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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5
기생 라합의 믿음 / 박기완 목사
오늘 본문의 배경은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하여 두 명의 정탐꾼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서 정보를 입수하는 내용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공략하기 전에 먼저 여리고 성을 정복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이미 40년 전에 가나안 땅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낼 때... 12명의 정탐꾼들에 의해서 정탐한 경험이 있습니다(민13:17-23).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 이제 다시 그 땅에 정탐꾼을 보낸 것입니다. '정탐꾼'이라고 했지만 오늘날로 말하면 이들은 특수 훈련을 받은 특공대원이었습니다. 적의 병력은 어떠한지, 지형은 어떠한지를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여리고'라는 도시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아주 중요한 길목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은 종려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고, 아주 튼튼한 성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여리고 성은 두 겹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성벽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내벽과 외벽으로 되어 있는데.... 그 성벽사이의 간격이 자그마치 4m∼5m의 폭으로 넓게 되어 있어서 마차를 타고 달려가도 될 만한 성벽이었습니다.
이러한 튼튼한 요새로 인하여 외적이 침략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지역이 바로 여리고 입니다.
요단강 동편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여리고를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리고는 농산물이 풍부하고, 산업이 발전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여리고'라는 이름의 뜻은 '향기의 도시', '달의 고을', '종려나무의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이 지역을 바라보고 여호와의 물댄 동산과 같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 그런 땅입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땅이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라 그런지 이곳에는 무역이 발달하고, 산업이 발달하고, 향락 산업이 발달되었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정탐꾼들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이런 도시의 분위기로 인하여 라합이란 사람은 기생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직업을 선택해도 바로 해야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이 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직업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믿음으로 포기하고 신앙 생활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해야 합니다.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마가복음 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시는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정탐꾼들이 제일 먼저 접촉한 인물은 라합이라는 기생이었습니다. 기생 라합의 집은 여관도 되고, 술집도 되고, 창기의 집도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어서 정보를 수집하기가 좋은 장소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하나님께서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내셨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단지 그 땅을 탐지하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그냥 정복하면 될 터인데.... 왜 정탐을 했을까?.... 그것은 바로 라합이라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른 길도 많은데 사마리아로 지나가시고자 하셨던 것은 사마리아 여인과 그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라합을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대부분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무자비한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과 부녀들까지 다 죽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가혹하다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아모리 족속의 한 성읍 여리고를 정복하기 전에 택한 백성 라합을 구원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확증하는 본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방인인 라합의 마음 속에 믿음을 주시고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편에 서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라합에게 정탐꾼이 들어왔다는 것이 곧 발각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은 직접 라합에게 기별하여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합니다. 하지만 라합은 이미 그 사람들을 지붕 위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겨 놓고 그들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자기는 그들이 누군지 잘 몰랐었다고 말하고, 이미 그들은 도피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얼른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지 모르니 한번 추적해보라고 했습니다.
민족을 배반하는 행위는 죽음에 해당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자기 뿐 아니라 온 가족의 생명이 걸려있는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라합은 이렇게 위험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라합은 어떤 믿음이 있었길래... 생명을 걸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으며, 어떤 믿음이 있었길래... 여리고 성에서 유일하게 구원받은 가정이 되었는지... 이 시간 살펴보면서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듣고 깨닫는 믿음(8-11)
첫째로, 라합은 듣고 깨닫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라합의 집에는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합은 그런 얘기들을 듣고 깨닫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8-11절에 기록된 라합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여호와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줄을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라합은 정탐꾼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면서 정탐꾼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여리고 성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사건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출애굽 때 여호와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을 들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의 나라를 전멸시킨 일을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여리고에 사는 모든 백성들은 이미 이스라엘이 어떤 민족이며... 그들의 신이 어떤 신인가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11절에 보시면,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上天下地)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랬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다 듣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라합이 뭐라고 그럽니까?...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니라"
지금... 이방 여인의 입에서 이 세상의 신은 단 하나요 그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줄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은 이 세상 그 어떤 신과도 비길 수 없는 유일신임을 고백했습니다.
결국 라합이 두 명의 정탐꾼을 숨겨주었던 것은 이런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믿음 때문에 그는 생명을 걸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0:17절 말씀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랬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는데.... 과연 라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듣고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듣고, 깨닫는 믿음... 이런 사람이 진정 복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라합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듣고 깨닫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약속을 지킨 행함이 있는 믿음(15-16절).
둘째로, 기생 라합의 믿음은 약속을 지킨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15-16절).
