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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설익은
가을이지만,
그냥
발길 가는 대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격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햇빛 고운 날,
겸사겸사
사람 노릇 하겠다고
순천행 버스에
훌쩍 올라타,
할까 말까
갈까 말까를
얼마나 재고
망설였던 끝인지,
막상 이렇게
버스에 딱 타고 보니
이처럼 개운하고
가뿐한 것을,
역시 잘했다는
안도감과 홀가분함
약간의 기대와
설렘마저
가슴에 몽글몽글
피어 가는 동안,
지체와 정체를
거듭하며
앞차 꽁무니에 물려
질질 끌려가던 버스가
안성과 천안 구간을
벗어나자
투명한 햇빛 속으로
날개 돋친 듯
질주를 시작한다.
양측 차창을
무섭게 미끄러져가는
산야에
진초록 녹음은
아직 한여름 속인데,
그나마 저 멀리
드문드문
가을 꽉 찬
황금 들녘엔
옛 고향 어느
논밭두렁을
헤집고 다니며
메뚜기를 잡던
천진난만한
악동들의
해맑음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이미
땜통 자국처럼
추수가 끝난 논바닥엔
짙게 밴 허무 위에
덧칠을 해놓은 듯
잘려 나간 벼 폭시마다
파릇파릇 돋은 새순이
허전과 공허를 살포시
가려 잠재우기도,
논밭두렁과 야산
여기저기
하얀 분칠을 한 듯한
쑥부쟁이 혹은 들국화
무덤 무덤엔,
고뇌 쌓인
시골 농촌 청춘들의
옛 가을걷이에 얽힌
예쁜 꿈,
고운 설렘이 되곤 했던
아름다운 그 시절
고단한 일상이
눈에 아른거림을
뒤로하고,
08시 50분
센트렐시티 서울 출발,
12시 반
순천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 예정이었으나
이른 단풍 철에 몰린
행락객 차량 증가로
한 시간 반 지연
14:00시 순천대 앞에서
하차,
많이 기다리셨을 누님께
먼저 전화를 올리며,
인근 주변 어디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한식 레스토랑이나
유명 맛집을 찾아
우아한 상차림을
마주하고 앉아
점심을 같이하며,
지난봄 허리 수술 후
회복 상태나 동정을
살피고 위로와
위안을 드리고자
하였으나,
점심 때도 지나고
어디를 나서기
마뜩 치도 않고 하니
오랜만에
집에서 손수
밥 짓고 차리셔
있는 반찬에 그냥
동생이랑 점심 한 끼
나누면서 오붓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시는 뜻을
굳이 꺾기도 그러하여,
카~맵을 켠 채로
옛 기억을 되살려
변화된 거리를 지나
누님 댁 앞에 도착,
반갑게 맞아 주시는
누님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자
이미 식탁엔 그득한
반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기다리시다
한술 떴다 시며
배고플 텐데 얼른
밥술부터 뜨라시며
반찬을 내 가까이
밀어 놓아 주시는
누님의 안색엔,
허리 수술 후 아직
후윳증이 다 가시지
않으신 듯 보이지만
지난봄 산본에서
뵀을 때보다는
그나마 훨씬
좋아 뵈시고
표정 또한 밝으시다.
조카가 광주로부터
직장을 옮겨 와
누님과 거처를 합하며
안정과 평안을
얻으셔서 더 확연히
그러하시겠지만,
이렇게 회복되시는
모습이 몹시 궁금하고
염려스러워 찾아뵙고
식사라도 나누면서
힘과 용기를 더해
위로코자 했던 욕망을
키우고 있었던 차에,
때마침
절친의 아들 결혼식이
순천에서 오후
5시 반에 겹쳐
큰 시간 차를 두고
예고된 마당이라
이때가 절호의
기회다 싶어 어렵사리
마음을 정하고
아침 순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
6년 차
손아래 동생이지만
유난히 맘이 잘 통하고
소통이 원만하셔
전화 통화나 문자 나눔 시
이해하고 공감해 주시는
아량이 크고 넓으심으로
두서없이 늘어놓는
나의 허접한 대화에도
주의 깊게 들어주시고
호응해 주심에,
잠시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이지만 감응과
감사를 아끼지 않으시며
그 와중에도 오히려
날 위로해 주시는
맘 크고 품 넓으신
내 누님,
잦은 병원 신세를
힘겹게 버티시며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지셨음에도,
정직한 성격 바른 성품
굳건한 자존감
강인한 인내력으로
자신의 삶과 인생에
최선을 다하시며,
옳고 그름이
분명하시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깊으시고,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한
자신의 관리가
