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단어-박인서 20240713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우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귀에는 정겨운 재즈풍의 피아노가 울렸다. ‘그런 게 아니야.’ 이런 노래소리도 귀에서 울렸다.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그는 어떤 습관이 있었는데 무언가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침 거품이 살짝 묻은 입꼬리부터 턱 끝까지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여 쓰러 내리는 것이었다. ‘습관’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할까? 조금은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그 습관을 적용 시켰다. ‘습관’ ‘연기’ 이 두가지를 대조 해보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러니까 말이죠” 이런 첫 문장을 천천히 읊조려 보았다. 앞에 앉아 있던 택시 운전사가 무언가 질문을 했지만 창문이 열려 있었기에 잘 듣지는 못했다. 우의 생각은 온통 다음의 문장을 적을 때는 존대로 써야겠다는 결심에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등교를 하는 아이를 보았다. 지금의 처지가 매우 안타까웠다. 어쩌면 그 또한 저들 중 일부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런 부분이 오히려 이목을 끌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남자아이들’ 이 네 명정도 있었다. 그중 세명이 앞으로 갔다. 한 놈이 입을 열어 뭐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우는 택시 운전사의 여러 대꾸를 기다리는 말에 신경을 빼앗겼다. 잘 듣지 못했다. 뒤에 한 놈이 입을 연 학생을 때렸다. 즐거운 듯 한 대 맞고 서는 웃으며 도망쳤다. 때린 아이도 그 뒤를 이어 쫓아갔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우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머리에서 이렇게 저렇게 나열한 모든 상황이 진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한 놈은 도망갔고 한 놈을 쫓았다. 그의 시선도 계속 따라갔고 머리속의 이유 모를 상황 정리는 또한 계속 됐다. ‘재밌는 장난, 재밌는 장난’ 그렇게 머리에서 외우다가 살짝의 멀미가 생겼다. 그러다가 두 아이들은 ‘걷고 있는’ ‘여자학생들’의 앞에 정확히 멈추어 그 재밌는 장난을 계속했다. 우는 그 잠깐의 시간을 사진처럼 찍어냈다. ‘10년’ 뒤에도 ‘떠오를’ 사진에는 ‘여자들’은 조금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담겨 있었고 ‘남자 놈들’은 그 표정과 자신들을 향한 ‘여성의’ 시선만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의 편안을 가지며 점점 뇌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청소년의 연기’, ‘역겨운 연기’, ‘성적인 연기’ 이런 것들을 떠올리다 ‘청소년의 성적인 것이 들어나는 연기’하고 정리를 하니 만족스러움에 졸음이 살짝 느껴졌다. “청소년의 성적인 것이 들어나는 연기!” 그는 살짝 열린 창문에 가져다 대고 조용히 말했다. 운전사는 조금은 돌려 말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뭐라고’ 하며 물어 보듯 말했고 우는 맞다고 대답했다. 택시 운전사는 조금은 소리를 높여 대꾸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생각에 들어갔다. ‘무라고! 기가 막힌 표현이야.’ 자신이 창문에 한 어이없는 행동과 그 놈들이 한 어이없는 행동을 ‘무’안에 넣어 보았다. “전부, 아무, 의무, 없는 무.” 아름다웠다. ‘남자아이들’, ‘남자 놈들’. 그리고 ‘여자학생들’, ‘여성들’. ‘10년’, ‘떠오를’ 점점 황홀해지는 기분이 들며 그 속에서 광란의 수면을 취했다. “광란의 수면” 입 모양으로만 만들어 보았다. 우는 진심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그 수면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는 그다지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을 살짝 열어젖혀 뒷산을 바라보았다. ‘숨이 막힌다’ 가끔 우는 생각했다. 굉장히 괴롭고, 우울에 빠질 만한 것을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이날 밤은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혼자 남았다고, 난 숨이 막힌다.’ 이런 주문을 외워 보았지만 도움은 그다지 되지 않았다. 고요속에 흔들리는 그림자 나무를 보고 아무 생각하지 않기를 빌었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목적지?’ 목적지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어쩌다 목적지를 찾게 되는지 그런 혼동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는 우는 우울에 빠질 수 없다고 확신했다. 생각을 접었다. 어쩌면 소원이 들어진 것 아닐까? ‘들어진다고?’ 누구의 의해서? 