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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착한 의무
22: 16-31
16.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빙폐를 드려 아내로 삼을 것이요
17. 만일 그 아비가 그로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빙폐하는 일례로 돈을 낼찌니라
18.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찌니라
19.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20.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찌니라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찌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27.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28.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며 백성의 유사를 저주하지 말찌니라
29.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찌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찌며
30. 너의 소와 양도 그 일례로 하되 칠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팔일만에 내게 줄찌니라
31.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찌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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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성경을 기독교의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사용설명서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만 지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자연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사람과 만물은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법칙을 알고 지켜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태양이나 별이나 지구나 생물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본능이나 자연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따로 규칙을 말씀해 주실 필요가 없지만, 사람에게는 특별히 자기의 행동을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유의지와 판단력을 주셨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설명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과 사람의 근본을 알게 해 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성경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인생의 사용설명서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씀을 배우고 따라서 살아야만 사람답고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도올 김용옥 교수가 TV에 나와 요한복음을 강해한다고 하면서 구약은 필요 없는 책이라고 했다는데, 신약으로 구약의 의미가 밝아지고 구약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앞에서 아주 악한 죄 세 가지를 경고하고, 다음에 착한 삶에 대하여 권고하십니다. 착한 삶을 살려면 먼저 악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18- 20에는 세 가지의 아주 악한 범죄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악한 죄는, 무당이 되는 것입니다.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지니라."
무당이란 마법을 행하는 자, 신접한 자, 마법사 등을 통칭하는데, 그들을 살려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당은 신 내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신은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이 아니라 사람을 범죄 하게 하는 사단의 신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과 상대하게 하려고 영을 넣어주셔서, 사람이 짐승처럼 몸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영을 가지고 신과 교제하는 존재로 만들어 주었더니,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과 교제하면서 사람들을 사단에게 연결시키는 악을 행하는 사람이 무당입니다. 그런 사람을 살려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레19:26에는 “점술을 하지 말라.”하셨고, 31에는 “너는 신접한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점쟁이가 돈을 잘 벌어서 점 시장의 규모가 몇 조가 된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점쟁이가 되고 극장과 백화점에서도 내놓고 점집을 운영합니다. 그러나 무당이 되고 점쟁이가 되는 것은 자기만 사악한 영과 접촉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영과 접촉하도록 매개체 역할을 하니까 무당은 살려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점쟁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오늘날 점쟁이를 찾아가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이 1/3 이나 된다고 하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기독교인이 점쟁이한테 가고, 사주팔자를 보고 결혼을 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악한 행위인가 알아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고, 결혼하면서 무당에게 가서 날짜 잡아서 결혼해서는 결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악한 죄는, 짐승과 행음하는 일입니다.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사람이 짐승과 행음을 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사람이 타락하면 별짓을 다하게 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타락시켜서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게 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못하게 하고, 자기만 섬기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짐승과 행음하는 짐승 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옛날부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짐승과 가까워졌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짐승과 행음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짐승과 행음하는 지식도 있습니다. 진화론은, 인간을 짐승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인간은 하등동물에서 진화되어 인간이 되었다고 과학이라는 이름을 빌려 당당하게 주장하여 인간을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런 사람이 짐승과 행음하는 일이야 죄라고나 생각하겠습니까?
공산주의 역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물질로만 구성되었다고 하여, 사람을 오직 물질을 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고 보기에 역시 인간을 일하는 짐승으로 만들어버린 사상입니다.
쾌락주의는 지성과 선행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스트레스를 잊게 한다는 명분으로 알코올의 종이 되게 하고 마약의 종이 되게 하며,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쾌락으로 위안을 받게 하려 합니다. 이것 역시 사람을 짐승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짓입니다.
결국 이렇게 육체만 생각하는 사상은 평범한 생활로는 만족을 얻지 못해서 동성애가 극성을 부리게 되고, AIDS라는 무서운 병을 만났으면서도 세상은 동성애가 번져만 갑니다. 결국에는 그것도 만족하지 못하여 사람이 짐승과 행음하게 됩니다. 소돔 고모라가 그랬고, 폼페이 등 멸망한 고대 도시들의 유적을 보면 사람이 짐승과 행음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8:23에도 보면, 성경 시대에도 남자들이 짐승과 교접하고 여자들도 짐승과 교접했다고 되어있습니다. 롬1:에 보면, 바울 사도도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어두움이 결국은 거기까지 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받들지 않고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인간의 궤도를 벗어나서 짐승의 자리로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들이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에서 완전히 이탈한 자들이며, 이웃에게도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하는 존재들이니 이들을 다 죽여서 없애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죄는 성적인 범죄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제정하신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인생다운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종교적 죄인 것입니다.
