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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9일(월) 마태복음 5:13~16 '세상의 빛과 소금' 새찬송가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오늘은 마태복음 5:13~16 말씀을 중심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으로 말씀하시면서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세상에서 버려져 밟힌다고 하십니다. 또한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빛이니 너희 빛이 착한 행실을 통해 사람에게 비치게 하라고 하십니다. 먼저 13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으시고 ‘소금이다’라고 하십니다. 소금은 음식이 썩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하고 음식의 맛을 낼 때 없어서는 안되는 재료입니다.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하는데요. 소금은 미생물을 포함해 수분을 물질로부터 끌어내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유해균에 있는 수분을 끌어내게 되고 유해균은 탈수증상이 나타나고 활동을 하지못해 증식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유해균이 수분을 빼앗겨 활동을 못하니 신진대사가 불가능해져 결국 죽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소금은 예로부터 방부제로 사용 되었습니다.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요즈음은 과학의 발달로 냉장고와 같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고대에는 소금에 절이는 것 외에 별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전도의 중심지로 삼으셨던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예루살렘이나 로마로 수출했던 곳으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에서 수출했던 생선은 활어가 아니라 소금에 절인 것이었습니다. 소금에 절이는 것만이 부패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금을 음식의 맛을 내는데요. 소금은 조미료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네 가지 기본 맛(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가운데 짠맛을 대표하는 요소입니다. 특히 소금은 모든 음식에서 맛을 더욱 돋우는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요리할 때 조미하는 것을 소금 맛을 본다는 의미로 '간 본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소금이 제대로 쓰임받으려면 누구와도 잘 섞이고 어울릴 수 있는 편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쉽게 부패되고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소량의 소금이라도 꼭 필요한 부분에 뿌려지면, 세상의 부패와 파멸을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극도로 타락하였던 소돔과 고모라성도 의인 열 명으로 멸망이 유보될 수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있어서 의인 열 명은 멸망을 막아 주는 소금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소금’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하든지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 속에 녹아져서 자기 희생의 말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내 앞에 엎드려라’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의 자기희생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자기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당신 안에서 그런 삶을 이루실 것입니다. 당신이 비워놓은 그 자리에 그분이 와서 일하실 것이고, 당신의 전적 무능력을 인정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녹아지지 않는 소금이 있다면 그런 소금은 방부제 역할도 못하고, 맛을 내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무 쓸모없게 되고 그런 소금은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밟힐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교회와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경우,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게 될 경우에 나타날 첫 번째 결과는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곧 맛을 낼 수 있는 ‘원재료의 상실’입니다. 소금을 잃은 세상은 그들 나름대로 다른 대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어느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사람이 성실하게만 산다면 모두가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유일하게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들이 맛을 잃으면 세상에 다른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금이 맛을 잃게 될 경우에 나타날 두 번째 결과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들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인 냉소입니다. 맛잃은 소금으로 인한 세상의 냉소로 인해 우리들은 아무 쓸데가 없게 되고, 밖에 버려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세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감도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인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세상이 표헌하는 그 실망감은 엄청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내려면 어디서든지 잘 녹아야 하는데, 내가 잘 섞이지 못할 때는 언제입니까? 또한 주님은 14~16절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빛이 나를 비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나를 비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의 죄와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농담에 ‘거북이 크리스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고, 사람은 12일간, 개는 20일간 먹지 않고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 동안을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말씀 없이 사는 신자를 빗대어서 ‘거북이 크리스찬’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 입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는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하늘로부터 뚝뚝 떨어지는 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오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17절 말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을 읽는 순간 지금까지 성경을 덮어놓고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나는 성경을 통하여 말씀이 마음 속에 들어오자 믿음이 부쩍 자라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생활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될 뿐 아니라 그 말씀이 나를 비추어 말씀 앞에서 나의 죄와 허물이 드러나 회개하고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숨긴 채 가만히 앉아 있는 구역모임, 셀 모임은 병든 모임, 병든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그 가운데 있는 것을 환하게 드러내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인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착한 행실’(16절)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비춰야 할 빛은 착한 행실이고 제자들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반드시 착한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이제 여기에 소금까지 대입을 해보면, 빛과 소금이 가리키는 것이 착한 행실이라면 제자들이 착한 행실을 보이지 않을 경우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제자들이 착한 행실을 보인다면 그들은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빛처럼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역할은 바로 다른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역할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어둠을 깨고 나의 죄와 부족함을 믿음으로 공동체 안에서 고백하고 간증할 때, 어둠 속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녹아지고 희생해서 그들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녹아지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되려고 드러나는 자가 되려고 악착같이 치열하게 살다보면 오히려 빛이 아니라 어둠에 거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저희들을 이 시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시고, 이제 남은 인생을 세상 속에서나 교회 안에서도 빛과 소금으로 살게하옵소서.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며 그렇게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