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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나이: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이십니다. 요8:56-58
1. 여호와=예수는 만물의 창조자입니다.
2. 여호와=예수는 양들의 목자이십니다.
3. 여호와=예수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4. 여호와=예수는 우리의 구원자(구세주)이십니다.
5. 여호와=예수는 사람들에게 찔림을 당하였습니다.
6. 여호와=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7. 여호와=예수는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8. 여호와=예수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9. 여호와=예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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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8:56-58)
(요 8:56-58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여기서 "내가 있느니라."는 구절을 희랍어로 보면 "에고(I) 에이미(am)"이며, 에이미라 는 동사는 현재시제로서 to be, to exit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3:14절, 즉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는 구절 에서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야"(있다. 이다. 되다)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단어는 be(이다), 혹은 become(되다)의 축어 형태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그리고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당신을 소개할 때 사용하신 단어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 의미를 이해했던 바리새인들이 신성모독으로 예수를 돌로 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내가 있느니라", 즉 "내가 스스로 있는자, 곧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who is) 전에도 계시고(who was) 장차 오실 이(who is to come)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계 1:4)
이것이 바로 스스로 있는 자, 곧 영원에서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여호와의 이름이 들어간 천사나 선지자의 호칭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엄숙하게 선포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신성모독으로 비난받지 않았습니다.
또 다음 구절을 볼까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욜 2:32)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9, 13)
우리가 구원받을 이름은 하나입니다.(행 4:12) 구약시대에는 성부 이름으로 구원을 받다가 신약에 이르러 성자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개념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천사장 미가엘이 아니라 영원하신 아버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사 9:6) 이십니다. 예수와 여호와가 다른 분이라면 구약 시대에 두 분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을텐데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행위 아닌가요?(출 20:3)
저희는 이렇게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권위와 권세를 아들에게 위임하셨고 그분을 통해서 모든 이들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엘로힘으로 지칭된 분만 나오시다가 26절을 보면 사람을 창조하실적에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십니다. 그것이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죠. 하나님은 창조시부터 홀로 행동치 아니하시고 그의 아들을 통해서 모든 만물을 창조케 하셨습니다.(히 1:2) 그리고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 하시고 육신으로 오셔서 대속을 행하셨습니다.
또 한 구절만 보고 싶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10-11)
이 구절을 잘 보십시오. 예수님이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스라엘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시 72:18)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이라 지칭하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삿 11:23) 그분을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라고 부르지요.
(삿 11:2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39)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 성경인데 바로 그 책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7)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시작으로 모든 구약 성경을 들어 "자기에 관한 것"을 설명하셨다 했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확인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보십시오. 누구를 증거하는 책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분 외에는 다른 신이나 구원자가 없다고 합니다. 즉 유대인들이 인정하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뜻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바로 구약 성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구약 성경이 당신을 증거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12)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바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구약 시대에도 구원받을 이름이 예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 잘 아시겠지만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지요.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신약 시대에는 그분의 아들인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모순처럼 생각됩니다.
▣ 그리고 구약 성경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과 동일하신 분임을 증거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만 언급합니다.
1. 여호와=예수는 만물의 창조자입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2)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사 44:24)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왕하 19:15)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물을 아들을 통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서를 보면 여호와는 어떤 도움도 없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하지요 하나님 아버지의 지명을 받아 홀로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는 구절입니다.
2. 여호와=예수는 양들의 목자이십니다.
"그들이 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며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4:30-31)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히 13:20)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6)
여호와이신 예수님은 그분의 양을 치시는 참된 목자이십니다.
3. 여호와=예수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슥 14:16-17)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계 17:14)
왕중의 왕이며 만군의 주되신 분이 한분일까요 두분일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왕중의 왕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곧 여호와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4. 여호와=예수는 우리의 구원자(구세주)이십니다.
"(우리의 구속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라)" (사 47:4)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후 1:1)
구원자 역시 한분밖에 없습니다. (호 13:4 - 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느니라.)