철저하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존경할 수밖에 없으신
내 누님께
안타까운 마음과 표정은
최대한 절제한 채
두 시간 반여 동안의
정답게 오가는 대화 속에
내 마음을 온전히
다 내려 드린 후,
낯설고 길 설은
초행길이라
누님께서 불러주신
택시를 타고 15 분여
재신이친구의 아들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
희창 군과 용환 군은
예식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으니
그 외 나타나 줄
정겨운 벗님들을
하나 둘 떠올려 기억하고
기대 찬 설렘이
모락모락 커 가는 동안
그도 금시
아모르웨딩컨벤션 앞에
멈춰 선 택시에서
성큼 나와,
수많은 축하객들이
북적거리는 인파 속으로
몇 걸음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던 듯 웃음 띈
용환친구의 환한 모습에
반갑게 손 내밀어
악수를 나누고,
비좁은 틈새를 지나
잠시 순서를 기다려
오늘 혼주 인
재신이친구 내외와
주인공 신랑
가송 군께 축하 인사를
나누고 접수 테이블에
축의를 접수한 후
뒤로 물러 나오자,
희창, 윤태, 명길, 진태,
한복, 승환, 재경, 용호,
명렬친구가 반갑고
기꺼운 표정으로
줄줄이 모습을 보임과
함께,
뜻밖인 재윤 사범님,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처 당숙 부님께서도
구례에서 여기까지
몸소 찾으신 것으로 봐
혼주의 대인관계나
인맥을 대략 엿볼 만,
자주 봐왔던 터라
더 각별하고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더 큰 반가움인 여러
벗님, 친분관계 분님과
서로 정겨운 담소를
나누면서도,
예식이 시작된 지
꽤 오래도록 연신
두리번거려 보지만
예상하고 기대했던
네(?) 벗님 들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음이
못내 아쉬움인 채,
연회장으로 이동
희창 군이 선점한 자리에
용환 군, 한복 군, 재경 군
윤태 군 등이 한 테이블에
마주하고 앉아
반주를 겸한 화기애애한
만찬의 시간을 누린다.
세상을 살아가자면
사는 동안 누구나
경조사를 접하기
마련 일 테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빈번하게
직접 당사자가 되기도
혹은 오늘 나처럼 하객
내지는 조문객 입장이
되기도 하여,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을 삶에 있어서
응당 겪어야 하고
마땅히 치러야 할
과정 중 일부이겠으나,
이러한 경조사를 통하여
혼주나 상주 당사자의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한
인심과 심덕, 인품과
인덕의 투영 내지는
반영의 마당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
고향 지킴이로써
개인사업을 운영하며
자수성가하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구례군 행정 다방면
지대한 역할과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고향을 떠나온
우리에게 늘 든든한
힘과 존재감을
드높여 주곤 하던
재신친구의 살아온 삶이
그만큼 주변으로부터
사랑과 신뢰 존중과
존경의 뜻으로 드러나
오늘 이 마당이 실현
되었으리라는
믿음으로,
혼사에 진정 아낌없는
축하와 축복을,
고송 군의 새내기 부부
앞날에도 무한 사랑과 행복
무진 행운과 영광이 늘
충만하기를 축원하는
마음으로 벗님들과 함께
축원하는 연회장으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올라와 하객들과
인사 나눔 하는 자리에서
재신친구 내외와의
작별 인사를 끝으로
모두 일어나 연회장을
빠져나오자,
이미 사방은 어둑어둑
어둠에 휩싸이고
서울행 버스표 매진 등
여러 상황과 조건으로 봐
상경을 하기엔 타이밍을
놓친 상태,
오전에 누님과 정담을
나누고 택시를 타러
나오는 길에 잠시 잠깐
교행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왔던 게 못내
아쉽고 내내 마음에
걸렸던 탓에
전화 통화 라도 해 볼
참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대뜸
"삼춘^^~ 왜 그렇게
통화가 안돼요?"
대뜸 다소 불만 섞인
조카의 음성이
귓전을 자극,
예식장에서 진동으로
선택을 해놨던 게
화근임을 깨닫는 순간
지금 어디냐고
금방 차를 갖고
나오겠다는 조카,
옆에서 가만
듣고 있던
용환이 친구가
내막을 묻고는
가는 길목이니
같이 이동하다 내려
주겠노라며 주차장으로
날 이끈다.
