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웃는 듯 드디어 입이 벌어졌다. 여린 갈색빛 껍질이 뽀얗고 투명한 속을 드러낸다. 몽글몽글 말랑한 젤리 같은 덩어리가 보인다. 미끈하고 길게 생긴 감자 같기도 하고 홀쭉하게 야윈 키위 같기도 한 으름이 속을 보이고서야 제 이름을 찾는다.
지난 추석 성묫길에 높은 나뭇가지에 덩굴을 올리고 있는 으름을 남편이 애를 쓰고 따주었다. 동글동글 아기손 같은 나뭇잎 주위로 두세 개의 꽃잎 모양새를 한 열매가 신기하고 예뻤다. 나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은 남편의 마음이 고마워서 으름 가지를 손에 꼭 쥐었다. 산골 소년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주는 양, 으름을 내 손에 쥐어주고 앞서가는 남편의 발걸음이 경쾌해 보였다.
앞마당으로는 불쑥 솟은 큰 산이 우뚝 버티고 있고, 집 뒤로는 시퍼런 못이 있는 시댁은 70년대 새마을운동도 비켜간 오지 시골 마을이다. 단칸방 호롱불에서 어느 날 전기라는 신기루를 경험하고 자란 남편의 어린 시절을 듣노라면 조선 시대에서 온 사람 같이 느껴진다.
일손도 되지 못하고 집에서 걸리적거리는 것이 번잡아 여섯 살에 학교에 보내졌고, 다니는 둥 마는 둥 학교를 놀이터 삼아 초등시절을 보낸 이가 남편이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는 산골 소년은 늘 배가 고팠다. 주전부리 하나 없는 시골에서 단맛은 요원한 그 무엇이었다. 끼니도 못 떼 우는데 조청이나 눈깔사탕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남편은 봄이면 진달래 꽃잎의 달고 씁쓰름함을 찾아 산을 헤맸고, 여름엔 생옥수수의 비릿한 달큼함에 깔깔거렸고, 가을엔 가시덤불을 헤치고 감질나게 맛보는 으름의 단맛에 몸을 내맡겼다. 달콤한 으름 한 알을 따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 아이들을 산으로 내달리게 했다. 뒷산의 으름은 아이들의 작은 키로는 턱도 없이 장대조차 닿지 않는 곳에 덩굴을 올리고 있어 늘 애를 태우게 했다. 으름은 한없이 높게 군림하면서 입을 쫙 벌린 채 닿을 듯 말 듯 미처 자라지 못한 소년에게 손에 넣고픈 간절한 꿈으로 간직되었다.
남편의 추억과 달리, 나는 큰애의 출산을 앞두고 친정에 머물고 있을 때 으름을 처음 알았다. 부른 배를 안고 하루하루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공부 중이던 학위 논문도 마무리하고 싶었고, 빨리 순산해서 남편 곁으로 가고도 싶었다,
남편은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주말마다 오가며 느긋하게 마음먹으라 당부했지만, 출산예정일이 지나면서 더 불안하고 초조했다. 또 한 주가 지나고, 남편이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샀노라며, 상기된 얼굴로 생전 처음 보는 갈색 열매 두 개를 내밀었다. ‘조선 바나나’라고 부른다는 으름이라고 했다. 열매가 저절로 벌어졌을 때 하얀 속살을 먹으면 부드럽고 달콤할 거라 했다.
무슨 맛이려나, 언제 벌어지려나. 하루하루 벼르고 보았지만 으름도, 나의 출산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부른 배를 끌어안고 답답한 마음 풀이를 벌어지지 않는 으름에 하듯 억지로 반으로 쪼개었다. 으름 속에서 투명한 솜뭉치 같은 과육이 드러났다. 미끈미끈한 해면 같은 감촉에 이리저리 혀를 굴리니 까만 씨가 오돌오돌 걸리적거렸다. 입에 들어온 으름은 과육과 씨가 한데 엉겨 떨떠름할 뿐 남편이 말하던 단맛은 나지 않았다.