(호 13:4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 여호와=예수는 사람들에게 찔림을 당하였습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 12:1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7)
6. 여호와=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찌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겔 20:12, 20)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12:8)
7. 여호와=예수는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렘 17:13)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 7:38)
8. 여호와=예수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1)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사 9:6)
9. 여호와=예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2-13)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4:6)
이처럼 신구약에 걸쳐서 여호와와 예수님은 동일하신 능력과 속성, 역할을 하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언젠가 이 문제로 토론을 하던 중 어떤 분께서 다음 구절을 들어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행 2:34-36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몇몇분들은 윗 구절을 증거로 제시하여 여호와와 예수는 같은 분이 될 수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맞습니다. 필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성구의 표면만 본다면 그렇게 볼 수 있지요. 저도 한동안 이 구절을 가지고 고민해 왔습니다. 교회 몇몇 분들에게 물어봤고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만족스럽지도 않았고, 너무나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해 오면서 답을 발견했다고 봅니다. (물론 이는 철저하게 저 개인의 연구에 따른 해석일 뿐이며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는 저 개인의 해석이기 때문에 더 나은 해석이 있으면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금식을 마치신 다음 회당에 들어가서 다음 이사야구절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그런 다음 해설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윗 구절에서 나오는 "나"라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된 분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인용한 구절을 구약에서 찾아봤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1)
똑같은 구절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주의를 기울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이 이 구절을 당신에게 적용하셨으니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물론 이차적 의미는 그렇지요. 하지만 이 구절에서 말하는 "나"는 이사야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계시를 주시고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이사야서 전체의 기본 틀입니다. 그럼 이사야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 찾아보지요.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16:8-10)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행 2:25-28)
시편에 있는 구절은 다윗의 시입니다. 물론 시편에 나오는 "나"는 다윗을 지칭하지요 그런데 사도행전으로 넘어오면 시편에 나오는 "나"가 예수님이라 합니다. 그럼 다윗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한구절 더 보겠습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시 2:1-3)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행 4:25-27)
시편에 나오는 "기름부음 받은 자는 당시 유대 왕(다윗)을 의미하는 것(시 28:8, 시 132:10)으로 당시 주변 정세의 어려운 상황을 묘사하면서 여호와께서 그 왕국을 승리로 이끄실 것임을 확신하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또 사도행전으로 넘어오면 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예수님이라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왜 저는 위에서 세 구절을 인용했을까요?
만약 성경 필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성구를 퍼즐맞추기식으로 연결한다면 이사야와 다윗은 예수님과 동일한 분으로 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내려오시기 전에 이미 다윗과 이사야라는 인물로 내려왔고 그 당시 썼던 기록을 다시금 내려와 자신에게 응한 것이라 주장한다는 이상한 교리가 되어 버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왜 성경에서는 구약 시대의 인물을 지칭한 구절을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대표 원리가 있습니다. 즉 구약시대의 인물이 어느 정도 앞으로 오게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인류인 아담은 모든 인류의 영생을 허락하실 예수님에 비유되기도 하였습니다. (고전 15:45)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칠 것을 의미했으며 요셉의 이야기는 돈으로 팔려가 결국에는 승리자가 되어 모든이들을 구원할 예수님을 의미했습니다.
모세의 출애굽 사건은 모든 인류를 속죄 희생으로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님으로,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을 약속의 땅, 즉 영생으로 이끌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또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름부음 받은자인 다윗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외친 이사야 역시 예수님을 상징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예언한 구약의 구절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선지자의 성역이나 당시 상황을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그 성역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이나 그 이후 사도들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기록을 인용하여 바로 예수를 예언한 것이라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제가 시편 110편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시편 110편에 나오는 "내 주"라는 인물도 원래는 예수님이 아니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구약시대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각자가 다른사람들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자들이었습니다.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자들이기에 그에 더하는 다른 구원자를 언급할 수가 없었으며, 굳이 구원자를 언급할 경우도 자신들을 주변이방 민족에게서 구출해 줄 특정 왕을 지칭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자들이나 실제로 구약시대에는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위에서 성구을 통해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시편 110편을 근거로 해서 "봐라 여호와가 예수님에게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봐라 예수님이 이사야를 일러 당신이라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는것과 같은 해석입니다.
***민병석: 질의와 응답 1386번. 내이름은 / 여호와의 이름은 성부에게만 해당되나. 2006-11-17
http://m.cafe.daum.net/a0167769263/U07o/684?svc=cafeapp
***민병석: 질의와 응답 1933번. 천사가 전한 율법 / 구약의 여호와의 사자와 하나님. 2009-09-14. 요1:1-3, 마22:43-45, 히1:4, 빌2:9-11, 창22:15-17, 창18:22
http://cafe.daum.net/a0167769263/U55L/31?svc=caf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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