15절 이하를 보면, 이제 라합은 두 정탐꾼을 줄로 달아 내려서 도망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사람들이 다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가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 두 명의 정탐꾼들이 반드시 살아야만 자기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라합은 어찌하든지 정탐꾼들이 무사히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두 명의 정탐꾼은 라합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보답으로 확실한 구원의 보증을 약속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붉은 줄'을 창에 매달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18절 이하에 보시면, 이스라엘이 진군해 올 때 지금 자기들을 달아내린 이 창문 위에 붉은 줄을 달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고 했습니다. 붉은 줄을 달고 있는 집에 있는 사람은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만약 누구든지 집 문밖에 나가면 그 사람은 죽어도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라합은 약속한 즉시 붉은 줄을 창에 매었습니다. 이는 약속을 지킨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초대교부들은 이 붉은 줄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꼭 이 줄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죽음의 사자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보고 다른 집으로 넘어갔던 것처럼, 라합의 집에도 붉은 줄은 하나님의 진노가 넘어가는 은혜의 방편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붉은 줄은 라합과 그녀의 가족에게 있어서 생명을 얻는 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유월절 사건 때...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것은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라합이 이 붉은 줄을 창에 달았다는 것은 그녀의 신앙 고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진군해올 때까지 그 줄을 계속 달았다는 것은 그 믿음이 변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합은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꾼을 숨겨 주었고.. 그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창문으로 내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붉은 줄을 매어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18절에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내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오리겐은 아주 재미있게 해석을 합니다. "네 집에 모으라"는 말을... 붉은 줄이 있는 라합의 집에 그 어미도 그 아비도 그 형제도 그 친척들도 모두 모아 구원을 받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 십자가가 있는 집 근처에.. 다시 말하면 교회에 어미도 아비도 형제도 친척도 다 불러모아 구원받는 역사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2:22절에 보면, 유월절 사건을 다루면서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에 모여 있으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하면 하늘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성도가 하나님 품에 머물지 아니하면 영적인 죽음 가운데 내버려지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 은혜 밖에 나가면 사탄이 그를 집어삼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십자가가 있는 하나님의 집에 머물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붉은 줄이 늘어뜨려졌던 집에 모두 모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흘린 십자가가 우뚝 서있는 이 교회에... 우리의 부모도, 우리의 형제도, 우리의 친척들도 모두 불러모을 수 있는 라합과 같은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의 구원의 처소요, 구원의 방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고, 그것을 의지하면서 십자가 앞에 모이는... 살아있는 구원의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라합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많은 모험과 위험을 동반했습니다. 생명의 위기를 만나 두렵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믿음을 행함으로 옮겼습니다. 그의 믿음이야말로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인 것입니다(약2:7).
말로야 누가 못하겠습니까?... 행함으로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도 보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기도생활을 할 때도.... 전도를 하려고 할 때에도.... 그리고 십일조 생활을 하려고 할 때에도.... 어려운 상황과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삶이 없으면 그의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기생 라합의 믿음을 본받아...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믿음(21,6:22-25).
셋째로, 기생 라합의 믿음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믿음이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과 약속한대로... 붉은 줄을 창가에 매달아 놓고 온 집안 식구를 한데 모아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붉은 줄이 없으면 안되고 집 밖에 나가면 안되니까.. 붉은 줄을 굳게 달아 매어 놓고... 온 가족들이 이것을 지키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혹시 바람에 날려서 붉은 줄이 없어지면 어쩌나..... 혹시 떨어지면 어쩌나.... 노심초사... 붉은 줄을 바라보며....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키며 소망으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22절을 보시면... 두 명의 정탐꾼을 찾기 위하여 수색대들이 사흘 동안을 두루 찾아다녔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역사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에 들어갈 때부터 라합의 집으로 인도하셨고, 라합의 마음에 믿음을 주셔서 생명을
걸고 이들을 보호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들을 보호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23절에 보시면 이들은 여호수아에게 돌아와서 이 모든 일을 보고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군데를 다닌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탐꾼들은 단지 라합의 집에서 몇 일 숨어 있다가 온 것이 전부입니다. 라합의 고백이 전부입니다.
정탐꾼들이 누구를 만났으며,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게 정탐한 건가?..." 참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보고 내용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나이다!" 라합의 말만 듣고... 그들은 그것을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라합의 믿음의 행위는 이 두 정탐꾼에게 확신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붙이셨다"는 라합의 고백으로 인해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다른 것은 더 볼 필요도 없이.... 여호수아에게 가서 확신에 찬 보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여인의 목숨을 건 믿음의 행위가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고 진군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라합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는, 듣고 깨닫는 믿음이었습니다.
둘째는, 약속을 지킨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셋째는,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라합의 믿음을 본받아... 믿음으로 승리하는 귀한 권속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