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수리집
윤정모
나는 열두 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다. 서재, 거실, 부엌, 침대 위에는 물론 화장실에까지 시계가 놓여 있다.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야광시계만도 네 개나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계 방 찾을 일도 많다.
인천에서 양주로 이사를 왔을 때 벽시계가 고장이 났다. 건전지를 갈아야 할 손목시계도 세 개나 되었다. 한데 시계수리집이 없었다. 큰 마트에서도 건전지는 취급하지 않았고 중심지에서도 시계포가 사라진 지 오래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백화점으로 나가보았다. 그곳에서는 당점에서 산 시계나 명품용 건전지만 있다고 했다. 가장 비싸야 5만 원 안짝의 내 시계들은 아사 직전이어도 구제해줄 방법이 없었다.
수없는 문의 뒤에야 포천 어느 할인마트에 시계수리집이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집에서 30리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시계를 수리하는 사람은 연배가 지긋할 줄 알았는데 젊은 남자였다. 내가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봐오는 사이 시계 수리는 끝나 있었다.
“얼마죠?”
“배터리 바꾼 값만 내세요.”
벽시계 수리비가 돈 좀 들 줄 알았는데 무료라고 했다. 믿을 수가 없어 진의를 물었더니 나사 하나가 풀려 있었고 그걸 조였을 뿐이라 서비스를 한다고 했다. 내가 5천 원을 내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고쳤으니 수리비는 받으세요.”
그가 거절했다.
“부속품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수리비를 받지 않습니다.”
“이런 고마움에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네요. 다른 보답이라도 하고 싶으니 일러주세요.”
“정 그렇다면 미소만 주고 가십시오.”
보답은 미소로 하라? 그 주문도 익숙하지 않아 미소 대신 고맙다는 말만 했다. 나는 타인의 호의를 수용하는 일에 아주 미숙하다. 독자들이 귤을 한 박스 보내주면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먹느냐고 버럭 화를 내고 김치나 옥수수를 보내주어도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맨다. 어떤 경우든 신세 지는 일은 딱 싫은데 얼마 가지 않아 탁상시계가 또 고장이 났다. 별 수 없이 나는 다시 포천에 갔다.
내가 시계에 대해 집착한 원인은 대학 입시 때에 있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왔는데 당시 시계가 없었던 나는 면접시간에 20분이나 늦고 말았다. 다행히 재시험 기회를 얻긴 했지만 그때의 공포는 한동안 나를 괴롭혔고 그 뒤부터 자주 시간을 묻거나 시계를 사 모으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다 고쳤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돈을 받지 않았다. 건전지 연결부위가 느슨해져서 조금 조였을 뿐이라고 했다. 문득 그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몇 가지 물어보았다.
“애초부터 시계수리가 전공이었어요?”
“아닙니다. 나는 미술대학을 다녔고 음악 매니저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왜 그만두고 이 일을 하느냐고요? 성공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즐겁지도 않았습니다.”
시계 일을 시작한 지는 3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청소년 때 시계 하나를 전부 해체해서 조립했고 그때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던 기억으로 시계포를 열었다는 것이었다.
“역시 잘 선택한 일이었어요. 천직처럼 마음이 안정되더군요.”
“아이들은 있어요?
“아들이 둘입니다. 큰 녀석이 중학교 1학년입니다.”
“교육비도 많이 들 텐데 이처럼 공짜 수리를 해주고도 지탱이 되나요?”
“아이들이 큰 걸 원하지 않고 나 또한 불필요한 것을 해줄 의향이 없으니 정규 교육비 정도는 충분히 법니다.”
“전직에 비해 훨씬 즐거운 것은 단지 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까?”
“가장 즐거운 일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은 대체로 좋은 사람들입니다. 노인들일수록 오래된 시계를 가진 분들이 많은데 그 시계가 신체의 일부분 같아 고장이라도 나면 큰 불안을 느끼십니다. 어떤 분은 시계를 고쳐주면 당신의 중단된 시간을 살려낸 듯이 좋아하십니다.”
“집에도 모시는 어른이 계신가요?”
“장모님을 모시고 삽니다. 장모님은 원치 않으셨지만 제가 오래도록 설득했지요. 장모님은 육아를 돕거나 집안일을 거들기 위해 우리와 사시는 게 아닙니다. 나는 중학교 때 어머님을 잃었습니다. 함께 살아보지 않았으면 어머니 그늘이 어떤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사람관계에서도 달인이었다.
─『시에』 2011년 가을호
윤정모
경북 월성 출생. 1968년 장편소설 『무늬져 부는 바람』으로 등단. 소설집 『밤길』, 『님』, 『딴 나라 여인』. 장편소설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 『고삐』, 『들』, 『나비의 꿈』, 『수메르』 등.
첫댓글 시계를 고쳐주면 당신의 중단된 시간을 살려낸 듯이 좋아하십니다. 얼른 지나야만 하는 시간이라면 중단되어서는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