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우리 옆집에는 누가 살고 있지?
온기 없는 관심이 낳은 경계심과 무성한 소문
매일 꽃을 수레에 한가득 싣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할머니는 ‘꽃수레 할머니’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별명만큼 할머니를 둘러싼 동네 소문은 예쁘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고, 행색이 초라해서일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할머니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눈을 마주치면 식물로 변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할 정도랍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옆집 소녀만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소문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어느 날 매일 보이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고, 경찰들이 할머니 집을 수색하지만 찾지 못하자 이웃들은 제정신이 아닌 할머니가 길을 잃었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합니다. 그런데 소녀는 이때도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합니다. 소녀는 그들이 할머니에게 진짜 관심이 없다는 걸,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간파한 것 같습니다. 결국 소녀는 직접 할머니를 찾아 나섭니다. 할머니 집 담벼락을 과감하게 넘어 집 안을 둘러보고 정원으로 가서 꽃들 사이를 헤치며 할머니를 적극적으로 찾습니다. 옆집에 살 뿐 평소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소녀를 할머니의 집으로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웃 간 소통이 단절되고 벽이 높아진 시대
나는 어떤 이웃이고, 우린 어떤 이웃을 원할까
소녀가 발견한 할머니의 정원은 온갖 꽃들로 가득했고 화사했습니다. 할머니가 매일 쉬지 않고 규칙적으로 수레에 꽃을 태워 산책한 건 이 정원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할머니에게 누군가 산책의 이유를 한 번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어쩌면 정원 가꾸기나 꽃에 관한 할머니의 해박한 지식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할머니에 관한 소문은 참 많았는데 ‘온기’가 없고 소통이 없다 보니 경계와 의심의 벽만 쌓게 된 게 아닐까요?
할머니도 자신을 둘러싼 얼토당토않은 소문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애써 해명하는 대신 생명을 사랑하고 가꾸는 데 정성을 쏟은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 검은 고양이는 불운의 상징으로 보는데, 할머니는 꽃수레를 끌고 산책할 때도 늘 검은 고양이와 함께했고, 작은 달팽이마저도 할머니의 몸에 항상 붙어 지냈으니까요. 경계심이나 편견이 없었던 소녀의 눈에는 분명 초라한 행색 뒤에 감춰진 이런 할머니의 진짜 모습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다수가 외면하고 소외시킨 이웃 할머니의 집으로 소녀를 이끈 힘이 아니었을까요?
1인 가구 증가 사회에서
홀로 맞이하는 죽음을 모두 ‘고독사’로 봐야 할까?
《우리 옆집에 꽃수레 할머니가 살아요》는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고독사’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집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34퍼센트가 1인 가구로, 그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엔 노년층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와 단절된 채 살다가 혼자 살다가 쓸쓸히 생을 마친 청년들의 뉴스도 자주 들립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닿으면, 과연 홀로 살다 홀로 생을 마감한 꽃수레 할머니의 죽음을 ‘고독사’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꽃수레 할머니는 꽃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면서 자신의 죽음을 즐겁게 준비한 것으로도 보이거든요. 홀로 살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도 저마다의 인생이 있었고 사연이 있을 텐데, 그 모든 죽음을 ‘고독사’라고 지칭해도 될까요? 이 또한 나 중심으로, 편견과 선입견 가득한 시선으로 이웃의 죽음을 단정하는 건 아닐까요?
추천평
우리는 수많은 ‘그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큰 그림에서 우리는 모르는 그들과 연결돼 있지요. 거미줄에 매달려 흩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영롱한 아침 이슬들처럼요. 이 책은 이웃의 무관심과 사회의 편견에 가려져 홀로 살아가는 ‘그들’과 그들을 모른 척하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늘 같은 시간에 꽃수레를 끌고 지나가던 할머니가 어느 날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건가요?"
- 임경희 (『그림책으로 배우는 삶과 죽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