이런 세세한 표현과 감상에 신경을 쓰다 보니 도저히 자신이 정확히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한 폭의 그림처럼 풍경을 바라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리속을 뒤집어 놓는 좀벌레의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밖에서는 아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소리와 직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그다지 돋지 않았다, 충분히 공포의 떨어야 마땅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조금은 서늘했지만 그런 감정은 아니라고 깨달아 버렸다. 이 때문에 드디어 그는 우울해 질 수 있었다. 머리속은 그리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좁은 나무 틈사이를 지나는 바람과 어미를 찾는 새끼 고라니의 울음이었다. 곧바로 시적인 감상을 지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현실도, 자신의 현실적인 발상도 지우지 못했다. 결국 그의 순간적인 아이디어는 가식적이고 교만한 몸부림의 불과했다. 결국 우는 현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혼돈의 집합소인 머리를 자신과 분리 해버리고 싶었다. 글자로도, 외침으로도 풀 수 없는 이 엉킨 것을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
LP판이 돌아갔다. 그 파인 홈이 바늘에 긁히며 진동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그의 귀와 만나며 음으로 변했고, 그것은 우의 머리와 만나며 감정으로 변했다. ‘미’라는 것이 우를 미치게 만들었다. 우는 앞으로 이 음정을 제일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며 마음에 위로를 얻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이것이 ‘미’라는 것이 맞는지 피아노에 대고 쳐보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는 타건감이 그를 끌어 들이다가 타건음이 살짝 섞여 온전한 소리를 듣는 것에 방해를 놓자 우는 손을 꽉 쥐었다가 손바닥에 손톱 자국이 남고서야 다시 펴 조용히 건반을 두드렸다. 2옥타브 미가 바로 머리를 뒤흔든 ‘장본인’이었다.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왜 다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무라고!’ 외쳤다. 생각은 끊임 없이 뻗어 나갔고 단순한 단어 정리로 이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생각은 만약 그가 빠져든 ‘미’가 미가 아니었을 경우로 이어졌는데. 만약 우가 느낀 감동이 ‘파’였다면 그의 마음이 진심으로 파였을 것이다. 그는 ‘아무튼’ 이렇게 생각했다. ‘어찌 되었던’ ‘그 다음으로’ ‘결국’ ‘그리고’ 이런 단어는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튼 이라는 단어에 힘입어 우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는데 도전했다. 이것은 아주 힘든, 고된 길이라는 것이. 이런 생각도 곧 멈추고 일단 앞에 있는 것부터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마치 이 눈 앞에 놓인 목제 피아노에 당장이라도 잡아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 예쁘게 모양낸 나무 태가 일그러져 슬피 울부짖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 것 뿐이지만. 그는 그 부르짖는 소리가 전 세계를 뒤흔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귀도 곧 먹을 것이라는 가슴 아픈 확신을 했다. ‘전 세계’라는 것은 분명 착각 일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냈지만 ‘전 세계’라는 단어를 빼놓고 자신의 심정을 대변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귀가 미칠 듯이 울렸다. 왜 이런 지경에 놓였는지를 생각할 수록 눈 앞의 물체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괴로운 사람의 모형이었는지, 미칠 만한 것이었는지. 거칠게 숨을 쉬었다. “거칠게 숨을 쉬다.” “미칠 듯한 압박에서 나는 죽다.” 이런 방식으로 다시 ‘나’를 인지하는 우였다. 이렇게 소리내여 공감할 수 있는 단어만이 현재의 그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그렇게 털어 놓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고 앉아 있던 의자에서 힘을 빼며 굴러 떨어졌다. ‘뇌진탕에 걸렸나?’ 우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서야 자신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말했다. “피아노 앞에 의자.” 그는 일어나 피아노 앞에 의자에 앉았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니 정말 순간적으로 언어적 장애가 생겼다 살아지는 과정을 느꼈다. 두려움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우스움이 우의 귀를 살짝 빨갛게 했다. 우는 아주 쉽게 본인의 이런 상황을 머리 속 단어로 정리하여 냈다.