곧 가마고
조카를 만류해 놓고
저녁은 거하게 채웠으니
간단히
치맥이 어떠냐 물으며
대신 좀 배달 점에
주문을 넣으라고 하자
이미 다 준비 완료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어서 바삐 오시기만
하라는 재촉에
은근히 달가워하며,
참으로 뜻밖에
용환이친구랑
둘만의 오붓한
드라이브(?) 시간을
누리게 되는 이 순간에
더없이 감사한 맘으로,
50여 년 전의 아득한
학창 시절을 회상하고
성격과 체격이 서로
고만고만 엇비슷하여
유난히 친하고 가깝게
지냈던 몇몇 친구들의
밝고 환한 모습들이
불현듯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가운데,
그중 말 수가 적고
티 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온순, 착실 과장
용환 군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혼자 배시시
기꺼운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내 쪽을 향해,
운전에 집중한 채
간간이 고개를 돌려
이곳에서의 근황과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를
고분고분 시작으로,
자분자분 이어가며
또한 무척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의 다정한 벗,
학교 졸업 후 곧바로
국가공무원 직에 입문
한 길 공직생활에서
정년퇴임을 함과 함께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
구례에서 순천으로 이주,
이곳에 부동산 중개업을
개업하여 운영 중이며
구례에서는 과수 농장 및
밭농사를 경작, 노후를
위한 빈틈없는 준비로
강건한 일상을 이어가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나의 참한 친구,
내일은 아침 일찍
구례 농장으로 내달려
들깨를 베어 내고 밭을
일궈 놔야 가을 무
배추를 파종할 수 있다는
바쁜 농부의 일손에
힘도 보탤 겸 고운
추억이라도 만들어
가려거든 이렇게
이대로 밤새워 놀다가
낼 아침 농장 일을 함께
거들어 해치우고
느지막이 올라갔으면
하는 욕망이 꿈틀대도록
신명 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차에
어느새 누님 댁 인근에
접근,
진한 아쉬움을 뒤로하며
나의 참벗으로부터 받은
세심한 배려를 깊이
간직하여 차에서 내려
작별 인사를 나누고,
급히
누님 댁의 계단을
한달음에 올라서
현관문을 노크하자
배시시 웃는 조카 특유의
밝은 미소 얼굴을 쓱
밖으로 내밀며 반갑게
"삼춘"하고 부른다.
"와~우^^~
자주 만나니 이렇게 좋고
반가운데?"
"그동안 우리가 좀
소원했던 게지?"
우린 비로소 제대로
가슴을 쿵 부딪쳐
격한 포옹을 나누고
이미 술과 안주가 놓인
식탁을 마주해 앉으며,
힘이 드셨음이신지
누우신 채 인사말을
건네시는 누님께
응답 인사를 드리고,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 보며
활짝 웃는 얼굴로
조카의 면전에 가까이
디밀어 생질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그래도 예전엔
(조카의 결혼 전)
명절 때나 가족행사 때면
으레 자리를 같이하여
술잔 깨나 기울이며 서로
맞대면하고 안부 확인 겸
명절 인사를 나누곤
하였건만,
그러한 기억이
까마득하니 벌써
수년은 족히 지났지 싶다.
그동안
의도치 않은 삶과
인생사로부터
쓰라린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동안
그 아픔으로부터
견디고 곱씹으며
모든 것을 다 잊고
버리고 비운 채,
상처뿐인 육신으로
주거지 옮기랴
새 직장에 적응하랴
맨바닥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길고 어두운
고난의 삶 터널 속을
혼자서 헤집고
나왔을 것인데,
그나마
예전의 조카 모습과
별다름 없이
여전히 표정은 밝고
씩씩하기까지 함이
다행스럽긴 하지만,
힘들었을 그동안
아무런 도움도 못 되어 준
삼춘의 무력함이
내내 미안하고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제 속이야 얼마나
복잡하고 쓰리고
아리고 허탈했으랴?
그렇게
컨디션 관찰을 필두로
새로운 생활권,
새 직장 등등에 대한
조단조단 오가는
우리 둘의 대화에
구미가 당기셨음인지,
누님께서도 슬금슬금
일어나셔 우리 자리에
합류하시곤 대화에
적극 동참해 주시니
이야기는 더한층
폭넓고 다양하며
깊고 진지하다.
누님께서 아들한테
동생은 누님께
조카는 삼춘한테
서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내면으로부터
드러나지 않은 숨겨진
작은 섭함 하나까지
드러내 놓고 함께
풀고 이해하고
보듬고 다독이니,
서로의 이야기와 뜻이
물 흐르 듯 격의 없이
통하여 이심전심
마음의 평안과 위안을
얻는 셋 모두의 가슴에
진한 사랑과 믿음과
기쁨과 감사로 상호
라포 형성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을 누리며,
누님과 생질께 위로를
드리고자 하였음이
되려 내 자신이 더 크고
훈훈한 위안과 평안을
얻게 되었음을 머쓱해
하면서,
우린
주방 거실 조명등이
자울자울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제풀에 겨워할 때까지,
서로의 가슴이 하얗게
드러나 보이도록
대화를 멈추지 못하다가
누님께서 먼저 잠자리에
드시면서 우리도
한 방 이부자리를
각각 차지하고 누운 채,
이후에도 조카의
반응이 잠잠해질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마침내
내일 아침
SRT 07:08시
평택 지제역 행
열차표를 예약해
놨던 사실을 기억하고는
비로소 잠을 청하며,
오늘을 새삼
돌이켜보건대,
내켰을 때
선뜻 행하지 못하면
이제는
놓쳐버린 기회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이제부터
그때그때
한 시 한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살뜰히 살펴서,
사람답게
사람 노릇하며
자아실현에
힘쓰리라.
내일은 또 하루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쏜살같이
공도로 내달려 가서,
하부지가 보고 싶다는
휘녀석과 격한
포옹과 함께 하늘 높이
안아 올리고 나서,
귀요미 녀석의
꽁무니를 바짝 쫓아가며
아파트 주변 화단마다
이 잡 듯 뒤지고 살피는
산책길에 기꺼이
동행해 주리라.
2024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