한국에도 지금 동성애 클럽이 생기고 있고, 남자들이 강간을 당하는 사례들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것은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인데 그런 비정상은 곧 짐승과 교접하는 일로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심판을 불러올 것입니다.
세 번째 큰 죄는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20절에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라는 말씀합니다. 희생을 드린다는 것은 짐승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인데, 인간에게 제사를 받을 만한 다른 신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만드신 다음에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이 세상을 관리하라고 위탁해 주셨습니다. 코끼리가 아무리 커도 사람이 다스리는 짐승이요, 호랑이가 아무리 사나워도 사람이 다스리는 짐승입니다. 사람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서, 세상의 짐승이나 자연만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한 존재입니다. 짐승은 사람이 부리고 잡아먹을 수 있는 것들이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만물은 우리가 기르고 가꾸고 보살피며 관리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우리가 기르고 잡아먹어야 하는 짐승에게 제사하고, 산과 바다와 별에게 제사를 합니다. 사람이 자기가 다스릴 만물에게 제사를 하는 일은 가장 못나고 용납할 수 없는 악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를 낳고 기르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라고 절을 한다면, 그 가문에서 그 사람을 놔두겠습니까? 당장에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니까 다른 이웃과 친척들까지 그렇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먼데서 살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 형제들이 가문을 망가뜨린 그 사람을 그냥 놔둘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아들에게 아버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와 같은 사람을 아버지라고 하니까 그래도 나은 것입니다. 만약 자기 집에서 삼년동안 기르던 강아지에게 “당신은 내 아버지십니다. 나에게 용돈을 좀 주세요.” 하고 절을 한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이기를 포기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 높여 주니까, 하나님을 경배하지는 않고 오히려 잡아먹을 짐승과 고목나무와 바다를 신으로 섬기고 있다면,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기가 막힐 일입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그냥 놔두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어리석고 악한 풍조를 퍼뜨리겠습니까? 그런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결코 살려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것을 신이라고 섬기는 사람은 당연히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들을 그들의 죄 값으로 죽게 하여 없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시대에는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물로 심판하여 사람들을 없애버렸고, 소돔과 고모라 도성은 불로 심판하여 태워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성도가 다른 신에게 가서 또 절하는 것은 어떨까요? 한 남자가 두 여자를 사귀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인데, 인간이 하나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는 일이 용납 될 수 있는 일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귀신과 결합하는 자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위 세 가지 중요한 범죄를 행하는 자는 그를 살려두지 말라는 엄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도의 착한 의무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착한 일을 하기 전에 우선 악한 일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정리하지 못하고 무슨 착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가지 착한 일과 종교적 의무를 제정하셨습니다.
첫째,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학대하지 말라. 21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었음이니라.” 누구라도 그런 처지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이방에서 살아가는 서러움이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들도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나그네를 압제한다면 그것은 큰 죄가 되지 않겠습니까?
레19:33에는 동정이 아니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같이 사랑하라.” 고 하셨습니다.
신24:17에는 “그들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터를 잡지 못한 사람을 내쫒지 말고 도와주라는 말입니다. 내 가게 옆에 다른 사람이 와서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는 어쩌면 뿌리가 없는 나그네입니다. 인간적 입장에서 보면 경쟁자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불신자는 당연히 그를 쫓아내려고 온갖 방해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되면 큰일입니다. 이때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를 경쟁자로 여기고 쫓아낼 궁리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처럼 생각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미용실을 가더라도 날짜와 시간을 맞추어 자기의 단골가게로 갑니다. 그런데 한 동네에 미용실이 네 곳이 있다고 합시다. 그들은 서로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데도 그들은 서로 도우며 살아간답니다. 한 가게가 부득이한 출타를 하게 되면, 자기에게 예약한 단골을 이웃가게에 연결해주는데, 그러면 이웃의 단골을 맡은 미용실은 한번 찾아온 손님을 자기 단골로 만들려는 시도를 결코 하지 않고 옆집이 돌아오면 그 손님을 다시 그리로 가도록 권고합니다. 그래서 서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면 사람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둘째,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 22- 24
"만일 네가 그들을 해롭게 함으로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이사야 당시의 방백들은 악했습니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 도다."(사1:23) 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자기의 권세를 이용해서 약자를 약탈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미워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벌주십니다. (24)
약자를 억울하게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벌을 주십니까? 24절에 나와 있습니다. 칼로 너희를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강도에게 당하게 하시거나, 전쟁이 일어나 망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가,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그들이 약자에게 행한 그대로 그 사람이 당하게 하신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셋째, 가난한자를 도와주어라. 25- 27
가난한자에게 돈을 꾸어주거든 악덕업주같이 하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레25:35에도 보면, 가난한 자를 도와서 생활하게 해주고, 이자를 취하지 말라고 하셨고, 추수할 때도 가난한자가 줍도록 일부러 이삭을 흘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 가난한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의 옷을 전당잡았을 경우에는, 해가 지기 전에 그 옷을 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 단벌이었고, 겉옷은 낮에는 걸치고 다니는 옷이지만 밤에는 덮고 자는 이불이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하면 입고 있던 겉옷을 전당잡히겠습니까? 그것을 전당 잡히면 밤에 무엇을 덥고 자겠습니까? 밤새워 떨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돈이 있어서 빌려준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어도 밤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자기는 이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형제를 생각해서 저녁이 되기 전에 저당 잡은 겉옷을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물질 위주로 살지 말고 형제를 돕고 사랑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서 살아가라는 선하신 명령입니다.
