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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3:1
제자들은 끝임없이 높아지기를 원했고, 누가 큰 지를 두고 다퉜습니다. 십자가보다, 누릴 특권과 헛된 야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지배자가 되는 것이 자신을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군림하고 높아지기 원하는 세상에서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주야! 고난주간이 되면 의례적으로 세족식을 하기 마련이다. 참으로 의미 있고 감동적인 시간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족식에 '섬김'이라는 주제 이외에 다른 메시지는 없는 것일까?
The disciples wanted to rise endlessly, and they quarreled over who was bigger. Rather than the cross, they were obsessed with the privilege and vain ambition. He listened carefully to the sounds of the world teaching that being a ruler is the way to protect oneself. How should believers live in a world that wants to reign and rise? Princess! In the week of hardship, it is a ceremonial washing of the hands. It is a very meaningful and touching time. But is there no other message in Jesus' washing of the hands except for the theme of 'ser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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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습을 벗어난 예수님은 행동은 하나님 나라 코이노니아에 대한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제자들이 자신을 결정적인 순간에 떠날 것을 아셨다. 그중에 자신을 배반할 제자도 있다는 것도 아셨다. 아셨지만 사랑하셨고,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셨다.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사랑하셨다. 하지만 그 사랑이 유다의 배반을 막지는 못했다. 강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는 것이다.
Jesus, who deviated from the convention at the time, set an example for the kingdom of God, Koinonia. Jesus knew that his disciples would leave him at a critical moment. He also knew that there were disciples who would betray him. He knew, but he loved, and he always loved until the end. He loved until the day he passed away. But that love did not stop Judas from betraying him. We have only two choices because it was not something that could be done by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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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세상을 배반하든지,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배반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끝까지의 사랑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것으로 표현된다. 종이 하는 일을 주인이 하신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표현될 섬김의 사랑이다. 베드로는 거절하지만 예수님은 이 섬김을 받는 사랑을 수용할 때, 예수 자신과 베드로가 상관있는 관계가 된다고 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수용하는 일이다.
You can either betray the world to love God or betray Jesus to love the world. Jesus' love for his disciples to the end is expressed as washing his disciples' feet. The master does what the servant does. This is the love of service expressed on the cross. Peter refuses, but Jesus says that when he accepts this worshiped love, Jesus himself and Peter have a relationship. Believing in Jesus is trusting and accepting Jesu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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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의 섬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가 우리인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예수 없는 인생, 우리가 주인 되는 인생을 감히 꿈꾸지 않게 된다.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섬김의 사랑은 남을 살리는 사랑일 뿐 아니라 내가 사는 사랑이다. 섬김의 사랑으로 우리는 살고 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도 스승처럼 섬김의 사랑을 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가장 높은 주인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목숨을 바쳐 우리를 섬기셨으니 우리가 남을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
When we acknowledge that we are beings who cannot live without the service of Jesus' love, we do not dare to dream of a life without Jesus, the life we are masters. The love of service that Jesus has shown us is not only the love of saving others, but the love that I live. With the love of service, we live and save. If so, Jesus' disciples must now be the ones who love service like teachers. It is natural that we serve others because the highest master sacrificed his life to serve us at the lo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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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히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섬김의 사랑으로 이 나라를 섬겨줄 자는 누구인가? 난 발만 씻고 목욕하지 않는 자가 아닌가? 내가 오늘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발 씻어 주기는 고난주간의 퍼포먼스인가? 그리스도인의 사명인가? 세상 속에서 믿는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Because we have received love that we dare not repay. Who will serve this country with the love of service? Am I not a man who only washed his feet and does not bathe? What would I do if I died today? Is foot washing a weekly performance of hardship? Is it the mission of Christ? How should those who believe in the world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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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세족의 배경(1-2)
a.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1
b.마귀의 계략:2
예수님의 세족과 정결(3-8)
a.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는 예수님:3-5
b.세족과 예수님의 사역:6-8
예수님의 정결케 하시는 방법들(9-11)
a.전신을 씻기 원하는 베드로:9
b.발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시는 예수님:10-11
예수님의 겸손한 섬김의 본(12-15)
a.선생과 주님이신 예수님:12-13
b.겸손한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14-15
제자들의 위치와 겸손(16-17)
a.제자들의 위치:16
b.제자들의 복된 삶;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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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전에(1a)
예수께서(1b)
자기가 세상을 떠나(1c)
아버지께로(1d)
돌아가실 때가(1e)
이른 줄 아시고(1f)
세상에 있는 자기(1g)
사람들을 사랑하시되(1h)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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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가 벌써(2a)
시몬의 아들(2b)
가룟 유다의 마음에(2c)
예수를 팔려는(2d)
생각을 넣었더니(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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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는 중 예수는(3a)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3b)
자기 손에(3c)
맡기신 것과(3d)
또 자기가(3e)
하나님께로부터(3f)
오셨다가(3g)
하나님께로(3h)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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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잡수시던(4a)
자리에서 일어나(4b)
겉옷을 벗고(4c)
수건을 가져다가(4d)
허리에 두르시고(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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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5a)
대야에 물을 담아(5b)