집 문을 열고 사람이 들어 왔다. 우는 들어온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정하여 내지 못했다. 그 사람은 우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 음성으로 우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여성’ 우는 한번 두 번 머리속에서 단어를 읊어 보고는 그 단어에서만 풍기는 이상야릇한 감정을 이해하려 했다. 우는 ‘피아노를 본적이 있냐’며 물었다. 여자가 당연히 ‘쳐 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우는 ‘쳐’라는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뜻이 아니야” 우는 ‘본적’이 있냐고 정확히 물었고 여자는 어이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 질문을 할 주는 몰랐다고 당연히 자신이 ‘쳐’를 못들은 줄 알았다는 핑계를 늘어 놓는다고 우는 생각했다. 그런 핑계는 우를 더욱 난처하게 했다. ‘도대체, 왜’ 이런 과격한 단어로 이유를 묻고 싶었다. 지레짐작으로 말의 뜻을 제 멋대로 바꾸는 것과 타인의 행동을 그저 몇 단어로 평가해버리는 태도가 -하다고 느꼈다. 그 공백에 ‘추잡’ ‘이기적’ ‘미친 짓’ 등을 넣어 보았지만 다시 머리가 좀 아파지자 포기했다. 우는 일어나 의자에 앉아 ‘미’를 쳤다. 그러고는 “미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어!” 크게 외쳤다. 우는 여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표현했다. “그것도 몰라?” “그런 뜻이 아니야” 우는 다시 의자에게 굴러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책상으로 가 공책을 펼쳤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하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공책에다가 “난생처음” 과 “샅샅이”라는 단어를 계속 번갈아 가며 적어내었다. ‘난’ ‘생’ ‘처음’ 울림 있는 외침을 하고 나자 밖에서도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샅샅이’ 하고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이 단어의 정의를 알고자 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창문 밖 사냥물을 탐색하는 고양이의 행동을 보고 ‘샅샅이 살펴 보는 군’하고 정의했다. ‘난 바보야’ 고양이의 움직임을 따라 해도 이 단어의 깊이는 따라갈 수 없었다. ‘담을 수 없다’ 이렇게 공책 맨 앞에 적어 놓고는 만족이 될 때까지 계속 두가지의 단어를 적어 나갔다. 밖에서는 사람 하나 없이 차들의 경적소리 만이 가득했다.
우는 틈만 날 때면 자신의 상황을 글로 정리해냈다. 그 공책의 앞면은 이미 사용했지만 뒷면은 아주 매끈하게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우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길을 간다. 이 말의 뜻은, 우는 행동을 하며 자신의 소신을 말한다. 이 말의 뜻은, 우는 말을 하며 우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조금은 자신이 있는 발표였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비관적이고 우울한 글을 쓰냐고 물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미 여러 대꾸를 하고 있는 바람에 우의 말을 듣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만족이 들 때까지 피아노를 두드렸다. ‘눈을 감고 나의 시간으로’ 미를 계속 치며 소리에 대하여 머리에서 생각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왕궁을 그려 보기도 하고, 푸른 초원에 누운 어여쁜 아가씨를 생각하기도 했다가, 위험 있는 장군의 아들의 생일을 그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고 다시 멀미와 피로가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내 자신의 손가락과 다른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분리 됐어’ ‘망가졌어’ 이것 만이 또한 그를 설명했다. 하지만 분리된 손가락은 계속 미를 누리고 있었다. 모든 생각이 머리를 뒤집어 놓고, 정신이 몸의 자세를 망가뜨려도 손가락은 계속 움직였고 그는 이것에 절망했다. 이제 의식은 별로 남지 않은 체 어떤 감정과 생각도 없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눈은 감고 손가락은 두드렸다. 그러고는 ‘미’와 ‘미’의 세계에 빠졌다. 단어 적 인식도, 자신을 위한 내면 속 외침도, 잡생각과 불필요한 정의도, 망가지기 위한 질문도 힘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영역에는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불가지하다’. “불가지하다! 무라고!” 외치며 ‘이것이 글자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이 두가지의 표현만이 최후에 허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