으름의 맛이 실망스럽게 해소된 그 날, 으름을 쪼개었듯 나는 기어이 분만 촉진제로 내 몸을 열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탓인지 죽을힘을 다해도 아이는 순산 되지 않았다. 용을 쓴 내 얼굴은 핏점으로 얼룩졌고, 겸자로 억지로 당겨내어 간신히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머리에 큰 물혹이 달려 있었다. 자다가도 수시로 바늘에 찔린 듯 울어대고 밤낮으로 칭얼대는 아이를 보며, 물혹이 아이를 이상하게 만든 건 아닌지,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만 탈 없으면 물색없이 성급한 성질머리 고치며 살겠노라고 다짐도 했다.
열매 한 알도 자연의 순리를 품고 있는데, 자식을 받아들이는 일은 오죽했으랴. 자연이 허락하는 때를, 신이 내게 주어지는 때를 겸손히 기다릴 줄 알아야 했다. 으름이 벌어지기를 차마 기다리지 못해 남편이 맛보여주려 했던 달콤함도 부드러움도 느끼지 못하고, 힘든 출산으로 신고식만 호되게 치르고 말았다. 다행히 건강한 아들을 보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돌이켜보면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내가 알지 못했던 으름 한 알의 온전한 단맛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으름은 덜 익어서 벌어지지 않은 것에 욕심을 내면 떨떠름해서 먹을 수가 없고, 너무 익어서 오랫동안 껍질이 벌어져 있으면 벌레가 꼬이거나 과육이 홀랑 빠져 버려 먹을 게 없다. 으름의 단맛을 제대로 보려면 적당한 기다림과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덜 익은 으름을 쥐고 안달복달 날뛰며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마는 성격 급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방방거리고, 별거 아닌 일에도 세상이 꺼지는 듯 아파하는 내가 다 익지 않은 으름처럼 미성숙해 보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 마냥 느긋하고 욕심 없는 남편은, 과육이 홀랑 빠진 빈 껍데기를 쥐고 있는 사람 같다. 벌레가 으름 열매를 먹어 치우듯 누군가가 자기 손의 것을 이유 없이 털어가도 그러려니 하는 남편은 허방 짚고 있는 사람 같다.
우리 살림도 빠듯한데 시골 큰 형님은 수시로 무리한 경제적 요구를 했다. 시골집을 새로 지었으니 페인트 값을 달라하고 걸핏하면 병원비를 보내라고 했다. 자기 손의 과육을 내어주듯 남편은 군말 없이 다 해주었다. 사춘기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포효할 때도 아이를 나무라는 말 한마디 없이 마냥 기다려주었다. 때가 되면 으름 열매가 저절로 벌어진다는 것을 알듯 남편은 그저 기다리고 지켜보는 무던함으로 매사를 넘겼다.
시골에서 으름이 세상 최고의 단맛인 줄 알고 살아온 촌놈과 형형색색 알사탕의 온갖 단맛을 보고 살아온 도회지 여자가 만나 한마음으로 맞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으름의 미지근한 단맛 같은 남편의 무덤덤한 태도가 성에 차지 않아 답답한 나날이었다. 더 쨍한 사탕 같은 단맛이 아쉬워 초조한 세월이었다. 속이 타는 건 언제나 나였지만, 돌아보면 해답은 늘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었다.
30여 년을 함께 살아가는 동안 남편이 처음 나에게 건넨 으름은 달콤함이 아니라 기다림의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을 벗 삼아 으름이 터지듯 활짝 벌어질 때까지의 기다림도 익숙해졌다. 가끔은 남편의 으름 열매가 홀랑 빠져 버리지는 않을지 조바심을 내지만 기다림이 헛되지 않음을 믿게 되었다.
저녁 무렵, 살짝 벌어졌던 으름이 활짝 열려 얼음처럼 투명하고 뽀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절정의 단맛을 느껴본다. 남편의 사랑이 부드럽게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