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 올가 토카르추크 / 민음사
602쪽짜리 책에서 186쪽을 넘기면서. 재미가 있는 것도, 난해한 것도, 무슨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도전 의식을 촉발하는 책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상을 그렇게 많이 받았다는데 끝까지 읽으면 뭐가 나올까? 반전이라도 있을까?
책을 다 읽었다. 고민이 생긴다. 대단한 책이라고, 수상경력이 그리 크지 않은 글씨체로 나열되어 있는데, 나는 어떤 독후감을 남겨야 할까. 고민하면서 책을 되새김질해 본다.
600쪽이 넘는 책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흩어져 있다. 크고 작은 이야기들. 시절에 상관없이, 내용에 개의치 않고. 때론 이게 무슨 말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을 통해서. 지구상에는 그런 사람들 그런 이야기들이 넘치고 넘친다는 것일까? 다들 그렇게 살고 있고 다들 그렇게 떠나고 있으며 모두는 조금씩 변하고 또는 변하지 않고 한결같운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최진석 교수가 말하는 '건너가기'가 방랑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와는 반대로 그저 그 자리에서 혹은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 삶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회화에 추상화가 있다면 소설에는 방랑자들 같은 부류의 소설이 있는 것이 아닐까? 설명을 들어야만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고, 그렇지않으면 각자 마음대로 해석하는 작품의 세계.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마음이 가는 어떤 그림처럼·····.
간혹 소설의 말미에 붙어있는 설명을 나는 자세히 읽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열심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책의 원제인 'beiguni'도 구글링을 해본다.
머무르지 말아라. 움직여라. 머무를 때는 적어라. 몸도 마음도 생각도 멈출 때는 박제가 되나니.
그것인가! 작가는 100여 편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흩어 놓아 독자들로 하여금 직소(jigsaw) 퍼즐을 푸는 것처럼 소설을 풀어보라는 것인가? 무슨 내용인지?
번역가는 beiguni를 '방랑자'로 번역했다. 영어번역은 'flights'이다. 조금 친근하게 '여행'이라 부르자. 나는 인생을 방랑이라고 보지 않는다. 단지 어떤 곳에서는 머무는 시간이 조금 긴 것 뿐이므로.
여행이란 나를 찾는 과정이고 나를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여행자가 되어 나의 현존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죽어서 프라스티네이션화되어 누군가의 눈길을 받는 존재가 된다고 한들 어떻단 말인가. 내가 걸어간 길을 누군가가 혹 스스로 기록하고 남겨놓는다면,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디에선가 새로 태어날 것이다. 더 적절한 시간, 더 적절한 장소에서.(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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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심리적인 것이고, 성별은 문법적이다. 20
나는 이런 기형의 상태 속에서 존재가 참모습을 드러내고 본성을 나타낸다는 고통스럽고도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33
우리 자신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각자 고유하고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 시간 속을 이동하면서 자신만의 흔적을 남긴다는 점일 겁니다. 218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 다른 세상은 없다. 순간들, 부스러기들, 존재를 드러내자마다 바로 조각나 버리는 일시적인 배열들뿐.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반면에 시간은 미세한 변화의 측정을 위한 간단한 도구에 불과하다. 아주 단순한된 줄자와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눈금이 딱 세 개뿐이다. 있다. 있었다. 있을 것이다. 280
몸을 흔들어,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래야만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에겐 움직임을 지배할 능력 없어. 우리의 몸은 움직일 때 비로소 신성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어. 움직여야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거야. 그는 정지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꼼짝도 하지 않는 것,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든 것을 지배해. 389
432~433 삶과 존재에 관한 설명...
모든 밤은 우리를 정화한다. 429
Flights is a fragmentary novel by the Polish author Olga Tokarczuk. It was originally published in Polish as Bieguni. The book was translated into English by Jennifer Croft. The original Polish title refers to runaways (runners, bieguni), a sect of Old Believers, who believe that being in constant motion is a trick to avoid evil. - wiki
첫댓글 제가 고민하던 부분을 미리 말씀해주시니 한결 시원합니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그래도 한번은 읽고서
가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곁으로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소설 전체의 의도는 나에게 모호한데
단편 같은, 절망적인 노파 아누슈카가 나오는 ,방랑자들, 등은 아주 좋군요
한국에 관한 언급이 세번 나와요.
저자가 한국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했어요
1. 창고에서 개를 키워서 남성 정력강화용으로..
2. 사리, 상아빛 승복을 입고 삭발한 아름다운 여성이 성체함을 향해 몸을 숙인다..
3. 불상이 미묘한 농담을 하는 것 같아, 인간의 손이 아닌 것에 의해 (아마 반가유사유상을 말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