제자들의 발을(5c)
씻기시고(5d)
그 두르신 수건으로(5e)
씻기기를 시작하여(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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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드로에게(6a)
이르시니(6b)
가로되 주여 주께서 (6c)
내 발을(6d)
씻기시나이까?(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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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7a)
대답하여 가라사대(7b)
나의 하는 것을(7c)
네가 이제는(7d)
알지 못하나(7e)
이 후에는 알리라(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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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가로되(8a)
내 발을 절대로(8b)
씻기지 못 하리이다(8c)
예수께서 대답하시되(8d)
내가 너를(8e)
씻기지 아니하면(8f)
네가 나와(8g)
상관이 없느니라(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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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드로가 가로되(9a)
주여 내 발 뿐 아니라(9b)
손과 머리도(9c)
씻겨 주옵소서(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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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10a)
이미 목욕한 자는(10b)
발 밖에(10c)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10d)
온 몸이 깨끗하니라(10e)
너희가 깨끗하나(10f)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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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기를 팔자가(11a)
누구인지 아심이라(11b)
그러므로(11c)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11d)
하시니라(1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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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12a)
옷을 입으시고(12b)
다시 앉아(12c)
저희에게 이르시되(12d)
내가 너희에게(12e)
행한 것을 (12f)
너희가 아느냐(1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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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선생이라(13a)
또는 주라 하니(13b)
너희 말이 옳도다(13c)
내가 그러하다(1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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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와(14a)
또는 선생이 되어(14b)
너희 발을 씻겼으니(14c)
너희도 서로(14d)
발을 씻기는 것이(14e)
옳으니라(1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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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15a)
행한 것 같이(15b)
너희도 행하게(15c)
하려하여(15d)
본을 보였노라(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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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진실로(16a)
너희에게 이르노니(16b)
종이 상전보다(16c)
크지 못하고(16d)
보냄을 받은 자가(16e)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1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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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것을(17a)
알고 행하면(17b)
복이 있으리라(1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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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예수와 배반하는 유다_
My beloved Jesus and betraying Yu-da.
예수님의 발 씻어주시는 섬김_
Jesus' service to wash his feet.
제자들에게 요구된 상호 섬김_
Mutual service required of his dis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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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높아지려는 마음과 풍유를 누리려는 마음이 자족함을 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온전히 목욕하고 착한 백성이 되겠사오니 주님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Thank you for loving your people until the end. The desire to rise and enjoy abundance made me forget about my self sufficiency. I will fully bathe and become a good people, so forgive me, Lord.
2026.3.16.mon.Clay
신학 비평//
요한복음 13장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공생애 동안 표적과 가르침으로 드러났던 예수의 사역이 이제 십자가를 향한 마지막 사랑의 시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핵심 문장은 이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여기서 끝까지”(εἰς τέλος)*라는 표현은 단순히 시간적 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죽기까지 사랑했다/완전히 사랑했다/목적을 이루기까지 사랑했다)라는 <구속사적 완성>의 의미를 갖습니다. 즉 세족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십자가 사랑의 예고편입니다.
1) 세족식 — 사회 질서를 뒤집는 행동
당시 유대 사회에서 발 씻는 일은 종/가장 낮은 하인/이방인 노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선생/주/메시아의 위치에서 종의 행동을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권력 질서를 뒤집는 행동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높아져라/지배하라/군림하라 그러나 예수는 전혀 다른 질서를 선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력은 섬김이다. 베드로는 세족을 거절합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리이다.” 이 거절은 단순한 예의가 아닙니다. 인간의 종교적 자존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하지 하나님에게 섬김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인간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말합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구원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하시는 일입니다.
2) 유다의 등장 — 사랑과 자유의 긴장
본문에는 매우 긴장된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는 유다의 배반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의 발을 씻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등장합니다. 왜 예수의 사랑이 유다의 배반을 막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사랑의 본질 때문입니다. 사랑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두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을 배반하거나,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유다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3) 발만 씻으면 된다 — 구원의 신학
베드로는 갑자기 말합니다.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그러자 예수는 말합니다.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여기에는 중요한 구원의 신학이 담겨 있습니다. 목욕은 <구원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미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자는 전체가 깨끗합니다. 그러나 발은 계속 더러워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 씻음은 <지속적인 회개와 정결>을 의미합니다.
4) 코이노니아 — 하나님 나라 공동체
세족의 또 다른 의미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는 단순한 교제가 아닙니다.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공동체, 서로를 살리는 공동체, 서로의 죄와 연약함을 짊어지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권력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고난주간마다 세족식을 합니다. 그러나 질문이 남습니다. 이것이 감동적인 퍼포먼스인가, 아니면 삶의 방식인가? 예수의 세족은 의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권력을 내려놓는 삶/타인을 섬기는 삶/자기 중심을 포기하는 삶,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4) 결론
요한복음 13장의 세족은 단순한 겸손의 교훈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선언합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높아져라-군림하라-지배하라 그러나 예수는 말합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라>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권력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에 발을 씻는 사람인가 아니면 평생 발을 씻으며 사는 사람인가?
