고(상위문화), 작은(하위문화) 문화의 특징을 각각 세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장흥위씨 상위(上位)문화는 지도체제의 차별성, 문의 전통, 젊은 피의 두각으로 나타난다.
우선, 우리 문중은 도문회와 대종회로 이원화된 권력구조가 서로 상반된 지도력을 지니고 있다.
도문회는 선조로부터 전통적 모선계의 유산을 직접 계승한 문중 최상 조직으로 향산(성열), 상산(성탁), 덕운(황량), 아산(성태), 연당(두환), 혜암(환) 및 금봉(인환) 현 도문회장까지 대부분 연임없이 2년간 역임해 왔다. 그러나 대종회는 범곡(찬호), 송담(자형) 전, 현직 회장이 27년간 재임했다. 두 상위조직의 차이점은 레임덕의 유무, 바로 여기에 있다. 도문회는 본향(장흥) 위주 산하촌 지역이라 레임덕이 없어 회주사 성지중심의 단임제 리더십이 주효했다. 반면 대종회는 타향이고 전국적이라 인물중심의 지속적인 리더십이 필요해 레임덕(Lame Duck)현상이 최소화되는 연임제를 활용 종친들을 단합시키고 문중의 목표를 달성해 왔다. 도문회와 대종회는 상반된 리더십으로 때론 경쟁적으로, 때론 협력관계로 문중을 지혜롭고 원만하게 이끌어 왔다.
다음으로, 장흥위씨 문중(門中)은 문(文)의 전통이 강하다.
물론 양란(임란과 호란)을 맞아 무장도 많았지만 무(武)는 간헐적, 단기간에 나타났다. 존재공으로 대표되는 문(文)은 그 굴직한 흐름이 오늘날까지 장기간 끊임잆이 계속 이어져 왔다. 이런 문중 지성사는 천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존재집, 선조들의 다양한 유고집, 요람, 천년세고, 종보, 위씨소식지 등의 인쇄문화를 홈피, 밴드, 카페 등에 체계적으로 저장한 엄청난 문중역사 정보는 문의 전통을 중시한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방촌유물전시관 건설과 씨족문화연구소를 중심한 원산키즈(Kids) 탄생은 문의 맥(脈)
형성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메이져 행사나 원로 별세 때 시(축하시, 추모시), 한시(만장) 등도 우리 문중의 풍요로운 문의 문화를 대변하는 촉매제이다.
세째로, 젊은 피 수혈로 신세대의 출현이다.
종친회 참여는 나이가 들어서 하는 것이다는 일반적인 현상을 타파한 성씨가 우리 문중이다. 베이비붐세대가 앞장서서 문사에 참여하는 형국이다. 그만큼 문중의 미래는 밝다는 단적인 증거로 1950~1970년대생들이 문사를 주도하고 있다. 대종회 청장년회 발족과 더불어 본향 장흥의 몇몇 청년회 조직(장위회, 곁마실회 등)의 탄생은 문중에 활력소를 제공했고 긍정적인 방향을 지향했다. 젊은이들이 재능기부를 할 상설기구나 동호회 창설이 주효했고 5대 메이져 행사(시제, 총회, 수련회, 존재기념일, 야유회)의 지속적인 개최는 젊은이들에게 질좋은 교육의 기회를 충실히 제공했다.
벽천!
좋은 글에 감사드리고,
항상 문중 일에 앞장 서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새해에도 문중을 위한 애정이 한결 같기를 소망해 보네~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