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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31일(삼위일체 주일)
고린도전서 10:1~13
신앙생활은 조심하는 것입니다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교만을 경계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설교 목적: 성도들이 구원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죄를 경계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걷게 한다.
제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저에게 조직신학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이 계십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은퇴하셨지만, 이 교수님이 얼마나 경건하신지 모릅니다. 제가 공부했던 학교에서는 교수님들은 목회 대신 오로지 교수직만 전념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들이 새벽예배를 의무적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런데도 이 교수님은 일평생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예배를 나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새벽예배를 나가기가 무척 힘들더랍니다. “아, 오늘은 새벽예배를 하루만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이불 속에 누워서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이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는데 아무리 달려가도 몸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더랍니다. 그런데 잠시 후 어디선가 검은색 고급 자가용이 다가오기에 그 자가용을 탔더니 자가용이 자신을 편안하게 모시고 가더랍니다.
이 교수님이 곧 잠이 깨서 이 꿈이 무슨 꿈인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오더랍니다. “아, 내가 기도하지 않고 내 힘으로 최선을 다해보았자 별 볼 일 없구나.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편안하게 인도해 주시는구나.” 이 깨달음이 들자 교수님은 이불을 박차고 집을 나와서 그날 새벽예배를 드리러 갔다고 합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분들이 경건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분은 학문성도 뛰어나고, 경건하기까지 해서 신학생이었던 저에게 많은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분이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함부로 까부는 것이 아닙니다. 뭘 좀 안다고 큰소리쳤다가는 오히려 큰코다치게 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지는 법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분도 구원받았다고, 남들보다 뭘 좀 더 안다고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은 조심하는 겁니다.”
이날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신앙생활을 조심하는 겁니다.”라는 말씀이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 신앙생활은 조심하는 거야! 뭘 좀 안다고, 뭘 좀 봤다고 함부로 까부는 게 아니지.”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이겁니다. “신앙생활은 조심하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남들보다 뭘 좀 안다고, 남들보다 어떤 것을 조금 더 보았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구원받았으니까, 내가 지금 죽어도 천국 갈 확신이 있으니까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세가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1절부터 5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었다”라는 바울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선조들이 구름 기둥으로 인도받았던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스라엘 선조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홍해를 건넌 일을 회상하며 그들이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4세기 교회는 세례를 주기 위한 시설을 실내에다가 만들었는데, 그 구조가 특이했습니다. 세례 탕 양쪽을 계단식으로 오목하게 만들어서 세례를 받을 사람은 한쪽 계단으로 들어가서 세례를 받고 난 후에는 반대편 계단으로 걸어 나오게 했습니다. 이러한 세례탕 구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일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말합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사도 바울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신령한 음식은 ‘만나’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양식을 하늘에서 비같이 내려 주셨습니다. 왜 그 음식이 신령한 음식입니까? 그 음식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주신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셨던 ‘신령한 음료’는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이르렀으나 거기서 마실 물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해 원망하면서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호렙 산에 있는 반석을 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을 내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허락하신 은총의 수단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세례와 성만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신령한 음식을 먹고 반석에서 나오는 신령한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매주 먹게 되는 성찬식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세례와 성찬식을 행함으로 구원의 감격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애굽에서 구원받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향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 중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멸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직 20세 이상의 남자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네 가지를 소개합니다. 그것은 우상숭배, 음행,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 원망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소개해 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여러분은 이러한 바울의 경고가 귀에 분명하게 들리십니까?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그 구원의 감격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가 필요할까요?
첫째로,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고, 신령한 떡과 신령한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의 수단인 세례와 성만찬을 가리킵니다. 은혜는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 약속의 땅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우리가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교만에 대해서 그 어떤 면죄부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셨으니까 내가 어떠한 죄를 지어도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 따르는 죄가(罪價)는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날,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여 목욕하고 있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훗날 그가 눈물을 흘리며 진정으로 회개했지만,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갓난아기가 죽는 죄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죄책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죄가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9장 24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신앙생활은 현실에 안주하는 삶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여 여전히 옛 죄의 습관들에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권면하고 있듯이, 우상숭배, 음행, 주님을 시험하는 일, 원망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죄의 목록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를 경계하고, 이러한 죄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절제해야 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여러분은 죄를 멀리하고 자기 자신을 절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는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순간순간 의지해야 합니다.
13절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구절입니다. 우리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미쁘다’라는 말은 영어 성경에서는 'faithful'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실하다’, ‘믿을만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미쁘다’라는 말, 즉 ‘신실하다’라는 단어가 하나님께 적용이 되면, ‘언약의 신실성’, 즉 하나님은 자신이 한번 말씀하신 내용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결코 헛되이 하나님께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하나님께서 한 번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옛 이스라엘 선조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신실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숭배, 음행, 주님을 시험하는 일, 원망의 죄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는 권면을 기억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순간순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시고,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내시며, 능히 우리로 하여금 그 시험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 한 분이 선교 지역을 답사하는 중에 깊은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지역 원주민 한 사람을 가이드로 고용했습니다. 이제 그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는데. 계속 이상한 곳으로만 다니며 정글 속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교사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당신, 도대체 길을 아시오? 당신도 길을 잃은 건 아닙니까?” 그 물음에 원주민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정글에는 길이 없어요.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면, 인생에서 어떤 광야 길을 만나더라도 길이 열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도와줄 만한 사람을 부지런히 만나고 머리 싸매고 궁리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서는 것이 훨씬 유익입니다. 그것이 먼저입니다.
-출처: 박희석, 「은혜는 내일 오지 않는다」(국제제자훈련원, 2020);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5년 1월호), 235쪽에서 재인용.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시험이 있습니까?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험당할 때 모든 사람이 다 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겸손히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피할 길을 내시던지, 아니면 여러분에게 능히 감당할만한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부르셨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시는 신령한 반석이 되셨으며, 성령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순간순간 의지하십시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히 죄를 경계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행복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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