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 얘기를 어느 정도 들었던 노인은,
"그래가지고는 사람을 찾기 힘들 텐데......" 하시기에,
"그래도, 저는 그렇게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냥 포기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하자,
이제는 자신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상주 태생이면서 이제는 83세라는데, 젊은 시절엔 ('전주'에서)공직생활도 했고 교사로도 일했으며 지금은 경기도 '가평'에 기거하면서 '서예가'로도 활동하고 있다며, 자신의 작품(글씨)이 어딘가 절의 현판으로도 있고 또 어떤 잡지의 표지(제목)로도 사용된다며 그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그래서 그렇게 꼬장꼬장한 자세의 언행에 한자를 즐겨 쓰시는 모양이었는데, 연세에 비해 시력도 좋고(안경도 안 쓰고) 정신도 아주 맑으신 것 같았다.) 그러면서 지금은 상주에서 있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길인데, 상주에 도착하면 자신을 따라 갈 곳이 있다며, 어쩌면 나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용기를 내(?) 노인께 다가갔던 게 의외로 그 효과가 커질 것 같은 기대감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노인은 상당히 발이 넓은(상주의 정계 학계 문화계 사람들을 두루두루 알고 계시는) 분이기도 했는데, 중간에 노인이 또 두세 건의 전화 통화를 하는데 보니, 핸드폰 화면에 '국회의원'이란 글자가 뜨기도 하는 등, 아까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상주의 유지 급인 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노인과 대화를 나누느라 상주에 도착하면서 차창밖의 주변 풍경 같은 건 볼 틈도 없었고,
내가 버스에서 내려 자전거를 꺼내는 모습까지도 다 지켜보았던 노인을 따라 도심을 걷는데,
"제가 초면에 어르신께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사실 저는, 그 사람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뿐, 꼭 찾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그럴 보장도 없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 들었던 어르신의 조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고 너무 고마운데요......" 하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자(나는 상주 터미널에서 노인과 헤어질 줄 알았기에),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일단... 나만 따라와 보슈!" 하면서, 노인은 거리와 도심 건물 등의 설명을 계속 해주시는데,
노인의 몸놀림은 나보다도 더 가볍다 못해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듯한 모습이었고,
정말 이래도 되나? 하는, 오히려 내쪽이 더 불안한 느낌으로 노인을 쫓아가기에 바빴는데,
결국 우리는 상주 시장 근처의 한 시계포(금은방)에 닿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노인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이라는(전직 영어교사였다는) 또 다른 노인과, 동문 사무총장이라는 시계포 주인 등이 있었는데,
노인이 웬 낯선 나그네(?나)를 데려오자,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는데,
자초지종을 듣던 그들은,
"살던 곳이 어딘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만 알면 금방 찾을 낀데......" 했지만,
"저는 그 분이 상주가 고향인데, 청소년 시절에 '수원'으로 가서 살았다는 것밖에 몰라서요......" 하면서, "그래서 제가... '서울 가서 김 서방 찾는 식'으로 왔다고 했던 거구요." 하고 머쓱해 하자,
시계포 주인이,
"그래예? (내가)56년 생이면 나와 동갑인데, 어디 봅시다!" 하면서, "그 찾는 사람이... '전 00'라면, 내가 모르는 사람인데......" 하면서도 그 즉시 여기저기 몇 군데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노인이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건, 상주 바닥에서는 인맥을 훤히 꿰고 있는(을) 그 시계포 주인(후배)을 통해 내가 찾는 사람을 수소문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제대로 찾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겐 정말 일이 제대로 풀리고(?)있는 순간이자 느낌이었다. 그러니,
어? 이런 식으로 정말 그 사람을 찾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스칠 정도로 상황이 돌아가는 것 같긴 했는데,
한참 바쁘고 떠들썩하게 전화 통화를 했던 시계포 주인이,
"그 사람 찾기 힘들겠는데예? 우리 또래라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고, 또 이 정도에도 안 나오는 걸 보면......" 하는 것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저도 쉽게 찾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힘을 써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못 찾는다 해도... 여한은 없구요." 하자,
"아무튼, 혹시 모르니... 연락처라도 남겨두고 가시면, 이후에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드리지예......" 하는 식으로, 시계포에서의 일은 일단락이 되었다.
그런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추후에 몇 군데 더 알아보기로 하자'는 식으로 의견을 맞추며 나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더니,
"식사하러 가자." 며 두 노인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들과 헤어져 내 길을 가기 위해 인사를 하려는데,
"점심 먹고 가요!" 하고 노인이 나를 잡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이쯤에서... 가야 할 것 같은데요......" 했는데도,
"아니요! 점심은 먹고 가야지." 하고 두 노인이 잡기에, 또 하는 수 없이(?) 그 분들과 함께 해야만 했는데,
'가는 날이 장 날'이라고 그 날이 '상주 5일 장'이었다.