넷째, 지도자를 존경하고 순종하라. 28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백성의 지도자, 영적인 지도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을 권위자라고 합니다. 권위자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장치입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는데 임금, 스승, 아버지는 하나님이 주신 대표적인 권위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보호막입니다. 이들을 욕하고 저주하는 것은 자기를 망치는 일이 되고, 이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모독한다." 는 단어는, 가볍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미워한다. 저주 한다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지도자를 가볍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은, 그를 세운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이고, 자기가 하나님자리에 앉는 교만이며, 자기를 보호하는 벽과 울타리를 허물어버리는 자해입니다. 고라 일당은 지도자인 모세를 그렇게 가볍게 여기다 망했습니다.(민11:1-3, 16:1-35)
다섯째,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라. 29- 31
(1) 추수한 곡식이나 열매의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민18:21,24에도 "땅의 십 분지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 분지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2) 즙이나 기름의 드리라.
"너의 짜낸 즙을 바치기를 더디 하지 말지며" 기름이나 포도주등입니다.
감람유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것은 제사장의 생활과 제사용이었습니다.
"더디 하지 말라" 는 말은,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미적거리며 해를 넘기고 나중에는 잊어버렸다고 핑계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회계계정에 과년도 헌금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약속하고도 내지 않은 이들이 있어서 그런 과목을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하는 것이니,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3) 너희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맏아들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맏아들을 바치라는 것은 그 아이를 제물로 태워 제단에 바치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출12:에 애굽에서 장자가 다 죽는 것을 내가 살려주었고 너희도 살았으니 그 맏아들은 내게 돌려서 나를 섬기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봉사할 일군들이 끊이지 않게 하라는 것이고, 자식들 중에서 누구를 드릴까 고민하지 말고, 제일 못나고 머리도 나빠서 취직도 못할 것 같은 아들을 바치는 약은 짓 하지 말고, 가장 귀한 맏아들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모든 가정에 아들이 하나뿐이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가정이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꼭 목사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사람처럼 살면 됩니다. 가정마다 아들들이 그렇게 산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4) 가축도 십분의 일을 드리라 30
“소와 양도 그와 같이 하되” 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하라는 것은 소나 양의 새끼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인데 이것은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출13:2에는 “소의 첫 새끼는 부리지 말고, 양의 첫 새끼의 털은 깎지 말고”라고 하셨습니다. 첫 소산은 다 내 것이니 네 유익을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의 의미는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이지만, 그 고기는 제사장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농사나 목축을 하지 않지만 그들도 먹고 살아야 했기에, 짐승의 첫 새끼를 제물로 바침으로 제사장들이 먹고 살게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이 너무 가난하면 백성들에게 무시를 받을 가능성이 있고, 너무 넉넉하면 배불러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열 한지파가 십일조를 드리면, 바치는 지파들은 수입의 아홉을 누리게 되고, 레위지파는 열 하나를 얻게 되니 레위지파가 좀 많은 편인데, 그중에서 여호와께 제물로 드리니 모두가 평균해지는 것입니다.
주의 종은 성도의 평균수준을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해야 되고, 성도들은 주의 종을 자기처럼은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 하나 샀으면 목사님도 이것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내가 좋은 것을 먹었으면 목사님도 이것 좀 대접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어디 좋은 구경을 했으면 “목사님이 이것을 보시면 많은 생각을 하시고 좋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실 텐데”하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5) 부정한 것은 먹지 말라.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므로 짐승에게 찢긴 고기, 즉 다른 짐승이 잡아서 먹다가 남긴 고기를 주워 먹지 말고 개에게나 던져주라고 하십니다. 거지는 남이 먹다가 버린 것을 주워 먹지만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남이 버린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짐승에게 찢긴 고기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너희는 존귀한 내 백성이니 시시하고 천박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기를 잉태한 산모도 삐뚤어진 것은 먹지 않고 잘생긴 과일을 먹고 바른 몸가짐을 갖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이 품위와 자존심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세상에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제사장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내 백성이니까 자존심을 지키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도 칭찬받도록 바르게 살아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칭찬과 존경을 받도록 바르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답고, 그래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여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