게다가 그 위치가 시장과 붙어 있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장으로 들어갔는데,
어떤 한 곳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자,
'칼국수 집'으로 가자는 두 노인의 의견에 따라 나는 졸졸 그 분들을 따라 칼국수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나름 상주에서는 '맛집'인가 보았다.
"칼국수... 어떻겠어요?" 하고 노인이 나에게 물었는데,
"괜찮습니다. 저야, 뭐... " 하고 말았는데,
그 '영어 교사'였다는 친구 분이 계속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렇게 애타게 사람을 찾는데...... 만약에 그 사람을 찾는다고 해도, 인생이란 게 어쩌면... 찾고 보면, 안 찾느니만 못할 수도 있는데......" 하시기에,
"예,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저도 이제 곧 70인데,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서요. 설사, 제가 찾는 사람이... 지금 이 세상에 없다 해도, 그런 소식이라도 좀 듣고 싶고...... 또, 최악의 경우, 병원에 있다거나 감옥 같은 데에 있다고 해도, 찾아가서 꼭 한 번은 보고 싶어서요......" 하자,
"아, 고마운 사람이네!" 하시기에,
"예, 저한텐 정말... 고마운 사람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찾으려 하는 거구요." 했더니,
"아니, 내 말은... 둘 다 고마운 사람이네. 그 사람이나... 이 사람이나..." 하는 거 아닌가.
"예? 저는 아닌데요." 하고 내가 놀라자,
"내가 듣기엔, 당신도 참 고마운 사람이오.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다니면서까지 찾을 생각이라니......" 하니,
타인들은 그렇게도 바라보는 건가? 하는 심정이 되면서, 내가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손으로 썬 칼국수가 나왔다.
우리는 시장통 중간의 식탁에 앉아 칼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사실 그 즈음의 나는, 이런 상황의 사진을 한 장 정도는 남기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는데, 두 노인께 실례가 될 것 같기도 했고, 또 하필이면 아무 손님도 없던 그 집에 우리가 가자 손님들이 몰려 와, 나에게 그럴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져,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 칼국수 값을 내가 내야 하겠는데......
그렇지만 내가 앉은 자리가 식당과 제일 먼 자리였고, 그저 두 노인을 졸졸 따라왔던 내가 나서는 게 뭔가 애매한 것 같기도 해서 주저주저 하다가,
김치가 떨어졌기에,
"제가 김치 좀 더 가져오겠습니다." 하면서 김치접시를 들고 일어나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아주머니 칼국숫값 얼마에요?" 하고 속삭이자,
만 오천 원이라기에 계산을 하고 자리에 돌아갔다.
두 노인은 칼국수를 아주 맛있게 드셨다.(사실 나에겐 크게 맛있지는 않았는데......)
그렇지만 서예가 노인이 드시는 속도가 느려 어느 정도 기다려야만 했는데,
(그 중간에 친구분이 살짝 계산을 하려고 가셨는데(나는 정면으로 앉아 있었기에 다 볼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아시고는 돌아오셨는데, 아무 말씀도 없이 앉아 계셨다.)
그러다 결국 나중에 내가 계산을 한 것을 안 노인은 펄펄 뛰는 것이었다.
"안 되지, 안 돼! 그럴 순 없어!" 하시면서,
본인의 휴대가방에서 5만원을 꺼내 단호하게 다시 계산을 하더니, 극구 나에게 만 오천 원을 돌려주시는 것이었다.
물론 그 친구 분도 나를 꽉 붙잡고 말리셔서, 나는 두 노인의 뜻에 따라야만 했고.
그렇게 뜻하지 않은 점심까지 대접을 받은 꼴이었던 나는,
이제는 그 분들과 헤어져야만 했는데,
노인은 모임이 있는 시청 앞까지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 분과는 헤어진 뒤 서예가 노인과 함께 다시 도심을 걷는데,
"아니, 어르신! 원래 점심 모임에 가셔서(거기 '한우집'이라고 들었다.) 점심을 드셨어야 했는데, 저 때문에 칼국수를 드신 건가요?"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내가 고기를 거의 안 먹어요. 술 담배도 하지 않고... 그래서 미리 칼국수를 먹고 가는 거지." 하시는데,
나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서 그렇게 정정하시고(몸도 가벼우시고), 정신도 맑으신가 보았다.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좀 기다려 봐요." 하고 노인이 헤어지면서 말씀하시기에,
"예, 선생님. 아무튼 너무나 고맙습니다. 제가 오늘 너무 운이 좋았고, 선생님께 큰 신세를 졌어요......" 하고 헤어진 뒤,
나는 본격적으로(?) 상주에서 '김 서방 찾기'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